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 샤갈_해변의 연인들_캔버스에 유채_55×46cm_1956 현대미술의 거장_마르크 샤갈 (Marc Chagall, 1887-1985) ● 샤갈은 피카소나 미로 등의 거장들에 비해 뚜렷한 미술사적 보루가 없다. 그러면서도 샤갈은 20세기 인류에게 가장 풍부한 신성의 영감과 상상력의 창조성을 선물한 대예술가로 추앙 받는다. 온갖 이념과 경향들의 각축장인 지난 20세기의 미술 속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위치에 있는 이가 바로 샤갈이다. 현재까지 어린 아이부터 노인층까지 가장 많은 애호가를 확보하고 있는 샤갈은 어떤 발명가로서의 예술가이기보다, 神 혹은 자연과 인간의 영적 매개자로서의 예술가로 회자된다. ● 샤갈은 1887년 러시아 비테프스크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상트페테르부르크 왕실미술학교와 즈반체바 미술학교를 거치면서 화업의 토대를 일군 그는 탁월한 데생의 소유자가 된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보다 자유로운 그림을 위해 러시아를 떠난 샤갈은 베를린을 거쳐 파리에 정착한다. 41년부터 48년까지 한동안 나치를 피해 미국에 체류하기도 했지만, 그는 주로 파리를 무대로 활동을 하게 된다. 파리에 있는 동안 그는 거대 화상으로 유명한 볼라르를 만나 인정을 받았으며, 뉴욕에서 돌아왔을 때는 에메 매그에 의해 발탁이 된 것과, 1950년 방스에 정착한 것이 전기가 되어 그의 그림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며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마르크 샤갈_커다란 흰 꽃다발 속의 연인들_캔버스에 유채_65×75cm_1980 20세기 초 많은 경향이나 사조들과 열린 교류를 가지면서 그 장점들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내고 아울러 자신의 독특한 세계를 창출해내는 데서 샤갈의 천재성이 입증된다. 1차대전 후 샤갈이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던 시기는 유럽에 아방가르드라는 전위운동이 한참이었을 때였다. 어떤 면에서는 그 운동에 깊숙이 관여하기도 했던 작가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것을 초월하기도 한 작가이다. 초창기 그의 작품은 반 고흐의 표현주의적 화풍에서 모종의 영감을 받고, 아울러 큐비즘에 강한 영향을 받아 분할적인 대상의 표현이 많이 시도되곤 하였다. 상상적인 도상들이 지배하고 있는 그의 그림을 초현실주의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그의 정서가 궁극적으로 무의식 세계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초자아의 영계에 닿아 있는 것 같은 다름을 드러내고도 있다. 20세기의 많은 미술사가들이나 비평가들이 샤갈을 논할 때 의례적으로 행하는 어떤 양식적 구분을 통해 기술하기를 포기하고 온전히 그 작품 내면으로 진입하여 기술하고자 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마르크 샤갈_꽃다발을 든 여자 기수_캔버스에 유채_49×39cm_1966 피카소와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거장 샤갈도 폭넓은 재료와 기법으로 다양한 표현을 일구었다. 삽화만이 아니라, 도자기, 판화, 건축 모자이크(니스대학), 장식융단(이스라엘 국회), 세계적으로 유명한 극장의 장식(파리 오페라, 뉴욕 메트로폴리탄 등), 스테인드글래스(사르트르, 랭스 등) 작품 등은 그의 회화작품과 더불어 르네상스 거장의 면모에 필적할만한 것으로 부각된다. 바로 이러한 재료와 기법의 다양성은 샤갈이 자유롭고 영감이 넘치는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또 하나의 원천이다. ● 역시 샤갈은 대상의 문제보다 항상 자신의 내면에 있는 영감과 정서를 표현하기 위한 풍부한 색감, 상상과 꿈꾸기, 이야기 서술 등이 회화의 중요한 관건으로 고수되고 있었다. 초자연적이며 신비주의적인 그의 화면은 중력의 초월, 상식의 초월, 대상의 초월을 시사하면서 샤갈만의 독자적인 세계가 창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만년으로 갈수록 그의 색감은 ?색채의 유희?를 탐닉하듯 더욱 풍부해지고, 소재 또한 폭넓게 등장한다. 성경, 천사, 고향 비테프스크, 파리, 연인들, 악사, 곡예사, 동물, 꽃 등의 소재들은 그의 화려한 색상과 분방한 필치들에 녹아들어 동심과 향수, 순수와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세계를 창출한 것이다. 마르크 샤갈_마을의 신랑 신부_캔버스에 유채_46×61cm_1969 러시아적 정취와 유대적 전통 사이에서 그의 작품은 고도의 상징적 회화로서 자리매김한다. 샤갈은 줄곧 인간의 형태를 표현하는 데 몰두하여, 그것은 다시 가족, 고향의 이미지로 확산되고, 그것은 다시 탄생과 죽음의 문제로 수렴된다. 그 과정 속에서 마치 노아가 방주에 모든 종의 씨 동물들을 모으듯 그의 화면에는 동물과 사물의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당나귀, 말, 염소, 수탉, 물고기, 황소, 암소 등이 그것으로, 무의식적인 것,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 욕망, 두려움 등이 고도의 상징성을 띠게 된다. 한 예로 암소는 조국과 모성, 사랑하는 연인 등으로 해석되며, 수탉은 남성과 태양, 제물, 베드로의 예수 부인(否認) 등으로 읽힌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서로 부위별로 상호 교환하듯이 교차와 교배를 반복하여 상식을 넘어선 형상들을 만나게 된다. 또한 그 사물들과 인물들은 날아오르기, 깊은 사색, 음악 연주, 여인의 납치, 연인들의 속삭임, 전쟁의 참상.... 등의 다양한 포즈들로 연출되어 낯선 서정적 판타지를 하고 있다. 마르크 샤갈 (Marc Chagall, 1887-1985) 샤갈은 무수히 많은 미술의 담론들 속에서도 그것들을 초월하여 가장 순수한 예술성으로 관객에게 접근하고 있다. 스스로 어떤 이론적 테제나 당파성에 묶인 적이 없이 자유를 구가하며 마음껏 꿈꿀 수 있는 권리를 만인에게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샤갈을 본다는 것, 그리고 샤갈을 말한다는 것 그 자체가 바로 행복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 이재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