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이라는 거대한 화두가 뚫어지면서 문학성이 무엇인지 이해를 한 날 새벽에 쓴 글입니다. 그 이후 저는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문학을 즐기게 됩니다. 지금도 역시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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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남(3)
-깨우침
만공이 경허를 만났다. 아니 경허가 만공을 불렀다. 부활이 뭔지 경허가 만공에게 물었다. 개구리가 부활이라고 만공이 답했다. 이 미련한 소야! 등허리에 채찍이 내렸다. 소가죽 보다 두꺼운지 아프지 않았다. 채찍 말고 몽둥이를 가져오너라! 아니 도끼를 가져오너라. 내가 부숴주마! 젊은 날의 경허는 그렇게 무서웠다.
만공은 다시 캄캄한 토굴에 갇혔다. 밤새도록 글을 썼다. 어깨가 아프도록 썼다. 잠이 마귀라 해서 잠도 자지 않고 썼다.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봐라!" 며 때리는 스승이 보였다. 달을 보았지만 그냥 달일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달은 달이다. 그래서 뭐 어쨌단 말인가! 라고 써서 오도송이라고 스승에게 보냈다. 보낸 만공 스스로가 뭐가 뭔지 몰랐다. 그냥 보이는 대로 진리라니까 그렇게 썼다. 답답하여 경봉에게 물었다.
경봉이 문도들에게 말하였다. “야반삼경에 대문의 빗장을 만져 보거라!” 만공은 자다가 일어나 정말 빗장을 만져 보러 달려갔다. 빗장은 빗장일 뿐이었다. 만공이 스승에게 편지를 썼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스승은 답장이 없었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 늙은 경허가 만공을 다시 불러내었다. 그 무섭던 스승이 손을 잡고 가더니만 슬며시 “추억의 경편기차”주1)를 태워 주었다. 만공은 이제 졸리기만 하였다. 다시 토굴 속으로 들어 왔다.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였다. 아이들이 소 치러 가고 있었다. 신바람이 난 아이들이 올챙이 노래를 부른다.
“올챙이가 배가 불러서 앞다리가 뽕! 뒷다리가 뿅! ”
눈이 번쩍 떠졌다. 아 ! 부활이란 올챙이가 개구리로 되는 것이구나. 만공은 경허에게 올챙이 뒷다리가 나온 것을 부활이라고 적어 보냈다. 답장이 없었다. 알 것 알 것 같은데 아니었다. 다시 토굴 속으로 들어갔다. 밖에는 아이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저들끼리 재잘대며 ‘만공은 글을 많이 읽어 지 잘난 체 하기 때문에 지 마음을 모른다. 지 마음도 모르는데 세상 마음을 어찌 알겠는가.’ 하며 지나간다.
벼락 치듯 야반삼경에 대문의 빗장을 만져 보라는 경봉의 말이 떠올랐다. 대문으로 뛰어갔다. 문고리가 안에서 잠겨 있었다. 대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 나왔다. 힘 하나 들지 않고 대문이 열렸다. “만세! 만세다!”
하늘에는 달이 보였다. 예전의 달이 아니었다. 옛 기억이 경편기차를 타고 샘솟듯 올라 왔다. 추억은 생명의 모태이고 삶의 근원이었다. 새로운 삶이 태어나고 새로운 글들이 나왔다. 만공은 부활을 눈으로 보고 있었다. 이제 만공은 부활을 얘기할 필요가 없어졌다. 문도들에게도, 천하 중생들에게도-
행복했던 경험보다 고통스런 기억이 오래 간다. 고통의 경험을 통해 추억이 다른 모습으로 새로이 태어날 때 부활 한다. 부활의 삶은 이미 고통이 아니라 기쁨이고 환희이다. 진솔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는 자만이 심금을 울리는 글을 쓰게 될 것이다. 만공은 스승에게 오도송을 지어 보냈다.
삼월에 오는 눈
길이 질펀하다고 눈을 탓하랴
삼월에 오는 눈은 허투루 오는 게 아니다.
봄비보다 먼저 와서 봄을 알리니
매화향기는 더욱 그윽하고
기다리던 목련이 반가와 한다.
아직도 똥오줌 싸는 쉰이 넘은 제자를
늦둥이를 본 듯이 기저귀까지 갈아 주니
눈이 녹고 나서야
눈의 속을 알겠다.
- 2006. 11. 29 08: 20분
만공은 이제 스승과 함께 경편기차를 타고 세상을 구경할 것이다. 이제는 즐거워 잠이 오지 않을 것이다. 참 재미있을 것이다. 경허가 보는 재미와 만공이 보는 재미가 다를 것이다. 서로가 그 재미를 재미있게 얘기하며 밤을 지새 울 것이다. 때로는 경허가 탄 기차와 만공이 탄 기차가 다른 길로 갈수도 있을 것이다. 그게 무슨 대수인가. 경허는 경허대로 만공은 만공대로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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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도광의의 시 “삼월에 오는 눈”에 “추억이 경편기차(輕便汽車)를 타고-” 라는 구절이 있음.
주2) 만공은 미련한 제자인 필자이고 경허는 은사이신 도광의 입니다. 늦게 문학에 입문한 나이 든 제자를 깨우치려는 선생님의 애쓰심 덕분으로 한 소식 얻은 날 아침 마음이 기뻐서 쓴 글입니다. 선문답을 사용한 허구적 기법이지만 내용은 깨달음에 이르는 실제의 과정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