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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령의 비서이자 회계사는 유방의 친구 중 하나였던 소하(蕭何)였다. 소하는 동네에서 일처리가 깐깐하고 성실하기로 정평이 났다. 유방과는 정 반대의 인물이었다. 이 남자는 평소에 유방을 한심하게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미워하지도 않았다. 소하는 요즘으로 치면 평민 출신의 고소득 (동네 사람들의 두 배 정도) 전문직 종사자다. 건달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마음속으로는 사실 유방을 좋아했다. 유방은 한심하긴 해도 술자리에서는 좋은 친구였을 테니.
소하의 빈틈없는 일처리 능력은 현령과 패현을 드나드는 진나라 관료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그들 기준에서 소하는 유학과 같은 사상이나 통치체계를 본격적으로 배우지 못한 무식한 사람이었다. 일자무식까지는 아니어도 학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기능인이었다. 외려 이런 사람이 실무엔 더 강할 수 있다. 소하는 ‘평민을 관리하는 데 동원된 평민’이다. 야심과는 거리가 먼 안정지향적인 인물이었다. 이런 사람을 무시하면 안 된다. 야심과 능력은 별개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소하는 필요한 일만 하되, 필요한 일은 확실하게 끝내 놓는 타입의 인물이었다.
진나라 관료들은 소하를 천거해 중앙정부에 진출시키려고 했다. 물론 소하가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서다. 좋은 인재를 발굴하면 공이 생겨 승진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관료들은 소하를 발견할 때마다 추천인에 자기 이름을 새기려고 달려들었지만 그는 번번이 거절했다. 소하는 패현에 가족이 있었고 먹고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어떤 역사학자들은 소하가 진나라의 붕괴를 예상하는 혜안을 지녔다고 하는데 이건 지나친 비약이다. 소하는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지역적 한계가 있다. 촌구석에서 무슨 수로 천하의 앞날을 예상할 수 있는가? 그가 처한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 아마도 중앙 정계의 정치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유방에게도 자그마한 기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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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도 없고 허풍만 센 유방에게 제국의 직책이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닐 만한 자랑거리다.
그의 친한 친구들 중 벌써 두 명이 관리가 되어 ‘있어 보이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나는 소하, 다른 하나는 조참(曹參)이었다. 진나라는 엄격한 법가 사상(사실 사상이라기 보다는 군주를 위한 매뉴얼 - 방법론에 가깝지만)에 따라 지역마다 죄수를 가두는 감옥을 운영했다. 감옥은 변경을 지키고 강제노역에 동원할 인력을 저장해두는 제국의 냉장고였다. 감옥에도 관리자가 필요하다. 조참이 패현의 감옥 관리 업무를 맡았다.
그렇다면 파출소장과 동장, 동네 청년회장 사이 어딘가 쯤의 역할을 해 줄 사내도 하나 필요하다. 진나라는 십진법을 적용해 10리(里)마다 하나의 정(亭)을 두었다. 여기서 리를 거리나 넓이로 생각하면 안 된다. 진시황은 다섯 가구를 묶어 한 단위를 만들고 다시 다섯 단위를 묶어 리(里)로 정돈했다.
그래서 정이란, 250가구(T.O가 250이니 실제로는 더 적었을 것이다)마다 배치된 마을 회관이다. 제국의 관리가 여행하다가 머무는 숙소 역할도 했다. 하지만 관리들은 이런 데 머무를 이유가 없다. 관리들은 웬만하면 지역 유지나 사또의 관사에서 머문다. 그래서 정은 할 일 없는 남자가 시간을 보내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머무르는 곳’, ‘정자’ 등의 뜻이 말해주듯 대단한 시설은 결코 아니었다. 아무튼 이 정의 책임자인 최말단 관리, 관리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명예직 비슷한 자리를 누군가 맡아야 했다.
패현의 적임자는 당연히 유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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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은 돈이 있든 없든 어차피 노상 싸돌아다니는 사람이다. 마음껏 누워있을 잠자리도 필요하다. 허풍이 세니 세상에 나서지 못할 일이 없다. 방범대장 역할을 하기도 좋다. 논두렁 조폭 아닌가? 그를 형님으로 따르는 젊은 장정들이 많다. 다들 한 성질 하는 성격이니 도둑을 때려잡기엔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 ‘형님’인 유방이 정장이 되면 그들 자신이 사고를 덜 치리라.
정장 정도는 국비가 안정적으로 지급되는 대상이 아니었다. 거마비 정도 나왔을라나? 그도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지방 아전이 되기 위해서는 나서기 좋아하는 성격 말고도 한 가지 조건이 더 붙는다. 일상의 노동에서 어느 정도 해방되어 있어야 한다. 고대의 기준에서는 상당히 먹고 살 만 해야 한다. 그런데 어차피 유방은 가난해도 일을 안 했다.
한편 유방의 유일한 ‘큰형님’인 왕릉은 이미 위치가 지역 유지 수준이라 정장 같은 자잘한 자리를 맡기에는 사이즈가 안 맞았다. 그래서 유방은 이상적인 정장 후보였다. 깡패 잡는 자리에 깡패를 앉히는 것 보다 좋은 수가 어디 있을까?
유방이 정장이 되었다는 것을 근거로 일부에서는 그가 부농 출신이었다고 한다. 그렇지 않다. 첫째, 방금 말한 대로 그는 원래 일을 안했다. 노동에서 해방된 계층이 아니라 ‘노동을 거부한 노동계급’이다. 둘째, 동네 아전이 돈으로 관직을 사는 관습은 군현제, 즉 중앙집권제가 완전히 정착된 후의 폐단이다. 당시는 최초로 전국적 군현제가 실시된 직후다. 유방은 ‘동아시아 문명 아전 1기생’이다. 진나라에서도 아전 자리를 차지하면서 돈을 낸 경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이 경우는 뇌물이나 매관매직이 아니라 ‘보증금’이다. 사고를 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유방은 사고뭉치인데다가 돈도 없었다. 그래서 사람이 보증을 서야 했다. 소하가 연대책임의 위험을 감수하고 기꺼이 보증을 서 줬다. 유방, 30대 후반의 나이에 드디어 직업이 생겼다! 비록 허울뿐이긴 했지만...
그렇지만 말이다.
유방은 정장이 되자마자 보증을 서 준 소하의 속을 뒤집어놓는다. 정장 밑에는 부하 격으로 구도(求盜)라는 사내가 하나 붙는다. 문자 그대로
도둑 잡는 인력, 즉 방범대원 내지는 자경단원이다. 유방은 정장이 되자마자 구도를 현재의 산동성으로 보낸다. 지금의 강소성에서, 걸어서
산동성에 갖다 오려면 걸리는 시간이 얼마겠는가? 그 사이에 도둑한테 집이라도 한 채 털리면 소하는 뭐가 되는가. 법률이 가혹한데다가 연좌제가 적용되는 진나라 체제였다. 거기다 보증까지 섰으면...
구도를 산동성에 보낸 이유도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질 좋은 대나무 껍질을 구해오라는 게 이유의 전부였다. 산동성은 대나무가 크게 자라는 자생지였다. 지금도 산동성에는 다양한 색깔을 자랑하는 대나무가 많다. 대나무 껍질-죽피(竹皮)-는 공예품이나 일상용품의 좋은 재료였다. 그런 만큼 유방이 사는 곳까지 상품으로 유통되었음은 뻔하다.
▲ 대나무 껍질, 죽피
그런데 부하가 직접 갔다. 한마디로 돈은 없는데 가지고 싶어서 자연에서 직접 벗겨 오라고 보낸 것이다. 보낸다고 제꺽 간 구도도 할 말은 없다. 정장의 구도이기 이전에 논두렁 주먹의 ‘꼬붕’이라 봐야 한다( 일본어의 잔재를 쓰긴 싫지만 이 이상 적합한 표현이 없다.). 마음에 드는 죽피를 손에 얻자 유방은 더 황당한 짓을 한다. 죽피를 정성껏 다듬어 관을 만든 것이다! 광택이 살아있는 고급 죽피는 청동이 가진 금속질의 느낌과 얼추 비슷하다. 그는 이 기괴한 물건, 일명 ‘죽피관’을 언제나 쓰고 다녔다.
고대 중국은 계층 간의 문화 차이가 엄격했다. 평민은 건(巾 두건)을 썼다. 돈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습관이기도 했다. 평민인데도 부자가 되면 비단을 건으로 쓰면 썼지, 관을 쓰는 일은 없었다. 관은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런데 유방은 돈도 없는데 관을 쓰고 다니겠다고 이딴 짓을 벌인 것이었다. 허세는 허세인데,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 보니까 아예 귀여운 느낌이 들고 만다. 죽피관은 훗날 유방의 트레이드마크가 된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