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3.8.주일낮예배 설교
*본문; 창 11:1~9
*제목; 창세기 읽기(12) 바벨
프롤로그. 사람이 변화하지 않는 이유
사람은 참 바뀌지 않는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지만, 뇌과학적으로 보면 ‘뇌는 변화를 위험으로 감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두엽의 변화의 명령을 편도체의 위험 명령으로 이기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오는 ‘스트레스 호르몬’(노르아드레날린)의 고통을 우리는 이기지 못한다.)
이러한 변화를 초래하려면 역시 “습관”(뇌를 이기는 명령)을 가져야 한다.(습관은 우리 안에 안정화 호르몬인 ‘세르토닌’을 분비한다.) 습관을 가지려면 첫째로는 점진적인 변화의 방법을 사용해야 하고, 둘째로는 21일간의 기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반복되면 해마는 이 행위가 스스로에게 매우 중요한 것임을 인식하고, 중장기 기억에 저장시킨다. 이것이 바로 “습관”이다.
어쨌든 사람이 참으로 변화가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1. 인간은 쳐서 복종시키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오늘 본문에 참 변화지 않는 인간들이 등장한다.
노아의 홍수 이후,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을까? 아니다. 인간들은 다시 죄 가운데로 나아간다. 이것이 본성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받기에 참으로 힘든 족속들이다. 불나방처럼 죽으라고 지옥불로 뛰어든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명을 위해서는 바울처럼 자신을 쳐서라도 복종시켜야 한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전 9:27)
그러지 않으면 우리들의 죄된 본성으로는 구원과 천국으로 나아갈 수 없다. 당신을 쳐서라도 복종시켜라. 그래서 구원과 천국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 되자.
어쨌든 홍수에서 구원 받은 인류는 다시 죄악으로 몰려들었다. ‘4절’을 보자.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창 11:4)
이는 단순한 이야기 같지만, 죄의 결정판이다.
첫째로는 “하늘에 스스로 가려고 한다.”
구원은 그리고 천국은 오직 하나님만이 허락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 구원을 허락받고 싶지만, 자격을 갖추기 싫으니 스스로 가려는 것이다. 그럴 수도 없지만, 그런 마음 자체가 죄의 결정판이다.
둘째로는 “흩어짐을 면하려 한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축복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고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인류는 어기고 땅에 두루 흩어지기를 거부한 것이다. 죄의 두 번째 결정판이다.
우리 인간이 이런 존재이다. 그러니 늘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서 하나님의 뜻과 길에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해야한다.
2. 하나님의 징계, 말은 나누심.
이런 인류의 죄악을 하나님은 그냥 보실 수 없으셨다. 또 지옥불로 심판의 길로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고민하신 방법이 바로 말을 나누는 것이었다. ‘6~8절’이다.
“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창 11:6~8)
말이 통하면 마음이 통한다. 마음이 통하면 영이 통한다. 그러므로 말이 통하지 않으면 마음도 영도 단절된다.
당신의 관계의 어려움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말”을 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로 간에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방법은 바로 “3:1법칙”이다. 상대가 3번 말할 때, 나는 1번 말하면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상대가 관계가 이미 병적으로 악화되었다면 “5:1법칙”(사랑의 언어 법칙)으로 강화해야 한다. 상대에게 긍정적인 칭찬을 5번하고 나의 요구를 하면 상대가 그 말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다르지 않다. 하나님의 음성을 3번 듣고, 나의 기도를 1번 하면 된다. 내가 영적으로 깊이 병들었으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5장을 읽고, 기도하기 시작하면 된다.
어쨌든 이를 잘 아신 하나님께서 인류의 말을 나누셨다. 그 때부터 우리는 복잡하고 다양한 언어체계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이 그 유명한 “바벨” 사건이다.
3. 아브람의 출현
위기 뒤에는 항상 기회이다. 인류가 이처럼 죄악의 깊이로 나아가 죽음 앞에 놓여 있을 때, 드디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믿음의 사람 “셈”의 후손으로 등장한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은혜도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와 같은 오랜 시간을 준비와 이유의 적립이 있어야 “아브람”이 등장하는 것이다.
당신의 복의 이유를 지금부터 만들라. 서두르지 말고, 그러나 결코 멈추지 않고 달려가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의 “아브람”을 만들어 가실 것이다. 아멘.
첫댓글 이 설교는 바벨탑 사건을 통해 인간의 끊임없는 교만과 불순종을 지적하며,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변화를 거부하고 자기 중심적인 삶을 지향하지만, 사도 바울처럼 스스로를 쳐서 복종시키는 결단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물러야 함을 강조합니다. 특히 죄의 본질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인본주의에 있음을 경고하며, 무너진 소통을 복원하기 위해 말씀과 기도에 정진할 것을 권면합니다. 또한 절망적인 타락의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이라는 새로운 희망의 통로를 예비하셨음을 전합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들이 각자의 삶에서 믿음의 조상과 같은 역할(희망)을 감당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인정하는 새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축복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