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권 박사의 건강편지
몇 년 전 80대 중반 환자 A씨와 나누었던 대화의 한 토막입니다 나름대로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막판에 세 가지 계산을 잘못하는 바람에 후회가 막심합니다. 제가 “누가 봐도 잘 살아오셨는데 무슨 계산을 잘못하셨다는 말씀이신지요. 라고 반문했더니 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 가지 계산 착오를 했습니다. 첫째 여든 살 정도까지 살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를 넘겨 살고 있고, 둘째 죽기 전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며칠만 앓고 죽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미 여러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지요. 셋째 나이 들면 자식들에게 의지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 역시 잘못 생각했습니다.
제법 시간이 흘렀지만 그의 말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자신의 수명을 한 번쯤 예상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수명을 예상하는 시점의 연세 드신 분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예상 수명을 짧게 잡는 오류를 범하기 쉽습니다.
그동안 통계를 보면, 한 세 대(약 30년)마다 수명은 12~15년 늘었습니다. 매년 기대 수명이 약 0.4년씩 증가했고, 다른 요소들도 작용한 결과입니다. 물론 최근 몇 년 사이 연간 기대 수명 증가 폭이 0.2년으로 줄었으므로 앞으로도 한 세대마다 12~15년씩 증가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 세대에 10년 안팎의 수명이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상보다 더 오래 살 각오(?)를 하셔야 된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 계산 착오는 건강하게 자연 수명을 다하고, 며칠만 아프다가 죽을 것이란 생각입니다. ‘9988234’, 즉 아흔아홉 살(99)까지 팔팔(88)하게 살고 이삼일(23) 앓다가 죽는(4) ‘복’이 모두에게 주어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통계청의 최근 몇 년간 생명표에 따르면 일생 중 몸이 아픈 시기, ‘유병기간(有病期間)이 여성은 15~18년, 남성은 9~11년입니다. 물론 매년 유병 기간이 줄어들고는 있으나, 일생 동안 남자는 대략 10년, 여자는 15년 동안 병치레한다고 봐야 합니다. 아픈 시기도 젊을 때보다는 나이 든 이후일 확률이 높습니다.
세 번째 나이 들어 거동이 불편하거나 아플 때 어떤 간호-간병을 받느냐는 것이 삶의 질을 좌우하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과거 오랫동안 그랬고, 지금도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만, 노인을 돌보는 사람(caregiver)은 대개 자녀 또는 친척입니다.
최근에는 요양시설에서 지내다가 삶을 마감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만, 자녀의 보살핌을 원하는 분들이 여전히 적지 않습니다. 이는 재산 증여와도 연관돼 있어 민감한 주제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재산을 증여할 때 내심 ‘나중에 나를 보살펴주겠지’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연로하신 부모를 잘 돌보는 효자, 효녀, 효부들이 지금도 많습니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분명히 있습니다. 몸이 불편하거나 아플 때 자녀나 가족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으면 비용을 지불하고 간호-간병 서비스라도 이용해야 하는데, 이미 재산을 물려주었기 때문에 그럴 형편이 안 되는 것입니다.
A씨도 주변에서 “자식에게 증여한 재산을 돌려달라고 하라”는 말도 들었지만, 이미 준 돈을 돌려받기란 정서적으로나 법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이 세 가지는 비단 A씨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시고,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예상보다 오래 살 것이란 전망은 크게 논란이 없으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면 됩니다. 문제는 두 번째입니다. 건강수명을 최대한 늘리는 방법을 반드시 찾아야 합니다. 아픈 상태로 오래 사는 것은 축복이 아닌 재앙이 될지도 모릅니다.
틈날 때마다 금연, 절주, 운동, 적정 체중유지, 건강한 식단, 싱겁게 먹기를 강조하는 이유도 건강수명을 늘리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돼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에게 재산을 증여하는 것 또한 노년의 건강 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므로 냉정하게 판단하시란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A씨는 아흔이 넘은 요즘, 건강과 경제 문제 등으로 고단한 여생을 보내고 계신다는 소문을 듣고 있습니다. 여러분, 부디 앞날을 잘 계산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글 읽으셨으면 꼭 실천으로 행동 하시길요~^
김성권 박사의 약력 1982년~2014년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2014년 ~ 현 재 :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서울 K내과의원 원장 (사)싱겁게 먹기 실천연구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