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시편 23(22),1)
교회는 오늘 성 비오 10세 교황을 기억하고 기념합니다. 1835년 이탈리아 북부 베네치아의 리에세에서 10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성인은 신심 깊은 어머니에 깊은 영향을 받아 1850년에 파도바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1858년 사제가 된 그는 17년 동안 본당 사목자로서 활동하다가 1884년 쇠락한 작은 교구인 만토바(Nantova)의 주교로 임명되고, 1893년 교황 레오 13세의 명을 받아 베네치아의 총대주교 추기경으로 임명됩니다. 그리고 10년 후, 1903년 교황 레오 13세를 계승하여 교황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교황이 된 성인은 교회법 개정에 착수했고, 불가타 성경 개역하였으며, 시편과 성무일도서 개정을 명령함으로서 교회의 기틀을 세우는 일에 전념합니다. 특별히 성인의 교황으로서의 재임기간은 '근대주의'(Modernism)와의 투쟁이 많은 시기로서 하느님을 거부하는 근대 이성주의의 위험 하에서 가톨릭 신앙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습니다. 교회의 전통을 굳건히 지킨 교황 비오 10세 성인을 기억하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를 말씀해 주십니다. 이 말씀은 어제 복음의 내용에 바로 이어지는 부분으로서 부유한 삶이 빚어내는 교만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데에 결정적 결격 사유가 된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신 예수님은 어제 복음의 말미에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마태 19,30)
베드로가 짐짓 잘난 체 하는 마음으로 자신은 부자 청년과는 달리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지 않았냐며 예수님으로부터 칭찬을 말을 기대하며 물었을 때 예수님은 베드로에 기대에 응답해 주시듯, 베드로를 비롯한 열 두 제자들이 예수님의 곁에서 열 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하게 될 것이라는 놀라운 약속의 말씀을 해 주십니다. 거기까지만 했으면 참 좋았을 것을 예수님은 거기서 그치지 않으시고 첫째와 꼴찌의 순서가 뒤바뀐다는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덧붙이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복음의 말씀,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를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아침 아홉시부터 나와 하루 종일 일한 종이나 오후 다섯 시 즈음 나와 한 시간 남짓 일한 종이나 똑같은 품삯을 준다는 선한 포도밭 주인에 대한 비유의 말씀은 첫째와 꼴찌가 뒤바뀔 것이라는 말씀과 하나 되어 제자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 제자들로서는 그 따름에 대한 보상을 확실히 인정받고 약속받기를 바랐는데 제자들의 이 같은 마음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예수님은 알 듯 모를 듯한 말씀을 거듭하시다가 결국에는 제자들을 골탕 먹이시듯 너희가 보상을 받기는 받을 것이나 그 보상에 대한 모든 것이 뒤바뀔 수도 있다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도대체 왜 이렇듯 제자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제자들에게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셨던 것일까? 예수님의 이 말씀의 참 뜻은 과연 무엇일까?
이 같은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을 오늘 독서의 말씀 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 독서의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목자라 일컬어지는 이들, 소위 율법의 전공자이자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맞는 사제와 율법학자들을 꾸짖으십니다. 그들이 꾸짖음을 받는 이유는 목자인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자신에게 맡겨진 양떼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는 그들의 잘못을 다음과 같은 말로 질타합니다. 예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불행하여라, 자기들만 먹는 이스라엘의 목자들!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목자가 아니냐? 그런데 너희는 젖을 짜 먹고 양털로 옷을 해 입으며 살진 놈을 잡아먹으면서, 양 떼는 먹이지 않는다. 너희는 약한 양들에게 원기를 북돋아 주지 않고 아픈 양을 고쳐 주지 않았으며, 부러진 양을 싸매 주지 않고 흩어진 양을 도로 데려오지도, 잃어버린 양을 찾아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폭력과 강압으로 다스렸다.”(에제 34,3-4)
하느님이 그들을 질타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이 목자로서의 역할, 곧 양 떼를 보살펴야 할 자신들의 의무를 버리고 자신의 잇속을 챙기며 배를 불리는 일에만 신경을 썼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벌하시고 당신 스스로 직접 목자의 역할, 곧 양 떼 한 마리 한 마리를 사랑으로 보살피는 목자의 역할을 자처하십니다.
오늘 독서가 전하는 이 같은 말씀은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진정으로 하고 싶으셨던 말씀을 설명해 줍니다. 제자들은 분명 예수님의 부르심의 음성을 듣고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하는 매 순간, 주님의 협력자로서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전념을 다했습니다. 독서의 에제키엘 예언자로부터 꾸짖음을 당하는 사제들 역시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느 순간 그들의 첫 마음을 잃고 양떼를 돌보아야할 자신의 책임을 망각한 채 자신들의 뱃속을 채우는 일에 빠져버렸습니다. 그 결과 목자가 목자로서의 삶을 살지 못하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는 사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로 이 사실을 말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첫 마음을 잃지 않고 자신에게 맡겨진 본분에 매 순간 충실하도록 노력하는 삶.
그 삶을 살지 못한다면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일이 생겨날 것이며 자신이 아홉시부터 일하든 오후 다섯 시부터 일하든 주인과 하루의 품삯을 한 데나리온으로 정한 것을 잊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부당한 종이 될 것이라는 사실. 첫 마음을 잊지 않고 매 순간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할 장소에서 합당하게 해 나가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환호송의 말씀을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며 언제나 되뇌십니다. 우리의 첫 마음을 잊지 않도록 해주며 우리가 매순간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도록 해 주는 것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우리 마음 속 모든 생각과 속셈을 가려내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이 모든 것을 가능토록 하는 힘이자 원천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 하느님의 말씀을 내 삶의 준칙이자 내 모든 행동의 원칙으로 삼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주님의 말씀으로부터 비롯되는 행복을 맛보고 깨닫는 삶, 그래서 매 순간 행복을 경험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오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 언제나 하느님 말씀 안에서 우리의 첫 마음을 잃지 않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주님께 나아가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하느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낸다.”(히브 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