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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건너는 법
서 영 은
바깥 공터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온다. 방 안은 꽉 닫힌 밀실 안처럼 한껏 조용하다. 파리 한 마리가 아까부터 유리창 주위를 맴돌며 빠져나갈 틈을 찾고 있다. 이윽고 나는 장의자에 앉아 있는 윤나미(尹娜美)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자, 이젠 그만 돌아가지.”
그녀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도로 떨어뜨리며 결 연하게 뇌까렸다.
“싫어. 이유를 알 때까진 절대로 가지 않을 테야.”
나는 문득 그녀의 결연한 목소리가 지금까지 우리 사이에 가로놓여 있던 침묵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처럼 느껴졌다.
“도대체 아까부터 자꾸 무슨 이유를 말하라는 거야.”
“마치 여태까지 내가 말한 것들을 하나도 듣지 않은 말투로군.”
나는 다시 할 말이 없어진 채 마지막 하나 남은 담배를 뽑아 물고 빈 껍질을 꾸겨서 방바닥에 내던졌다.
“그날 자기는 다방에서 전투하던 얘기를 내게 해준 것을 몹시 후회하는 눈치였어. 그래, 극장에 가려고 다방에서 나왔을 때, 갑자기 내 손을 뿌리치고 달아나는 그 눈초리에서 나는 그걸 느꼈어. 사실 나를 경원한다는 점에선 그 일이 처음은 아니었지. 월남에 갔다 온 뒤로부턴 사뭇 딴사람이 된 듯싶었으니까. 단지 나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만 아니라, 인생 전부를 포기하는 듯한 태도랄까?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싶은 거야. 기다려봤지. 자기 스스로 내게 말해주든가, 아니면 어느 날 갑자기 그 낯설어하는 표정을 버리고 옛날처럼 친근한 미소로 내 앞에 서주기를. 하지만 이젠 더 이상 기다릴 수만은 없어졌어. 이대로 나가다간 우리 사인 멀어지고 말 거야. 또 자기는 어렵게 등단한 화단(畵壇)에서의 주목마저 잃게 될 거야. 그때는 이미 후회해도 소용없어.”
나는 그녀의 자근자근 계속되는 말을 쭉 귀담아듣고는 있었으나 끝내 아무것도 가슴에 와 닿는 것이 없었다. 그러니 나더러 어쩌란 말이야? 내 시선은 아마도 이렇게 묻고 있었는지 모른다.
나미는 무엇엔가 쿡 찔린 듯한 눈초리로 나를 한참이나 노려보더니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녀의 촛가락처럼 긴 손이 내 손을 꽉 잡는 것을 지켜보았다. 약지손가락엔 반 돈짜리 금반지가 끼어져 있었다. 그것은 내가 군에 입대하기 전날 밤 어느 다방에서 끼워준 것이었다. 그때 우리는 똑같이 졸업을 일 년 남겨 두고 있었다.
“우선 무엇보다 먼저 그런 눈빛을 고쳐야 해. 그리고 둘째론 무언가를 좀 해보란 말이야. 공부를 마저 마치든가, 작품 활동을 계속하든가, 아니면 하다못해 취직을 해서 아침마다 만원 버스에 시달려보기라도 하란 말이야. 그러면 뒤죽박죽된 머릿속도 어지간히 질서를 잡게 될지도 모르니까.”
이번엔 아무 소리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나는 무심코 반지를 빼서 내 새끼손가락에 끼어보았다. 매듭에 걸려 더 이상 들어가지 않는다. 도로 빼서 그녀의 손가락에 끼워주자니 갑자기 한 옥타브 축 가라앉은 목소리가 내 주의를 환기시킨다.
“생각나? 이 반지를 내게 끼워주면서 뭐라고 했는지. 이건 내가 돌아올 때까지 다른 남자랑 말도 하지 말고 보지도 말고 웃지도 말라는 약속으로 주는 거야, 라고 했지.”
하지만 나는 그녀의 얘기 속의 나와 지금의 내가 전연 아무런 연관도 없는 것같이 느껴진다.
“다시 한 번 그런 말을 내게 들려준다면…… 그래, 난 바로 그 소리가 듣고 싶은 거야. 그러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참고 기다릴 수 있어. 하지만 이대로는 안 돼, 돌아갈 수 없어.”
불현듯 목멘 소리에 내 말문은 더욱 꽉 막히는 성싶다. 나는 나미의 간절한 시선을 피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침대로 와서 벌렁 누웠다.
나미는 굳어진 얼굴로 한참 동안 책상 위에 이마를 맞대고 있더니만 이윽고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는 이내 내가 너무했나 싶어 따라 나가려다 그만두었다. 지금 다시 그녀가 같은 걸 요구해 와도 나는 역시 아무 해답도 줄 수 없기에. 창밖으로 내다보니 그녀는 울면서 대문을 뛰쳐나가고 있었다. 나는 창문을 열고 아래층의 막냇동생을 불러 담배를 사 오게 했다. 힐끔 이쪽을 쳐다보고 도로 집 안으로 사라지는 동생의 얼굴에서 나는 식구들이 나를 지겹게 여기고 있음을 읽어냈다. 어쩌면 그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벌써 일 년이 가까워오니까.
처음 제대증을 휴대하고 배가 부산항에 닿을 때까지도 몰랐다. 보고 싶고 그리운 얼굴들이 눈앞을 스쳐 갔다. 꿈도, 낭만도, 일도, 야심도 다 내 손아귀에 그대로 쥐어져 있는 듯했다. 그런데 기차 속에서, 짐 보따리를 옆에 낀 채 입을 벌리고 자는 아낙네, 남의 눈을 피해 몰래 희롱하고 있는 남녀, 껌을 찍찍 씹으며 신문을 들여다보고 있는 중년 남자들을 보았을 때, 뭔가 크게 어긋난 기분이었다. 그 기분은 서울역에서 점점 낯익은 풍경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면서 오히려 반대로 머나먼 낯선 땅으로 뒷걸음질해 가는 성싶었다. 나는 집에 도착한 그 첫 순간에 베일에 가린 듯이 모든 사물, 모든 사람들로부터 차단된 나 자신을 느꼈다. 집에서 눈을 뜬 첫날 아침을 나는 이상한 비현실감 속에서 맞았다. “이런 전선에서 두부 장수 종소리,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 수돗물이 넘치는 소리가 웬일일까?”라고 중얼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던 것이다. ‘이런 전선에서’ 란 느낌은 그 순간 어떤 긴박한 위기에 대처한 생생한 의지였다. 그것은 아직도 내 몸에 밴 전쟁 냄새였다. 그런데 두부 장수 종소리, 유행가 소리 따위를 의식했을 때 나는 뭔가 맥이 탁 풀리는 성싶었다. 나의 안에 있는 긴박감에 비해서 밖은 너무도 무의미하고 태평스럽고 어쩌면 패덕스럽기까지 했다. 나미도, 학교 공부도, 또 나로부터 그토록 수많은 밤을 앗아갔던 아틀리에*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나는 그것들과 관계를 다시 시작할 하등의 흥미도, 관심도 없었다. 나날이 권태스럽고 짜증스럽기만 했다. 이따금 나는 내 안의 긴장에 대해서, 적어도 숨김없는 그 진실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말하려 애써보았다. 그러나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 이제 생각이 난다. 며칠 전 다방에서의 일이. 실내엔 담배 연기가 꽉 차 있었고 선정적인 허스키로 어떤 여자가 느린 곡조로 노래를 들려주고 있었다. 어쩌다가 내가 나미에게 그 얘기를 들려주려고 했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다음과 같이 그 얘기를 시작했다.
“나는 D고지에서 전투 중인 ○○연대 근처까지 물을 실어다 주라는 명령을 받았어. 음료수가 떨어져서 전 연대원이 전투는 고사하고 타는 듯한 갈증과 싸우고 있다는 소식이었어. T에서 거기까진 팔십 킬로 거리였지. 나와 한 병장은 밤중에 급수차를 몰아 T로 떠났어. 한 치 앞도 가릴 수 없는 어둠과 정적. 목쉰 듯한 엔진 소리는 어둠과 정적의 벽에 부딪쳐 바로 우리의 귓가에서 부서지고, 부챗살 모양으로 어둠이 지워진 헤드라이트의 반경 속에선 사물이 극도로 정밀해져 마치 입체 영화에서처럼 눈 속으로 뛰어들었지. 그 정밀함이란 길
바닥에 뒹구는 돌에 묻은 티, 풀포기에 매달려 잠자는 벌레 따위의 미세한 것들까지도 죄다 눈에 잡히는 듯했어. 나는 온갖 사물들이 바로 내 심장에 맞닿아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을 이전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어. 이따금씩 여우나 늑대 따위들이 길을 횡단하여 쏜살같이 사라지곤 했어. 어둠 속에서 한가로이 떠돌던 나방이 떼들은 갑작스러운 불빛에 방향감각을 잃고 차창에 머리를 부딪쳐 빗방울처럼 떨어져 죽고. 그때 내 얼굴은 순수한 감동과 끝없는 호기심으로 소년처럼 앳되어 보였을 것으로 생각돼. 나는 운전하고 있는 한 병장의 팔을 건드리며 유리창을 가리켰지. 그러나 그는 겁에 질린 핼쑥한 표정으로 나를 힐끔 곁눈질했을 뿐이야. 그렇지, 혈관 속을 움직이는 피의 선회마저 느낄 듯한 이 비상한 감각, 그리고 마음 밑바닥에서 샘처럼 솟아오르는 넘칠 듯한 생동감이 없이는, 저 유리창에 부딪쳐 죽는 나방이 따위야 아무것도 신기할 것이 없지, 라고 생각하며 나는 혼자서 빙긋 웃었어. 한 병장이 다시 얼굴을 힐끔 돌리며 잡아 늘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어. ‘차 일병은 무섭지 않나?’ ‘아뇨, 전연.’ ‘대단하군. 여기선 적이 언제 어디서라도 나타날 수 있지.’ ‘저는 적보다 진정으로 무서운 건 무감각이라고 깨달았습니다.’ ‘나는 제대하면 곧장 결혼할 거야.’ ‘언젭니까? 제대가.’ ‘석 달 남았지.’ ‘저는 지금까지 마치 꿈을 꾸다가 깨어난 것 같아요. 이곳에 온 뒤론 바로 생명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느낌 입니다.’ 그런데 중간에서 엔진이 고장 났지. 몇 시간 지체하고 나니 벌써 동이 트더군. 이제부터 정말 위험이 시작된 것이라 싶더군. 왜냐하면 적의 정찰 비행에 발견되면 공중 사격을 받을 우려가 있는 데다 불볕 같은 폭염이 사정없이 쏟아져 그도 또한 견디기 어려운 때문이야. 우리가 전속력으로 달려 목적지를 팔 킬로 남겼을 땐 해가 중천에 와 있었어. 그때 어디선가 비행기 소리가 가까워지는 듯했을 때, 난데없는 포화가 지축을 울리는 듯한 굉음과 더불어 우리의 진로 앞쪽에서 불꽃을 터뜨렸어. 나는 눈앞이 아찔한 가운데서도 핸들을 잡고 있는 손아귀에 힘이 팽팽함을 느꼈어. 계속 달렸지. 이제는 기총 사격이 시작된 모양이었어. 사방에서 섬광과 같은 불꽃과 탄피가 터지는 소리가 눈과 귀를 얼얼하게 했어. 그때 내 맘속엔 자신의 생명 이외에도 물을 기다리는 수천의 생명들에 대한 비장한 의지가 단단한 바위처럼 뭉쳐 있었어. 물탱크에 총알이 맞은 것 같았어. 물 쏟아지는 소리가 쏴, 하고 들려오자 눈에 불이 켜지는가 싶더군. 또 다음 순간엔 바로 눈앞에서 섬광이 번쩍스쳐 간다고 생각했을 때 차창이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어. 그와 동시에 옆에 앉은 한 병장의 몸이 내 쪽으로 쓰러졌어. 나 자신도 오른쪽 팔이 무엇엔가 쿡 찔리는 성싶었어. 옷 위로 피가 솟는 것이 보이더군. 핸들을 여전히 움직이며 한 병장의 몸을 몸으로 밀었더니 맥없이 앞으로 쿡 꼬꾸라졌어. 발밑엔 피가 흥건했지. 내 팔에서도 피가 쉴새 없이 흘러나와 순식간에 핸들을 쥐고 있는 손이 피투성이로 변했어. 통증이 비로소 느껴졌어. 의지와 용기와 그 밖의 모든 것이 자꾸 그 통증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는 성싶었어. 이제 다 왔다, 조금만 더 달리라고 자신을 북돋우기 위해 목이 터져라 외쳤지. 그러나 오른쪽 팔은 점점 마비되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어. 차를 멈추고 윗옷을 찢어 오른손과 핸들을 비끄러맸지. 그러고 나서 달렸어. 저만큼 앞에 나뭇가지 사이로 아군의 보초 막사가 보인다고 느낀 순간 나는 정신을 잃었어.”
나는 당시의 긴장이 실제로 되살아나는 듯 온몸이 팽팽하게 부풀어 오름을 느꼈다. 그때,
“아아, 훈장은 그래서 타게 된 거로구나!”
갑자기 플래시를 들이대는 듯한 나미의 낭랑한 음성에 나는 얼떨떨했다.
“그럼 자긴 베트콩을 한 사람도 못 죽여봤어?”
하얀 꽃무늬 드레스를 입고 마스카라 칠한 눈으로 나를 말똥말똥 지켜보는 그녀가 그때처럼 낯설어 보인 적은 없었다. 결국 내가 들려준 얘기 속에 담겨 있는 의미는 그녀에게 하나도 전달되지 않았다. 피비린내 나는 전투도, 죽어 넘어진 전우도, 작렬하는 포화 소리도 그녀에겐 모두 활자화된 이야기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지극히 불쾌해서 다탁* 위에 놓인 담배와 성냥을 집어 들었다.
“벌써 가려구? 좀더 앉았다 가도 되잖아?”
대답 없이 내가 먼저 밖으로 나오자 나미도 곧 뒤따라 나와서 내 팔짱을 끼었다. 나는 와락 솟구치는 역겨움을 참지 못해 그녀의 손을 홱 뿌리치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마구 뛰었다. 이것이 그날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지금 여러 가지 잡동사니ㅡ한 폭의 낡은 풍경화·시계·전기스탠드·가족사진·군용 플래시·트랜지스터* 등―가운데 놓여있는 을지무공훈장을 바라보고 있다. 한낱 작은 그 쇠붙이 조각을.
나는 의자를 북쪽 창 앞으로 끌어갔다. 여기에선 약 사백 평가량 되는 공터가 내다보인다. 주택가 가운데 자리 잡은 공터가 다 그렇듯이 이 땅도 과히 깨끗하지 않다. 그래도 나는 우리 집 앞뜰과 그 너머 아스팔트 길이 내다보이는 남쪽 창보다 이곳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며칠 사이 비가 내린 탓인지 공터엔 물이 흥건히 고여 있다. 비가 오지 않더라도 움푹 팬 웅덩이엔 늘 물이 고여 있어 잡초의 온상이 되어온 터이지만. 거기다 사람들이 쓰레기를 갖다 버려서 연탄재·구들장 깨진 것·병·깡통·헝겊 조각 같은 것들이 더러는 물속에 잠겨서, 혹은 진흙투성이로 뒹굴고 있다. 도톰하게 지면이 올라와 물이 고여 있지 않은 쪽에선 동네 아이들이 공을 따라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단발머리 여학생 둘이 자전거를 배우느라 쩔뚝거리고 있다. 그 한쪽 편엔 때가 시커멓게 찌든 비치파라솔 한 개가 어설프게 펄쳐져 있다. 흰 바탕에 붉은 빛깔로 씌어진 ‘Coca Cola’란 영어 글씨가 아직도 선명하게 보인다. 그 밑에 궤짝 한 개를 엎어놓고 뽑기 과자라는 것을 만들어 파는 노인이 있다. 노인의 단골은 지금 광장에서 공차기를 하고 있는 조무래기들이다. 그들이 10원짜리 동전 하나를 내밀면 설탕에 소다를 섞어 만든 과자 두 개가 주어진다. 지금 파라솔 밑은 비어 있다. 손님도 주인도 없다.
물응덩이 있는 곳으로 다시 시선을 옮겨 간 나는 그곳에서 노인의 모습을 발견했다. 작달막한 키에 고등학생들처럼 박박 깎은 머리―하얗게 세어 온통 은빛이다―가 눈에 익다. 그는 오늘도 여전히 검은 바지에 국방색 점퍼 차림이다. 한데 노인은 저기서 뭘 하고 있는 겔까. 늘 데리고 다니던 누렁개의 목줄을 잡아끌고 쓰레기와 물웅덩이 속을 헤치며 무엇인가 찾고 있다. 그 표정이 썩 진지하고 골똘한 것을 보면 필시 뭔가 아주 중요한 것을 거기에서 잃어버린 게 분명해 보인다. 늙은 개는 얼굴을 땅에 떨어뜨리고 이따금씩 킁킁 냄새를 맡으며 따라다니는가 하면 노인은 꼬챙이로 물웅덩이와 쓰레기 더미 위를 흩뜨리며 한 발짝 한 발짝 신중하게 옮겨 가고 있다. 마침 뉘엿뉘엿 넘어가는 빛바랜 저녁 햇살은 그들의 행위에 어떤 긴박감마저 보태주는 성싶다. 나는 느닷없이 그 광경 이 불러일으키는 숙연함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나는 계속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건너편에 늘어선 집들 가운데서 웬 아이 하나가 달려나와 소리쳤다.
“할아버지, 뽑기 주세요.”
노인이 찾는 데 열중하여 듣지 못하자 소년은 그쪽으로 몇 걸음 나아가 약간 짜증 섞인 음성으로 다시 소리 질렀다.
“할아버지, 뽑기요!”
“응 그래, 알았다.”
그제야 고객을 향해 돌아서는 노인의 얼굴엔 허탈한 실망의 그림자가 먹물처럼 드리워져 있다. 그 그림자는 얼굴뿐만 아니라 그의 온 전신을 감싸고 있어 아까 웅덩이 속을 찾아다닐 때와는 달리 짙은 비애마저 느끼게 한다. 이윽고 개와 소년과 노인은 한꺼번에 양산 밑으로 사라진다.
나는 뻣뻣해진 목을 좌우로 움직여보며 새 담배를 갈아 물었다. 좀 어처구니없는 느낌이 치밀어 올랐다. 그까짓 뭐 그리 대수로운 광경이기에 그토록 오래 정신을 앗기고 지켜보았단 말인가. 나 스스로도 믿어지지 않는다. 한데 소년이 돌아가자 노인은 다시 개를 이끌고 아까의 그 장소로 되돌아가는 게 아닌가. 나는 의식적으로 보지 않으려고 시선을 딴 데로 돌렸으나 이내 다시 노인의 모습을 뒤쫓고 말았다. 뭔가 강한 지남철에 이끌리듯이. 담배를 석 대나 갈아 무는 동안 미처 깨닫지 못한 의식이 자리를 잡고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노인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는다는 그 일 자체가 나의 무기력에 대한 도전같이 여겨진다는 점이다. 그 의식 이 점점 뚜렷해지면 질수록 알 수 없는 분노가 서서히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아래층 내 아틀리에로 내려갔다.
자물쇠에 열쇠를 끼우는 내 손길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습한 곰팡내가 쿡 쏘는 듯이 코를 찔렀다. 나는 한동안 문에 기대어 실내의 한 점을 노려보고 서 있었다. 그러다 마치 오랫동안 불능이던 성을 신경질적으로 도발시킨 사람처럼 성급하게 캔버스 앞에 앉았다. 그러나 그뿐, 거기서 뭔가 꽉 막힌 기분이었다. 무언가 내 속에서 다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부서진 게 분명했음에도, 노인의 진지한 얼굴을, 그 숙연한 분위기를 나는 내 마음과 연결시키려고 애썼다……
어느 사이 하얗던 캔버스가 어둠에 잦아들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축축하게 내 밴 땀이 옷에 감기는 것이 느껴졌다. 뻣뻣해진 다리를 이끌고 벽까지 걸어가 손으로 더듬어 스위치를 올렸다. 찰깍 하는 소리와 더불어 나는 또 한 번 방에 들어온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사물들이 한 발짝 더욱 멀리 뒤로 물러나 있는 것을 나는 메마른 시선으로 훑어보았다. 텅 빈 캔버스, 그 곁에 놓여 있는 테이블―그 위엔 여러 가지 붓, 물감을 혼합하는 데 쓰이는 작은 접시들이 먼지를 뿌옇게 뒤집어쓴 채 널려 있다― 벽에 기대어져 있는 그림들, 석고로 된 비너스의 흉상과 L교수의 흉상, 내 시선은 여기에 머물자 못 박힌 듯 움직이지 않았다. 이 작품은 내가 대학 이 학년 때 제작한 것으로 모델은 L교수였다.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우리들의 각광을 받게 된 것은 교수와 학생 사이에 일주일에 한 번씩 벌어지는 토론회에서 발언한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나는 예수가 감리교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또 한국인은 더더욱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매우 큰 충격을 받았소.”
이 말은 그 즉시 토의실 밖으로 새어 나가 커다란 물의를 일으켰다. 원칙적으로 신앙의 자유가 주어져 있는 학생들 사이에선 열광적 찬사를 획득했으나, 감리교파로 구성된 재단 측, 더욱이 그들로부터 천거를 받은 교수들로부터는 대단한 반발이 일어났다. 이사장은 어느 날 자기의 방으로 L교수를 불렀다고 한다. 나이는 L교수보다 다섯 살이나 젊고 시내에 십 층 이상 되는 호텔을 두 개나 가지고 있는 독실한 감리교 신자였다. L교수는 발목이 푹푹 빠지는 녹색 융단 위를 십 미터가량 걸어가 전화를 받고 있는 이사장 앞에 섰다고 한다. 이사장의 전화는 십 분이나 더 계속되었다고 한다. 이윽고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학생들이 통탄할 만한 말세적 무신론에 물들기를 원하지 않소. 선생은 이제부터 기독교 철학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이에 L교수는 대답했다고 한다.
“네 이사장님, 박 교수(이사장의 동생)가 자기 과목을 기독교 물리학이라 부른다면 저도 제 과목을 기독교 철학이라 부르겠습니다.”
우리가 그를 최초로 만난 시간이었다. 일 미터 육십에도 미칠까 말까 한 키에 홀쭉한 몸매의, 나이보다 훨씬 겉늙어 보이는 남자가 정시에 강의실 문으로 들어왔다. 그는 교탁 위에 노트를 펼쳐놓기 무섭게 팔짱을 끼고 창가로 갔다. 우리는 한참 동안 그의 등판을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이윽고 졸음을 잔뜩 실은 듯한 목소리가 우리를 향해 날아왔다.
“김○○ 군, 자네 한번 말해보겠나? 두 마리의 황소가 이끄는 마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김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대답했다.
“황소입니다, 선생님.”
“맞는가요? 최○○ 군.”
“저는 바퀴라고 생각합니다.”
최가 자신 있는 어조로 대답했다.
“맞는가요, 송○○ 군?”
열 명의 학생들이 틀린 대답을 한 후에 L교수는 비로소 우리를 향해 돌아섰다. 노르께한 얼굴, 작은 두 눈엔 병적인 호기심과 번득이는 해학이 가득 차 있었다.
“내 생각엔 다들 틀린 것 같군. 그것은 우마차에 대한 개념, 즉 청사진입니다. 청사진이 만들어진 연후라면 어떤 다리이든 수레를 끌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대개 자기의 마음을 사물을 저장해두는 창고로밖에 사용하지 않는 듯합니다. 그런 것은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철학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과학과 종교 사이에 놓인 다리입니다. 또한 각자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그것은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감정이요, 올바른 덕을 쌓기 위한 훈련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리를 탐구하는 것 입니다.”
그는 여기서 잠시 말을 중단하고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제군들, 이제 마음이 좀 동요되었나?”
우리가 잠시 후 웃음을 거두자 그는 말을 계속했다.
“이제 몇 달이 걸리든 우리 한번 씨를 뿌려봅시다. 그러면 언젠가는 수확이 걷힐 테니까.”
이 첫 시간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인상을 심어놓았다. 나는 아직도 그를 존경하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 흉상을 본 순간 뭔가 참을 수 없는 거짓을 발견한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저것은 가짜다, 진짜가 아니다, 헛된 기교이며 조작이다. 그런데 이 느낌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나는 확실히 알 수가 없다. 흉상을 만든 나의 과장된 리얼리즘적 수법에서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그러한 수법으로 형상화되기 이전의 실재 인물 그 자체에서 오는 것인지, 어쩌면 이 두 가지 다 그렇게 상관이 없는지도 모른다. 보다 직접적이고 근본적인 원인은 나 자신 속에 있으니까.
나는 불쾌해서 더 이상 그것을 바라볼 수 없게 되자, 옆에 놓인 쇠의자를 집어 들어 그것을 향해 힘껏 내던졌다. 그리고 화실 밖으로 나왔다.
아까부터 나는 창 옆에서 노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오늘도 그가 그토록 진지한 얼굴로 잃어버린 물건을 계속 찾을 것인지. 대체로 그렇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노인이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난다면 무료한 가운데서도 그런대로 안정 된 나날의 생활 리듬이 송두리째 흔들릴지도 모른다. 그가 창밖에서 뭔가 열심히 찾고 있는 한 나는 계속 도전을 받는 셈이기에. 때문에 사실을 좀 더 명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노인이 찾고 있는 물건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런저런 것을 알아보노라면 노인의 그와 같은 숙연한 태도와 잃어버린 물건 사이의 상관관계도 알게 될 것이다. 아무튼 이제 나는 그와 한마디 얘기라도 나눠보지 않으면 못 견딜 심정이다.
드디어 자전거에 짐을 싣고 공터 안으로 들어오는 노인의 모습이 눈에 잡힌다. 그 곁엔 개가 종종걸음으로 따르고 있다. 어제와 거의 같은 장소에서 노인은 자전거를 멈추고 짐을 내린다. 비치파라솔·궤짝·연탄불 따위들이 착착 있을 곳에 놓여진다. 그런데 얼마 후에 나를 놀라게 하는 일이 벌어진다. 준비를 끝낸 노인은 이내 양산 밑에서 빠져나와 개를 데리고 물응덩이 쪽으로 가는 게 아닌가. 개는 하루 사이 아주 눈에 띄게 쇠약한 모습이고, 노인도 피곤하고 지친 모습이긴 하나 끈질긴 어떤 힘이 그의 전신에서 면면히 솟아 나오고 있는 듯하다. 나는 완전히 안정을 잃고 방 안을 오락가락했다. 믿어지지 않는다. 거짓말이다. 무엇이 노인으로 하여금 저토록 귀중하게 여겨지도록 만든단 말인가. 아니, 노인은 무슨 실없는 망상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방에서 뛰쳐나왔다.
공터에 이르러 잠시 동안 더 지켜보다가 나는 어제 그 소년이 그랬듯이 노인을 큰 소리로 불렀다.
“할아버지, 뽑기요.”
내 목소리가 큰 탓인지 노인은 첫마디에 뒤돌아보았다. 놀랄 법도 한데 무표정 한 얼굴의 노인은 말없이 개를 끌고 이쪽으로 걸어왔다.
이때 나는 비로소 노인의 얼굴이나 차림새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그의 피부는 검은 편이고 이마와 코언저리에 아주 깊은 주름이 금을 그어논 듯 패어 있어 얼핏 보기엔 투박한 가죽을 아무렇게나 꾸겨논 것 같았다. 그리고 눈빛은 흐리멍덩하긴 했으나 어떤 줄기찬 의지의 빛이 감돌고, 그래서 그런지 그의 인상 전체가 음울하긴 해도 끊임없는 힘 ―비록 무엇인가 넘어뜨릴 만큼 강하진 않다 해도―의 덩어리 같았다. 그런데 이것은 얼굴의 표정에서 느껴진다기보다 그의 몸 전체에서 스며나오는 냄새 같은 것이고, 그의 표정은 차라리 우둔하고 무표정한 그것이었다. 차림새는 얇고 후줄근한 검정 바지에 국방색 점퍼, 그러니까 늘 입고 다니는 옷차림 그대로였다. 또 개를 보니, 늙기도 늙었으나 마치 무슨 병을 지닌 것같이 눈 가장자리가 불그스름하고 눈곱이 한 종지는 붙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개의 눈동자엔 어떤 고통스런 빛이 머물고 있어 억지로 산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나는 노인이 신고 있는 검은 고무장화에 웅덩이의 질척한 진흙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것을 내려다보며 그를 따라 양산 밑으로 들어갔다. 거기엔 빤들거리는 작은 쇠 판대기가 붙어 있는 사과 궤짝 하나와 연탄난로 하나가 전부였다. 노인은 목침 비슷한 작은 상자에 걸터앉았다. 그러곤 궤짝 안에서 설탕 한 숟갈을 꺼내 작은 국자에 담고 그것을 불 위에 얹었다. 하얀 설탕이 거무칙칙한 색으로 변하면서 끈끈한 액체로 되자 젓가락 짝으로 소다를 쿡 찍어 설탕 속에 넣고 휘저었다. 거무칙칙한 액체는 다시 누르께한 색으로 변하면서 국자 위
로 붕긋하게 넘어 올랐다. 노인은 그것을 철판 위에 엎질러서 또 다른 철판으로 꾹 눌렀다. 꾹 눌렀던 철판을 들자 초지장처럼 얇은 과자가 만들어져 나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무슨 비행기 모양 같은 철사를 그 위에 얹고 다시 철판으로 꾹 누르니 그 모양의 무늬가 새겨져 나왔다.
노인은 비로소 그것을 내게 건네주면서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것을 받아 들면서 내가 말했다.
“다섯 개만 더 해주십시오.”
노인이 다시 같은 순서를 반복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말문을 열었다.
“노인장은 저 웅덩이 속에서 뭘 잃어버리셨습니까?”
노인은 손길을 멈추고 나를 정시했다.* 나는 멋쩍어서 씽긋 웃었다. 다시 하던 일로 돌아가면서 노인은 두어 번 고개를 끄덕였다.
“뭡니까?”
“훈장을.”
“무슨 훈장인데요?”
이야기를 털어놓도록 하려는 욕심에서 나는 다소 과장된 진지함을 보였다. 노인은 그런 나의 표정을 신중하게 살핀 연후에야 입을 열었다.
“아들이 월남전에서 받은 것이지.”
아하, 이 정도면 이미 다 알 것 같다. 나는 조커(joker, 트럼프)를 잡았을 때처럼 괜히 마음이 설레었다.
“아, 아드님이 월남에 가 계시는군요?”
“……”
나는 여기서 내 얘기를 할까 말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 대신 야비한 헛기침을 두어 번 터뜨렸다.
“전투에 공훈이 컸었나부죠?”
“크구말구.”
노인의 음성엔 갑자기 힘이 넘치고 표정에도 어떤 생기가 감돌았다.
“그 녀 이 글쎄, 맹호 작전이래나 뭐래나 하는 그런 싸움 때에 혼자서 베트콩을 열 명이나 죽였다지 않나.”
“아, 굉장히 용감무쌍하군요.”
“그럼, 그 녀석은 열댓 살 남짓했을 때, 동리 산에서 여우를 혼자 잡은 놈이라네.”
“그래요?”
“그뿐인 줄 알아? 힘이 또 얼마나 장산데, 쌀 한 가마를 지고 십리 길은 너끈히 간다네. 그렇다고 미련한 건 절대로 아니지.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죄다 우등으로 나왔단 말이네.”
“참 훌륭한 아드님을 두셨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월남에 있습니까?”
노인은 갑자기 풀이 죽어 얼굴에 비탄의 기색이 감돌았다.
“아니.”
이미 짐작하는 바라 묻지 않았으나 노인이 말했다.
“죽었다네. 그 뭐 앙케 뭐래나 하는 싸움 때에.”
“아― 그 유명한 앙케 고지 탈환 작전에서 말인가요? 저두 신문에서 봤습니다. 월남 전투 중에서 가장 치열했다더군요. 한국 군인들이 아주 용감하게 싸웠더랍니다.”
내가 이렇게 선동하듯 떠들어도 노인의 얼굴엔 그 생기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잠시 말이 없다가 내가 물었다.
“그런데 어쩌다 그 귀중한 훈장을 잃으셨습니까?”
“그 애 생각이 날 때 꺼내 보려고 늘 품속에 지니고 다녔는데 어떤 꼬마 녀석이 그걸 하도 보자기에 꺼내줬다네. 한데 그 녀석이 보구설랑 지가 달고 다니다가 잃어버렸지 뭔가. 아이들 말로는 걔가 그걸 달고 저 물웅덩이 있는 데서 놀더란 거야.”
“그렇게 됐군요. 훈장은 어떻게 생긴 건데요?”
“사람들이 그러는데 을지무공훈장이래나? 등급으로 치면 두 번째로 큰 거라네.”
그러면 지금 내 방에 있는 한낱 작은 쇠붙이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노인은 그것을 절대에 가까운 의미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야릇한 웃음을 감춘 채 죄인을 회유하는 못된 기분으로 다시 물었다.
“노인장은 그럼 지금 누구랑 사십니까?”
“아홉 살짜리 손녀딸이 있다네.”
“다른 분은 안 계시구요?”
“저이 할멈은 아들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실신하더니만 그길로 영 깨어나지 못했고, 며느리는 아들이 월남 간 지 넉 달 만에 바람이 나서 어린것도 버려둔 채 어디론지 행방을 감추었다네.”
“퍽 쓸쓸하시겠습니다.”
노인을 위로한다기 보다 그 어떤 득의의 기분으로 내가 말했다.
“뭘, 손녀가 있는데. 그 녀석이 신통하게도 내가 집에 돌아가면 밥을 해서 아랫목에다 묻어놓고 문밖에서 기다린다네.”
노인은 내가 쳐논 덫을 아는지 모르는지 덤덤하다.
“그런데 저 개는 어디 아픈 모양이죠?”
나는 주인 곁에 바싹 붙어 사지를 땅바닥에 축 늘어뜨리고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는 개를 가리켰다. 개는 산다는 것의 허망함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놈도 제 주인 기다리기에 지쳤어.”
노인은 잠시 개를 바라보고 다시 뽑기 만드는 손길을 놀렸다.
“주인이 노인장 아니십니까?”
“아닐세. 우리 그 녀석이 군에 입대하기 전에 젖도 안 떨어진 강아지를 어디서 얻어 와 애지중지 기른 것이 저놈이지. 저놈 주인은 내 아들이라네.”
동전 세 닢을 치르고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동전을 깡통에 집어넣고 노인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오자 그는 등 뒤에서 냉소하는 눈길이 쏘아보고 있는 줄도 모르는 채 다시 개와 더불어 웅덩이 쪽으로 묵묵히 멀어져 갔다.
노인은 벌써 네 번째나 내가 표적을 해둔 곳에서 어정거리기만 할 뿐 그냥 지나치곤 한다.
나는 어제 해 질 무렵 노인이 돌아가고 나서 내 훈장을 가지고 공터로 나갔다. 그리고 그것을 물웅덩이 속에 던져버리고 찾기 쉽게 표시를 해놓았다. 나흘이나 꼬박 지켜보며 잔인한 호기심으로 몸을 떨던 끝에 그와 같은 결론을 얻게 된 것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진설이란 것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데다 그것을 말해서 노인이 알아들을 지도 의문이었던 것이다. 그보다 차라리 진흙투성이가 된 보잘것없는 훈장을 노인의 코앞에 들이대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노인의 각별한 의지가 결국 무지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시켜 주고 싶은 것이다. 노인의 눈 속에서 희망도, 의지도, 믿음도 다 사라지고, 대신 사막처럼 막막하고 끝없는 허무의 모습이 비치는 광경을 보아야 나는 비로소 이전의 생활로 안심하고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다섯 번째다. 해는 자꾸 기운다. 이대로 노인에게만 맡기고 있다간 오늘 해도 넘기고 말 것 같다. 나는 초조하게 방 안을 서성거리다 마침내 밖으로 나왔다.
내가 공터에 당도했을 때 건너편 골목을 막 빠져나온 자전거 한 대가 내 곁에 와서 삑 멈춰 선다. 자전거 뒤엔 간장 단지가 매달려 있다. 그것을 팔러 다니는 소년인가보다. 나이는 열네댓 살가량이나 얼굴은 장사꾼으로서 이미 틀이 잡혀 있다. 소년은 자전거에서 껑충 뛰어내리자 노인을 향해 소리쳤다.
“할아버지, 많이 벌었어요?”
그 바람에 나는 노인에게로 나아가려던 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그래, 벌었다.”
노인이 자기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꾸해선지 소년은 못마땅하게 중얼거렸다.
“참 웃기는 양반이지.”
소년이 제집처럼 휭하니 양산 밑으로 들어가 버리자 나는 슬그머니 노인의 등 뒤로 다가갔다. 그리고 얼마 동안 노인의 하는 양을 지켜보다 넌지시 말을 건넸다.
“아직도 못 찾으셨군요?”
노인의 어깨가 흠칫한다. 이어서 소리 난 쪽을 힐끔 뒤돌아본다. 그뿐이다. 대꾸는 없다.
“저, 제가 찾는 것을 좀 도와드릴까요? 이 보십시오, 이렇게 장화까지 신고 꼬챙이도 구해 왔습니다.”
넉살을 떨며 말을 붙여도 달다 쓰다 말 한마디 없다. 표정 또한 무뚝뚝해서 도시 노인의 의중을 헤아릴 길 없다. 없으나 마나 나의 의도는 이미 돌이킬 수 없다. 나는 웅덩이 물 속으로 성큼 발을 들여놓았다.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하게 하려고 짜징* 웅덩이와 쓰레기 더미를 한참이나 뒤적거리는 척 했다. 그러다 마침내 표적으로 점찍어둔 억새풀 앞에 와서 멈춰 섰다. 노인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며 꼬챙이로 흙탕물 속을 꾹꾹 늘러봤더니 한참 만에 쇠붙이 조각 같은 것에 맞힌다. 그것을 꼬챙이 끝으로 끌어 올려 손에다 옮겨 쥐자 나는 느닷없이 큰 소리로 외쳤다.
“뭔가 비슷한 걸 찾은 것 같습니다. 이것 보세요!”
노인을 향해 손 안의 것을 흔들어 보였다. 노인은 잠시 자기 눈을 의심하듯이 바라보고 섰다가 천천히 내게로 다가왔다. 그 걸음이 어찌나 무겁게 보이는지 나는 부쩍 의심이 치솟았다. 가까이 다가온 노인은 내 손바닥에 놓인 진흙투성이의 희끗한 물체를 지그시 들여다 보았다. 나는 그 표정에 스쳐 가는 검부러기*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뚫어지게 쏘아봤다.
그때 어느새 달려왔는지 아까 그 소년이 끼어들었다.
“찾았군요.”
훈장을 집으려는 녀석의 손을 나는 재빨리 밀쳤다.
“찾으시던 게 바로 이거지요? 네? 맞습니까?”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척 다그치는 나를 노인은 이윽고 고개를 들어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엔 내가 기대했던 커다란 실망의 빛도, 그렇다고 기쁨의 자취도 없었다. 오직 노여움과 차가운 경멸로 흉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나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바보 같으니라구!”
씹어 뱉듯 뇌까리고 나서 노인은 나를 남겨둔 채 홱 돌아섰다. 그리고 양산 밑으로 가버리는 게 아닌가.
나는 맥이 탁 풀려서 멍청히 서 있었다. 그때 다시 소년이 내게서 훈장을 채뜨려 가며 말했다.
“이거 나 주세요. 할아버진 아무 소용도 없다고 하셨어요.”
이 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훈장에 묻은 진흙을 옷에 연방 닦아내며 또 들여다보기에 여념이 없는 소년의 손목을 나는 아프게 낚아챘다.
“그래, 너 가져라. 그런데 뭐라구? 할아버지가 이걸 소용없다고 하셨어?”
소년은 내가 눈을 부릅뜬 것을 보고 자기로부터 훈장을 빼앗으려는 줄로 알았는지 한 발짝 물러나며 성급하게 대답했다.
“그럼요. 틀림없이 그러셨어요. 그래서 이걸 여기다 버리신 거 아네요.”
“버리다니? 웬 꼬마가 보자고 해서 줬다가 잃어버렸다는데.”
“아녜요. 할아버지가 버리셨어요.”
나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기분으로 여전히 소년의 손목을 잡아끌며 한적한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자, 여기 좀 앉아라. 네게 몇 가지 물어볼 일이 있어서 그러니까.”
그제서야 소년은 나를 이상한 눈길로 훑어보았다.
“그런데 아저씨는 누구시죠? 저 할아버지랑 무슨 관계가 있죠?”
“임마, 그건 오히려 내가 물어보려던 참이다. 너야말로 저 할아버지를 어떻 게 아니?”
“우리 옆방에 사는걸요.”
“그래? 그렇다면 넌 정말 저 할아버지가 이 훈장을 소용없다 하시는 걸 네 귀로 똑똑히 들었다 이 말이지?”
내가 한 번 더 다짐을 두자 소년은 기분이 상해 볼멘소리를 한다.
“그렇다니까요. 맹세해도 좋아요. 이건 아들이 월남에서 받은 건데 할아버진 이걸 벽에다 걸어놓고, 늘 이까짓 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하면서 버릴까부다 그랬거든요. 그러는 걸 내가 듣고 저나 달라고 그래도 안 줬어요. 그런데 어느 날 이게 안 보여서 어쨌느냐고 했더니 저 응덩이에다 버렸다고 하시잖아요. 내가 아까 웃기는 양반이라고 하는 소리 들었쵸? 바로 그 소리란 말예요. 글쎄, 소용없어 버렸으면서 뭣 하러 도루 찾느냔 말예요.”
“음……”
뭣 하러 도루 찾느냐? 이렇게 되면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노인의 그 굳은 의지와 훈장과의 관계는 도시 알 수 없어지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소년에게 다시 의문의 눈길을 던졌다.
“저 할아버진 지금 누구랑 사시냐?”
“아무도 없어요. 혼자예요.”
“손녀가 있다던데……?”
“아, 걘 벌써 일 년 전에 죽었어요. 교통사고로요.”
죽었다고? 일 년 전에? 그렇다면 노인은 뭣 때문에 그런 거짓말을……
“저 다 늙은 개는 아들이 키우던 거라며?”
“아저씬 어디서 그런 엉뚱한 소리만 들었어요? 그건 할아버지가 누군가 병들어 버린 것을 주워 온 거란 말예요.”
훈장, 소녀, 개에 대한 것들이 모두 거짓말이었다? 그 순간 나의 뇌리에 내리박히듯 꽂히는 생각, 노인은 죄다 알고 있었다! 나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무겁고 냉혹하게 알고 있었다. 이 세계를 덮고 있는 허망과 무의미와 그 밖의 모든 것을.
저만큼 노인이 짐을 챙겨 공터를 떠나려는 것이 보인다. 그는 다시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몇 날 며칠을 기도하고 기도한 끝에 불러 모은 보이지 않는 혼으로 집을 짓고, 이제 겨우 문턱을 넘어서려는 순간 난데없이 나타난 나를 증오하고 있으리라. 그러나 어딘가에선 다시 시작하겠지. 나는 정말 바보였었다.
『문학사상』 31호(1975. 4); 『서영은 중단편전집』 1권(둥지 1997)
서 영 은
서영은(徐永恩) 1943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건국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68년 『사상계』 신인작품 공모에 「교(橋)』가 입선돠고, 1969년 『월간문학』 신인작품 공모에 단편 「나와 ‘나’」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고통을 통해 구원에 이르는 도정을 상징적이고 우화적인 수법으로 묘사해왔으며, 주요 작품으로 「사막을 건너는 법」 「황금깃털」 「먼 그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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