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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제용 고전詩 모음❤️ 14
❤️장상사(長相思)/ 성현
*달빛 되어 님계신 방으로 들어갈까 *
長相思 思不見 (장상사 사불견)
心如紙鳶風中轉 (심여지연풍중전)
有席可捲石可轉 (유석가권석가전)
此心鬱結何時變 (차심울결하시변)
所思遠在天之娵 (소사원재천지추)
雲天綠樹晴悠悠 (운천록수청유유)
悠悠不盡愁 (유유불진수)
獨坐彈箜篌 (독좌탄공후)
箜篌如訴復如泣 (공후여소복여읍)
彈罷不覺羅衫濕 (탄파불각나삼습)
願爲雙飛鳥 (원위쌍비조)
向君窓前立 (향군창전입)
願爲明月光 (원위명월광)
穿君유陷入 (천군유함입)
悲歌無寐夜何長(비가무매야하장)
魂夢不渡療山陽(혼몽불도요산양)
長相思 (장상사)
空斷腸 (공단장)
그리워라 그리워라 볼 수 없으니
내 마음 종이연 바람에 떨 듯
돗자리라면 말고 돌이라면 굴리련만
내 마음에 맺힌 시름 언제나 풀린 건가 ▶임에 대한 그리움으로 인한 답답함
그리운 임 아득히 하늘가에 계시는데
흐린 하늘 푸른 나무 멀기만 하누나
가득한 수심 끝이 없어
홀로 앉아 공후를 연주한다네
공후의 곡조 하소연하듯 흐느끼듯
연주가 끝나니 비단적삼 젖는 줄 몰랐구나 ▶임에 대한 그리움으로 인한 슬픔
쌍쌍이 날아가는 새가 되어
님 계신 창문 앞에 서 있을거나
아니면 밝은 달빛 되어
님 계신 방으로 들어가리라 ▶임과 함께 하고 싶은 소망
잠 못 들어 슬픈 노래 부르나 밤 왜 이리 긴지
꿈 속의 넋은 요산(療山) 땅을 건너지 못하였네.
그립고 그리워라
공연히 애간장만 끊누나. ▶꿈속에서도 임을 만날 수 없는 안타까움
*내 마음 종이연 바람에 떨 듯: 임과 만날 수 없는 화자의 심정이 비유적으로 표현
*종이연: 하늘을 지향하지만 바람에 펄럭이며 빙빙 돌기만 하는 존재-임의 곁(하늘가)에 가지 못하는 화자
*자리라면 말고 돌이라면 굴리련만: 임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돗자리라면 둘둘 말아 치울 수 있고, 돌이라면 굴려 없앨 수 있으련만
*흰 구름 뜬 하늘 아래 늘어진 푸른 버들: 가지가 하늘로 향하지 못하고 땅을 향해 축 늘어져 있는 존재-임의 곁에 가지 못하고, 그로 인해 수심 속에 잠겨 지내는 화자
*쌍비조, 달빛: 임과 함께 하고 싶은 화자의 소망이 투영된 소재
*꿈: 화자의 소망이 간절함을 드러냄과 동시에 비극성을 두드러지게 함
*요산(療山) 남쪽 : 임 계신 곳
◈ 💜해제: ‘장상사’는 긴 그리움이라는 뜻으로, 사실 악부의 편명이다. 이백을 비롯한 많은 작가들이 이 제목으로 작품을 남긴 바 있다. 성현의 ‘장상사’는 ‘고원사’ 25수의 하나로, 님이 보고 싶어도 갈 수가 없어 날마다 언덕에 올라가 사모의 정을 하늘로 날려 보내지만 마치 종이 연과 같이 바람에 펄럭이며 빙빙 돌고만 있어 님에게 전할 길이 없음을 슬퍼하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 화자는 애타게 그리워하는 마음이 돗자리라면 차라리 둘둘 말아 한곳으로 치워 버리고, 돌이라면 굴러서 없애 버리면 되련만 그럴 수가 없다며, 가슴에 맺힌 한이 풀릴 날이 아득하기만 하여 한탄하고 있다. 이처럼 화자는 임을 그리는 자신의 처지를 바람에 떨고 있는 종이연에 비유하여, 임과 이별하고 홀로 지내는 화자의 간절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잘 표현하고 있다. 비유, 대구, 감정의 직접적 서술(감정이입)을 통해서 임과의 만남을 애타게 소망하는 화자의 간절함을 느낄 수 있다.
◈ 주제: 임에 대한 그리움
❤️合江停船遊歌(합강정선유가)
〈船遊悲感〉
귀경가자/귀경가자/ 합강정(合江亭)/귀경가자/시유구월(時維九月)/염이일(念二日)은/길일(吉日)인가/가절(佳節)인가/관풍찰속(觀風察俗)/우리순상(巡相)/이 의/선유(船遊) /청추성절(淸秋盛節)/즐거우나/창오모운(蒼梧暮雲)/비감(悲感)다/북궐분운(北闕紛紜)/몽외사(夢外事)라/남쥬민막(南州民瘼)/아가/음쥬우산(飮酒遊山)/조흘시고/추사방극(秋事方極)/고렴(顧念)가/강통도(塞江通道)/올적의/일월공역(一月貢役)/드다말가/착산통도(鑿山通道)/올적의/어민가(漁民稼穡)/단말가/호원(呼冤)/저 구신(鬼神)아/풍경(風景)의/ 타시로다/범갓탓/우리 슌상(巡相)/생심(生心)이나/원망(怨望) 가/
다음은「합강정선유가」에 대한 의 설명이다.
『1792년(정조 16)에 제작된 작자 미상의 가사. ‘합강정가(合江亭歌)’라고도 한다. 전라북도 순창과 남원 사이로 흐르는 적성강(赤城江) 부근의 합강정에서 전라감사 정민시(鄭民始)를 비롯한 여러 고을 관장(官長)들이 모여 호화로운 뱃놀이를 하는 광경을 보고 노래한 작품이다.』
삼족당가첩(三足堂家帖)게재돼 있는 등 여러 정황과 근거로 존재 선생의 작품임이 분명하지만 지금까지도 작자미상이로 방치되고 있다. 더구나 선생이 옥과현감에 취임한 1796년 9월 전라감사 정시민의 순시 때 인근 지방관장을 대동해서 섬진강에서 기생들과 흥청망청 선유하는 정경을 고발한 가사임에도 1792년의 작품으로 소개되고 있을 정도이다. (筆者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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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세 가세 자네 가세
가세 가세 놀러 가세
배를 타고 놀러를 가세
지두덩기여라 둥게
둥덩 덩실로 놀러 가세
~~♬♬~♪♪~~♬♬~♪♪
앞집이며 뒷집이라 집집마다 처자들로
사내들의 애간장을 들 쑤시고 다 녹인다
앞집이며 뒷집이라 집집마다 처자들로
사내들의 애간장을 들 쑤시고 다 녹인다
가세 가세 자네 가세
가세 가세 놀러 가세
배를 타고 놀러를 가세
~~♬♬~♪♪~~♬♬~♪♪
지두덩기여라 둥게
둥덩 덩실로 놀러 가세
가던 임은 잊었는지 꿈에 한번 안 보인다
내가 잊지 못 하는데 넌들 나를 잊을껀가
가던 임은 잊었는지 꿈에 한번 안 보인다
내가 잊지 못 하는데 넌들 나를 잊을껀가
~~♬♬~♪♪~~♬♬~♪♪
가세 가세 자네 가세
가세 가세 놀러 가세
배를 타고 놀러를 가세
지두덩기여라 둥게
둥덩 덩실로 놀러 가세
이별이야 이별이야
이별 두자를 건 내인 사람
그로부터 너와 나는 백년동안 원수로다
~~♬♬~♪♪~~♬♬~♪♪
이별이야 이별이야
이별 두자를 건 내인 사람
그로부터 너와 나는 백년동안 원수로다
가세 가세 자네 가세
가세 가세 놀러 가세
배를 타고 놀러를 가세
~~♬♬~♪♪~~♬♬~♪♪
지두덩기여라 둥게
둥덩 덩실로 놀러 가세
가세 가세 자네 가세 가세 가세 놀러 가세
가세 가세 자네 가세 가세 가세 놀러 가세
~~♬♬~♪♪~~♬♬~♪♪
합강정가(合江亭歌)’라고도 합니다. 전라북도 순창과 남원 사이로 흐르는 적성강(赤城江) 부근의 합강정에서 전라감사 정민시(鄭民始)를 비롯한 여러고을 관장(官長)들이 모여 호화로운 뱃놀이를 하는 광경을 보고 노래한
작품입니다.
❤️상춘곡(嘗春曲) / 정극인(丁克仁)
홍진(紅塵)에 뭇친 분네 이내 생애(生涯) 엇더한고.
녯 사람 풍류(風流)를 미칠가 못 미칠까
천지간(天地間) 남자(男子) 몸이 날 만한 이 하건마는,
산림(山林)에 뭇쳐 이셔 지락(至樂)을 마랄 것가.
수간모옥(數間茅屋)을 벽계수(碧溪水) 앏픠 두고
송죽(松竹) 울울리(鬱鬱裏)예 풍월주인(風月主人)되여셔라.
엊그제 겨을 지나 새 봄이 도라오니
도화행화(桃花杏花)는 석양리(夕陽裏)예 퓌여 잇고,
녹양방초(綠楊芳草)는 세우중(細雨中)에 프르도다.
칼로 말아낸가, 붓으로 그려 낸가,
조화신공(造化神功)이 물물(物物)마다 헌사롭다.
수풀에 우는 새는 춘기(春氣)를 못내 계워 소리마다 교태(嬌態)로다.
물아일체(物我一體)어니, 흥(興)이에 다를소냐.
시비(柴扉)예 거러 보고, 정자(亭子)애 안자 보니,
소요음영(逍遙吟詠)하야, 산일(山日)이 적적(寂寂)한데,
한중진미(閑中眞味)를 알 니 업시 호재로다.
이바 니웃드라, 산수(山水) 구경 가쟈스라.
답청(踏靑)으란 오늘 하고, 욕기(浴沂)란 내일하새.
아침에 채산(採山)하고, 나조해 조수(釣水) 하새.
곳나모 가지 것거 수 노코 먹으리라.
화풍(和風)이 건듯 부러 녹수(綠水)를 건너오니,
청향(淸香)은 잔에 지고, 낙홍(落紅)은 옷새 진다.
준중(樽中)이 뷔엿거든 날다려 알외여라.
소동(小童) 아해다려 주가(酒家)에 술을 믈어,
얼운은 막대 집고, 아해는 술을 메고
미음완보(微吟緩步)하여 시냇가의 호자 안자,
명사(明沙) 조한 믈에 잔 시어 부어 들고, 청류(淸流)를 굽어 보니,
떠오나니 도화(桃花)ㅣ로다.
무릉(武陵)이 갓갑도다, 져 메이 긘 거인고.
송간(松間) 세로(細路)에 두견화를 부치 들고,
봉두(峰頭)에 급피 올나 구름 소긔 안자 보니,
천촌만락(千村萬落)이 곳곳이 버려 잇네.
연하일휘(煙霞日輝)는 금수(錦繡)를 재폇는 듯,
엊그제 검은 들이 봄빗도 유여할샤.
공명(功名)도 날 끠우고, 부귀(富貴)도 날 끠우니,
청풍명월(淸風明月) 외(外)예 엇던 벗이 잇사올고.
단표누항(簞瓢陋巷)에 흣튼 혜음 아니하네.
아모타, 백년행락(百年行樂)이 이만한들 엇지하리.
[💜현대어 풀이]
속세에 묻혀 사는 사람들아, 이 나의 살아가는 모습이 어떠한가?
옛 사람의 풍류(멋)를 따르겠는가, 못 따를까
세상의 남자로 태어난 몸으로 나만한 사람이 많지마는
산림에 묻혀 있는 지극한 즐거움을 모른단 말인가
초가삼간을 맑은 시냇가 앞에 지어 놓고
소나무와 대나무가 울창한 숲 속에서 자연을 즐기는 주인이 되어 있도다.
엊그제 겨울 지나 새봄이 돌아오니
복숭아꽃 살구꽃은 석양 속에 피어 있고
푸른 버드나무와 향그런 풀은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서 푸르도다.
(이 풍경을 조물주가) 칼로 재단해 내었는가? 붓으로 그려내었는가?
(조물주의 신통한 재주가 사물마다 야단스럽구나.
숲 속에 우는 새는 봄기운을 끝내 이기지 못해 소리마다 교태를 부리는 모습이로다.
물아일체이거늘, (새와 나의)흥이야 다르겠는가
사립문 주변을 걸어보기도 하고, 정자에 앉아 보기도 하니
이리저리 거닐며 나직이 시를 읊조려 보며, 산 속의 하루하루가 적적한데
한가로움 속의 참된 즐거움을 아는 이 없이 나 혼자로구나.
여보게 이웃 사람들아, 산수 구경이나 가자꾸나.
답청은 오늘하고, 냇물에 가서 목욕하는 일은 내일 하세.
아침에는 산에서 나물을 캐고, 저녁때에는 낚시질하세.
이제 막 발효하여 익은 술을 갈포로 만든 두건으로 걸러 놓고
꽃나무 가지 꺾어서 잔 수를 세며 먹으리라.
화창한 봄바람이 문득 불어 푸른 물결을 건너오니
맑은 향기는 술잔에 가득히 담기고, 붉은 꽃잎은 옷에 떨어진다.
술동이가 비었거든 나에게 알리어라.
아이를 시켜 술집에 술이 있는지를 물어서
(술을 사다가) 어른은 지팡이를 짚고 아이는 술동이를 메고
나직이 읊조리며 천천히 걸어서 시냇가에 혼자 앉아
맑은 모래 위로 흐르는 깨끗한 물에 잔을 씻어 부어 들고, 맑은 시냇물을 굽어보니
떠내려 오는 것이 복숭아꽃이로구나.
무릉도원이 가깝구나, 저 들이 무릉도원인가 ?
소나무 숲 사이로 난 오솔길에서 진달래꽃을 붙들고
산봉우리 위에 급히 올라 구름 속에 앉아보니
수많은 촌락이 여기저기 널려 있네.
안개와 노을과 빛나는 햇살은 수놓은 비단을 펼쳐 놓은 듯하구나
엊그제까지 거뭇거뭇하던 들판에 봄빛이 넘쳐흐르는구나.
공리와 명예도 나를 꺼리고, 부귀도 나를 꺼리니
맑은 바람과 밝은 달 외에 그 어떤 벗이 있겠는가
누추한 곳에서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헛된 생각을 아니 하네.
아무튼 한평생 즐겁게 지내는 일이 이만하면 족하지 않겠는가?
[💛시어 풀이]
* 홍진(紅塵) : 벌겋게 이는 먼지. 번거롭게 속된 세상.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
* 미칠가 : 따를까
* 날 만한 이 : 나만한 사람이. 나 같은 사람이
* 하건마는 : 많건마는
* 마랄 것가 : 모르는 것인가
* 수간모옥(數間茅屋) : 작은 초가. 초가삼간. ‘모옥(茅屋)’은 띳집. ‘띠’는 풀이름
* 벽계수(碧溪水) : 푸른 시냇물
* 앏픠 : 앞에
* 울울리(鬱鬱裏)예 : 빽빽하게 우거진 속에
* 풍월주인(風月主人) : 자연을 즐기는 사람. 소동파의 ‘적벽부’에 나오는 표현
* 되여셔라 : 되었구나
* 겨을 : 겨울
* 퓌여 : 피어
* 말아 낸가 : 말아(마름질하여) 내었는가? 재단하여 내었는가?
* 조화신공(造化神功) : 조물주의 신비스러운 능력
* 헌사롭다 : 야단스럽다. 굉장하다
* 못내 계워 : 끝내 이기지 못하여. 겨워
* 소요음영(逍遙吟詠) : 나직이 시부(詩賦)를 읊조리면서 거니는 것
* 산일(山日) : 산 속의 하루
* 한중진미(閑中眞味) : 한가한 가운데서 맛보는 참된 즐거움
* 알니 : 알 사람이
* 호재로다 : 혼자이로다
* 이바 : 여보시오. 감탄사
* 니웃드라 : 이웃들아. 실제로 주위에는 다른 사람들이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이웃들은 바로 나 자신으로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 가쟈스라 : 가자꾸나
* 답청(踏靑) : 봄에 파랗게 난 풀을 밟음. 청명절(淸明節)에 교외를 산책하며 자연을 즐기는 중국 풍습
* 욕기(浴沂) : 기수에서 목욕하다. 즉 물놀이
* 채산(採山) : 산나물을 캐고. ‘採山’은 ‘採山菜(채산채)’의 준말이다.
* 나조해 : 저녁에
* 조수(釣水) : 낚시질하세. ‘釣水魚(조수어)’의 준말이다.
* 갈건(葛巾) : 칡베로 만든 두건. 여기서는 술을 걸러 마시는 도구로 사용됨. 도연명의 ‘갈건녹주(葛巾綠酒)’를 인용한 말
* 밧타 노코 : 걸러 놓고
* 수 노코 : 수를 세고
* 화풍(和風) : 화창한 봄바람. 和風=春風=東風=샛바람
* 청향(淸香) : 맑은 향기
* 낙홍(落紅) : 떨어지는 꽃잎
* 옷새 진다 : 옷에 떨어진다.
* 준중(樽中) : 술독
* 뷔엿거든 : 비었거든
* 날다려 : 나에게
* 알외여라 : 말하여라. 알리어라.
* 아해 : 아이[兒(아)]
* 술을 믈어 : 술이 있는가 물어 보아
* 얼운 : ‘얼다’에서 파생한 말로 ‘어른’을 이른다.
* 명사(明沙) : 곱고 깨끗한 모래
* 조 : 좋다. 깨끗하다[淨(정)]
* 시어 : 씻어
* 청류(淸流) : 맑게 흐르는 냇물
* 떠오나니 : 떠오는 것이
* 무릉(武陵) :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늙지도 죽지도 않는 이상향(理想鄕)을 상징
* 메이 : 들[野(야)]이
* 긘 : 그것인
* 거인고 : 것인고.
* 송간(松間) : 소나무 사이
* 세로(細路) : 좁은 길
* 두견화(杜鵑花) : 진달래꽃
* 봉두(峰頭) : 산봉우리
* 소긔 : 속에
* 천촌만락(千村萬落) : 수많은 촌락
* 버러 잇네 : 널려 있네. 벌여 있네.
* 연하일휘(煙霞日輝) : 안개와 놀과 빛나는 햇살. 아름다운 자연
* 금수(錦繡) : 수놓은 비단
* 재폇는 듯 : 쫙 펼친. 쫙 펼쳐 놓은 듯
* 유여(有餘)샤 : 넘치는구나.
* 공명(功名) : 공을 세우고 이름을 드러냄. 공리와 명예
* 끠우고 : 꺼리고. 싫어해 따르지 않고
* 청풍명월(淸風明月) : 맑은 바람과 밝은 달. 소동파의 ‘적벽부’에 나오는 구절로 자연을 의미하는 말. 준말로 ‘풍월’이다.
* 잇사올고 : 있을까
* 단표누항(簞瓢陋巷) : 소박한 시골 살림. 청빈한 선비의 살림. ‘단표’는 ‘簞食瓢飮(단사표음-도시락 밥과 표주박 물)’의 준말로 가난한 음식과 생활을, ‘누항’은 누추한 거리를 뜻하나, 여기서는 자기가 사는 마을을 낮추어 일컫는 말로서 빈촌(貧村)을 말함
* 흣튼 : 흩어진. 번잡한
* 혜음 : 생각
* 아모타 : 아무튼
* 백년행락(百年行樂) : 한평생을 즐겁게 지냄
* 엇지하리 : 어떠리. 어떠하냐
개괄]
- 지은이 : 정극인(丁克仁 1401-1481) 조선 전기 문신·학자. 호는 불우헌. 세종 때 등과 하지 못하고 세종의 흥천사 토목 공사에 항의하다가 북도로 귀양, 그 뒤에 풀려나 전라도 태인에 불우헌이라는 정자를 짓고 은거, 문종 때 6품 벼슬을 제수받았다가 단종 때 급제,이어 단종이 세조에게 양위하자 벼슬을 사임하고 태인에 다시 은거, 그 후 다시 출사하여 10년 간 여러 관직을 거쳐 1470년(성종 1년) 치사, 귀향 후 추진 양성에 힘썼다. 영리에 힘쓰지 않고 교육에 힘썼다고 성종이 3품 산관의 은영을 내리자, 이에 감격하여 ‘불우헌곡’과 ‘불우헌가’를 지어 송축하였다.
- 갈래 : 서정 가사. 정격 가사. 양반 가사
- 연대 : 성종 때
- 율격 : 3.4조 4음보
- 문체 : 운문체. 가사체
- 구성 : 서사, 본사[춘경(春景)·상춘(賞春)], 결사의 3단 구성
- 성격 : 주정적, 서정적
- 주제 : 봄의 완상(玩賞)과 안빈낙도(安貧樂道)
- 형태 : 39행, 79구, 매 행 4음보(단 제 12행은 6음보)의 정형 가사로, 4음보 연속체의
율문
- 표현상의 특징 : 설의법, 의인법, 대구법, 직유법 등의 여러 표현 기교를 사용하고, 고사를 많이 인용하면서 작품 전체를 유려하게 이끌고 있다.
- 내용상의 특징 : 봄을 완상(玩賞)하고 인생을 즐기는 지극히 낙천적인 내용이다.
- 전개 과정 : 화자는 좁은 공간(수간모옥)에서 점점 넓은 공간(들판, 산 위)으로 나아가는 공간 확장에 의한 전개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 의의 : ① 상춘곡- 송순 면앙정가, 정철 성산별곡으로 이어지는 강호가도의 시풍 형성.
② 조선 시대 사대부 가사의 첫 작품.
③ 산림처사로서의 생활을 은일 가사의 첫 작품으로 사림파 문학의 계기를 마련한 작품이다.
- 출전 : 불우헌집(정조 10년 1786년)
[작품 해제]
‘상춘곡(賞春曲)’이란 ‘봄 경치를 구경하며 즐기는 노래’란 뜻이다. 우리 나라 가사 문학의 효시라고 평가되는 이 작품을 통하여 가사의 형식과 특징을 파악하고, 아울러 안빈낙도(安貧樂道)하던 선인(先人)들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다.
39행, 79구, 매행 4음보(단, 제12행은 6음보)의 정형 가사이며 양반 가사인 이 작품은 산중에 거처하며 봄날의 흥취에 한껏 젖어 온갖 풍류의 즐거움을 느낀다. 높은 산에 올라 수 많은 마을을 바라보니 더욱 아름답다. 이러한 자연의 품 안에서 부귀와 공명을 욕심 내지 않고 청풍과 명월을 벗하는 안빈낙도의 생활 자세를 지니며 살아가겠다는 내용의 ‘상춘곡’은 가사 문학의 첫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고려 말의 승려인 나옹화상 혜근(懶翁和尙惠勤)이 지었다는 ‘서왕가(西往歌)’가 이 갈래 문학 작품의 시작이라는 학설도 있다. 한편, 이 노래는 자연에 묻혀 사는 즐거움을 표방하는 은일 가사(隱逸歌辭)의 첫 작품으로, 또한 송순과 정철로 이어지는 호남 가단(湖南歌壇) 형성의 계기가 되는 작품으로도 평가된다.
서사, 본사, 결사로 나누어 감상하면 다음과 같다.
서사(紅塵에-되여서라) : 전문의 서사로 명리(名利)를 떠나서, 자연에 묻혀 고답적(高踏的)인 생활을 하는 즐거움을 낙천적인 시풍으로 표현하였다. 소나무와 대나무가 울창한 가운데 배산임수(背山臨水)로 초가삼간을 지어 놓고, 자연에 몰입하여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작가의 모습을 한 폭의 신선도(神仙圖)를 펼쳐 놓은 것 같다.
본사1(엇그제-호재로다) : 복숭아꽃과 살구꽃, 푸른 버들과 꽃다운 풀은 분명 조물주가 만들어 놓은 미술품 같은데, 작가는 이런 봄 경치에 도취되어 집 앞을 거닐며 앉으며 읊조리면서 한중진미(閑中眞味)를 만끽하고 있다는 것이다. 봄을 맞는 흥겨운 기분이 잘 드러나 있다.
본사2(이바-有餘샤) : 무릉도원처럼 느껴지는 춘경(春景) 속의 흥취를 노래한 것으로,
진달래꽃을 꺾어 들고 높은 산에 올라가 수놓은 비단을 펼쳐 놓은 듯한 봄 들과 촌락을 바
라보는, 작가의 자연에 몰입한 청아(淸雅)한 풍모가 잘 나타나 있다.
결사(功名도-엇지리) : 부귀공명 따위는 세속적인 것과는 인연이 없고, 다만 아름다운 자연만이 나의 벗이다. 이 속에서 안빈낙도(安貧樂道)하면서 평생을 지내는데 세상에 부러울 것이 있을 리 없다. 중국 상대의 은사(隱士)의 생활을 방불케 한다. 배경에 흐르고 있는
사상은 유교적인 청빈 사상(淸貧思想)이다. 이 노래 전체의 결사로서 작가의 낙천적인 인생관이 잘 반영되어 있다.
출처 : 행복가족연사모
글쓴이 : 思岡 안숙자 원글보기
❤️귀전록(歸田錄)3수 / <이현보(李賢輔)>1
1수.
歸去來(귀거래) 歸去來하되 말뿐이요 갈 이 없어
田園(전원)이 將蕪(장무)하니 아니 가고 어찌 할고
草堂(초당)에 淸風明月(청풍명월)이 나명 들명 기다리느니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고 하여도 모두들 말뿐이요, 참으로 돌아가는 사람은 없더라. 고향의 논밭과 산이 점차 거칠어져 황무지가 되고야 말 터인데, 아니 가면 어찌할 것이랴! 더욱이 시원한 바람과 밝은 달빛이 들락날락하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도다.
2수.
聾岩(농암)에 올라보니 老眼(노안)이 猶明(유명)이로다
人事(안서) 變(변)한들 山川(산천)이딴 가실까
岩前(암전)에 某山某丘(모산머구)도 어제 본 듯 하여라
물가에 우뚝 선 농암(聾岩)에 올라가서 사면을 바라 보니, 이 늙은이의 눈이 오히려 밝게 보인다. 사람들이 하는 일에는 변화가 있을지언정, 산천이야 변할 리가 있겠는가? 바위 앞에 산과 언덕들은 어제 본 바와 같이 아무런 변화가 없구나.
3수.
功名(공명)이 그지 있을까 壽夭(수요)도 天定(천정)이라
金犀(금서)띠 굽은 허리에 八十逢春(팔십봉춘) 긔 몇 해오
年年(연년)에 오늘 날이 亦君恩(역군은) 이셨다
공훈을 세워 이름을 천하에 드날림에 어찌 한도(恨度)가 있으랴? 또 장수(長壽)하고 단명 하는 것도 모두 하늘이 정하신 바이다. 이미 늙어서 굽은 허리에다 공명의 보람인 고관대작이 띠는 무소(코뿔소)의 뿔로 만든 띠(帶)를 띠고서 나이 팔십을 넘겨 새봄을 맞음이 벌써 그것이 몇 해나 거듭했던고! 해마다 오늘의 생일을 즐거이 맞게 된 것도 생각해 보면, 역시 상감께서 은덕을 베풀어 주심이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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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보(李賢輔: 1467~1555): 조선 중기의 문신(1467~1555). 자(字)는 비중(棐仲), 호(號)는 농암(聾巖)또는 애일당(愛日堂) 이다. 연산군(燕山君) 때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부제학(副提學), 호조참판(戶曹參判)을 거쳐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렀으며, 관직을 물러나서 고향인 예안(禮安)으로 돌아가 물살이 센 낙동강변(洛東江邊)에서 한가롭게 지냈다. 강변(江邊)의 동쪽비탈에 큰 바위가 있어 한쪽이 물에 잠겼는데, 높이는 여남은 길이 됨직 하며, 비스듬히 누워서 신기롭게 솟아 있다. 그는 이 바위 위에다 초막(草幕)을 지어놓고 어버이를 위한 놀이터로 만들고, 애일당(愛日堂)이라고 불렀다. 이로 말미암아 스스로 호(號)를 <농암(聾岩)>이라 하였으니, 물살이 바위를 스치며 급한 여울을 이루고 물이 불어나면 초막에 앉아 있어도 아래서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므로, 이 바위를 ‘귀머거리 바위’라는 뜻으로 ‘농암(聾岩)’이라 부르게 되었다. 만년에 고향인 경북(慶北) 예안(禮安)으로돌아가서 낙동강(洛東江)상류(上流)의 산수를 즐기며 시작(詩作)과 음영(吟詠)으로 여생(餘生)을 보내다가 89세(歲)의 고령(高齡)으로 졸(卒)하였다. 작품에는 예로부터 전해오던<어부사(漁夫詞)>를 개작(改作)하였고,<춘면곡(春眠曲)>,<효빈가(效嚬歌)>와, <농암집(聾巖集)>을 남겼다.
💛
*大東에는 作家가 金守廉으로 表記됨.
작자가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쓴 3수(#효빈가 , #농암가 , #생일가 )의 시조이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평온함을 찬미하며, 세속의 번잡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소망을 그려낸다. 작품은 자연 속에서의 소박한 삶을 이상적으로 그리며, 당시 사회의 부조리와 정치적 혼란을 비판하는 동시에,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의 가치를 강조하고, 임금의 은혜를 강조하며 마무리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강호가도(江湖歌道)이며, #귀거래사 로 볼 수 있다.
❤️두암육가 / 김약련
제1수.
어져 내 일이야 무슨 일 하다 하고
굳은 이 다 빠지고 검던 털이 희었네
어우와 소장불 노력하고 노대에 도상비로다
(아 내일이야. 무슨 일 하려 하고
굳세던 이 다 빠지고 검던 털이 희었다.
젊어서 노력하지 않고, 늙어서 삼심과 슬픔뿐이로다)
제2수.
셋 넷 다섯 어제인 듯 열 스물 얼핏 지나
서른 마흔 한 일 없이 쉰 예순 넘는단 말인가
장부의 허다 사업을 못 다 하고 늙었느냐
(셋 넷 다섯이 어제인 듯 열 스물 얼핏 지나
서른 마흔 한 일 없이 쉰 예순을 넘는단 말인가
대장부의 많은 일을 다 못하고 늙었느냐)
제3수.
생원이 무엇인가 급제도 헛일이니
밭 갈고 논 매더면 설마한들 배고프리
이제야 아무리 애달픈들 몸이 늙어 못하올쇠
(생원이*소과인 생원과에 합격한 사람*무엇인가 과거 시험 합격도 헛일이니 밭 갈고 논 맸다면 설마 배고프겠느냐
이제 아무리 속삼한들 몸이 늙어서 못한다.)
제4수.
너희는 젊었느냐 나는 이미 늙었구나
젊다 하고 믿지 마라 나도 일찍 젊었더니
젊어서 흐느적흐르적하다가 늙어지면 거짓 것이
(너네는 젊었느냐, 나는 이미 늙었다.
젊다고 믿지 마라 나도 일찌기 젊었더니
젊어서 흐느적흐느적하다가 늙으면 거짓말처럼 허망한 것이 생활이나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자꾸 헤매는 모양.)
제5수.
재산인들 부디 말며 과갑인들 마다할까
재산이 유수하고 과갑은 재천하니
하오면 못할 이 없기는 착한 일인가 하노라
(재산인들 거절하며 과거급제인들 마다 할까
재산은 운수가 있어야 하고 과거급제는 하늘에 달려
있으니 그렇다면 못할 것이 없기는 착한 일인가 한다.)
제6수.
내몸이 못하고서 너희더러 하라기는
내 못하여 애달프니 너희나 하여라
청년의 아니하면 늙은 후 또 내 되리
(내가 못하고서 너네보고 하라고 하기는
내가 못하여 슬프니 너네가 하여라.
청년이 안하면 늙은 후에 또 내가 된다)
●해석💜
하얗게 센 머리를 들여다보며 대장부로서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늙어버린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한 후회와 한탄을 드러내는 한편,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이들이 경계해야 할 일과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는 작품이다. 화자는 재산 축적이나 과거 급제와 같이 운수나 하늘의 뜻에 달린 일보다는 자신의 노력으로 이롤 수 있는 착한 일을 할 것을 젊은이들에게 권유하며, 젊어서 노력하지 않으면 늙어서 자신과 똑같은 신세가 될 것이라는 경고도 잊지 않고 있다.
❤️노부탄(老婦歎) / 순천김씨
산너머 저 부자님 곡식 두고 자랑마오
입고 벗고 먹고 굶기 그 무엇이 관계한가
부세에 좋은 영광 과거밖에 또 있는가
하물며 모인 사람 한결같이 하는 말이
일 년에 대소과는 평생 끽착 못다 하리
규중에 어리석은 부녀 그 말을 믿었더니
벼슬길에 못 올라서 귀향은 무슨 일인가
지은 죄 없건마는 노하시니 천은일세
머나먼 변방 길에 가네 오네 빚이로다
팔고 남은 적은 밭을 또 한 자리 판단 말인가
이제는 남은 전지 역농이나 하자 하니
어릴 때 엇나간 임을 내 어이 길들이리
(중략)
아무 마을 아무 택은 자기 가장 자랑 말이
아기 때 스승 따라 천자문과 유합을 배우더니
가난에 놀랐는지 책을 묶어 시렁에 얹고
괭이 메고 호미 쥐어 논 매고 발을 가꿔
여름에 수고하여 가을에 타작하니
집안 식구 배 불리고 환곡 세금 격정없네
이 아니 신선인가 과거 하여 무엇하리
나도 그 말 들어 갑자기 깨달으니
글공부 하던 허비 과거 보던 이 비용을
다 두어 전지 사고 부경부엽 하였다면
저 부인 저 남편을 설마한들 못 미치겠는가
부질없는 이 말씀을 시원히 하자한들
있느니 없는 말씀 들으시기 싫으신지
마루 위 문안으로 들이시지 않으시니
초당의 손님 가고 고요히 계실 때에
손자딸 옆에 끼고 부엌 웃문을 여니
천황씨 벗님 가장 찬 장판 위에 앉아
무슨 사업 또 하시려 책장을 펴 씨름 하네
문 밖에 권농차사 문관이라 두려웠는지
차지는 두고 가오 내일 부디 바치소서
그는 좋게 마감하나 저 아이 소리 듣소
어제 아침 먹은 후에 다시 입을 못 데우니
분별없는 제 마음에 두고 아니 주는 듯이
저런 일 생각하니 그 누구 탓이 된다 하리
책덮고 돌아앉아 나에게 하는 말씀
인황씨 몇 대 손자 수인씨 되었던지
절로 맺은 나무 열매 먹고 좋게 살던 것을
수인씨 다사하여 교인화식 하였구나
우리 부부 굶는 일은 그 탓이 수인씨요
구만리 높은 위에 옥황상제 앉아 계셔
천하 사람 부귀 빈천 마련하여 주었으니
굽는 탓 물으련들 어이하여 올라가리
탓 물어 무엇하리 하늘만 기다리오
구태여 저 상제님이 무록인을 내었을까
나도 이 말 듣고 말하여 무익하오
문 닫고 돌이켜 생각하니 오냐 어이하리
세상에 굶고 벗고 글하다가
과거도 못한 사람 많으니라
* 찍착: 의복과 음식을 아울러 이르는 말.
*부경부엽: 남편은 밭 갈고, 아내는 점심을 내감.
* 권농차사: 조선 시대에 농사를 장려하던 직책.
* 차지: 세금 통지서.
* 수인씨: 중국 전설상의 황제.
*교인화식: 불로 음식을 조리하는 방법을 가르침.
*무록인: 녹봉이 없던 벼슬아치.
고1, 2023년 11월 문항3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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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탄'은 조선 후기 순천김씨 여성이 쓴 '늙은 부인의 탄식'이라는 뜻의 한글 가사로, 남편의 과거 뒷바라지와 재산 문제로 인한 일생의 회한을 담아낸 작품이며, 이는 부부의 삶을 다룬 문학으로 교육과정에도 소개된 중요한 고전 문학 작품입니다. 순천김씨는 신라의 김알지 후손으로 김총(金摠)을 시조로 하는 가문이며, 평양군에 봉해져 순천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전해집니다.
노부탄(老婦歎)
*의미: '늙은 부인의 탄식'이라는 뜻으로, 순천김씨 부인이 자신의 삶을 탄식하며 쓴 작품.
*내용: 남편 뒷바라지와 재산 문제 등 삶의 애환을 담았으며, 최초의 부부화답가로 평가받는 '답부사'와 함께 다뤄짐.
*특징: 조선 후기 향촌 지식인 여성의 삶과 부부 관계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중요한 자료.
순천김씨(順天金氏)
*시조: 신라 왕족 출신으로 인가별감(引駕別監)을 지낸 김총(金摠)을 시조로 함.
*본관 유래: 시조 김총이 평양군(平陽君)에 봉해졌는데, 평양은 순천의 옛 지명으로 후손들이 본관을 순천으로 삼았다고 함.
*특징: 시조 김총은 김알지 후손으로 신라 왕실과 관련이 있다고 전해지며, 후손들이 안동 등지에 세거하며 가문을 형성.
관련 정보
'노부탄'은 교육과정에서 다루는 작품으로, 고등학교 문학 시험 등에 출제되기도 함.
*관련 인물: 순천김씨의 남편인 김약련(金若鍊)이 '답부사'를 썼으며, 이 부부의 작품은 당대 삶을 보여주는 문학으로 연구됨
영남 선비들은 가문의 지체에 따라 격이 비슷한 집안끼리 혼사를 맺었다. 중매로 연을 맺은 그들 사이에 부부 사랑이 있기는 있었을까. 남편은 과거 공부와 글 읽는 것이 일상의 전부였고 살림을 꾸려나가고 재산을 늘리는 것은 오로지 아내의 몫이었다.
열아홉에 인연을 맺어 40여 년을 함께 살다가 회갑을 맞은 늙은 아내는 한평생을 돌아보며 가사를 지었고 남편은 답가로 화답했다. 우리 문학사에 보기 드문 부부 가사가 최근에 발굴됐는데 영주선비 두암 김약련 부부가 쓴 노부탄(老婦歎)과 답부사(答婦詞)이다. 거기에는 영남양반가 여인의 삶, 과거 공부와 가족의 헌신, 억울한 귀양과 평생 없는 벼슬 운, 선비의 아내 사랑이 잘 나타나 있다.
◆두암 김약련과 부인 순천김씨💛
예안(선성)김씨 두암 김약련(1730~1802)은 세종 때 우리 역법 칠정산을 만든 이조판서 김담의 후손이다. 김담의 현손이 퇴계 제자로 대사헌을 지낸 김륵인데 두암의 6대조이다. 두암은 1774년(영조50년) 비교적 늦은 나이인 45세에 과거 급제하여 승정원 가주서에 보임됐다. 벼슬살이 2년 차 정조 원년에 계촌 이도현이 올린 사도세자 신원소에 연루돼 평안도 삭주로 유배됐다. 계촌의 취조에서 두암의 이름이 나왔다고 동조자로 엮이어 정배죄인이 됐고 귀양 5개월 만에 정조의 배려로 풀려나 낙향했다.
이후 16년 동안 노론 조정에서 벼슬을 하지 못했고 1792년 영남만인소에 몇 안 되는 전직관리로 이름을 올렸다. 정조는 오래전에 마음의 빚이 있었던 두암이 초야에 있음을 알게 됐고 이듬해 특명으로 의망(擬望·관리후보)에 올려 다시 가주서에 보임했다. 좌랑·지평·헌납이 연이어 보임됐으나 이미 환갑을 훨씬 넘긴 나이에 제대로 근무할 수 없었다.
1800년 71세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세자 책봉 하례에 참석했고 통정대부에 올라 노직당상관이 됐다. 참의, 승지에 잇달아 제수됐으나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고 73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부인 순천김씨는 류성룡의 제자로 대구부사를 지낸 동리 김윤안의 후손이다. 안동의 순천김씨 집안은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에 명신 김종서가 목숨을 잃고 멸문에 이르자, 일족인 예조참의 김유온이 화를 피해 처가 고을인 안동으로 낙남했다. 김유온의 장인은 상주목사를 지낸 권집경으로 여말의 권신 권한공의 증손이고 벌족 성주이씨 이인임의 사위이다.
안동으로 낙남한 순천김씨 집안은 과거 급제자가 여럿 나오고 광산김씨, 순흥안씨 등과 혼반을 맺어 가세를 넓히고 낙동강변의 풍천 구담에 오백 년 세거지를 만들었다.
이렇듯 조선 초기부터 영남 북부 사족이던 예안김씨와 순천김씨 두 집안은 혼인으로 세교를 맺어 '부부사랑가'가 탄생됐다.
◆순천김씨의 노부탄
과거밖에 또 있는가/ 하물며 모인 사람 한결같이 하는 말이/ 한 해에 소과 대과는 평생 끽착(喫着·음식과 의복) 못다 하리'
승정원 겸춘추 벼슬살이는 1년8개월 만에 끝나고 관서 귀양길에 오른다. '환로(宦路·벼슬길)도 못 올랐는데 귀양은 무슨 일인고/ 지은 죄 없건마는 노하시니 천은(天恩)일세/ 머나먼 관새(關塞)길, 가네 오네 빚이로다/ 팔고 남은 작은 밭을 또 한 자리 판단 말인가.'
조선시대 귀양 죄인은 자기 부담으로 숙식을 해결하며 귀양지로 갔다. 호송관리가 있었으나 동행하지 않았고 귀양지에서도 돈이 없으면 비참하게 살았다. 의복과 침구 등의 물품은 자기 돈으로 마련해야만 했고 귀양살이 어려움에 가난은 더 큰 고통이었다.
낙향 후 아내는 남은 밭에 농사나 짓자고 하니 어릴 적 농사일을 배운 적 없는 남편, 이제 어찌 가르치겠느냐며 단념한다. 글 짓네 쓰네 하면서 지필묵만 찾으니 '옥황상제님은 녹봉 없는 벼슬아치를 왜 내어주었을까? 하늘을 원망하다 돌이켜 생각하니 세상에 굶고 못 입고 글 하다가 과거도 못 한 사람 많다' 고 끝을 맺는다.
◆두암의 답부사
두암이 아내의 글에 답해 쓴 답부사는 96구절로 된 한글가사이다. 정조 특명으로 다시 벼슬길을 나서기 4년 전, 1789년 59세 때 지었다. 두암이 열여덟, 순천김씨가 열아홉에 부부 연을 맺었고, 아내는 스물다섯 살 남편이 창경궁 춘당대 과장(科場)에 간다고 나서니 황소를 팔아 열냥을 노자로 주었다. 두암은 이 과거를 헛되이 보내고 다음 식년시도 또 지나간다고 했다.
불혹을 넘겨 어렵게 등과한 감격을 이렇게 썼다. '벽소련 봄에 꺾고 계전화 겨울에 피여/ 빈가의 도문연(到門宴·과거잔치)을 일 년 중 거포하고/ 부녀를 위로코져 세속 말로 하였으되/ 홍지(紅紙)에 제명(題名)하기는 장부의 내 일이라'
영조 치하에 영남 선비의 과거급제는 무척 어려웠다. 어려움 속에 등과했으니 가난한 살림에 잔치를 크게 열었고, 소과는 백패를 받으니 흰 연꽃으로, 대과는 복두에 계화 꽃가지를 꽂으니 '계전화'라 했다. 부인에게 쓰는 글이라 한글로 썼지만 교지를 받고 조정 출사가 장부의 길이라 했다.
◆아내에게 드리는 사랑의 노래
후반부는 아내에 대한 사랑의 노래이다. 선비의 근엄함은 어디에도 없고 40년을 해로한 아내 사랑이 넘쳐 흐른다.
'늙은 부인 들어 보오/ 돌밭에 풍년들면 환자(還子)빚 능히 갚고/ 썩은 집에 비 오거든 응차리 저기 있네/ 햇조밥 정히 지어 우리 둘 드리거든/ 맛나게 먹고 앉자 근심 없이 좋게 있자/ 굳은 이 다 빠지고 검은 머리 희였으니/허송한 저 광음이 아깝다 하련마는/ 우리는 이럴망정 결발(結髮)부부 아니던가'
'금년은 임자 회갑, 내년은 내 나던 해/ 행여나 더 살아서 우노전(優老典. 노령에 받는 은전) 입게 되면/ 귀 뒤에 금옥관자, 허리에 붉은 띠를/ 내 그걸 하려니와 부인첩(帖) 자네 타리/ 이것도 하늘이니 기다려 보옵시소'
'천년을 다 살고서 한 가지로 돌아가면/ 뒷사람 말에서 내려 이 무덤 유복하다/ 백세를 함께 살고 자손도 많고 많아/ 알음이 있을진대 그 아니 즐거운가/ 부인도 내 말 듣고 싱긋이 웃노매다/ 어우와 부세인생 이렁구렁 즐기리다'
아내가 글 짓고 남편이 화답한 조선 선비의 아름다운 부부사랑 이야기는 두암이 직접 쓴 필사본 두암제영(斗庵題詠)에 수록돼 있으며 한 권만 전해온다. 안동에는 원이엄마 한글편지가 있듯이 영주에는 두암부부의 한글가사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