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성경의 동식물에 관한 고찰을 하면서
개역한글과 개역개정 등 다양한 역본을 대조하는 공부를 하였습니다.
평소의 생각대로 개역한글과 개역개정이라는 글을 썼는데
며칠 뒤에 카페의 글을 읽으면서 개역한글을 한글개역이라고 썼고
개역개졍을 개정개역이라고 쓴 글이 많았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어 성경의 문장에 대해서는 익숙한데
그 성경이 개역한글인지 한글개역인지, 개역개정인지 개정개역인지에 대한 이해는 아주 낯설었습니다.
성경의 이해에 대해서 가장 익숙하지 않은 말이
개역한글과 개역개정이었습니다.
평소 성경에 대한 글을 쓸 때는
개역한글과 개정개역에 대한 구별을 전혀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였는데
개역한글과 개역개정에 대한 역본을 비교할 떄는 역본의 이름을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개역한글과 개역개정은 성경책의 표지에 기록되었을 뿐
평소 성경을 읽고 쓸 때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마음의 묵상도 되지 않는 용어입니다.
익숙하지 않는 용어인 개역한글과 개역개정을 무심코 쓰다가
한 문장 안에서도 어떤 떄는 한글개역이라고 쓰고 어떤 때는 개역한글이라고 쓰고
또 개정개역과 개역개정을 같이 썼습니다.
가끔 목사님들의 설교 가운데
바울을 베드로라고 말씀하고 베드로를 바울이라고 말씀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로 승천한 에녹과 엘리야를 혼동해서 말할 때
성도들은 설교를 들으면서 배꼽잡고 속으로 웃는 일이 흔합니다.
그리고 사역자들에게는 합동과 통합의 분명한 구분을 하지만
일반 성도들은 합동과 통합을 잘 구별하지 못합니다.
평소 익숙하지 않는 용어에 대해서
그저 긴가민가 할 뿐입니다.
언젠가부터 글을 쓰면서
띄어 쓰기와 낱말을 네이버 사전에서 검색하는 습관을 가졌습니다.
70년대에 초등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어릴 때 배운 말과 글의 습관은 사투리처럼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
글을 쓰면서 글자 공부를 병행학습하는 동안.....
스스로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을 느낍니다.
한문도 사자성어를 통해서
한자 공부를 하는 초급수준입니다.
우리 딸래미는 영문학을 전공하였는데
부업으로 책을 출판하기 전 작가들이 쓴 글을 수정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교열과 교정과 윤문 작업의 달인인데
아빠의 독수리 타법으로 어떻게 그렇게도 많은 글을 썼는지 늘 감탄합니다.
사실 작가라도 원고의 글을 수정하지 않고 출판한다면~
출판업의 재난, 그 쓰나미가 될 것입니다.
창의적인 작가의 글도
교정과 교열과 윤문 작업을 거쳐 정제된 책이 출판됩니다.
카페의 글은 전문적인 교정과 교열과 윤문 작업을 거치지 않고
정제된 정연하지 않는 미완의 글이지만 말씀 묵상의 흔적을 담은 소담한 글입니다.
카페의 글을 읽을 때마다 끊임없이 오타를 수정하고
교정과 교열과 윤문 작업을 하면서 미생의 글을 완생의 글로 다듬어 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미생한지 개역한글과 한글개역의 글자를 혼동하고
개역개정과 개정개역을 혼동할 정도로 일천한 무지랭이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