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과 영화> 씬 레드 라인
누가 전쟁을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라 하는가
기승전결 영화 문법서 벗어나 다양한 인물의 시선에 집중
철학적·신학적 고뇌 통해 전쟁 이면에 숨겨진 광기 들여다봐
▶ 씬 레드 라인(The Thin Red Line), 1998
감독: 테렌스 맬릭/출연: 제임스 카비젤, 숀 펜, 닉 놀테, 존 트래볼타
영화 ‘씬 레드 라인’은 한스 짐머의 장중한 음악과 신기에 가까운 영상미를 만드는 존 톨의 촬영 등으로 아카데미 영화상 7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나 아쉽게 수상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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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평화에 대한 모독’
영화 ‘씬 레드 라인’은 전쟁을 평화의 반대말이 아니라 평화에 대한 모독으로 해석한다. 영화 제목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즉 사람이 한계 상황에 이르렀을 때의 경계가 종이 한 장보다 얇다는 뜻을 담고 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전쟁터에서 인간이 겪게 되는 혼돈과 그 혼돈 속에서 찾아내는 평화의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영화는 1942년부터 1943년까지 태평양에 있는 작은 섬 과달카날에서 해병대를 지원하기 위해 투입된 미 육군 보병 중대가 일본군의 거점인 210고지를 점령하는 얘기가 주요한 내용이다. 일본군은 섬 깊숙한 곳에 숨어서 미군을 기다리고 있다. 정면돌파를 시도하다 희생이 이어지자 미군은 위험을 무릅쓰고 일본군의 포 위치를 확인한다. 일본군 포를 파괴한 중대는 사기충천해 고지에 오르고 승리를 거둔다. 아름답던 섬은 어느새 전쟁의 흉터로 색이 바랜다.
영화 ‘씬 레드 라인’은 숀 펜, 애드리언 브로디, 우디 해럴슨 등 유명 배우들을 한자리에 모은 화려한 캐스팅으로도 주목받았다.
영화 ‘씬 레드 라인’은 닉 놀테, 조지 클루니, 애드리언 브로디, 우디 해럴슨 등 유명 배우들을 한자리에 모은 화려한 캐스팅으로도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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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베를린국제영화제 금곰상 수상
메가폰을 잡은 테렌스 맬릭은 ‘황무지’(1973)와 ‘천국의 나날들’(1978)로 놀라운 연출력을 과시한 감독이다. 그는 평단의 찬사를 받았음에도 20년 가까이 침묵을 지키다가 ‘씬 레드 라인’을 내놓았다. 맬릭은 제임스 존스의 2차 대전 소설 ‘씬 레드 라인’을 각색한 이 영화로 제4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금곰상(1999)을 받았다.
영화는 같은 해 개봉된 또 다른 전쟁영화의 명작 ‘라이언 일병 구하기’(스티븐 스필버그·1998)와 비교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시각적·청각적 울림으로 전쟁을 직설적으로 관찰했다면, 씬 레드 라인은 철학적·신학적 고뇌로 전쟁의 숨겨진 이면, 예를 들면 전쟁의 광기 등을 들여다봤다. “병사들의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 임한 병사들의 마음을 담은 영화”라는 평도 적절하다.
영화는 기승전결로 이어지는 영화문법에서 벗어나 전쟁에 관해 특정한 시각이 아닌 다양한 인물의 시각으로 이야기하는 데 집중한다. 수많은 등장 인물의 시선이 내레이션으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모범적 군인이지만 자기 일에 갈등하는 에드워드 상사(숀 펜), 장군으로 진급하려는 저돌적 지휘관 고든 대령(닉 놀테) 등 인물들이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도 제각각이다. 이외에도 의미 없는 죽음을 피하고자 명령을 거부하는 대위, 아내와 함께하기 위해 진급을 포기하는 병사 등 다양한 군상이 등장한다. 이 중 인간과 자연의 존재 근원에 대해 사색하고 동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심지어 목숨까지 내놓는 위트(제임스 카비젤)라는 캐릭터에게 눈길이 간다. 위트는 전쟁이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인지 내내 고민한다.
영화 ‘씬 레드 라인’은 메시지를 직접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보는 내내 철학적 사고를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다만 170분에 가까운 긴 상영 시간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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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전략무기 확충은 평화를 향한 갈구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신과 인간의 존재론이라는 철학적인 사색이다. 영화 초반이 상징적이다. 감독의 이 같은 시선은 영화 내내 이어진다. 병사들이 숲속을 향해 나아갈 때 나뭇잎 사이로 내리꽂히는 햇빛, 간혹 들리는 자연의 소리 등을 대비적으로 담아낸다. 결국 전쟁은 자연에 대한 모욕, 그리하여 신에 대한 모욕으로 묘사되고 이를 통해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간접적으로 들려준다. 우리 군 역시 사드 배치 등 전술전략 무기의 확충이 전쟁이 아닌 평화에 대한 갈구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아야 한다.
<고규대 영화평론가>
추억의 영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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