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시리즈에 트로트가 빠지면 섭섭해 하지 싶어서 트로트의 황제 대한민국 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을 불렀다 1970년대 남진과 함께 시대를 양분했던 불세출의 트로트 가수 나훈아이다 1950년 부산태생으로 1966년 서라벌예고 2학년 무렵에 '천리길'을 발표하며 데뷔하였다 트로트 장르에서도 유명세를 탔지만 수많은 히트곡을 직접 작곡해서 히트시킨 싱어송 라이터이기도 한데 히트곡만 무려 120여 곡 이상이 넘는다 히트곡 수에 있어서도 국내 최다는 물론 세계 최다임을 스스로 공인할 정도이며 앨범 발표수만 해도 200장 이상 800곡의 자작곡을 포함해서 2600곡의 취입곡을 자랑하는 나훈아는 트로트의 황제라는 별명이 어울릴 수밖에 없는 가수다 묵직하고 중후함이 느껴지는 저음과 특유의 절묘한 고음 이를 활용하면서 나오는 트레이드마크인 꺾기로 대표되는 특유의 창법은 가요계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왔으며 수많은 가짜 나훈아를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유달리 나훈아의 노래는 가수가 자기만의 색을 입혀서 노래하는 것이 엄청나게 부담되는 노래로 유명한데 나훈아의 노래를 소화하다보면 자칫하면 어설픈 모창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만큼이나 나훈아의 창법은 엄청나게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히트곡이 본인이 작사하고 작곡한 곡이다 물론 다른 사람에 의해 작곡된 히트곡도 꽤 많다 자작곡 전반을 보면 평생에 걸쳐 블루스와 민요를 트로트에 접목한 형태의 음악적 시도를 해온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인생사로는 1972년 스토커의 테러로 입원 깨진 사이다 병으로 왼쪽 얼굴을 찔러 무려 72바늘을 꿰맸고 지금도 그 흉터가 남아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남진이 사주했다는 루머가 돌아서 한동안 논란이 되기도 했다. 2008년 야쿠자 테러설 기자회견 후 칩거 2013년 이혼 소송과 투병이 알려지면서 또다시 칩거 영화배우 김지미와 오랫동안 연인 사이를 유지하기도 했는데 두 사람은 오랜 기간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으며 나훈아는 훗날 "김지미는 나를 남자로 만들어 준 사람"이라 평했다 김지미도 "진정 남편으로 믿고 의지할 남자였다"라고 평했다 삼성일가가 개인적 파티에서의 공연을 요청했을 때 유일하게 거부한 연예인이다 "나는 대중예술가다. 따라서 내 공연을 보기 위해 표를 산 대중 앞에서만 공연하겠다. 내 노래를 듣고 싶으면, 공연 티켓 끊어라"고 했다한다 더불어 1990년대 연예인들의 정치 입문에 대하여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자신에게 정계 입문을 권유한 이들에게 거부하면서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 난 가수가 천직이다." 라고 말한 적도 있다 노래방 책에 가장 많은 곡을 올린 가수다 덕분에 저작권료가 많으면 월 5천만원이라고 한다 공연료가 부르는 게 값인 단 3명 뿐인 가수 중 하나이다 나머지는 가왕 '조용필'과 대한민국 가요계를 완전히 바꾼 '서태지'이다 이 곡은 2003년 발표한 앨범 '공'에 수록된 곡이다
첫댓글 남진보다 잘생기진 않았는데
좀더 매력적임
김지미랑 그렇게 좋은데 이혼설 바람설은 뭐징? ;;;
알다가도 모르는게 남녀사이 아닐까?
그래서 제목도 '모르고'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