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박원명화 | 날짜 : 10-08-08 18:26 조회 : 1749 |
| | | 거북이들 포천에 가다.(2010년6월30일~1박)
마음 맞는 사람들과 여행을 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이다.
햇살 고운 어느 날, 집안의 일들을 죄다 훌훌 벗어던지고 ‘거북이(느림회)’문우들과 1박2일의 산행길을 나섰다. 서울을 벗어나기가 바쁘게 마음의 빛깔이 달라졌다. 녹음이 질펀한 들판에 뜨겁게 쏟아지는 햇볕! 그럼에도 끄떡없는 어떤 힘이 파릇파릇 내 마음을 물들인다. 차창을 열었다. 신선한 기운이 얼굴을 스친다. 녹색의 향연이 눈 앞에 펼쳐진다. 연신 터져 나오는 감탄이 나도 모르게 우쭐거린다. 언젠가도 다녀온 길이지만 볼 때마다 감동이 다르다. 산을 만나고 강을 만나면 저절로 자연의 숨결을 느끼게 된다. 평화로운 풍광이 판화처럼 눈에 들어온다. 어느 농부가 깔아 놓은 것인지 들판이 온통 파란카펫이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카펫이 더 없이 부드러워 보인다. 차를 세우고 그 위를 걸어 봤으면 싶다. 카펫의 입자를 맨살에 느껴볼 수 있게. 허지만 뛰어들 수는 없는 일, 그 풍광에 한껏 고조된 내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노래가 흘러 나온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 대는 /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 얼룩 백이 황소가 /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강렬한 풀내음이 콧속을 파고든다. 물이 맑고 많다는 포천. 그것은 산과 숲이 빼곡하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풀 냄새가 짙어질수록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도연한 푸른 옷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의정부를 지나는가 싶었는데 벌써 포천이라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산 위에 산정호수를 돌고 근처 평강식물원을 살폈다. 건강 체질이 아닌데다, 들뜬 마음에 어젯밤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했는데도 웬일인지 몸이 가볍다. 거기다 밥맛은 왜 이리도 좋은지. 많이 먹지 못하는 배에게 잔뜩 짐만 지웠다. 콘도에서의 하루가 내리막길처럼 후닥 지나갔다. 온천에 몸을 실컷 담근 탓인지 몸도 마음도 거뜬하다. 여행을 하다보면 예정에도 없는 엉뚱한 곳에 가곤 한다. 이런 해찰이 여행의 기쁨이기도 하다. 무조건 따라 오라기에 뒤따라갔다. 호기심 없는 여행은 설렘도 없다. 그건 여행의 기쁨을 절반쯤 삭감하고 다니는 것이니 굉장한 손해이기도 하다.차 한 대 지날 정도의 좁은 길에 앞차가 멈췄다. 우리가 찾는 집이다. 맑은 공기가 막다른 찌꺼기들까지 말끔히 거두어 갔는지 가슴속까지 훈련하다.
푸른 잎새를 애무하는 바람, 크고 작은 바위들, 사열하듯 정연한 장독대 등등 마치 요술나라의 파노라마 같다. 잘 정돈된 정원들이 사람의 손으로 다듬어진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세월의 무게가 자연스럽다. 자연 속의 또 하나의 자연. 나무들로 둘러싸인 작은 집, 어쩌면 그 안에 동화속 왕자와 공주가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고 있지나 않을는지. 이런 풍광을 몇 사람만 즐긴다는 게 왠지 목에 걸린다. 주인(정교장)의 안내로 한 바퀴 도는 동안 입이 더욱 벌어진다. 나무가 품어내는 유산소의 달착지근한 맛이 기분을 상쾌하게 해준다. 창 너머로 바라보이는 산, 숲으로 퍼져가는 신선한 여운이 가슴을 꽉 메운다. 주인이 전해주는 유다른 부부애가 새삼 애틋하게 가슴을 적신다. 바람에 몸을 씻는 풀잎처럼 냇물에 몸을 씻는 모래알처럼 나는 내 삶의 얼룩들을 그 풍광에 씻어, 거기에 함께 묻는다. 점심 먹으러 가자는 말에 눈이 번쩍 뜨인다. 시간을 보니 벌써 정오가 저만치 달려가고 있다. 구불구불 산길이 신선하다. 인적이 없는 길을 얼마쯤 달렸을까, 아득한 한옥이 손님을 맞이한다. 그 이름도 예쁜 “민들레올 물꼬방”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 마당엔 차량들이 가득하다. 난생 처음 먹어보는 낯선 음식. 그런데도 이렇게 입맛이 당길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놀란 혀를 진정시키느라 한참 씹어댔다. 식당 뒤 카페의 운치도 사람을 저절로 주저앉게 한다. 창밖의 풍광도 걸출하지만 내부 시설이 또한 예술이다. 자연스럽게 덜퍼덕 주저 앉을 수밖에. 커피를 기다리며 먼 산을 바라본다. 어쩐지 외로워 보인다. 사람도 살고 있지 않을 것 같다. 빛 하나 새어나오지 않을 만큼 나무들로 꽉 찼다. 주인이 한껏 솜씨를 뽐냈다. 커피 잔속에 어여쁜 여인들이 나를 향해 살포시 미소 짓고 있다. 차마 그 여인들을 입안에 삼키지 못하고 찻잔을 든 채 한참을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옆에서 빨리 마셔보라며 성화다. 잔을 들어 입을 가져간다. 뜨거운 향취가 목구멍을 타고 내린다. 긴장이 풀리는 것은 잠시, 반쯤 일그러진 잔속의 여인이 나를 원망하는 눈치다. 더 이상 마실 수가 없어 찻잔을 내려놓고 여인들을 바라본다. 침묵이 그렇게 평화롭고 감미로운지는 처음 알았다. 말 대신 표정으로 바라보는 친애감은 포근하고도 살갑다. 신선한 놀라움, 메마른 마음에 축축이 스며드는 듯한 기쁨이다. 금새 친구가 된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즐거운 눈으로 외로운 눈으로 시각을 바꾸어도 자연은 아름답다. 그리고 많은 가르침을 준다. 할 말이 너무 많아서일까. ‘이심전심’을 믿고 있는 탓일까. 그도 아니면 자신의 일만 묵묵히 하는 것으로 순리를 터득케 하려는 것일까. '하늘이 푸르다는 걸 알기 위해 반드시 온 세상을 돌아다닐 필요는 없다’ 는 괴테의 말이 떠오른다. 여행을 해야만 개안이 되고 낯선 세상과 만나야 반드시 나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게다. 내 안의 느낌, 생각 그 공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행복이야말로 또 다른 여행의 경험이며 나를 직시하는 내일의 윤활유라 할 것이다. 사는 일에 지치거나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땐 마음 편한 이들과 부담없이 휴식을 즐기듯 여행을 다니는 것도 좋은 것 같다. 그런 아름다운 계기를 자주 만들어 볼 생각이다. 좋은 사람(문우)들이 늘 가까이 있다는 데 감사한다. 특히 가끔씩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주는 K선생(김녕순)과 동행한다는 건 역시 즐겁다. 마치 지금 내가 살아 있음이 행복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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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0-08-08 22:03 | | 토끼는 어디가고 거북이들만 그렇게 모였었데요? 재미 있었겠네요. 포천은 제가 할렐루야 기도원 다닐때 자주자주 다니던 곳입니다. 포천과는 인연이 깊습니다. 지금도 그시절이 그립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원명화 전임 사무국장님 ! | |
| | 최복희 | 10-08-08 23:01 | | 정겨운 풍경입니다. 님도 보고 뽕도 딴다는 말처럼 즐거운 시간 보내고 좋은 글도 건지셨군요. 아름다운 추억으로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언제고 꼭 동참하겠습니다. | |
| | 강승택 | 10-08-08 23:22 | | 1박 이후가 그리도 좋았다지요? 눈에 보이듯, 손에 잡히듯 어쩌면 그리도 세세히 묘사를 잘하셨습니까. 박선생님의 순수한 마음이 자연의 풋풋함과 어울려 아름다운 글 한편을 엮어내셨군요.거기에 더하여 흐르는 배경음악은 글의 격조를 한결 받쳐주고~ | |
| | 이희순 | 10-08-10 10:56 | | 일탈을 통한 재충전에 여행의 의미를 둔다면 여행은 문학의 마음을 닮은 듯합니다.
선생님의 글을 감상하고나니 저마저 그 자연에 녹아들었는지 자꾸 즐거워집니다. 선생님, 싱그러운 초록 만년필 선물 고맙습니다. | |
| | 박원명화 | 10-08-10 11:26 | | '번개미팅'을 통한 자연스런 만남은 앞으로도 죽 계속될 것입니다. 8월은 '함양 수필의 날' 행사로 때우고 9월 3번째 월욜, 또 다른 탐험의 산행을 할까합니다. 산행이라지만 '느림의 미학;을 몸으로 익히며 유유자적 천천히 거니는 수준이라 김영월선생님께서 지어준 -느림회-랍니다. 자연을 벗삼으며 감성을 키워가는 셈이지요. 작가회 회원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함께 하므로, 자주 만나므로 정겨운 문우지정의 고리가 끈끈하게 이어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 |
| | 김자인 | 10-08-12 17:52 | | 포천 여행의 글과 사진이 한 폭의 그림같습니다. 녹음이 우거진 사진 속의 풍경이 먼 훗날에는 그리움으로 변하겠지요. 부럽네요 박원명화 선생님. | |
| | 김창식 | 10-08-15 15:13 | | 그래서 거북이군요, 어쩐지... .괴테의 좋은 말 원어로 찾아서 외우겠습니다. ^^ | |
| | 일만성철용 | 10-08-22 08:29 | | 요즈음 저는 십장생 이야기를 월간지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십장생 중 살아있는 동식물로는 "거북, 학, 사슴, 소나무, 대, 불로초"가 있는데 동물 중에는 거북이 만큼 오래 사는 것이 없더군요. 그 거북 이야기를 며칠 후 이 사이트에 올려 거북이 모임을 축하게 드릴께요. | |
| | 박원명화 | 10-08-23 17:26 | |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은 얼굴들! 아마도 그렇게 마음의 정이 깊어 가는 것 같습니다. 좋은 분들의 아름다운 만남, 그것이 향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음' 번개미팅' 코스는 강원도 춘천이 될 것 같습니다. 반가운 얼굴들 많이 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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