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복을 누리는 삶
허 열 웅
푸른 뱀의 해인 을사년이다. 위험, 신비, 재생, 불사 등의 상반된 이미지가 내포된 뱀의 해가 기지개를 켜고 출발했다. 정초부터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와 더불어 많은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복 많이 받으세요’ 하는 인사말이 서로의 입에서 동시에 튀어나오기가 일쑤였다. 우리가 말하는 그 복福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우리의 조상들이 집 짓고 상량上樑할 때 대들보에 연월일시를 쓰고 그 밑에 ‘하늘의 세 가지 빛에 응하여 인간세계에 오복을 갖춘다(應天下之三光 備人間之五福)라고 쓰는 관례를 보면 모든 사람들에게 오복이 깃들기를 염원했음을 보여준다. 인간의 궁극적인 행복은 복 받은 삶을 사는 것이고 그 중 으뜸은 오복을 다 갖춘 삶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복을 사서삼경 중에 서경(書經.洪範編)에 있는 오복을 기본으로 인정하고 있다. 즉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을 일컫는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건강하게 오래살고 돈을 모아 덕을 베풀면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다 원망과 한을 남기지 않고 천수를 다하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그것을 소위 호상이라고 표현한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이라는 시에 “나 하늘로 돌아가리/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이름다웠다고 말하리라” 는 구절은 오복을 다 누린 사람이나 부를 수 있는 노래일 것이다.
오복을 갖추기를 원한다는 것은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는 의미일 것이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가 있을까? 때로는 행복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이제 행복은 권리이기 전에 의무이기도 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1970년대에 비해 GDP(국내총생산)가 160배 늘어 경제대국이 되었다.
OECD국가 내에서 10위권에 들어 선 진국이 되었다. 그러나 행복만족도는 최 하위권을 맴돈다. 물질의 풍요 속에서 오히려 행복감이 줄어드는 현상은 우리가 풀어야 할 우선과제다.
히말라야 산자락에 있는 ‘부탄’이나 ‘네팔’ 같은 나라의 청소년들은 공이 없어 돼지오줌보로 10 여명이 축구를 즐기며 쾌활하게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여기에 비해 우리나라 청소년 한 사람이 고급 가죽 공을 몇 개씩이나 갖고도 불만을 느끼고 있다니 안타깝다. 몇 해 전에는 행복에 관한 명 강의로 인기가 높았던 여성 행복전도사 마저 병마에 시달리다가 자살하고 말았다.
모두가 원하는 오복을 현재 나의 삶과 비교하여 항목에 따라 그 무게를 달아본다. 첫 번째 수壽, 내 나이 우리나라 남자들의 평균수명이 지났으니 앞으로 조금만 더 살면 아쉬울 게 없다. 두 번째 부富, 내 집을 갖고 있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 할 정도의 연금이 나오니 그런대로 만족스럽다. 세 번째 강녕康寧, 일주일에 3~4회 테니스를 하고 1회 이상 등산을 열심히 하고 밥 잘 먹고 술도 자주 마신다. 몸에 큰 지병이 없으니 건강하다고 볼 수 있다.
네 번째 유호덕攸好德, 동양학에서 덕은 만물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고 본다. 논어에서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이라는 말이 나온다. 덕이 있으면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항목에서 나는 많은 부족함을 느낀다. 남에게 덕을 베풀지도 못했고 성격조차 그리 둥글지 못해 먼 곳에서부터 가까이에 친구가 많은 편이 못 된다. 이런 아쉬움을 느끼고 있어 앞으로 노력하고 개선해야 할 항목이다.
다섯 번째 고종명考終命, 천수를 누리며 질병 없이 살다가 잘 죽는 것이다. 죽음은 그 누구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 요새 흔히 말하는 ‘구구팔팔이삼사’ 99세 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앓다 죽었으면 하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소망일 것이다. 나도 그렇게 해달라고 신에게 비는 방법 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것 같다.
이런 오복이 나라와 상황과 시대의 흐름의 따라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항목도 있다. 중국에서는 자손을 많이 두는 것, 부부간에 해로를 하는 것, 매일 일정한 할 일이 있는 것 등이 다른 항목과 겹치거나 바뀌는 경향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몇 년 전 젊은 대학생을 상대로 오복에 대하여 설문조사를 한 결과 상상을 초월하는 대답도 나왔다고 한다.
부모는 재산만 남겨놓고 70 대 쯤 에서 죽어야 한다. 하는 대답도 있었다고 한다. 비슷하지만 여자들이 모임에 수다를 떨며 하는 이야기 중 남편이 돈 많이 벌어놓고 빨리 죽으면 좋다는 말도 있다고 한다. 사실이 아니고 누가 지어낸 떠도는 말일지라도 섬뜩함마저 느낀다.
오복을 다 누리고 사는 사람은 드물지만 그것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의 행동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그들의 생각과 삶의 방식이 복을 부르는 행위를 반복한다는 사실 이란다. 복이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잘 관리하며, 주변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배려하고, 성공을 이루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며 산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오복이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가가려고 노력할 때 다섯 가지 다는 아니라도 몇 항목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진정으로 오복을 누리기를 원한다면 부단히 노력함은 물론 자기 분수를 알고 그에 만족하는 마음 또 한 중요하다고 본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행복을 좌우하는 것은 대략 50%가 유전, 10%가 환경, 40%가 노력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오복이 깃들어 행복해지고 싶어 하지만 무엇이 진정으로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지 판단하는 데는 서툰 것 같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건네 준 ‘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말의 의미는 복 받을 일을 많이 행하며 겸손하고 감사하며 삶에 충실 하라는 부탁이 아닐까? < 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인사말은 덕담이기 보다는 복 받을 일을 많이 하라는 충고로 받아드려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