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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미타불과 함께하는 마음의 고향 무주선원 원문보기 글쓴이: 선재
▲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 |
진제 스님은 12월3일 발표한 동안거 결제법어에서 “육조문하의 가풍을 선양하라”며 “부처님이 출세한 뜻이 어디에 있는지 잘 살펴 한 점의 허점도 보이지 않도록 마음 자세를 가다듬고 정진에 임하라”고 당부했다.
스님은 또 “육조문하의 법맥이 참으로 소중하고 더없이 귀중한 법이라는 점에서 한 번 끊어지면 다시 잇기 힘들고 스승 없이 혼자서 향상의 안목을 갖춘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것”이라며 “모든 결제대중은 이 대오 견성법을 천추만대에 끊어짐 없이 바르게 널리 선양하기 위해 혼신을 다해 정진하라”고 강조했다.
진제 스님은 이와 함께 “향상의 진리를 알게 되면 향하의 진리도 알게 되고, 향하의 진리를 알면 향상의 진리도 알게 되는 것”이라며 “이것은 둘이 아니면서 이름이 둘일 뿐이니, 정진 대중은 향상의 진리를 터득하는 데 초점을 맞춰 정진할 것”을 당부했다.
조계종은 이번 동안거 결제에 전국 100여개 선원에서 2200여명의 수좌 스님들이 방부를 들여 3개월간 용맹정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다음은 조계종 종정 진제스님 갑오년 동안거 결제 법어.
六祖門下의 家風
大韓佛敎曹溪宗 宗正 眞際法遠
[ 上堂하시어 拄杖子를 들어 大衆에게 보이신 후, ]
頓悟見性者<돈오견성자>는
심성을 몰록 깨달은 이는
心性 가운데 모든 眞理의 道가 있음이니, 누구든지 道를 닦아 心性을 보면 이러한 경지를 억만년토록 수용하는 법이로다.
今日은 甲午年 冬安居 結制日이라, 뭇 四部大衆은 부처님께서 出世하신 뜻이 어디에 있는지 잘 살펴서 한 점의 허점도 보이지 않도록 마음자세를 잘 가다듬고 정진에 임할지어다.
이 화두를 들고 앉으나 서나 가나오나 공양을 하나 산책을 하나 운력을 하나 오매불망 간절히 하루에도 천번 만번 의심해 나갈지어다. 참나 가운데 진리가 다 있음이니 ‘어떤 것이 참나던고?’하고 화두의심이 끊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다보면 간절한 화두의심 한 생각이 계곡의 흐르는 물처럼 끊어짐 없이 흘러가다가 문득 사물을 봐도 본 줄을 모르고 소리를 들어도 들은 줄을 모르는 바보가 되어버림이로다. 그렇게 한 달이고 일년이고 십년이고 시간이 흐르고 흐르다가 홀연히 사물을 보는 찰나에 소리를 듣는 찰나에 화두가 박살이 남과 동시에 자기의 참 모습이 드러나게 됨이니, 한 걸음도 옮기지 않고 진리의 세계에 이르게 되는 것이로다. 그러면 어떠한 법문을 물어도 막힘이 없어 천칠백 공안을 한 꼬챙이에 꿰어버림이니, 역대의 모든 부처님 조사스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어 억만년이 다하도록 眞理의 樂을 수용하여 天上世界와 人間世界의 眞理의 스승이 됨이로다.
옛 道人들이 말씀하시기를, 일상생활 속에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던고?” 이 화두를 들고 가나오나 앉으나 서나 농사를 하나 사업을 하나 산책을 하나 一念이 지속되게끔 혼신의 수양에 몰두해주시기를 바람이로다.
昔日에 六祖 慧能 禪師의 法을 이은 南嶽懷讓 禪師가 계셨는데 靑原行思 禪師와 함께 兩大禪脈을 이룬 大善知識이었다. 懷讓 禪師께서 태어나실 때 여섯 가닥의 瑞氣가 하늘로 뻗쳤는데, 당시에 이러한 祥瑞를 본 刺史 贍見이 王께 아뢰니 高宗皇帝가 물었다. 刺史가 대답했다. “나라의 法寶가 俗世에 있지 않고 安康의 金州地方에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祥瑞를 나타내며 탄생한 지 다섯 살이 되자, 생김새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뛰어나게 다르고 마음에는 恩惠와 謙讓을 품어 남과 다투는 일이 없었다. 그러므로 부모는 일찍이 懷讓이라 이름지었다.
이렇게 태어날 때부터 황제의 각별한 관심과 보호를 받은 懷讓은 오직 佛經만을 좋아하였는데, 어느 날 三藏 玄靜스님이 懷讓을 보고는 부모에게 말하기를,
예언대로 懷讓이 15세가 되자 문득 父母님께 하직하고 出家하니, 속명 그대로 懷讓이라 법명을 받고 律藏을 익혔다.
慧安 禪師를 참방한 자리에서 懷讓스님이 여쭈었다.
그 후로 坦然스님은 慧安 禪師을 섬겨 모시고 살았으나, 여기에 만족하지 못하였던 懷讓스님은 慧安 禪師의 지시대로 曹溪의 寶林寺로 가서 六祖 慧能 禪師를 참방하였다. 慧能 禪師를 親見하니 禪師께서 물으셨다.
“禪師님, 한 물건이라고 말해도 맞지 않습니다.”
그러고는 南嶽懷讓스님에게 心印法을 전하셨다.
心地含諸種<심지함제종>하니 마음 땅에 모든 종자를 머금으니
이렇게 六祖 慧能 禪師께서 懷讓스님의 깨달음을 印可하여 心印法을 부촉하심으로 인해 그 法脈이 지금까지 남아 우리나라에 내려오고 있는 것이며, 근세에 鏡虛-慧月-雲峰-香谷 그리고 산승으로 내려오는 法脈이 懷讓 禪師 이후로 1300여 년 동안 끊어짐 없이 내려온 유일한 上首法脈이로다. 참으로 소중하고 더없이 귀중한 법이라, 한 번 끊어지면 다시 잇기 힘들고 스승없이 혼자서 向上의 眼目을 갖춘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것이니, 모든 결제대중은 이 大悟見性法을 천추만대에 끊어짐 없이 바르게 널리 선양하기 위해 혼신을 다해 정진해주기를 바람이로다.
당시 慧能 禪師의 여러 제자 가운데 南嶽懷讓 禪師와 靑原行思 禪師는 上首弟子들로써 그 法이 쌍벽을 이루어 형과 아우를 가리기 어려울 만큼 훌륭한 眼目을 갖춘 분들이었다.
그래서 이후로 두 분 禪師의 法派를 좇아서 禪宗의 五宗이 벌어졌는데, 懷讓 禪師 門下에서는 臨濟宗과 潙仰宗이, 行思 禪師의 門下에서는 曹洞宗․法眼宗․雲門宗 벌어져 中國 天下를 풍미하게 되었다. 그래서 懷讓 禪師 밑으로는 馬祖․百丈․黃檗․臨濟 禪師로 이어져 내려왔고, 行思 禪師 밑으로는 石頭․道悟․龍潭․德山 禪師로 쭉 이어져 내려왔으니, 臨濟의 喝과 德山의 棒은 六祖門下의 양대 兒孫의 家風인 것이다.
南嶽懷讓 禪師께서는 向下의 大用의 法을 전하셨고, 靑原行思 禪師께서는 向上一路의 진리의 體性을 전하셨는데, 이 진리 자체에는 體와 用이 본시 둘이 아니어서 體가 用이 되기도 하고 用이 體가 되기도 하여 둘은 항상 하나로다.
이 같은 이치를 잘 밝히는 법문이 있으니, 行思 禪師께서 懷讓 禪師께 石頭스님을 심부름 보내어 法을 전하게 되는 기연이로다.
한 때, 懷讓 禪師와 行思 禪師 두 분이 쌍벽을 이루어 高峻한 法을 널리 펴시는데, 때가 되니 行思 禪師 門中에 제자를 封해 分家시켜야 할 인연이 도래하였다. 하루는 行思 禪師께서 弟子 石頭스님을 시켜 懷讓 禪師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이르셨다.
石頭스님이 그 길로 行思 禪師께 돌아가니, 禪師께서 물으셨다.
行思 禪師께서는 여기에서 石頭스님에게 법을 전하여 南嶽山에 住하게 하셨으니, 古人들께서는 弟子에게 법을 전하실 때, 이렇게 세밀하게 다루어 보고 마음에 흡족해야 法을 付囑하신 것이로다. 이 法은 조금이라도 빈틈이 있을 것 같으면, 만인의 눈을 멀게 하고 佛祖의 正眼을 그르치게 되므로, 古人들께서 법을 전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세밀하고 세밀하게 지도하신 것이로다.
그러면 時會大衆은,
[ 良久云하시되, ]
了知向上句<요지향상구>하면 향상의 진리를 요달해 안다면
이렇게 行思 禪師께서는 石頭希遷이라는 弟子를 얻어 법을 전하셨고, 懷讓 禪師께서는 훗날 馬祖道一이라는 걸출한 弟子를 얻어 법을 전하셨는데, 馬祖 禪師는 84人의 道人弟子를 두어 그 법이 天下를 덮었던 위대한 善知識이셨다.
한 때 어떤 衲子가 懷讓 禪師께 물었다. 南嶽懷讓 禪師께서 이렇게 뚜렷이 부처님의 살림살이를 이루어 크게 法을 선양하시다가 涅槃에 드심이로다.
그러면 畢竟에 南嶽懷讓 禪師를 아시겠습니까?
향상의 진리와 향하의 진리를 자재하게 쓰니
[拄杖子로 法床을 한 번 치고 下座하시다.] |
첫댓글 부처님 가르침을 한 마디로 한다면 바를 정(正)자라 할 수 있겠고,
조계화상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한다면 곧을 직(直)라 할 수가 있겠습니다.
청화선사께서는 육조단경을 번역하시고 나서 직심만덕(直心萬德 바른 마음이 만가지 덕을 갖추고 있다)이라는 사자성어와
무주심자는 상자재(無住心者常自在 어디에도 머무름이 없는자는 항상 자유자재 하니라)라는 표현을 하셨지요.
티끌하나 발붙일 수가 없고 수만가지 공덕을 이미 갖춘 자성자리를 곧게 잘 쓰기 만하면 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무 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