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신년(1548, 명종3) 1월에 단양군수(丹陽郡守)에 임명되었다. 선생이 외직을 청한 것은 깊은 뜻이 있었거니와, 특히 이 고을 군수를 원한 것은 이 고을이 산수(山水)가 좋은 곳이기 때문이었다. 이곳의 구담(龜潭)ㆍ도담(島潭) 같은 곳은 경치가 가장 좋았으나, 그때는 마침 잇따른 흉년을 만나 기근을 구제하느라고 자주 그곳에 오가지 못했었다. 그러나 공무의 틈을 타서 간혹 가서 놀이하며 흥에 따라 시(詩)도 읊었다. -이안도-
● 군(郡.그 때 선생은 풍기군수로 있었다)에 소백산(小白山)이 있는데, 곧 남쪽의 명산(名山)이었다. 선생은 일찍이 말을 타고 혼자 가서 그 봉우리에 오르기도 하다가 여러날 만에야 돌아오곤 하였는데, 표연(飄然)히 남악(南嶽)의 흥(興)이 있었다(주희가 남악에 올라 속세를 떠날 뜻을 읊은 일을 말함). -김성일-
● 선생이 두 고을 단양(丹陽)ㆍ풍기(豊基)에 재임할 때에는 맑은 바람이 씻어 간 듯이 조금도 사사로운 일에 개의치 않았다. 공무의 여가에는 오직 서사(書史)로써 스스로 즐겼고, 간혹 초연히 혼자 나가서 수석(水石) 사이를 거닐기도 하였는데, 들의 농부들이 바라보고 마치 신선같이 생각하였다. -김성일-
● 선생은 나이 50이 되도록 아직 집이 없었다. 처음에는 하봉(霞峰)에 집을 지었다가 중간에 죽동(竹洞)으로 옮기고, 마침내는 퇴계에 아주 자리를 정했다. 집 서쪽 시냇가에 집을 지어 이름을 한서(寒栖)라 하고, 샘물을 끌어서 당(塘)을 만들어 이름을 광영(光影)이라 하였다. 매화와 버들을 심어 그 사이에 세 갈래 길을 내었다. 앞에는 탄금석(彈琴石)이 있고, 동쪽에는 고등암(古藤巖)이 있었는데, 시내와 산이 밝고 아름다워 완연히 하나의 별천지를 이루었다. 병진년(1556, 명종11)에 성일이 처음으로 이곳에서 전배(殿拜)하였는데, 좌우는 책으로 둘러싸이고 향불을 피워 고요히 앉아 계신 모습이 마치 그렇게 일생을 마칠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선생이 관인(官人)인 줄도 몰랐다. -김성일-
● 경술년(1550, 명종5) 2월에 비로소 계상(溪上)에 집을 지었는데, 지금의 서쪽 집이 그것이다. 이보다 먼저 하명동(霞明洞) 자하봉(紫霞峯) 밑에 땅을 얻어 집을 짓다가 마치지 못하고 말았는데, 그것은 그 골이 낙천(洛川)에 가깝고, 낙천은 곧 관금(官禁)이 미치는 곳이어서 자손들이 살기에 마땅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다음에 죽동으로 옮겼으나, 죽동은 골이 좁을 뿐 아니라 또한 시냇물이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계상에 집을 지었으니, 곧 세 번 만에 자리를 잡은 셈이다. -이안도-
● 만년에 도산에 터를 잡아 집을 짓고 책을 보관했다. 그 땅은 강가에 있었기 때문에 겨울에는 몹시 추워 지낼 수가 없었고, 봄ㆍ여름에는 언제나 그곳에 거처하였다. 간혹 꽃 피는 아침이나 달 밝은 저녁에는 혼자 쪽배를 타고 물굽이를 따라 오르내리다가 흥이 다하면 돌아왔다. 경적을 마음속으로 음미하고 계산(溪山)에 흥을 붙여 퇴연히 세상 생각이 없는것 같았다. -정유일-
● 선생이 도산을 얻었으나 아직 정사(精舍)를 짓지 못했을 때에 늘 말하기를, “산수(山水)가 맑고 기이하여 내가 구하는 바에 꼭 맞는다.” 하고, 자나 깨나 마음이 항상 그 가운데 있었다. -김부륜-
● 처음에 도산서당을 짓고는 종들을 시켜 지키려고 하다가, 그들의 깨끗하지 못함을 꺼려서 산승(山僧)을 시켜, 따로 농운정사(隴雲精舍)에 살면서 지키게 하였다. 그것은 마치 주자가 도사를 시켜 운곡(雲谷)을 지키게 한 뜻과 같은 것이다. -김성일-
● 신유년(1561, 명종16) 3월 그믐날에 선생이 시내 남쪽 서재를 나갈 제, 이복홍(李福弘)ㆍ덕홍 등을 데리고 도산으로 갔다. 무덤 위의 소나무 밑에서 쉬었는데, 그때 산꽃이 만발하고 안개 감도는 숲은 밝고 고왔다. 선생은,
소용돌이에서 목욕하는 백로는 무슨 심성인고 / 盤渦鷺浴底心性
외로운 나무에 핀 꽃이 저절로 환하구나 / 獨樹花發自分明
라는 두자미(杜子美)의 시 한 구절을 읊었다. 이덕홍이 묻기를, “그 뜻은 어떠합니까?” 하니, 선생이 이르기를,
“자기를 위하는 군자는 억지로 하지 않으면서도 저절로 그렇게 된다는 것이 이 시의 의미에 들어맞는다. 학자는 모름지기 이를 체험하여 그 의(義)를 바르게 하고 그 이(利)를 꾀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그 도를 밝히고 그 공을 헤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만일 털끝만큼이라도 억지로 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것은 학문이 아니다.” 하였다. 뒤에 이덕홍이 묻기를, “‘소용돌이에서 목욕하는 백로는 무슨 심성인고, 외로운 나무에 핀 꽃이 저절로 환하구나.’에서의 가르침을 받고 군자의 자기를 위하는 공부에 대하여 조금 알았습니다.” 하니, 선생이 이르기를, “자미(子美.두보)의 뜻은 자기를 위하는 학문을 말한 것이 아닌데, 내가 그날 특히 그것을 빌려서 이 뜻을 밝혔을 뿐이다.” 하였다. 완락재(玩樂齋) 절우사(節友社) 매화나무 밑에 앉아 있을 때에, 어떤 중이 남명의 시를 드렸다. 선생은 몇 번 읊어 보고는, “이 노인의 시는 대개 기발하고 준엄한데, 이것은 그렇지 않다.” 하면서, 그 운(韻)에 맞춰 한 수 지어 주고, 또 스스로 절구 한 수를 짓기를,
가파른 벼랑 꽃이 피어 봄날이 적적하고 / 花發巖崖春寂寂
시내 숲에 새가 울어 물소리 잔잔해라 / 鳥鳴澗樹水潺潺
우연히 산 뒤에서 제자들을 대동하고 / 偶從山後擕童冠
한가히 산 앞에서 고반(考槃)을 보네 / 閒到山前看考槃
하였다. 이덕홍(李德弘)이 묻기를, “시(詩)에 기수(沂水)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일상생활의 평범함을 즐기되 위아래가 같이 유행(流行)하여 제각기 즐거움을 얻는 미묘한 이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니, 선생이 이르기를,
“비록 그런 뜻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자네가 추측하여 말한 것이 너무 지나치게 고원(高遠)하네.” 하였다. -이덕홍-
● 신유년(1561, 명종16) 4월 15일에 선생이 그 형의 아들 교(㝯)와 손자 안도와 덕홍과 더불어 달밤에 탁영담(濯纓潭)에 배를 띄워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반타석(盤陀石)에 배를 대고 역탄(櫟灘)에서 닻줄을 풀었다. 술이 세 순배가 돌자 선생이 옷깃을 바루고 단정히 앉아 〈전적벽부(前赤壁賦)〉를 읊고 이르기를,
“소공(蘇公.소동파)이 비록 병통(病痛)은 있지만, 그 마음의 욕심이 적었던 것은, ‘진실로 나의 가진 바가 아니면 비록 털끝만 한 것도 취하지 않는다.’라고 한 이하의 구절에서 볼 수 있다. 또 그는 일찍이 귀양 갈 때에 관(棺)을 싣고 갔으니, 그가 속세에 구속받지 않는 모습이 이러했다.” 하고는, 청(淸)ㆍ풍(風)ㆍ명(明)ㆍ월(月)로 분운(分韻)하여 명 자를 운으로 얻어 시를 짓기를,
푸른 물 달빛 아래 밤기운 맑은데 / 水月蒼蒼夜氣淸
바람이 쪽배 밀어 빈 강 거슬러 오르네 / 風吹一葉泝空明
박항아리 백주가 은잔에 오가고 / 匏樽白酒飜銀酌
삿대는 물결 저어 옥횡성(玉橫星)을 끌어올리네 / 桂棹流光掣玉橫
채석강(采石江)의 미친 짓은 뜻에 맞지 않으나 / 采石顚狂非得意
낙성루(落星樓)의 시 짓던 일이 가장 마음에 걸려라 / 落星占弄最關情
묻노니 황천길 백 세 뒤에 / 不知百世通泉後
뉘 다시 바른 소리 이을꼬 / 更有何人續正聲 하였다. 그의 산수에 대한 이해가 이와 같았다. -이덕홍-
● 임술년(1562, 명종17) 가을에 선생이 도산에 있을 때, 한번은 달밤에 사성(士誠)을 불러 천연대(天淵臺)에 올라 주희의〈무이구곡(武夷九曲) 시를 외우게 하고는 다음과 같이 시 한 수를 지어 주었는데,
한밤중 신선이 되어 노닐다가 꿈에서 깨어나 / 半夜游仙夢自回
그윽한 친구 불러 강대에 올랐도다 / 起呼幽伴上江臺
맑은 바람 뜻이 있어 소매품에 맞아 주고 / 淸風有意迎懷袖
밝은 달 정이 많아 술잔을 보내 주네 / 明月多情送酒杯 하고는, 곧 술 몇 잔을 나누었다. 9월 17일이었다. -정사성-
● 만일 산수가 아름답거나 폭포가 쏟아지는 곳이 있으면, 간혹 몸을 빼어 홀로 즐기며 시를 읊다가 돌아오곤 하였다. -이덕홍-
● 경오년(1570, 선조3) 9월에 이덕홍이 한두 명의 동자를 데리고 이동(伊洞)에 먼저 가서 노닐다가 돌아오려 하는데, 하인이 와서 선생이 작은 수레를 타고 온다고 알렸다. 덕홍이 반가워 달려가니, 선생은 혼자 단풍나무 밑 시냇가 돌 옆에 앉아 있다가 웃으면서 맞이하기를, “자네 벌써 돌아가려는가?” 하였다. 이튿날 시 두 수를 내게 주었는데,
말굽소리에 때때로 들국화 향기로운데 / 野菊時聞撲馬香
석양 무렵 그윽한 천석을 찾았네 / 幽尋泉石傍斜陽
그대 불러 함께 가 노닐렸더니 / 欲招君去同遊賞
그대는 먼저 선경(仙境)으로 갔다는구려 / 人道君先入杳茫
왕모성 앞 소유천에 / 王母城前小有天
이내 낀 푸른 시내에 붉은 단풍 어리었네 / 丹楓碧澗映寒煙
구태여 요지(瑤池) 물은 퍼내어 무엇하리 / 何當鑿出瑤池水
가득 심은 연꽃이 도리어 가엾네 / 滿種蓮花更可憐 하였다. -이덕홍-
● 한번은 선생을 모시고 산당(山堂)에 앉았는데, 길 앞에 말을 타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산당을 지키는 중이 말하기를,
“그 사람 괴이하다. 진사(進士) 앞을 지나면서 말에서 내리지 않다니.”하니, 선생이 말하기를, “말 탄 사람이 마치 그림 속의 사람 같아 좋은 경치를 더해 주는데 허물할 것이 무엇인가?” 하였다. -이덕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