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거룩하고 복된 주의 날에 살아계신 하나님 전에 나와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님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무엇을 자랑하십니까”입니다.
사람들은 제 잘난 맛에 산다고 합니다. 태생이 삼척인 사람이 있습니다. 아는 척, 가진 척, 잘난 척하는 사람입니다. 하긴 멸치도 집안을 자랑합니다. 뼈대 있는 집안이라고! 지난주에는 올해 노벨상 수상자를 발표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평화상 외에 아직 수상자가 없습니다. 수상자들은 개인에게도 영광이지만 그 나라의 자랑이기도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자랑하시길 바랍니다.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대부분 자기 자랑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내 자랑 같지만...’, ‘자랑은 아니지만...’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했으니까’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다 해주셨다고 하면서도 자기를 드러냅니다. 하나님 자랑이 아니라 결국 자기 자랑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랑하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역설적으로 자랑을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면 그게 더 큰 고통이랍니다. 재미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장로님이 골프에 재미가 붙어서 급기야 주일 아침에 아프다고 핑계대고 혼자 골프 치러 갔답니다. 이를 본 천사가 하나님께 저 장로를 정신 차리게 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자 하나님도 알겠다고 하셨습니다. 1번 홀에서 스윙을 했는데 무려 350야드나 날아가서 빨려 들어갔습니다. 그 어려운 홀인원을 했습니다. 이것을 본 천사가 말했습니다. “아니, 하나님, 벌을 주신다면서 어째 홀인원을!” 그러자 하나님께서 저게 벌이라고 하셨습니다. “장로가 돌아가서 홀인원했다고 자랑은 해야겠는데 자랑하면 주일날에 골프 치러 간 것 들통이 날 것이니 자랑하고 싶어도 자랑 못하는 게 얼마나 큰 고통이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자랑하지 말아야 하는 것과 자랑해야 하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즉 ‘지혜'와 ’용맹'과 ‘부함’은 자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지혜와 힘과 재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는 일반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우선시하는 것, 진정 갖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갖기 원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들의 삶을 평안하게 하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 가지를 추구할 뿐 아니라 의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자랑하지 말라, 즉 의지하지 말라고 합니다.
1.먼저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하나님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지혜 있어도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에 불과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많은 것을 안다고 해도 하나님의 지식에 비하면 만분의 일도 알지 못합니다. “고전8:2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인간은 마땅히 알아야 할 것도 다 알지 못합니다. 아무리 만물박사니,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니 해도 세상에 밝혀진 지식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하물며 창조주인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자기의 지혜를 자랑하지도, 신뢰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고백합니다. 전9:11입니다.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 분명히 사람은 자기의 시기도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들이 재난의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들도 재앙의 날이 그들에게 홀연히 임하면 거기에 걸리느니라” 지혜자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명철한 자라도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에게 닥칠 시기와 때도 알지 못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앞은 보지만 뒤를 못 보는 것이 인간입니다. 과거는 알지만 미래를 모르는 인간입니다. 그러니 무엇을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말고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한 자가 진짜 지혜자입니다.
2.이어서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앞에서 솔로몬이 말한 것처럼 용맹으로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승리도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심으로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수라도 말과 군사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여호와를 의지하라고 했습니다. 시33:16,17에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 구원하는 데에 군마는 헛되며 군대가 많다 하여도 능히 구하지 못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시편 20:7에서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앗시리아 제국과의 3차 전쟁에서 십팔만 오천 명을 섬멸하고 승리했습니다.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헤로도토스는 앗시리아 군대가 전염병으로 하루 저녁에 다 죽은 것으로 기록하지만 성경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듣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치셨다고 기록합니다. 그러자 이후에 애굽에서 축하사절단이 왔는데 마치 자기들의 능력으로 승리한 것처럼 나라의 모든 곡간을 다 보여주면서 그들의 강성함과 부요함을 자랑하고 말았습니다. 그 밤에 하나님께서 왕에게 말씀합니다. 네가 자랑하며 보여준 모든 것을 다 옮기겠다고. 하나님이 하신 일을 자신의 능력으로 한 것처럼 자랑했기 때문입니다. 자랑은 교만일 뿐입니다. 교만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입니다. 자랑은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3.그리고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모세는 인생이 칠십이요 강권하면 팔십이로되 그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라고 고백합니다. 누구나 돌아갈 때는 빈손으로 갑니다. 공수래공수거입니다. 세계를 정복했던 알렉산더왕은 서른 두 살 나이에 생을 마감하면서 장례식에 내 손을 관 밖으로 나오게 해서 사람들이 보게 해달라고 유언했습니다. 천하를 호령한 알렉산더도 결국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을 확인하도록 말입니다. 전5:14입니다. “그 재물이 재난을 당할 때 없어지나니 비록 아들은 낳았으나 그 손에 아무것도 없느니라 그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가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자기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벌거벗고 나왔은즉 나온 대로 돌아갑니다.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예수님도 한 부자의 어리석음에 대해 책망했습니다. 부자가 소출이 너무 많아 곡간을 헐어 더 크게 짓고 곡식을 쌓아두면서 자기 영혼을 향해 말합니다. 눅12:19입니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그에게 주님은 말씀합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네가 준비한 것이 무엇이 되겠느냐?” 아무리 수고하고 애써 모은 재물로 영혼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지혜자나 용맹한 자나 부한 자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다만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잠27:1에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약4:16에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고 하지만, 너희는 잠시 피었다가 사라지는 안개니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허탄한 자랑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자랑의 결론은 ‘그래, 너 잘났다’가 아니라 ‘자랑은 하나님 보시기에 다 악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정말 자랑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예레미야는 1.하나님 아는 지식을 자랑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단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알다’는 ‘야다’라는 단어인데 경험하여 알다, 맛보아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체험적으로는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아는 것을 말합니다. 즉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고 그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고 용서를 맛보고 은혜를 맛보고 그 맛본 것을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요17:3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이것이 바로 영생, 곧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 때 구원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체험으로 알아야 합니다. 그냥 머리로 하나님을 이해하고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경험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만난 하나님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하나님, 내가 만난 하나님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하나님 아버지는 이런 분이라고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아버지의 뜻은 이것이니, 라고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보냄을 받고 왔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왔다고 선언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잘못 알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을 오해하지 말라고,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오직 아버지를 자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나를 누구보다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나의 모든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는 분입니다. 죄인이 죄를 더 지어야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죄인임을 고백하고 주님 앞에 회개할 때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위로자이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렇게 만난 하나님을 우리도 전하는 것입니다.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분임을 자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행한 대로 갚으시고 보응하는 분이시고 반드시 심판하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심판할 때에도 언제나 옳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떤 판결을 보고 판사를 나쁘다, 잘못됐다고도 합니다.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이 아닙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판결이 잘못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옳습니다. 그래서 후회가 없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서도 공의와 정의와 거룩함을 나타내는 분입니다.
전도가 무엇입니까? 전도는 예수님을 자랑,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용서해주시고 만나 주신 것에 대한 자랑이 전도입니다. 우리는 다른 어떤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신기하게도 자기자랑하거나 아내나 남편을 자랑하면, 팔불출이라고 하는데, 자식 자랑, 손주 자랑하면 돈부터 내어놓고 하라고 하지만 예수님 자랑하면 팔불출이라고 하지도 않고 예수쟁이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 진정한 예수쟁이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