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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시의 관광
모악산과 금산사(金山寺)·귀신사(歸信寺) 등의 명산고찰과 어우러진 수려한 자연경관, 백제 때 축조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인 김제 벽골제부터 근대에 한옥 양식으로 건축된 금산교회에 이르는 역사문화 유적 등 다양한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산림청에서 선정한 '한국의 100대 명산'의 하나인 모악산은 김제시와 완주군·전주시의 경계에 위치하며, 김제시에 속한 면적이 가장 크다. 모악산에 오르면 호남평야가 한눈에 펼쳐져 호남평야의 전망대라 불리며, 모악산의 아름다운 봄 경치를 칭송하는 모악춘경(母岳春景)은 변산하경(邊山夏景, 변산반도의 여름 풍경)·내장추경(內藏秋景, 내장산의 가을 단풍)·백양설경(白陽雪景, 백양사의 설경)과 함께 '호남 4경(景)'으로 꼽힌다. 1971년 모악산 일대의 약 43㎢ 면적이 모악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도립공원 일대에 금산사·귀신사·대원사(大院寺) 등의 고찰(古刹)과 장군봉·눌연계곡·금동계곡·선녀폭포, 증산교본부가 있는 오리알터와 금평저수지, 모악산캠핑파크와 눈썰매장·물놀이장·놀이시설을 갖춘 모악랜드, 1908년에 한옥으로 건축된 금산교회(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1907년 목조 건물로 세워졌다가 한국전쟁 때 소실된 뒤 1959년에 재건된 수류성당 등이 있다.
금산사는 백제 법왕 때 창건되었다고 전하는 고찰로 '김제 금산사 일원'이라는 명칭의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미륵전·노주(露柱)·석련대(石蓮臺)·오층석탑·당간지주·대장전(大藏殿)·석등(石燈) 등 국보·보물을 비롯한 10여 점의 국가·시도 지정 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봄이면 모악산 입구에서 금산사까지 흐드러진 벚꽃길이 장관을 이루며, 일반인들이 산사의 일상을 체험할 수 있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귀신사는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보물로 지정된 대적광전(大寂光殿)을 비롯하여 다수의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벽골제 관광지
백제 때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축조된 벽골제는 당시에 발달한 토목기술을 보여주는 농경문화의 유산으로서 부량면 신용리에서 월승리로 이어지는 약 2.6㎞의 제방과 본래 5개로 설치된 수문 가운데 2개인 장생거(長生渠)·경장거(經藏渠)의 돌기둥이 남아 있다. 2009년 벽골제를 중심으로 부량면 신용리·용성리 일원의 18만여㎡ 면적이 관광진흥법에 따라 관광지로 지정되었다. 벽골제 관광지에는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아리랑문학관·벽천미술관·우도농악관을 비롯하여 참여와 체험을 통하여 농경 역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마련된 농경사 주제관·체험관, 무자위·맞두레·디딜방아·용두레 등 전통 농사 기구·시설 등으로 꾸며진 테마연못, 벽골제 축조와 관련된 설화가 깃든 단야각(丹若閣)과 단야루(丹若樓), 미래의 농업생명공학을 이끌어 갈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하여 생명과학·농업기술·농업문화·생태환경 등의 체험활동을 제공하는 국립청소년농생명센터 등이 조성되어 있다.
역사·문화 명소
교동에 조선시대 김제군의 수령이 근무하던 동헌과 지방의 공공 교육기관으로 설립된 향교가 보존되어 '김제 관아와 향교'라는 명칭의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수령의 가족들이 생활하던 살림집이 피금각(披襟閣)이라는 누각과 함께 남아 있어 '김제 내아(內衙)'라는 명칭의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동헌과 내아가 함께 남아 있는 것은 매우 드문 사례이며, 김제동헌과 김제향교 대성전은 각각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백산면 부거리에는 조선 후기에 천주교 박해를 피해 이주해 온 신자들이 정착하여 옹기마을이 형성되었으며, 200여 년 전에 조성된 옹기가마와 작업장이 남아 있어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의 무대인 죽산면 홍산리에는 일제의 수탈기관인 주재소와 면사무소·우체국·정미소를 비롯하여 내촌마을과 외리마을에 거주하던 주요 등장인물들의 가옥들, 일제의 수탈에 못 이겨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생활하던 이민자들의 궁핍한 가옥, 안중근 의사가 일제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하얼빈역 등을 재현한 아리랑문학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인접한 죽산리에 《아리랑》에 실명으로 등장하는 일본인 농장주 하시모토 나카바가 운영하던 농장 사무소가 남아 있어 국가등록문화유산(김제 죽산리 구 일본인 농장 사무소)로 지정되어 있다.
레저·휴양 명소
만경읍 만경리에 능제(陵堤) 저수지를 기반으로 김제지평선마린리조트가 조성되어 모터보트·제트스키·수상스키·바나나보트·웨이크보드 등 다양한 수상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진봉면의 만경강 하구에 자리 잡은 망해사(望海寺)는 서해와 고군산군도가 한눈에 펼쳐지는 조망 명소로 유명하고, 산책로로 이어지는 인근에 3층 규모의 진봉망해대가 설치되어 수려한 바다 풍경과 김제평야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청하면 대청리의 청하산 자락에 위치한 하소백련지(蝦沼白蓮池)는 연꽃이 피는 6월 말에서 8월 말에 걸쳐 다른 지역의 백련과는 달리 청백색의 연꽃과 푸른 연잎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경관이 펼쳐져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진다. 금구면의 대율저수지(대화저수지)는 주변 경관이 빼어날 뿐 아니라 붕어·메기 등의 씨알이 굵기로 이름난 낚시 명소이기도 하다. 농촌체험 휴양마을로는 보리인절미 만들기와 벼 베기·고구마 캐기·트랙터 타기 등의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성덕면 남포들녘마을을 비롯하여 백산면의 조수골마을, 금구면의 김제외갓집마을과 산성메마을, 죽산면의 알콩쌀콩등대마을과 내촌아리랑마을, 진봉면의 심포드리마을, 광활면의 광활권역마을, 금산면의 수류산골마을, 금구면의 두월노을마을, 백구면의 로컬랜드, 용지면의 황토마을 등이 있다.
둘레길
전남 해남군 땅끝탑에서 서해안을 따라 인천시 강화군을 연결하는 서해랑길 109개 코스 가운데 죽산면의 동진강석천휴게소를 기점으로 알콩쌀콩들녘체험관~성덕우체국~봉화산을 거쳐 진봉면의 심포항에 이르는 51코스(23.4㎞)와 심포항을 기점으로 망해사~진봉면사무소~만경낙조전망대를 거쳐 군산시 대야면의 새창이다리(구 만경대교)에 이르는 52코스(18.4㎞)가 김제시에 속한다. 또한 모악산 둘레를 한 바퀴 도는 모악산마실길이 김제시와 완주군·전주시에 걸쳐 7개 코스(총 72.2㎞)로 조성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 전주시 경계의 유각재를 기점으로 귀신사~싸리재~서강사~남강정사~금평저수지~금산사를 거쳐 완주군 경계의 배재에 이르는 1코스(21.3㎞)와 금산사 주차장에서 백운동마을~귀신사~싸리재~금평저수지를 거쳐 금산사 주차장으로 순환하는 2코스(13.3㎞)가 김제시에 속한다. 이밖에 진봉면사무소를 기점으로 진봉방조제~전선포~망해사~두곡서원~심포항~인하마을 쉼터를 거쳐 거전리 종점에 이르는 10㎞ 구간의 새만금광역탐방로(새만금바람길)와 금구면 일대의 산책하기 좋은 숲길들을 연결하는 금구명품길이 2개 코스로 조성되어 있다.
출처:(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전북 김제
하늘과 땅이 맞닿은 풍요의 땅“
그 끝이 하늘과 맞닿아 있다. 광활한 들녘은 어느 누구나 기를 쓰고 걸어도 제자리에서 헛걸음질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 벌판은 ‘징게 맹게 외배미들’이라고 불렸다. 이곳이 김제 만경평야이며 호남평야의 한 축이다. 호남평야 안에서도 김제 만경 벌은 특히 막히는 것 없이 탁 트여서 한반도 땅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이루어내는 곳이다.”
맑은 날 코스모스가 핀 김제의 들녘 | 김제시 제공
소설가 조정래는 대하소설 [아리랑] 첫 장에서 김제 만경 너른 평야를 이렇게 묘사했다. 김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하늘과 땅이 일직선으로 맞닿은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북쪽의 만경강과 남쪽의 동진강 사이에 펼쳐진 광활하고 풍요로운 김만(김제만경의 줄임말) 평야를 품고 있는 곳이 김제다. 김제시 전체 면적의 절반이 논이라고 설명하면 쉬울 터다. 김제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이곳을 ‘징게 맹게 외배미들’이라고 부른다. ‘외배미’란 이 배미 저 배미 할 것 없이 모두 한 배미로 툭 트였다는 데서 온 말이니 ‘김제 만경 너른 들’이라는 뜻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광활한 평야 한가운데에 서면 지평선을 바라볼 수 있다. 어느 시인은 이 광경을 일컬어 ‘눈이 모자라 다 볼 수 없다’고 표현했다.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어머니 같은 산
1971년 12월 1일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모악산(793.5m)은 전라북도 대부분의 시·군에서 그 웅장한 자태가 바라보이는 대표적인 ‘평지 돌출 산’이다. 모악산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한반도 최대 곡창 지대인 호남평야의 젖줄 역할을 하고 있어 ‘어머니의 산’으로도 불린다. 고어인 ‘엄뫼’를 의역해서 모악(母岳)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민족의 영산으로 매년 해외에서 명상을 하려는 외국인들이 몰려들고 있는 모악산의 설경.
모악산의 골짜기는 숲이 울창하고 계곡이 깊지만 정상에 가까울수록 뚜렷한 임상이 보이지 않고 잡목류가 무성한 형태를 보인다. 호남평야의 젖줄 구실을 하는 구이저수지, 금평저수지, 안덕저수지와 불선제, 중인제, 갈마제 등의 물이 모두 이곳 모악산으로부터 흘러든다. 정상에 올라서면 전주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남으로는 내장산, 서쪽으로는 변산반도가 바라보인다. 동학농민운동과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큰 나무는 거의 베이거나 불에 타 사라졌지만, 4월에 피는 벚꽃과 배롱나무꽃이 장관이다.
천오백 년 역사를 지닌 금산사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39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금산사는 2008년 12월 18일 사적 제496호로 지정됐다. 백제법왕 원년(599년)에 나라의 평안과 백성의 복을 기원하기 위한 원찰로 조그맣게 산문이 열렸다. 신라 혜공왕 2년(766년)에 진표율사가 크게 중창하며 미륵신앙을 근본도량으로 한 대승불교의 신앙체계를 모두 갖추고 있는 통불교적 사찰로 변모했다. 후백제 935년 견훤이 아들 신검에 의해 유폐되기도 하였으며 고려 문종 33년(1079)에 주지로 부임한 혜덕왕사(慧德王師)는 전대미문의 전성기를 이룩했다.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위기에 처한 나라와 백성들을 지키려는 뇌묵처영 스님을 중심으로 한 1500여 승병들의 훈련장으로서 승병들의 헌신적인 활동에 의해 재난을 겪지 않았다. 그 후 정유재란 때 왜군들의 보복으로 인해 장엄했던 80여 동 건물과 40여 암자가 한줌의 재가 되고 말았다. 선조 31년(1601) 수문대사가 복원불사를 시작, 35년 만에 대적광전과 미륵전 등 대사구 지역만 낙성했다. 1961년 태공월주 화상이 주지로 부임한 이후 일주문을 비롯해 금강문, 사천왕문, 보제루, 미륵전, 대적광전, 나한전, 대장전, 명부전, 승당, 서전, 요사체 등의 건물을 중수 또는 중건하고 방등계단의 성역화를 마무리 해 면모를 갖췄다. 드라마 [태조 왕건]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금산사 미륵전은 국보 제62호이며, 외관상으로는 3층인데 내부는 통층으로 되어있다. 한국 건축사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볼 수 있다. 보물로는 대장전, 석등, 노주, 석연대, 혜덕왕사진응탑비, 오층석탑, 석종, 육각다층석탑, 당간지주, 북각삼층석탑 등이 있다.
대한민국 대표 농경테마 관광지 벽골제
벽골제 소테마공원의 모습. | 김제시 제공
벽골제는 대한민국 최대의 고대저수지다. 부량면 신용리에서 월승리에 걸쳐 약 3㎞에 이르는 제방이 현존해 있다. 광범위한 고대 농경사와 문화, 토목 건축적 의의가 인정돼 1963년 1월 21일에 국가사적으로 지정됐다. 벽골제 축조 시기는 백제11대 비류왕 27년(330)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벽골제는 이후 통일신라 원성왕 6년(790)과 고려 현종 및 인종 때 고쳐 쌓은 후, 조선 태종15년(1415)에 중수했으나 세종 2년(1420)에 심한 폭우로 유실됐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 동진농지개량조합에서 이 제방을 운암제 설치에 따른 김제간선수로로 개조함으로써 그 원형이 크게 훼손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벽골제는 전장(全長) 약 3㎞에 수여거, 장생거, 중심거, 경장거, 유통거 총 5개의 수문을 품은 평지에 구축된 거대산업구조물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농경사회에서 치수기능을 헤아려야 한다. 전통농경사회에서 치수는 식량생산에 절대적 요소로 생존의 문제이자 국가존속의 문제였다. 대규모 수리시설은 국가기간시설이었으며, 왕의 권능은 치수자로서의 기능과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벽골제는 제방을 쌓는 데만 연인원 32만여 명이 동원됐다. 당시 사회규모와 인구수 등을 고려하여 생각한다면 벽골제의 축조 유지 수축공사가 얼마나 거대한 국가단위 사업이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벽골제 관광지도 조성돼 있다. 벽골제 농경문화 박물관, 벽천 미술관, 농경사 주제관 및 체험관, 전통가옥 체험마을 등이 있다. 벽골제 관광지 건너편에는 조정래 아리랑 문학관이 있으며 국립 김제 농업생명 청소년 수련원도 2013년 개원을 앞두고 있다.
소설 [아리랑]의 마을과 아름다운 낙조의 망해사
2012년 10월에 개관한 아리랑문학마을은 조정래 작가의 소설 [아리랑] 주인공들의 터전이었던 김제 죽산면 내촌·외리마을에 조성됐다. [아리랑]은 일제 수탈과 강제징용, 소작쟁의, 독립운동 등 조선후기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의 우리 선조들의 삶을 다룬 소설이다. 아리랑 문학마을에서는 역사와 문학의 만남을 지향하고 있다. 홍보관에는 소설 아리랑의 주요 내용과 함께 한민족의 애환과 투쟁, 처절한 삶과 혼을 느낄 수 있는 전시공간으로 꾸며졌다. 내촌·외리마을에는 그 당시 수탈당하고 억압당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초가가 조성돼 있다. 또한 민중의 생활을 개선한다는 미명하에 착취하고 탄압했던 주재소, 면사무소 등 전위기관을 표현한 근대전시가로 4동과 안중근 의사의 의거로 독립운동의 상징적 건물이 된 하얼빈역사 등이 들어서 있다.
망해사에서 보는 낙조 | 김제시 제공
만경강 하류 서해에 접하여 멀리 고군산 열도를 바라보며 자리 잡고 있는 망해사는 백제 의자왕때 지어졌다. 중국 당나라 승려 중도법사가 중창하였으나, 절터가 무너져 바다에 잠겼다. 조선시대인 1589년 진묵대사가 망해사 낙서전을 세웠고 1933년 김정희 화상이 보광전과 칠성각을 중수했다. 낙서전은 ‘ㄱ’자형의 팔작지붕이며 앞으로 한 칸 나온 부분에는 마루가 놓여 있고, 그 뒤에 근래에 만든 종이 걸려 있다. 건물의 오른쪽에는 방과 부엌이 딸려 있어서 법당 겸 요사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진봉산 고개 넘어 깎은 듯이 세워진 기암괴석의 벼랑 위에 망망대해를 내려다보며 서 있어 이름이 망해사다. 낙서전에서 바라보는 서해낙조는 압권이다. 망해사 뒤쪽으로는 산책로가 조성돼 바다와 평야를 동시에 관망할 수 있다. 이 산책로를 따라 가면 심포항이란 작은 포구가 나온다. 망해사에서 심포항까지는 약 1㎞ 남짓한 거리다. 심포항에는 횟집단지가 조성돼 있어, 포구의 정취와 해산물을 즐길 수 있다. 이 길은 최근 조성된 ‘새만금 바람길’의 일부로 포구와 갯벌, 숲길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어 최근 관광명소로 부상하고 있다.
새우가 알을 품은 연못, 농사를 주제로 한 축제
김제 청하산 청운사 마당 아래 약 2만여 평의 다랭이 연못들이 바로 백련으로 유명한 하소백련지(蝦沼白蓮池)다. 새우가 알을 품고 있는 모양의 곳에 백련지들이 위치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백련은 인도와 이집트가 원산지로 7~9월 사이에 꽃이 피는데 일시에 피는 것이 아니고 석 달 동안 계속 피고 진다. 연꽃은 씨주머니 안에 씨앗을 담고 있으므로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며 꽃말은 순결과 청순한 마음이다. 또한 연꽃은 진흙탕 속에서 고운 꽃을 피우기 때문에 물 밖에서 살아가는 중생들을 구원한 석가모니를 상징하는 꽃으로 알려져 있고 나아가 어둠을 밝히는 빛과 극락정토를 상징한다. 백련은 꽃봉우리를 밀어 올리기 전에 맑은 향내음을 내기 시작한다고 한다. 백련지에서 생산되는 연꽃을 활용, 웰빙시대의 기능성 식품개발 및 연꽃 백련을 테마로 한 하소백련축제가 매년 7~8월에 열린다.
하소백련지의 모습. | 김제시 제공
‘하늘과 땅이 만나는 오직 한 곳 김제로 오세요’라는 부제와 황금들녘 지평선을 배경으로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농경문화의 중심지 벽골제에서 도작문화의 전통과 체험을 바탕으로 가을에 지평선축제가 개최된다. 김제지평선축제는 8년 연속 대한민국 최우수 문화관광축제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농경문화를 주제로 축제가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으나 이제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농경문화축제로 평가되고 있다. 청룡과 백룡의 접전을 그린 쌍룡놀이, 축제의 흥을 더해주며 관광객의 발길을 사로잡는 농악소리, 단야낭자의 아름다운 효심과 사랑 위에 완성된 벽골제 축조설화를 재현한 단야낭자 인형극이 펼쳐진다. 외국인들에게 한국 농경문화를 소개하고 지평선 쌀의 홍보를 위한 외국인 쌀 음식 솜씨자랑과 세계 음식문화 페스티벌, 수채화 같은 코스모스 300리 길이 펼쳐진 지평선을 달리는 수많은 가족 마라토너도 만날 수 있다. 15미터의 청룡과 백룡이 겨루듯 서 있는 쌍룡 포토존, 지역민과 관광객이 어우러져 두 마리 용이 춤추듯 싸우는 모습을 형상화한 쌍룡 횃불놀이가 지평선의 밤을 밝힌다.
바다와 붙어 있는 망해사는 국내 최고의 낙조가 일품이다. | 김제시 제공
출처:(신택리지, 박용근, 경향신문)
김제우체국[金堤郵遞局]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에 있는 김제시 관할 우편·체신·금융 관련 공공 기관.
설립목적
김제우체국은 전북체신청 산하 기관으로 우편 서비스를 통해 김제시민의 생활 편익을 증대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1884년 4월 22일 국내에 우정사업이 도입되었으며, 1898년 6월 1일 김제 임시우체사가 신설되면서 김제 지역에 우정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하였다. 1906년 12월 1일 김제우편취급소가 개설되었고, 1949년 12월 1일 김제우체국으로 개칭되었다. 1964년 12월 18일 신풍동 청사로 이전하였고, 1978년 12월 30일 김제전화국 청사로 이전하였다. 1994년 10월 4일 현재의 청사를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요사업과 업무
우편물의 접수·운송·배달과 같은 우편사업과 예금·보험 등의 금융사업을 주요 업무로 하고 있다. 이 중 우편사업에 관한 업무로는 국내우편, 국제우편, 택배서비스 등이 있으며, 금융사업과 관련된 업무는 예금, 보험, 경조금배달, 각종 공과금 납부 업무 등이 있다. 또한 인터넷 우체국을 운영하여 우편물 배달 조회, 인터넷뱅킹 및 경조카드 등 보다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우체국 쇼핑을 통해서 농산품, 수산품, 농산가공, 축산품 등의 특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활동사항
김제우체국은 2008년 6월 1일 개국 110주년을 맞이하여 그동안 고객들에게 받아온 사랑과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기념행사를 마련하였다. 이에 따라 110주년 기념비 제막식과 우표전시회 시작을 알리는 테이프 커팅과 함께 당일 우체국을 찾는 첫손님 및 110번째 고객에게 꽃다발 및 기념품을 증정하고, 6월 2일부터 4일까지 김제우체국 창구에 우표전시회를 개최하였다. 또한 2009년 8월 4일부터 7일까지 4일간 1층 공중실에서 서예, 수묵화, 사진 등 30여 점의 예술문화작품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현황
2016년 현재 대지 면적 3,804㎡, 건물 면적 2,940㎡ 규모의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로 되어 있다. 조직은 국장 아래 영업과, 우편물류과, 경영지도실을 두고 있으며 산하우체국으로 김제공덕우체국·김제광활우체국·김제금구우체국·김제금산우체국·김제만경우체국·김제백구우체국·김제백산우체국·김제봉남우체국·김제부량우체국·김제성덕우체국·김제신풍동우체국·김제역전우편취급국·김제용지우체국·김제월촌동우체국·김제죽산우체국·김제진봉우체국·김제청하우체국·김제황산우체국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최근 전화·컴퓨터 등의 첨단 통신 시설이 보편화되면서 우체국 고유의 업무 영역은 그 입지가 점차 축소되고 대신 금융 업무를 강화하고 있지만 이 또한 대형 금융기관과의 경쟁이 치열한 실정이다. 이러한 경영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서 김제우체국은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우체국상 정립에 노력해야 한다. 고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지역 사회에 공헌하는 서비스를 창출해야 한다. 고객과 지역 사회 속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 함께 성장하는 김제우체국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전북체신25년사』(전북체신청, 1996)
「김제우체국 개국 110주년 기념식 가져」(『전라일보』, 2008. 6. 2.)
「김제우체국 고객사랑 문화예술작품 전시회 가져」(『김제신문』, 2009. 8. 4.)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봉화산[烽火山]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에 있는 산.
명칭유래
서해를 바라보는 봉화산(烽火山) 정상에 봉화대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주춧돌과 자연석으로 쌓았던 담장의 흔적이 뚜렷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돌들을 흙으로 묻고 헬리포트를 만드려 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봉수대의 상단좌대는 가로 6m, 세로 10m의 직사각형이며, 서북쪽과 동북쪽은 능선이 있고 좌우는 절벽이다. 정상의 넓이는 330㎡ 정도 된다. 봉수대는 고려시대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며, 봉화산의 봉수대가 조선시대에 이르자 일반 백성에게 피해를 입힌다 하여 계화도로 옮겼다는 설이 있다.
자연환경
봉화산의 산줄기는 호남정맥 초당골[막은댐]을 지나 모악산기맥 분기점에서 전라남도 광양시의 백운산까지 뻗어가는 호남정맥에서 분기되어 북쪽으로 달리는 모악기맥이 뿌리이다. 모악기맥은 만경강(萬頃江)과 동진강(東津江)을 가르며 엄재, 국사봉, 화율봉, 장근재, 모악산, 유각치, 묘고산에 닿는다. 묘고산에서 서쪽으로 구성산(九城山) 줄기를 갈라놓고 북쪽으로 달리며 매봉산, 천잠산에 이르면 방향을 서쪽으로 꺾는다. 승반산(升盤山), 두악산(斗岳山), 국사봉(國師峰), 망해사가 있는 진봉산(進鳳山)을 지나 봉화산에서 맥을 다한다. 봉화산의 물줄기는 모두 서해로 합류하여 새만금 지역으로 들어간다.
현황
봉화산은 높이 85m로, 남서쪽에 거전마을이 위치하고, 북동쪽에 심포항(深浦港)이 위치한다. 동쪽으로 지방도 702호선이 지나고 있다. 진봉반도 서남쪽 육지의 끝자락에 위치하며, 서남쪽은 서해바다인 새만금이고, 서북쪽은 만경강 하구, 동남쪽은 동진강 하구이다. 동북쪽은 만경강 연안에 봉화산처럼 50~60m의 올망졸망한 산들이 줄지어 있고, 동쪽은 진봉의 넓은 들녘과 호남평야가 펼쳐진다.
참고문헌
『산경표(山經表)』
『한국지명총람』11-전북편 상(한글학회, 1988)
『김제시사』(김제시사편찬위원회, 1995)
조석필, 『산경표를 위하여』(산악문화, 1995)
조석필, 『태백산맥은 없다』(사람과 산, 1997)
이형석, 『한국의 강』(홍익재, 1997)
김정길, 『전북백대명산을 가다』(신아출판사, 2001)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심포항[深浦港]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 만경강 하구에 있는 항구.
변천
전라북도 내륙을 흘러내리는 만경강과 동진강이 서해 바다와 마주치는 진봉반도 끝 쪽으로 봉화산[85m]이 뾰쪽하게 나와 있다. 이곳의 동진강 하류에 있는 어항이 거전항(巨田港), 만경강 하류에 위치한 어항이 심포항(深浦港)이다.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100여 척이 넘는 어선이 드나들던 큰 어항이었으나, 연안 어업의 쇠퇴와 새만금방조제 공사로 인해 지금은 몇 십 척의 어선만 드나들고 있다.
현황
심포항은 수천만 평에 이르는 심포 갯벌의 배후 항구로 드넓은 갯벌에서 채취하는 조개 집산지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심포백합[생합]은 지역 특산물로 인기가 높은 고급 조개이다. 몇 년 전까지 심포 갯벌은 체험 학습 장소로 많이 활용되었다. 예전에는 어업권으로 인해 외부인들의 조개 채취가 엄격하게 제한되었지만, 새만금방조제 공사가 이루어지면서 보상이 마무리되어 누구든지 조개를 잡을 수 있다. 우리나라 백합 생산량의 60% 이상이 동진강과 만경강이 흘러드는 김제시와 부안군 일대 갯벌에서 채취되고 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새만금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끝나고 바닷물 반입이 줄어들어 갯벌이 많이 쌓이고 수면에 얇은 기름막이 생기고 있다고 한다. 또한 만경강 상류에서 내려오는 생활하수로 인해 방조제가 막히면서 심포항에 축적되고 있어 고깃배들은 포구 인근 바다에 들어오면 바다와 통하는 입구를 막고 산소를 공급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싱싱한 활어를 공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인근에서 고기가 잡히지 않자 일부 횟집에서는 양식 활어를 내놓기도 하면서 횟집을 찾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야외에서 생합을 구워 먹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참고문헌
『김제군사』(김제군사편찬위원회, 1994)
『김제시사』(김제시사편찬위원회, 1995)
『우리고장의 옛지명』(김제문화원, 2000)
『1:60,000 김제시 행정지도』(김제시, 2006)
「1:25,000 지형도」(국토지리정보원, 2008)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동진강[ 東津江 , Dongjingang ]
▲『동여도』(18첩 5면)의 동진강 하류 일대
전라북도의 정읍시에서 서북쪽으로 흘러 새만금 사업지구로 유입하는 하천이다. 유로는 정읍시 상두산 남쪽, 묵방산 북쪽, 시의 산외면 상두리와 화죽리에서 발원한 여러 물들이 정량리에서 합류하여 서남쪽으로 흐르다가, 칠보면의 시산리 인근에서 북서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칠보천을 합하고, 옹동면 매정리의 매정교 아래에서 축현천을 합류한다. 태인면을 지나 호남선의 동진강 철교 바로 위에서 용호천을 합류하고, 이평면 하송리의 만석동 앞에서 정읍천, 두전리의 둑전 마을 아래에서 덕천천을 합한 후, 부안군 백산면을 경계지으며 흐르다가 부안군 동진면 장등리 앞에서 고부천을 합류한다. 이어 김제시 죽산면 서포리의 불당 마을 앞에서 원평천을 합류한 후 황해로 들어가는 국가 하천이다.
동진 지명은 동진나루와 관련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부안)에 "동진은 통진(通津)이라고도 한다. 벽골제와 눌제의 물이 합해져 북쪽으로 흘러 이 나루가 된다. 현의 동쪽 16리에 있다."라고 하는 관련 기록이 확인된다. 현재의 동진강은 구간별로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우선 동진강 상류에 해당하는 상두산과 묵방산 자락에서 나온 물이 칠보천과 축현천을 합해 용호천을 만나기까지의 구간은 도원천(桃源川), 평사천(平沙川) 또는 남천(南川)이라 하였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태인)에 "남천은 현의 남쪽 5리에 있는데, 상두산 남쪽에서 나와 이평에 이르러 정읍의 물과 합쳐서 서쪽으로 흘러 김제군 동진으로 들어간다."라고 하는 기록이 있다.
『정읍시사』에 의하면 도원천이 상두산 북쪽에서 발원한 용호천(견천)과 합류하여 정읍천을 만나기까지의 구간은 대각천(大角川) 또는 태인천(泰仁川)이라고 하였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고부)에 태인수(泰仁水), 『대동지지』(태인)에 대각천이라는 명칭이 확인된다. 현재 태인면 거산리의 거산교 바로 아래에 있는 대각교는 『해동지도』(태인)에도 표시되어 있다. 또 『신증동국여지승람』(고부)에 "모천(茅川, 현 정읍천)은 근원이 정읍현의 내장산에서 나온다. 북쪽으로 흘러 군의 동쪽 15리에 와서 서쪽으로 꺾여 태인수(泰仁水, 현 동진강 중상류)와 합하여 부안현의 동진으로 들어간다."라고 하여 결국 정읍천과 태인의 태인천 또는 남천이 합쳐진 이후의 구간을 동진으로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출처:(한국지명유래집 전라
2025-01-12 작성자 명사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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