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열심인가?"
[로마서 10:1~3]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옛날에 소와 사자가 있었습니다.
둘은 너무나 사랑해서 결혼해 살게 되었습니다.
둘은 항상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소는 사자를 위해 날마다 제일 맛있는 풀을 사자에게 대접했습니다.
사자는 싫었지만 사랑하는 소를 위해 참고 먹었습니다.
사자도 매일 소를 위해 가장 연하고 맛있는 살코기를 소에게 대접했습니다.
고기를 먹지 못하는 소도 괴로웠지만 참고 먹었습니다.
하지만 참을성에는 한계가 있는 법.. 결국 소와 사자는 크게 다투고 끝내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헤어지면서 서로에게 한 말은 "난 당신에게 최선을 다했어" 였습니다.
소는 소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고, 사자는 사자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았기에
그들의 세상은 혼자 사는 무인도였습니다.
소는 소의 세상, 사자는 사자의 세상일 뿐이었습니다.🍃
나 위주로 생각하는 최선, 상대를 못 보는 최선, 그 최선은 최선일수록 최악을 낳고 맙니다.
우리는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최선을 다해서 바쁘게 움직이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어린아이들까지도 바쁜 세상입니다.
그만큼 모두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열심은 나의 의를 위한 최선이고 상대방을 보지 못하는 최악의 최선일수도 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배려하고 이해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나요?
자녀를 위해 열심히 교육시키고 좋은 대학을 보내기 위해 열심히 뒷바라지 하는 것이 내 욕심이고
아이에게 오히려 부담과 스트레스로 작용하지는 않는지…
내가 무언가에 빠져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가장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외롭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데
상대방은 전혀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지는 않는지…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열심히 교회다니고 열심히 봉사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분주하게 사는데…
실상은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지는 않는지…
묵상해봅니다.
나의 최선, 나의 열심은 과연 무엇으로 이루어져있을까요?
줄리어스가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어떤 손님이 찾아왔는데 그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는가에 대해
자랑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손님은 그 열심을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줄리어스는 서슴지 아니하고 자기 품에서 ‘열심덩어리’를 꺼내 그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손님은 지니고 다니던 저울에 그것을 달아보더니 “100근이군요”라고 했습니다.
줄리어스는 내심 너무나 기뻤습니다. “내 열심이 100근이나 되다니…”
그런데 손님은 열심덩어리의 구성 분자를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열심덩어리를 세세히 분석한 후 그가 말했습니다.
“야심이 20%, 재물욕이 19%, 명예심이 30%, 탐심이 28%, 예수님께 대한 사랑은 3%도 안 되는군요”
열심히 하는 것은 좋으나 잘못하면 그 열심 때문에 오히려 지치고 힘들고 실망하고 더 피곤한 인생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물속에 빠진 사람이 무조건 열심히 손과 발을 움직이며 온몸을 움직이면 물위에 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가라앉고 힘은 힘대로 들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수영하는 법을 알아서 몸의 힘을 빼고 손발을 움직일 때에 물위에서 멋지게 수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똑같습니다.
무조건 열심히 살아간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비전 없는 분주함은 곧 지치게 만들고, 가치 없는 열심은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소와 사자처럼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는 나 혼자만의 최선은 서로에게 상처만 주고 헛된 것으로 끝나고 돌이킬 수 없는 후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수영 하는 방법을 모른채 열심히 첨벙대는 것은 중노동이요 짐이요 스트레스이지만, 수영 방법을 알고
열심히 하는 것은 운동이요 취미생활이요 스포츠이며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며 목표에 도달할수 있습니다.
생의 안락함과 풍요로움, 그리고 명예를 누리기 위해 자신의 열정을 불태우는 이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내 삶의 목적과 사명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으로 땀 흘리며 헌신하는 그리스도인은 적습니다.
[마태복음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9: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에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할 일꾼이 너무도 적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칭하는 이는 많지만 정작 주님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어드리는 이가 적기 때문입니다.
‘나를 따르라’ 주님이 말씀하실 때 두 손에 든 재물이 많아 선뜻 길을 나서지 못했던 부자청년..
그 청년의 모습이 지금 나의 모습은 아닌지요?
주의 나라와 의를 위한 삶보다는 나의 나라와 나의 의를 위해 나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그렇게 열심히 믿었는데, 왜 여전히 나는 나인가요?
내 속에는 해갈되지 않는 갈증들과 천근 만근 되는 답답함이 짓누르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안 할 수는 없고, 계속 하자니 그렇고, 신앙생활이 본래 이렇게 힘들고
맥빠지고 답답한 것인가요? "
혹시 이렇게 신앙생활 하시는 분이 계신가요?
누구나 한번쯤은 품었던 신앙의 딜레마일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면 결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답답하지도, 맥빠지지도 않습니다.
[요한복음 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열심히 믿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열심히 믿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르게 믿는 것입니다.
수학문제를 풀 때 식을 모르면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그런데 식을 틀리게 알아도 문제는 풀리지 않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식을 몰라도 안 풀리지만, 하나님의 식을 틀리게 알면 더 큰 위기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식이란 열심히 믿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믿는 것입니다.
물론 신앙생활 안에 열심이 포함되어 있지만 열심 자체가 신앙은 아닙니다.
열심의 뿌리가 중요합니다.
내게서 나온 열심인지, 은혜로 말미암은 열심인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은혜가 없으면 열심히 믿는데는 성공할 수 있으나, 바르게 믿는데는 실패합니다.
열심히 살아가되 목적 없는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무엇을 열심히 하며 살아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일까요?
어떤 삶이 바르게 믿는 삶일까요? (내일 계속)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나를 먼저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아들까지 내어주신 그 사랑을 잊은 채 나의 욕심과 내 의를 채우기 위해
이기적으로 열심히 살았던 저를 회개합니다.
많은 일을 하기 위해 분주하게 살기 보다는 마음을 다해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주님이 생명을
다해 사랑하셨던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일에 먼저 신앙의 초점을 맞추게 하소서.
소와 사자가 서로에 대해 모른 채 자기 식으로 열심히 최선을 다한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나의 열심이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이기적 사랑이 되지 않게하시고,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이 기뻐하는 삶이 무엇인지 모른채 내 욕심대로 살지 않도록 바른 믿음의 삶을 깨닫게 하소서.
주님만이 제 마음의 주인이 되어 주시고 성령님의 열정으로 채워주시고, 제 삶의 목적과 사명을
주님의 주파수에 맞추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제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