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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18일(성령강림절 후 열세 번째 주일)
디모데전서 4:6~11
네 자신을 연단하라
하늘사랑교회 주일예배 설교문
본문 접맥 적 주제설교
김규태 목사
*설교 주제: 바울은 경건에 이르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을 받으라고 디모데를 가르친다.
*설교 목적: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을 받아야 한다.
why?
우리나라 소주 소비량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10년 통계를 보면, 1인당 연평균 120병 이상의 소주를 마신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소주 소비량 증가가 문제인 이유는, 대부분의 범죄가 술과 연관되어 있다는 데 있습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살인, 성범죄, 강도, 절도, 폭행 등 강력 범죄의 25% 이상이 음주에서 비롯된 것이고, 살인 미수를 포함한 살인 사건 중 40% 이상이 음주 상태에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또 성범죄자의 30% 이상이 술을 마신 다음 범행을 했다고 합니다.
소주가 불티나게 팔리는 이면에는 소주 회사의 놀라운 전략이 있습니다. 한 병에 꼭 7잔 분량의 소주를 담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마실 때는 마지막 한 잔이 모자라도록, 세 사람이 마실 때는 한 잔이 남도록, 네 사람이 마시면 한 잔이 모자라도록, 다섯 사람이 마시면 두 잔이 남도록, 여섯 사람이 마시면 한 잔이 남아 아쉬워서 한 병 더 마시도록 하는 고도의 전략입니다.
-출처; 김병삼, 「액션 플랜」(두란노, 2015); 「생명의 삶」(두란노, 2023년 11월호), 115쪽에서 재인용.
여러분은 이러한 소주 회사의 전략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이 이야기를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적용해 볼까요? 우리가 거룩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과연 어떠한 전략이 필요하겠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면 거룩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사도 바울의 권면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사도 바울은 6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6절).”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진 신앙생활의 분명한 목표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자,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해서 기억해야 할 가르침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여러분 자신을 연단하라(7절)’는 가르침입니다.
“네 자신을 연단하라”는 말씀은 ‘네 자신을 훈련하라(train)’는 의미입니다. 왜 우리가 우리 자신을 훈련해야 합니까? 우리가 영적인 싸움의 현장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눈에 보이는 우상과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우상들이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지, 아니면 우상을 섬길지를 택해야 합니다.
저는 지난 한 주간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을 묵상했습니다. 요시야 왕은 성전을 수리하다가 우연히 여호와의 율법 책을 발견하고, 유다 백성의 삶 속에 깊숙이 침투해 있던 각종 우상들을 철저히 배격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요시야 왕의 노력을 보면서 내가 버려야 할 우상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피터 잭슨이 감독한 영화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에는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호빗 족의 빌보는 젊은 시절 우연히 암흑의 왕 사우론이 운명의 산에서 만든 절대 반지를 손에 넣게 됩니다. 이후 빌보는 111살이 될 때까지 절대반지를 소유하면서 점차 그것에 대한 탐욕에 빠지게 됩니다.
그는 자신과 절대 반지는 떼어놓을 수 없는 사이이며, 절대 반지는 영원히 자기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마법사 간달프가 그 반지를 내려놓으라고 빌보에게 권면하지만, 늙은 빌보는 반지에 대한 탐욕을 내려놓지 못한 채 갈등을 겪게 됩니다.
대충 상황을 모면하려고 집 밖으로 나가려던 빌보를 향해 간달프가 말합니다. “빌보, 반지는 아직 자네 주머니 속에 있어.”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고, 잠시 정적이 흐릅니다. 이윽고 빌보는 떨리는 손으로 절대 반지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깊은 한숨을 몰아쉽니다.
잠시 후, 빌보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간달프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친구, 내 책의 마지막 부분을 생각해 냈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후 간달프와 빌보는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고, 빌보는 노래를 부르며 홀로 자신의 길을 걸어갑니다.
사우론이 만든 절대 반지는 19개의 고귀한 반지들을 움직이는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겉으로 보기에 반지 원정대와 사우론의 부하들 사이의 싸움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절대 권력을 향한 인간의 탐욕과 맞서 싸우는 인간의 고귀한 성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절대 반지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고 고민하는 빌보처럼, 인간은 권력의 우상, 쾌락의 우상, 물질의 우상, 성공의 우상을 내려놓지 못하고 우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고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그것을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시는데도 말입니다.
저는 여호와의 율법 책을 발견한 요시야 왕이 왜 그토록 유다 백성의 삶에 오랫동안 자리 잡은 우상들을 뿌리 뽑으려 했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왕은 백성의 행복을 원했습니다. 그것은 탐욕의 우상을 내려놓을 때 가능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진리를 알았다면, 우리는 진리를 위해서 과격하게 헌신해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7절)”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울이 “네 자신을 연단하라”고 말했을 때, 그 목표는 세상의 성공이 아니라, 경건에 이르기 위함이었습니다.
what?
그렇다면 바울이 말하는 ‘경건’은 무엇일까요?
바울은 디모데전서 3장 16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나신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 지셨느니라.”
바울은 ‘경건의 비밀’을 이야기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합니다. 즉,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경건의 비밀’이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가 비밀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을 때에만,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비밀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십니까? 그는 육신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성육신 사건), 성령으로 의롭다 인정받으셨습니다(십자가 죽음).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천사들에게 보이셨고(부활), 만국에 전파되셔서(복음 전파), 많은 사람이 믿게 되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가 경건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영적훈련 목표는 분명합니다.
우리는 성경지식을 늘리기 위해 영적훈련을 받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남들보다 더 착하게 살고 존경받기 위해 영적훈련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더구나 우리는 자기만족을 얻기 위해 영적훈련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으며,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기 위해 영적 훈련을 받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경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기 위해 영적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많은 성경공부 프로그램이나 제자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도 왜 우리의 자아가 죽지 못합니까? 우리의 성경지식은 늘어나고 직분의 무게감은 커지는데, 왜 우리의 자아와 고집도 더불어 완고해지고, 왜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려는 ‘자기 의’도 더불어 높아져만 갑니까?
과연 무엇이 문제입니까? 우리가 영적훈련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잘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올해 성경을 많이 읽고,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고, 그것도 부족해서 성경원어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기독교 신학을 제 아무리 많이 공부한다고 해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군은 영적 엘리트주의에 빠진 사람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날마다 말씀 안에서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주님 만나기를 사모하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인생의 푯대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 한 분 만으로 족한 인생을 살았습니다(빌 3:7).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으로 경건에 이르도록 우리 자신을 연단할 수 있습니까?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을 받으라고 우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6절에서, 바울은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바울이 말하는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바울은 6절에서, 믿음의 말씀과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을 받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될 수 있고, 경건에 이르도록 우리 자신은 연단할 수 있습니다.
how?
어느 해 풀러 신학교 학위 수여식에서 리처드 마우 총장은 앨버트 라버토의 Slave Religion(노예들의 종교)라는 책을 인용했습니다.
“옛 미국 남부 지방의 그리스도인 노예들이 성경을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 이 책에서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도 어떻게든 성경을 경건 훈련의 중심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한 젊은 여자 노예는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고자 도망칠 때도 성경을 가져갔습니다. 여주인의 도움으로 핵심 구절이 나오는 지면을 표시해 두었는데, 숲속과 늪지대에 은신해 살면서 그 표시를 찾아가며 말씀을 암송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노력했던 것입니다. 또 주인의 아이들을 돌보던 한 여자 노예는 주인집 자녀들의 도움으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낱말의 식별법을 배웠습니다. 이후 그녀는 정기적으로 조용한 곳을 찾아 성경의 처음부터 끝까지 손가락으로 일일이 짚어 가며 ‘예수’라는 이름을 찾았습니다.”
이어서 마우 총장은 말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름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지상 최대의 작업입니다. 예수님을 발견하기까지 그 노력을 중단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교육을 마치고, 의문을 통과한 다음에도 순수성을 유지할 때, 그 이름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지금 돌아보세요. 자신에게 그 여성 노예들처럼 불같은 순수성이 있는지.”
-출처: 이태형, 「더 있다」(규장, 2012); 「생명의 삶」(두란노, 2015년 3월호), 43쪽에서 재인용.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발견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기를 힘쓰고 계십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일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발견하는 일이야 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지상 최대의 작업입니다.
우리는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훈련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의 본성이 악하고, 연약하기에 중간에 지쳐 쓰러지기도 하고, 세상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위기의 순간에 여러분의 소망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보십시오. 여러분이 수고하고 애쓰는 것들이 과연 이 세상의 썩어질 것 때문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소망이 살아 계신 하나님께 있습니까?
육체의 연단도 약간의 유익이 있듯이, 경건은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도록 여러분 자신을 훈련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받아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으며,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는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