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째! 그 유명한 만리장성을 보러가는 날이다. 지금까지 달에서도 보이는 유일한 인공 건축물이라는 뜬소문에 속아왔던...길이야 지구상의 건축물 중 단연 최장이겠지만, 폭이 그래서야 달에서 보일 리가 없다. 슈퍼맨쯤 되면 몰라도.
한족들은 대대로 북방민족을 두려워 했다는데, 그 두려움의 소산이 바로 만리장성이다. 진의 시황제가 쌓기 시작했고, 그 후대의 왕조들이 줄기차게 증축, 보수를 하여 오늘에 이르렀단다. 청나라 때는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바로 청나라의 왕조 자체가 북방민족 이었기 때문이다. 하긴 유럽에서 로마시대의 훈족이나 중세의 몽고족을 그린 그림들을 보면, 키는 작지만 다부지고 난폭한 모습으로 말을 모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이런 북방 유목민들을 실제로 보게되면 확실히 무서웠을 것 같다.
한문으로는 萬里長城(완리챵쳥)이고, 영어로는 The Great Wall이고... 마오쩌둥은 이 만리장성을 두고 이런 말을 했단다. 'He who has not climbed the Great Wall is not a true man'. 이걸 한문으로 하면, 모르겠다(설명을 영문으로만 봐서...). 어쨌든 한 민족이 이렇게 끈질기게 오랫동안 단일 건축물에 공을 들인 예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 같다.
모두들 가는 팔달령으로 가지 않고, 용경협을 포기하는 대신 진짜 장성을 느낄 수 있다고 되어 있는 사마대장성으로 갔다.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두시간 정도) 달린 후에, 다시 내려서 택시를 흥정해서 가는 게 유일한 방법이다(공공교통 수단을 통하는 방법이라면). 버스에서 내려서 택시를 타기 전에, 우리나라에서 온 2명(1명은 카페에서 알게 되었고, 1명은 현지에서 합류)과 같이 갔기 때문에(만리장성은 차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만리장성만 같이 가게 된 것이다) 밥을 먹기로 했다(아침도 안 먹어서 너무 배고픔). 식당이라곤 딱 한 군데밖에 없었으므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그 식당의 위생상태라는 건... 차라리 저녁까지 굶고 싶을 정도로 안 좋았지만 다른 수가 없으니.
식당에서 먹은 만두와 국수. 만두는 두 개 먹었고, 국수는 입도 대기 싫어서 전에 없이 얌전히 있었다. 사진을 다시 보니 실제 상태에 비해 너무나도 깨끗해 보인다(?).
그럭저럭 식사를 끝낸 후 택시를 흥정해서 타고 사마대장성으로 향했다. 북경에서 좀 더 북쪽이라 그런지, 아니면 그냥 느낌이 그래서 그런지 대기 상태는 어제보다도 더 뿌옇게 보였다. 산등성이를 타고 구불구불 거릴 만리장성을 찍어야 되는 날에 하필 날씨가 이렇다니, 심히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드디어 사마대장성에 도착! 중국인들의 선호색인 붉은 글씨로 사마대장성이 쓰여져 있다.
사마대장성을 올라가는 길. 가는 도중 서쪽을 바라본 모습인데, 이 서쪽은 진샨링(金山嶺)장성으로 진샨링에서 쓰마타이로 넘어오는 루트도 있다고 한다. 시계가 좀 더 좋았다면 훨씬 장관이었을 것을...내 눈으로는 잘 보였는데, 그 장엄함은 뭔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있었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를 봤을 때처럼, 무엇인가 극치를 이룬 인간의 솜씨라는 건 공통적으로 사람의 마음 속에 울림을 남기는 법인가 보다.
동2탑(East No.2 Watch tower)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이쯤만 되어도 꽤 경사가 있고 계단폭이 좁다.
제법 평탄한 구간이 나오길래, 땅바닥에 엎드려서 배를 주~욱 깔고는 한 장 찍었다. 보기엔 어떨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보이는 두개의 탑을 넘는 데는 상당한 각도를 감수해야 한다.
대략 2/3 위치쯤 되었던 것 같다. 경사는 거의 70도... 여기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용처럼, 혹은 뱀처럼 구불구불한 만리장성이 시야에 들어온다. 산 능선을 따라 장성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으니, 이쯤되면 이미 인공 축조물이라기보다는 자연의 하나처럼 느껴졌다. 하루키의 단편 중에 '꿈속에서 처럼 내 손에 꼭 맞는 만년필'을 만들어 주는 만년필 장인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마치 그 이야기처럼, 쓰마타이는 '장관'이라는 말이 꿈속에서 처럼, 정말 꼭 어울리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렇게 멋진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내 사진기가 그걸 다 잡아내지 못하는 것이, 마치 눈앞에서 탐스러운 초밥이 줄줄이 벨트에 얹혀 돌아가고 있는데 그만 젓가락이 미끄러워서 그걸 집지 못하는 것 만큼이나 안타까웠다.
힘도 들고 해서, 사진을 찍었는데...포즈를 잡은 게 아니라, 경사가 심해서 무서워서 몸을 앞으로 숙이고 있었다.
이게 쓰마타이의 끝-동13탑 부근이다. 펜스가 쳐져 있어 더는 동쪽으로 나아갈 수 없다. 저 끝에 보이는 산꼭대기까지 내 발로 걸어가 보고 싶은 충동이 용솟음 쳤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매우 위험해 보인다. 부분부분 무너져 있고, 한쪽벽(남쪽벽)이 모두 무너져 있는 상태였다.
여행책에는 쓰마타이에는 위험구간이 있고 경사도 있고 그러니 그립 좋은 신발을 신고 두손을 자유롭게 하고 어쩌고...되어 있었지만, 실은 그 정도는 아니다. 학생때 상해 갔을때 황산을 다녀와서 그런지, 하나도 위험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팔달령을 가보지 않았으니 뭐라고 말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쓰마타이에 다녀온 것은 너무 잘한 것 같다. Breathtaking~이었다고 할까. 북경의 Land mark는 단연 자금성이겠지만, 중국의 Land mark는 만리장성 아닌가~ 그런데 실제 가서 보고 올라본 느낌으로는 산세가 제법 험하고 겹겹이 둘러쳐져 있는데다가, 산들이 육산이 되어놔서 바위 위에 풍화된 모래와 자갈들이 깔려 있어 굳이 이런 성벽을 쌓지 않더라도 방어를 용이하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시대의 실상 및 군사적 지식도 잘 모르고, 또 이걸 쌓느라고 죽어갔을 수많은 양민들을 생각해볼 때 이따위로 생각하는 건 결례겠지.
이날은 금요일이어서 그랬나, 북경으로 돌아오는 고속도로는 이미 북새통이었다. 일요일 오후 경부고속도로 서울 톨게이트 부근 정도 되었다. 그래서 꼬박 하루를 다 소비해 버렸지만, 쓰마타이에 감동해 있어서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혼자 왔으면 안 먹었을 북경오리에 도전하기로(만리장성을 동행했던 2명과) 했기 때문에, 왕푸징의 전취덕으로 갔다. 전취덕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북경오리 전문점인데, 과연 그래서 그런지 번호표를 받고 20분쯤 기다려야 했다. 이 전취덕은 1864년 북경에서 개업하여, 그때의 불씨를 한번도 꺼뜨리지 않고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전취덕에서 구워진 오리가 1억마리가 넘는다고 한다. 1억마리의 오리라...일정 수준의 양을 넘겨버리니 이미 상상 밖이 된다. 북경오리는 청의 건륭제(어떤 기록에는 13일 동안 8일을 북경오리만 먹어댔단다)와 서태후가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한마리를 통째로 시키자, 조금 있으면 이렇게 요리사가 직접 와서 눈 앞에서 솜씨좋게 썰어서 담아준다. 그런데 대충 살을 발라냈다 싶었을 때, 아직도 살코기가 무지 많이 남은 것처럼 보였는데...그냥 가져가 버렸다.
이렇게 썰어진 것을, 밀 전병에 쌈처럼 싸서는 파와 춘장을 찍어서 먹는다. 중국요리에 크게 애정이 없는(쓰촨 요리를 제외하고는) 내 입에도 무지 맛있었다.
기념으로 한 컷~표정만큼이나 만족스러웠다.
밖에서 본 전취덕 모습이다. 나름대로 오리 모형도 있고 기념사진도 줄줄이 찍어대는-그런 풍경이다. 이미 시간은 아홉시가 넘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왕푸징의 먹자골목을 지나쳐서 왔다. 과일에 장난 아닌 설탕옷을 입힌 먹거리를 파는 모습이다. 이거 말고도 국수, 각종 꼬치, 타코야키등 무궁무진했다. 하나 먹어보고 싶었지만 이미 뱃속에 구운 오리를 잔뜩 집어 넣은 관계로-구경만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역시 칭따오와 함께. 쓰마타이를 오르내린 여파로 다리가 약간 피곤해서 더운물과 찬물로 번갈아 마사지를 하고는, 칭따오 맥주를 먹으면서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읽으려고 가지고 간 '음식 잡학사전'을 읽었다. 내용중에 북경오리에 관한 것도 있어서 재밌게 읽었다. 어느새 시간은 열두시를 넘기고, 일기를 쓰고는 잠에 들었다.
<출처 : 중국여행 동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