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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붉은 열매를 가진 적이 있다 원문보기 글쓴이: 자유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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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일흔이셨다. 권정생의 건강을 아는 사람들은 걱정을 많이 하셨다. 전우익 선생보다 이오덕 선생보다 일찍 돌아가실 줄 알았다. 그러나 두 분이 먼저 떠나시고 몇 해를 더 사셨다. 이오덕 선생이 별세하셨을 때 나타나지 않으셨다. 가도 그를 볼 수 없으니 갈 일 없다 하셨다. 그리고 이제 하늘에서 세분이 만나셨다. 호상이다. 무릇 생명이란 죽음을 전제로 있는게 아닌가. 그러니 어떤 생명인들 소중하지 않은게 있을까. 진짜 가엾은 것은 인간들이 저 죽을 줄 모르고 알량한 지식과 부와 권력으로 저지르는 편가르기와 싸움이다. 이 폭력의 한 가운데 돈과 기술과 경쟁이 있다. 돈과 부의 축적이 세상을 이렇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이라크 전쟁도 그렇고 우리의 분단도 그렇다. 이로 말미암아 희생과 고통을 받는 쪽은 늘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이다. 권정생은 평생 가난하게 살았다. <몽실언니>가 티브이 드라마로 방영되면서 받은 돈도 어린이 문학협의회에 보태라고 고스란히 떠넘기기도 했는데 회원들이 이를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다. 자신의 책이 <느낌표>에 방영되면 베스트 셀러가 될텐데도 아이들이 책방에서 스스로 책을 고르는 행복을 빼앗는다고 티브이 방영을 나무라기도 했다. 그는 돈보다 생명과 인간을 먼저 생각했다. 그리고 천하고 버림받은 쪽에 있었다. 사람 뿐 아니라 무지랭이도 그랬다. 흔한 개똥을 보고 <강아지똥>을 쓸 수 있었던 것도, 방에 생쥐를 내치지 않은 일도, 풀벌레들과 더불어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도 자연과 사람을 중심에 놓고 길어 올린 삶의 철학이다. 권정생은 객지를 떠돌다가 나이 서른에(1967년) 안동시 일직면 조탑동에 머믈게 된다. 마을 교회 종지기를 하면서 어린이를 위한 글쓰기를 시작했다. 몸과 마음의 상처를 동화로 풀어내고 희망을 쏘아 올리는 일에 어렵살이 몰두했다. 1969년 <강아지 똥>을 발표하고 월간<기독교교육>의 제1회 아동문학상을 받았다. 이 때 이현주 목사가 쓴 시상식 풍경이다. '그 상을 받으러 상경했을 때였다. 틀림없이 장터 행상에서 샀을 허름한 코트를 목이 긴 털 셔츠 위에 걸치고 무릎이 벌쭉하니 나와 종아리가 다 드러난 검정 바지에 검은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그것은 빳빳한 와이셔츠 깃 아래 어지러운 무늬의 넥타이를 매고 윤이 나도록 손질한 가죽구두를 신은 서울 놈들에게 통괘한 일격이었다. 권정생의 동화는 고스란히 그의 삶에서 나온 것이고 그 동안 형식과 말장난에 치우쳐 얼빠진 어린이 문학에 우리들의 삶과 정신을 되살려 놓은 것이다. 이오덕 선생도 권정생의 동화가 생명의 소중함과 폭력에 대한 저항에서 나온 것임을 그의 생활을 통해 밝혀 놓고 있다. '한번은 찾아갔더니 교회를 둘러쌌던 탱자나무 울타리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시멘트 벽돌담이 높이 둘러쳐 있고 커다란 철대문이 잠겨 있어 몸시 서운했다. 교회 앞 마당에 서 있던 몇 그루 커다란 참나무들도 보이지 않았다. 알고보니 교회에서 새마을 운동을 한다고 그리한 것이란다. 권 선생이 나무를 베지 말라고 아무리 호소해도 소용이 없었다. 마지막에 어린 대추 나무 하나가 남아있는 것마저 톱으로 베고 있는 것을 권 선생이 그 대추나무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 바람에 할 수 없이 톱질을 그만 두더라는 것이다. 그 대추나무를 살펴보니 밑둥치에 정말 톱으로 반쯤 베다만 흔적이 보였다.' 권정생은 생명에 대한 사랑을 말로만 한것이 아니라 마음과 몸으로 그리고 어린이를 위한 문학으로 실천 하시다 돌아가셨다. 그러니 그는 어떤 종교인 보다 신앙인 보다 예수의 삶과 가깝게 실천하다 간 사람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했던가. 그는 갔어도 그가 남긴 동화속에 부활하여 돌아다닐 거다.
나는 <강아지 똥>을 넘어서는 감동을 다른 동화에서 받지 못했다. <강아지 똥>은 우리말로 쓴 동화로 세계 어린이와 함께 나누어도 손색이 없을 훌륭한 동화다.신델렐라, 콩쥐팥쥐, 안데르센 동화에도 현실의 아픔을 아름답게 극복하는 삶에서 오는 감동을 찾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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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가난하게 살지언정 마음은 부자로 살아...모든 건 내 안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운 풍경에 마음 내려놓고 가요. 운향님!
사랑은 낮은데로 흘러갑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겸허히 하늘 올려다 보는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