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 알파벳 | 의 미 | 비고 | 1 | A | 성부 단일성 /유일신/ 최고 /시작/ 일체/ 근원/ 주권/ 창조(성부) | | 2 | B | 둘째/ 차이/ 분할/ 증인/ 연합/ 2위성자 | | 3 | C | 삼위일체/ 3위성령/ 완전 /부활/ 하늘의 수/ 입체적 | | 4 | D | 피조물/ 분할 /(흙 불 물 공기) 춘하추동/동서남북 | | 5 | E | 은혜/ 기적 | | 6 | F | 세상/ 죄/ 불완전/ 노동/ 세속의 완전 | | 7 | G | 완전/ 3+4/ 휴식/ 신성/ 성령의 임재 | | 8 | H | 새로운 언약/ 거듭남/ 새로출발/ 첫번째/ 부활 | | 9 | I J | 종말/ 최후 /심판 /성령의 열매 | | 10 | K | 세상만수/ 질서의 완전/ 책임/ 율법/ 증거 | | 11 | L | 무실서/ 불완전/ 혼란/ 분열/ 심판 | | 12 | M | 통치의 완전/ 12지파/ 12제자 교회/ | | 13 | N | 8과 같은 의미 | | 14 | O | 구원/ 7×2/ | | 15 | P | 은혜 3×5/안식/7+8/ 부활 /은혜의 힘으로 만들어진 행위(10+5) | | 16 | Q | 사랑/2×8(새로태어남×거듭남) | | 17 | R | 7과 같은 의미/10+7/ 승리/ 영적 질서의 완전 | | 18 | S | 매임/ | | 19 | T | 12+7 (교회+신앙) | | 20 | U V | 기대/기다림/ 구속/예수+십계명 | | 21 | W | 3×7 | | 22 | X | 해체와 분열/수정 /빛/ 히브리알파벳의 수 /구원+거듭남 | | 23 | Y | 사망/ | | 24 | Z | 하늘의 통치와 경배/(12+2)제사장/하나님 나라/구원의 수 12+12 | | 25 | | 은혜의 본질/ 5×5/ 죄사함 | | 26 | | 주의 복음 /예수의 죽음과 부활 | | 27 | | 신약의 수 3×3×3/십계명+승리 | | 28 | | 7과 같은 의미(7×4) | | 29 | | 기대 떠남 심판 | | 30 | | 알맞은 순간/그리스도의 피/헌신/ | | 31 | | 신성/엘(하나님)/자손 | | 33 | | 약속/ 예수의 죽음과 부활 | | 39 | | 채찍에 맞음/ | | 40 | | 시련/훈련/응징/결단/기다림/ | | 42 | | 적그리스도의 수/하나님뜻과 충돌(7×) | | 50 | | 기쁨 /구원/안식/성령 | | 51 | | 하나님의 계시 | | 60 | | 교만/세상적기쁨/ | | 65 | | 배교/에브라임의 수 | | 66 | | 우상숭배 | | 70 | | 예루살렘의 수 /영/권세/완전성 | | 77 | | 영원한 의 /범죄를 끝냄 | | 84 | | 천지차조+신앙+교회+구원 | | 100 | | 하나님의 은혜 | | 153 | | 교회(12+12)+신성(3×3)열매/돌아옴/회개/1-17더한수 | | 390 | | 이스라엘수(13×30) | | 400 | | 완전한 기간(8×50) | | 666 | | 적그리스도/ 인간의 교만/사탄의 수 | |
| |
게마트리아(Gematria)란? 헤브라이어의 알파벳이 나타내는 숫자로써 그 단어가 지닌 뜻을 풀어 성서를 해석하는 방법이다. 유대교의 랍비들, 특히 중세의 카발라주의자들이 많이 사용했다.
헤브라이어 알파벳은 모두 22자인데, 처음 10자는 차례로 1부터 10까지의 수를 나타내고, 다음의 8자는 차례로 20부터 90까지의 10단위 숫자를 나타내며, 나머지 4자는 차례로 100부터 400까지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헤브라이어 철자를 보고 숫자를 계산하여 뜻을 알아내는 방법이다. 이를테면 ‘엘리에젤’(창세 15:2)은 아브라함의 종 318명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창세 14:14). 《요한의 묵시록》 13장 18절에 짐승의 숫자는 666인데, 이 숫자는 ‘네로황제’를 헤브라이어로 번역하면 그 철자의 숫자를 합한 것과 같다.
바흐는 악보를 그리는 데 숫자를 사용했다. 숫자를 통해 박자를 나타내기도 하고, 칸타타의 경우에는 선택된 숫자로 메쳅嗤?부각시키거나 새로운 의미를 덧붙이기도 했다. 오래 전부터 7이라는 숫자는 신앙과 미덕의 상징이었고 그리스도 신학에서 천지창조 중에서 제 7일이 의미하는 성화에 따른 7성사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바흐가 작곡을 할 때 동일한 가사를 정확히 일곱 번 쓰고 있는 경우를 보자. 가령 BWV 144와 145의 Genuegsamkeit는 A+B부분에서 정확히 일곱번 반복되며, da capo libre에서는 두 번, 그리고 다시 아리아의 말미에서 연속해서 다섯 번을 반복하게 한다. 또한 BWV 113과 115의 아리아에서 'Wort voll Trost und Leben'이르는 구절이 역시 일곱번 반복된다.
또한 Trost라는 단어 역시 BWV 38과 32에서 다섯번 반복되며, Heiland라는 단어 역시 BWV 125의 아리아의 A파트에서 다섯번 반복된다.
한편 예수와 관련된 구절에 5라는 숫자를 연결시키는 것은 이 숫자와 예수의 관련성을 따져 보게 만든다. 실제로 5는 각각 다섯 개의 손가락, 발가락 및 오성을 소유한 인간을 지칭해왔다. 더 나아가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다섯 번 못박혔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Jesu nimmt die Suender an'(BWV 113)라는 구절이 다섯 번 반복되며, 마찬가지로 BWV 180에서는 'Ermuntre dich, dein Heinland kommt'와 BWV 85의 'Ich bin ein guter Hirt'등의 주제가 다섯 번씩 반복되기도 한다.
그리고 칸타타 32번의 초반에서 'Liebster Jesu'가 역시 다섯 번 반복된다. 창조를 의미하는 숫자 6은 66개라는 칸타타 코러스 단위의 숫자가 그 상징을 명확히 해주고 있다. 예컨대 BWV 76과 BWV 94의 칸타타에서는 'Was frag ich nach der Welt'라는 첫번째 코러스가 56번 나오는데 이 Welt라는 단어는 알파벳의 숫자로 나타낼 때 (21+5+11+19)로 표시할 수 있으며, 제 2악장과 제 3악장에서도 'frag ich nach der Welt'와 'Betoerte Welt'가 각각 여섯 번씩 반복된다.
이렇게 볼 때 바흐가 숫자를 통한 상징들을 작곡에 도입했으리라는 점이 극명해진다. 전통적으로 11이라는 숫자는 초과라는 뜻과 10이 상징하는 법칙을 거부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바흐는 이 숫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충직한 제자들을 의미하는 상징으로 사용했다. 일례로 <마태 수난곡>에서는 제자들이 예수에게 대답하는 푸가 형식의 도입부가 열한 번 나온다.
즉 'Herr bin ich' 그리고 BWV 80의 서창부에서는 'So stehe denn bei Christ'가 아리오소로 나오기 전에 열한 번 반복된다. 유다의 배반 때문에 13이라는 숫자는 죄나 불행을 의미하게 되었다. BWV 54의 첫번째 아리아의 A파트에서 알토는 명확히 13-13-61-13-13-13-39로 구분된 음표를 노래한다.
한편 BWV 25의 칸타타의 첫번째 코러스에서도 혼이 13-13-13-13이라는 음표로 명확히 구분된 부분을 연주하는데, 여기서 코러스는 이 cantus firmus에 참여하지 않는다. 또한 BWV 78의 서창부인 'Ach ich bin ein Kind der Suenden'도 13번 나온다. 바흐의 작품에서 14처럼 명확히 드러난 숫자도 없다. 바흐는 이 숫자에 14개의 주옥같은 작품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일례로 그는 골트베르크 변주곡 초판을 14곡의 카논으로 구성했다. BWV 19의 칸타타 제목 역시 더 이상의 번호 없이 <14번 콘체르토>라고만 쓰여 있다 BWV 167 칸타타의 최종 합창 또한 14-14-38-14라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성악곡들의 몇몇 주제들도 14개의 음표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테면 BWV 152 'Stein der ueber alle Schaetze),
BWV 75 'Mein Herze glaubt und liebt', BWV 166 'Wo gehest du hin' 그리고 BWV 213 'Schlafe mein Liebster'등과 같은 주제들과 칸타타 BWV 177의 피날레인 'Ich ruf zu dir, Herr Jesu Christ'에서 바이올린 독주가 반복되어 14-14--4-14-14-14-14-14라는 음표를 연주한다. 바흐가 알파벳 순서에 따라 가사에 어울리는 음표들의 번호를 선택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여러 예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놀랍기만 하다. BWV 106의 중심 합창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Es ist der alte Bund, Mensch du musst sterben' 이 구절을 독일어 알파벳으로 환산하면 626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그리고 4성부는 이 곡을 626개의 음표로 불렀던 것이다. 그런데 바흐가 과연 어떤 이유에서 그러한 복잡한 숫자의 상징들을 작곡에 도입했나 하는 의문이 생긴다.
사실 일치법의 원조일 수 있는 인물들이 동시대에 살고 있었다. 우선 독일의 철학자인 라이프니츠는 '음악은 영혼을 산술적으로 드러내는 비밀스런 작업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또한 그는 1671년에 이렇게 썼다.
'신은 자신의 무한한 화음을 비출 변치 않는 거울이 돼라는 뜻으로 이 합리적인 피조물을 창조하셨다' 한편 라이프니츠의 제자로서 할레 대학의 교수였던 볼프(C. Wolff)가 바흐가 살던 라이프치히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바이마르에 살던 바흐의 친구이자 사촌인 발터(J. G. Walther)의 스승이었던 이론가 베르크마이스터(A. Werkmeister)는 자신의 저서에서 우주 전체는 신의 창조의 조화를 반영한 것이며, 이 조화야말로 음악의 기원이라는 이론을 전개했다.
# 마태 수난곡에서의 수 상징 - 요아힘 카이저 힌 <마태 수난곡>에 대한 연구들이 사실의 영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듣는 이의 감정에, 상상력에, 감수성에 호소하는 이 음악의 힘은 너무나 대단한 것이어서 어떻게든 이 힘의 신비, 그리고 이렇듯 음악이 가슴을 어루만지는 까닭을 드러내고야 말겠다는 기상천외의, 때로 신비주의적이기까지 한 발상들을 유발했다.
언뜻 눈에 보이는 극음악적 외피 뒤에 복잡한 상징적 연상들이 숨어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코랄들에서, 또 '떨리는'심정을 묘사한 부분들에서 볼 수 있는 텍스트의 부분부분들에 대한 극적이고 눈에 보이는 듯한 해석, 그리고 틀림없이 프로그램 음악이라 할 수 있는 바흐의 서법 -이 모 든 것 들을 연주를 통해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예컨대 예수가 제자들 가운데 하나가 자기를 배반할 것임을 예고한 뒤 'Herr, bin ich's, bin ich's'라는 가사가 몇 번 나오는지 세어보는 청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이 물음은 모두 열한 번 나온다. 열하나 -열두 제자들 가운데 하나가 예수를 파는 자이며, 나머지 열한 명은 이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세세한 프로그램은 시사해 주는 바 많으며, 틀림없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마태 수난곡>에는 11이라는 운명의 숫자가 뚜렷한 뜻을 띄고 쓰이는 부분이 몇군데 더 있다.
예컨대 해리 한(H. Hahn)은 수난과 22라는 숫자 사이의 연관을 조명하면서 이렇게 결론내리고 있다. '시편 제 22편은 예수 고난의 시편이다. 빌헬름 베르커의 연구에서 보듯, 그래서 바흐도 예수의 노래를 스물두 번 집어넣고 있다: 이 정도에까지 이르면 가히 수학의 횡포라고도 할 수 있겠다.
숫자들 (특히 3, 7 그리고 이것들의 배수)에 붙어 있는 종교적 함의 때문에 의미있는 조합의 가능 성은 풍부해진다. 위의 한의 결론과 같은 것은 설득력이 거의 없는 경우에 속한다. 그러나 <마태 수난곡>이 모두 6부로 나뉘어 체계적인 연관된 조성과 '부분들 사이의 균형'을 띄도록 고안되어 있다는 점(H.J.모저), 바흐가 (당시에 금지되어 있던) 연속 5도나 '음악 속의 악마'라던 증 4도를 써서 그릇된 것, 악한 것에의 연상을 일깨우려 했다는 점 따위는 반박할 수 없는 것들이다.
바흐의 음구조적 사고의 힘, 가장 세세한 구석까지 미치는 바흐의 손길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있다. |
|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