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서당은 1561년(명종 16)에 설립되었으며, 퇴계선생이 몸소 거처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고, 퇴계선생 사후 건립되어 추증된 사당과 서원이다. 도산서당은 퇴계선생이 낙향 후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을 위해 지었으며 서원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퇴계선생이 직접 설계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때 유생들의 기숙사 역할을 한 농운정사도 함께 지어졌다.
도산서원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1574년(선조 7)에 지어진 서원으로 경북 안동시 도산면(陶山面) 토계리(土溪里)에 위치하고 있다. 서원의 건축물들은 전체적으로 간결, 검소하게 꾸며졌으며 퇴계의 품격과 학문을 공부하는 선비의 자세를 잘 반영하고 있으며, 퇴계선생 사후 6년 뒤인 1576년에 완공되었다.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하마비는 궐문, 능묘, 문묘, 서원 등의 입구에 세워놓는 표석으로, 말에서 내려 걸어감으로써 예의를 표하라는 문구다.
낙동강 전망대
도산서원은 전면에 낙동강이 흐르는 경사지에 입지하고 있다. 퇴계 선생은 낙동강 가에 천광운영대와 쳔연대를 조성하여 자연의 정취를 감상하였다. 도산서원 주변의 자연환경을 노래한 도산잡영에는 낙동강을 배경으로 한 시가 여러 수 확인되는데 퇴계 선생은 이곳에서 낚시를 하저나 물고기를 관할하고 휴식을 취하며 자연과 학문의 즐거움을 노래하였다.
'천광운영대'는 퇴계가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몸과 마음을 수양하기 위해 산책을 하던 곳이라고 한다. 퇴계는 서쪽 절벽을 광운영대, 동쪽 절벽을 천연대라고 불렀다. 천광운영대는 주자가 지은 '관서유감'이란 시에 나오는 '하늘의 빛과 구름의 그림자가 함께 감도는구나'라는 구절에서 이름을 지었다. '천연대'는 시경에 나오는 '솔개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노네'라는 구절에서 하늘 천과 연못 연을 따서 지었다. 두 이름에는 주변의 절경과 퇴계가 말년에 이곳에서 자연의 이치를 벗삼아 학문을 성취하여던 뜻을 담고 있다.
안동댐으로 섬이 되어버린 시사단은 조선 정조 16년에 정조 임금이 평소에 흠모하던 퇴계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지방 선비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하여 어명으로 특별 과거인 도산별과를 보던 장소다.
안동댐으로 수물되기 전에는 도산서원과 마주 보이는 강변의 소나무가 우거진 곳에 비각이 세워져 있었는데, 1975년에 원위치에 10m높이의 돌축대를 쌓아올린 뒤 원형대로 옮겨 지었다고 한다.
석정감열(石井甘冽), 네모지게 조성된 석조 우물이다. 『역경』의 ‘정괘(井卦)’, ‘정열한천식(井冽寒泉食)’의 우물의 의미를 취하여 '열정'이라 하였다. 도산서당 시절부터 식수로 사용하였으며 물이 맑고 맛이 좋다. 선비들의 세심장(洗心場)과도 같다.‘
역락서재는 도산서당과 같은 시기에 건립된 건물이다. 서원의 아래쪽에 위치하며, 담장이 둘러져 독립 된 공간으로 되어 있다. 서당의 제자들을 위한 기숙사로, 퇴계의 제자 정사성(鄭士誠)을 비롯한 뜻있는 제자들이 힘을 합쳐 세웠다. 온돌방의 서쪽 반 칸을 비워 아궁이를 설치한 점이 특이하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단정한 건물로 현판글씨는 퇴계선생의 친필이다.
농운정사는 제자들의 기숙사로, 서당의 서쪽에 위치한다. 퇴계선생이 직접 기본 설계를 하고 당시 용수사(龍壽寺) 승려였던 법련(法蓮)과 정일(淨一)을 임명하여 건립하였다고 한다.공(工)자형의 대칭적 건물로 2개의 공간으로 나뉘는데, 각각 2칸의 온돌방과 앞으로 돌출한 마루 1칸,뒤쪽에 봉당 1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 앞 기단 월대(月臺)에는 전돌을 깔았다. 이 기숙사는 2개 반을 수용했는데, 이 같은 연립식의 기숙사는 소수서원(紹修書院)에도 남아 있다.
광명실은 서책을 보관하고 열람할 수 있는 오늘날의 도서관(藏書庫)인데 현판은 퇴계선생 친필이다. 진도문을 가운데 두고 동·서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습해(濕害)를 방지하기 위해 누각식(樓閣式)으로 지었다. 1819년(순조19)에 세워진 동광명실에는 역대 왕의 내사서적(內賜書籍)과 퇴계 선생이 친히 보시던 수택본(手澤本)을 보관하였다. 원래는 동광명실만 있었으며 서광명실은 근대 들어 증건(增建)하였다.
* 광명(光明)은 ‘만권서적(萬卷書籍) 혜아광명(惠我光明)', 즉 '수많은 책이 나에게 광명을 준다' 의미
1930년(庚午年)에 동광명실을 본 따 지었으며 이 역시 2층 구조의 누각 건물로 서원의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문도를 비롯한 국내 유학자의 문집 등 근래에 발간된 각종 책들이 있다. 이곳에는 일본 유학자인 손시교쿠수이[村士玉水]가 편찬한 '퇴계서초(退溪書抄)'가 있어 퇴계학이 일본 유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광명실과 함께 모두 1,271종 4,917권이 보관되어 있었으며, 전국 서원 가운데에서 장서로는 고서와 진본이 유명하다. 보관된 각 종 문적은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에 위탁 관리되고 있다.
홍의재(弘毅齋)는 동재인 박약재와 마찬가지로 원생의 기숙소이다. 강당에서 바라볼 때 오른쪽에 위치하며, 서쪽에 자리하고 있어 서재(西齋)라고도 한다. 동재에 기숙하는 원생이 서재의 원생보다 선배이지만 두 건물은 규모나 장식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동재와 서재 모두 3칸 집으로 전면의 반 칸을 내어 쪽마루를 달았다.* 홍의(弘毅) - 선비는 마음이 넓고 뜻이 굳세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니, 그 책임은 무겁고 도학의 길은 멀기 때문이다(士不可以不 弘毅 任重而道遠)
박약재는 도산 서원의 원생이 기숙하던 곳으로, 동쪽 편에 위치한 까닭에 동재(東齋)로도 불린다. 강당과 함께 교육 공간의 중심을 이루는데 앞마당을 가운데로 하고 서재(西齋)와 마주하고 있다. 동재에 거처하는 원생이 서재의 원생보다 선배가 된다.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건물로 정갈한 기단부와 기둥의 간결한 건축 구조는 서원의 품격을 잘 드러낸다.
* 박약(博約) - 학문을 넓게 배워 예로 행하라 (博學於文 約之以禮)
도산서원 전교당
서원의 강학 건물로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건물이며 원장실과 강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부를 높여 위엄을 살렸고 양쪽에 계단을 설치하였다. 전교당은 도산서원의 강당으로 1574년에 세웠다. 강당은 유생들이 경학을 공부하는 서원의 중심 건물이다. 전교당은 대청과 서쪽에 '한존재'라는 온돌방이 있다. 도산서원의 원장이 머물렀던 한존재의 문을 들어 올리면 대청까지 트인 넓은 공간이 확보된다. 전교당 정면의 현판은 조선 중기의 명필 한석봉(韓石峰)의 글씨로 1575년 선조로부터 사액(賜額)받은 것이다. 강당 벽면에는 원규(院規), 백록동규(白鹿洞規), 정조의 사제문(賜祭文), 국기안(國忌案), 사물잠(四勿箴),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 등의 현판이 걸려있다. 보물 제 210호로 지정되었다.
장판각은 도산서원에서 만든 책의 목판을 보관하던 곳이다. 퇴계의 문집, 언행록, 글시 등을 새긴 목판을 보관하였다.
상덕사 삼문
상덕사는 도산서원의 묘우(廟宇)로서 퇴계선생과 그의 제자 조목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며 삼문은 사당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이 삼문은 성덕사와 같은 때에 지어졌으며 가운데 문은 혼이 다니는 문이라 하여 사람이 쓰지 않고, 사람들은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고 나온다.
전사청은 사당인 상덕사에서 향사를 받들 때 제주와 제수를 보관하던 곳이다. 동쪽 건물은 제수를 보관하고 서쪽 건물은 제주를 보관하던 주고이다.
서당 영역에서의 고직사와 구분하기 위해 서원의 고직사를 상고직사라고 한다. 상고직사는 서원의 관리와 식사 준비를 위해 지어진 건물로 노비들이 거처하던 곳인데 일반 살림집의 형태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남북으로 긴 'ㅁ' 자형을 이루며 온돌방 7칸에 창고, 부엌 등을 합쳐 총 21칸으로 되어 있다. 전사청과 연결되어 있는 동쪽 통로와 하고직사로 연결되는 남쪽 통로 옆에 각각 부엌을 배치하여 생활에 편리함을 더하였다.
식사 시간을 알리는 북
정우당은 도산서당에 있는 작은 연못 속에 연꽃을 심어 정우당'이라 하였다. 글자 그대로 한다면 '께끗한 벗이 있는 연못'이라는 뜻이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피지만 더렵혀지지 않고 맑고 깨끗한 꽃을 피우므로, 퇴계는 절의를 지키는 정결한 군자의 모습으로 상징하였다.
도산서당은 선생이 몸소 제자를 가르치던 곳으로 1557년에 착공하여 1561년에 완공하였다. 서원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퇴계가 직접 기본 설계하였다고 전해진다. 서당은 一자 형태의 단정한 3칸 건물로 부엌, 온돌방, 마루로 되어 있다.제자를 가르치며 휴식을 취하던 마루는 '암서헌(巖栖軒)'이라고 하는데, '학문에 대한 자신을 오래도록 가지지 못해서 바위에 깃들어 조그마한 효험을 바란다.'라는 겸손의 뜻을 담고 있다.
방은 완락재(玩樂齋), 마루는 암서헌(巖栖軒)이라고 이름 붙였다.사색과 연구를 계속하며 제자를 교육하던 단칸방을 '완락재(玩樂齋)'라 하였으니 뜻은 '완상하여 즐기니 족히 여기서 평생토록 지내도 싫지 않겠다.'란 뜻이다.
몽천은 산골에서 솟아나는 샘물이다. 퇴계가 <역경>의 몽괴에서 의미를 취해 직접 이름을 지었는데 몸매한 제자가 바른길로 이끌어가는 스승의 도리를 뜻한다. 한 방울 샘물이 수많은 어려움 끝에 바다에 이르듯이. 제자들이 끊임없이 노력해서 뜻을 이루라는 의미를 담았다. 퇴계는 이 샘물을 도산서당의 터를 잡은 이유의 하나로 꼽았다.
도산서원 양편 산기슭에는 절벽이 있는데, 퇴계가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몸과 마음을 수양하기 위해 산책하던 곳이다. 천연대는 <시경>에 나오는 '솔개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노네'라는 구절에서 하늘 천과 연못 연을 따서 지었다. 퇴계가 말년에 이곳에서 자연의 이치를 벗삼아 학문을 성취하려던 뜻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