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혁과 이세돌 -- 특성과 강점을 음미해본다.
유창혁과 이세돌에 대한 재밌는 기사가 났더군요.
------ 유창혁, 숙적 이세돌 꺾었다
16승 16패로 팽팽… 내달 후지쓰배서 또 맞붙어
유창혁(39)과 이세돌(22)은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숙적 관계다. 2003년 말까지 13승 14패로 뒤지던 이세돌은 지난해 바둑리그 포함 3차례 유창혁과 맞붙어 전승을 거두며 전세를 뒤집었다. 올 들어선 연초 유창혁이 바둑왕전서 한 판을 만회함으로써 15승16패. 둘은 19일 농협 2005 한국바둑리그서 파크랜드와 피망바둑 팀 주장으로 맞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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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사를 읽고 꼬리말을 달았습니다.
두분 초창기부터 재밌는 승부를 했었죠. 막상막하의 승부의 연속, 하지만 큰 대국에서는 거의 이세돌이 챙겼어요. 이세돌 킹케이커에 일익을 담당했달까요. 하이텔배 후지쯔배 등이 그랬었죠. 큰 걸 너무 많이 먹어서인지, 너무 고마워서인지 서서히 양보하더군요. KT배 등. 두분의 승부는 재밌습니다. 유사범은 핵심을 찌르는 직관이 좋은 분이시죠. 논리성도 좋기에 전투도 강하구요. 이세돌은 게릴라전법의 대가라는 인상도 있습니다. 비틀고 쥐어짜고...^^ 그런데 큰 펀치력이랄가 핵심을 잡는 힘은 유사범이 나은 면도 있지요. 대세관이 좋다할겁니다. 이번에 후지츠배에서도 이세돌이 우승하면 가히 이세돌시대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듯 싶은데, 국내 타이틀이 너무 없으니 조금 민망하기도 합니다. 큰 승부에 강한 뭔가가 있어 보입니다. 이대로 나가면 고래사냥꾼이라는 별명도 낼 수 있겠죠. 월척도 포기하고 고래만 잡는...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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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이런 말이 회자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 유창혁은 그 누구라도 이길 수 있고, 그 누구에게라도 질 수 있다. "
그의 바둑의 특이함을 잘 설명해주는 말이었습니다. 사실 그는 이창호 조훈현 등 당대 고수 그 누구도 만만히 볼 수 없는 저력의 기사였고, 실제 이창호를 국제전에서 자주 녹아웃시키고 우승을 못해 욕을 먹기도 했었지요. 이창호는 당시 말했었죠. " 거참 이상해요. 큰 대국이 되면 평소보다 정말 힘들거든요. 컨디션조절이나 힘의 안배를 하는 것인지..." 그가 얼마나 곤욕을 치뤘는지 잘 알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사실, 92-93년 경 국내대회 12관왕을 하면서도 끝내 왕위전을 먹지 못한 바람에 천하통일에 실패했었죠.
필자의 생각에 유사범이 직관의 바둑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그는 86년 경 아마추어 세계대회 준우승을 했었는데요 당시 결승에서 필승바둑을 사활에서 착각을 하는 바람에 놓쳤었죠. 기초공부가 부실했다는 것이죠. 그건 그의 바둑 공백기가 있었기 때문이라 믿어집니다. 큰 승부사들과 세기의 대결을 벌여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겠죠. 그래서 그는 대범하고 큰 스케일의 직관형 승부를 시도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그의 해설을 자주 접하다보니 그의 실력이 모든 부분에서 탁월하다, 특히 전투감각에서는 발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나이를 먹으면서 부족한 세기를 공부해나가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아마도 정신이 큰 기사가 아닐까도 싶습니다. 가끔 매서운 눈총을 상대에게 쏟아 부어 대국자나 시청자가 당황스런 일이 있곤 했었는데(사실 인상은 무척 안 좋았죠. 옥의 티였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아니 네가 진정 이렇게까지 나온단 말이냐 ? 그러고도 무사하길 바라느냐 ?! 괘씸한..." "헉~!! 놀랬다. 네가 진정 이 정도까지나... 다시 봤군. 흠...만만치 않은 놈이로다. 이자를 깨부술 비책이 뭐 없으려나 ?" " 흠... 한 수 배웠네. 이자의 무엇이 이 수를 가능케 했단 말인가. 이자의 정신을 뛰어넘을 내 길은 없는가 " " 요건 몰랐지. 어떠냐 이놈아. 다시 또 나에게 힘주고 담빌 자신이 있겠느뇨 ? 고생 좀 해봐라. "
등등의 상상을 해본 적이 있군요. 승부사란 기세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기세란 정신적인 자신감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내가 더 크다. 내 정신이 더 높단 말야. " 그런 자신감이 있을 때 진정 상대를 제압할 수 있으리라 믿어집니다. (이게 잘 안될 때 약해지죠. "제발 나에게 덤비지 말어. 나 너무 힘들다. 고만 좀 덤비란 말야..." )
유창혁의 바둑은 기세가 놀랍죠. 평소는 버들잎처럼 능청능청하는 듯 하면서도 중요한 핵심에서는 대나무처럼 꼿꼿하게 버티는 면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승부사라면 그런 승부처를 감지하고 뼈를 묻을 수밖에 없습니다만, 유창혁은 그중에서도 발군이라 할만 하겠습니다.
그의 바둑미학이라고도 할 수 있겠더군요. 죽어도 이곳은 두고 지더라도 지겠다는 각오가 남다릅니다. 잘생긴 얼굴에 남다른 승부 호흠 그리고 그 놀라운 패기, 그게 있어서 지더라도 멋지게 지는 모습도 자주 보게 되더군요. 유창혁 바둑의 묘미라 할만 하겠습니다.
이세돌도 비슷한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승부는 더 집요하고 처절하죠. 인파이팅은 물론 게릴라 전법에도 능통해서 그만이 발견할 수 있는 특이한 국면전개가 의외로 많습니다. 그건 사실, 2-3집의 조그만 이익을 양보하라는 압력으로 시작되기 일수인데, 그런 잽을 자주 허용해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상대도 반발하게되고 그래서 난해한 바둑으로 치고받는 바둑이 되기 일수입니다.
그럼에도 그 또한 승부사의 미학이 있지요. 치열할 땐 치열하더라도 아니다 믿으면 깨끗이 돌을 던지는 담백함이 우리를 놀래게 하면서 멋진 뒷맛을 여운으론 남기곤 합니다.
둘 다 큰 바둑에 강하다는 것도 특이한 강점입니다. 그 정신이나 승부사의 요체는 아직 모르겠네요. 무엇이 그들을 큰 바둑에 강하게 했을지 말이죠.
난 유에게는 정신의 대범함을 자주 엿보곤 했습니다. 큰 승부에 명국 없다는 말이 있는데, 그만큼 초조함을 다스린다는 것은 큰 바둑들로서도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걸 가르쳐줍니다. 그런데 그는 아니었죠. 큰 바둑일수록 뱃심좋은, 그만이 갈 수 있는 든든하고도 옹골찬 면을 보이곤 했습니다. 가히 혀를 내두르게 하는 승부사로써의 본령이라 할만 하겠네요. 그가 명상을 해서 자신의 평상심을 지킬 수 있었다는 말도 들은 듯 합니다만, 승부사로서의 큰 그릇, 정신적 스케일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믿어집니다. 그의 눈빛을 보면 그만의 자신감과 확신이 넘치고, 그 기개가 참으로 가륵(?^^)하다고 할까요. 가히 승부사의 정신이요 마음의 패기라 할만하다 하겠습니다. 대단하고 대견하고 존경스러울 뿐입니다.
난 이세돌에게 그런 정신적 큰 패기는 느끼지 못했습니다. 특히 외모나 눈빛에서는 말이죠.그런데 과정과 결과는 참으로 묘하더군요. 그 누구를 만나도 위축되는 모습을 보진 못한 것 같습니다. 큰 바둑, 위기의 국면일수록 알 수 없는 저력과 치열함이 품어나오게 하는 힘은 무엇일지 의문입니다. 그럼에도 큰 바둑에 그는 너무 강했죠. 오죽했으면 <고래사냥꾼>이라는 말을 하고 싶겠습니까.
그 역시 큰 바둑들과 대국을 벌이며, 상대의 강점을 흡수하지 않았나 여겨집니다. 신예조련사 역할을 했던 조훈현, 큰 바둑과 정신 유창혁과 이창호, 그들과 마주앉아 그들의 정신과 승부호흡 그리고 기합을 느낄 때 승부사로서의 조련과 깨달음이 소리 없이 흡입되지 않았을지.
바둑의 승부는 기술의 대결로 보이지만, 사실 정신의 발현입니다. 정신의 크기와 패기가 바둑의 기합이 되고 확신의 대결이 되는 것이죠. 기술만 조련해서 큰 바둑이 된다 ? 천만의 말씀입니다. 난 언젠가 큰 바둑을 말할 때, 기술과 함께 큰 정신과 마음을 강조한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컴퓨터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소프트 프로그램을 많이 입력해도 하드웨어의 성능이나 안정성이 없다면 큰 일을 해낼 수 없다고 말이죠.
내가 보기에, 일류승부사의 큰 바둑일수록 기술의 대결이라기 보다는 기세의 대결이요 관점의 대결이며 정신과 마음의 대결입니다. 누가 좀 더 크고 유려하고도 날카롭게, 누가 더 안정적이고 자신감 있게 둬나가느냐에 따라 큰 승부는 갈리게 마련이다...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양궁과 비슷한 이치이지요. 누구나 만점을 쏠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좋은 점수를 얻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양궁에서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깊게 연구하는 노력들이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죠. 바둑도 비슷할 겁니다. 상대가 누구냐, 어떤 국면이냐, 정신과 체력이 어떤 상황인가에 따라서 자신이 임할 수 있는 최선의 대책을 프로그램화해둘 필요도 있다고 믿어집니다.
다음달에 있을 후지츠배가 기다려지는군요. 사실 중요한 승부처입니다. 만약 이세돌이 우승할 수 있다면, 가히 이세돌시대라 할만 하겠습니다. 그런데 우승자 앙케이트에 전 유창혁사범을 지목했었지요. 그 누구보다도 안정감을 가지고 편안하게 바둑을 둘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이세돌의 기세나 저력이 빛나는 시점이지만, 웬지 안정성면에서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자신감은 좋으나 자만심으로 이어진다면 큰 낭패를 맞이할지 모르겠다 믿어졌습니다. 또 그는 자신의 호흡과 흐름을 유난히 중요시하는 기사입니다. 그가 원하지 않은 페이스로 흐를 때 쉽게 무너질 수도 있는 기질이라 할만 하겠습니다. (세계 LG배에서 2연승 후 3연패를 생각하면 그의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겠지요. 자신의 생각으로는 지금보다도 그때가 더 강해보인다고 말하던 그가 말이죠.)
그가 다른 세계적 강자들에게는 강하면서도 유독 이창호 유창혁에게 만만치 않은 이유도, 정신과 마음에서 이유를 찾아야하겠죠. 이세돌은 아직도 배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술이라기 보다는 정신과 마음이고, 체력관리, 자기관리능력일 것입니다. 한국의 에이스로서 좀 더 확고한 믿음을 주기 위해선 더 큰 정신, 마음의 여유, 자신감과 신념, 그리고 강한 체력을 보강해야한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다음 후지츠배에서 누가 우승을 하더라도 난 축하를 드리고 싶습니다. 모두들 의미가 각별하리라 믿어지더군요. 이세돌이 세계 최강자임를 선언하느냐, 아직도 386 유창혁바둑은 세계정상권임을 확인하느냐, 최철한만의 강미가 다음 시대를 예고하느냐, 송태곤의 확실한 부활선언이냐... 모두 축하할만한 일입니다.
그때까지 최선을 다해 준비해서 아름다운 명승부의 세계를 펼쳐주시고 바둑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확인하는 자리이기를 빌어마지 않습니다.
한국바둑이 자랑스럽습니다. 우린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한국바둑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한국기사, 한국바둑 파이팅~~ ^^
2005 6 22 수 오후 산책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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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조국수님 유왕위님 모두 부활하실꺼에요..앗..서명인님도 ~~
산책님은...너무나도 잘 꿰뚫어보시는것같습니다.유사범님의 바둑에 향기...글 하나하나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 반갑고 고맙습니다. 사실 이세돌 최철한 기사등에 대해 글을 적어보고싶은데, 시간이 잘 안나는군요. 충동이 일면 시도해보겠습니다. 시원한 여름 되세요--^^*
산책시간님 이세돌 기사 뿐만 아니라 모든 바둑기사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글에서 느낄수 있었습니다. 유창혁사범님과 이세돌사범님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이시네요. 앞으로 많은 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특히 이세돌사범에 대한 부분중에 정신과 마음의 수련이 더 필요하다고 하신 부분에서 공감이 갑니다. 실력은 정말 나무랄때 없는 분이신거 같은데.. 어딘가.. .2% 모자라다고 느꼈었는데, 그부분인것 같네요
^^ 반갑습니다. 사실 전 특정인만을 응원하긴 쉽지 않더군요. 멋진 바둑 힘찬 기백들이 좋아요. 이번 후지츠배 기대가 큽니다. 어떤 바둑 보여줄지, 앞으로의 세계바둑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치겠지요.
이세돌바둑도 자못 흥미롭습니다. 얼마나 훌륭한 바둑으로 완성해나갈지 기대되지요. 강한 정신력과 체력으로 힘찬 바둑 보여줬으면 좋겠네요. 더위를 식히는 시원한 비가 내렸네요. 멋진 여름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