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열전 2〉9th〈웃음의 대학〉
[웃음의 대학]은 연극열전 9번째 작품입니다. 어느덧 연극열전 시리즈도 막바지에 이르고 있는데 다음 달 개막하는 [민들레 바람되어]가 마지막 주자가 되겠습니다. 연극열전2 작품 중 극장 규모가 가장 큰 작품이 [웃음의 대학]입니다. 요란한 선전과 달리 연극열전 작품들은 200석 내외 극장 위주로, 소박한 규모의 극들이 대부분이었죠. 시리즈 7탄까지는 티켓 값과 할인률, 극장 규모에 일정한 규정으로 독자성을 확립해나갔는데 8탄인 [잘 자요, 엄마]보다도 더욱 동떨어진 노선을 걷는 작품이 [웃음의 대학]입니다. 일단 이 작품은 더블캐스팅이 없고 약 2달 일정을 채웠던 다른 공연들과 달리 겨우 6주 공연이며 유일하게 2층까지 있는 중극장에서 올려지는 작품입니다. 처음엔 프리뷰 기간도 없이 일주일간 전일 전석 30%할인 이벤트를 벌였는데 후에 다른 공연들과 마찬가지로 8일간의 프리뷰 기간을 두더군요. 티켓 값은 제일 비싼 공연이지만 프리뷰 할인과 사전 예매 할인 기간을 넉넉하게 둔 덕분에 종영까지 과반 이상의 티켓이 팔려나갔습니다.
예매오픈과 동시에 높은 예매율을 보이며 연일 연극 예매율 1위를 달려서 선 예매 못하면 당일치기 관람은 못 할 줄 알았습니다. 그간의 연극열전 작품들이 다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이 작품은 아직도 자리 구하기 쉽습니다. 연극열전 인지도와 황정민의 스타성이 부담스럽지 않은 코미디 장르라는 것과 맞물려 다른 연극열전 작품과 비교되게 사전 예매가 폭발적인데도 불구하고요. 그만큼 연극 수요층이 얇다는거죠. 동숭홀 객석규모가 400석 조금 넘는데 그게 꽉꽉 채월질 만큼의 열기는 아닌겁니다. 이는 뮤지컬도 마찬가지입니다. 작년에 [맨 오브 라만차]가 오픈했을 때 조승우 나오는 날은 전일 매진될 거란 예상과 달리 일부 객석이 꽤 남았던 걸 보면 단기 공연이 아닌 이상 아직까지 진짜 매진이 되는 경우를 보이려면 200석 내외의 소극장이 한계인 것 같습니다.
[웃음의 대학]은 일찌감치 연극열전2 목록에 올라왔던 작품이고 문성근,황정민 캐스팅도 정해져 있었는데 캐스팅 때문에 특히 보고 싶었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문성근과 황정민이 나오는 연극열전 작품이란 이유가 크게 매력적이었던 거죠. 이 둘을 가장 인기있는 연극시리즈의 한 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설렘이 대단했는데 예매 오픈 때 요즘 몇 년 만에 드라마를 2편씩이나 찍느냐고 바쁜 문성근의 일정 때문에 송영창으로 대체되었다는 공고를 보고 이 작품에 대한 관심이 반은 줄어버렸습니다. 그래도 연극열전 작품이고 원작자에 대한 신뢰가 있어서 보기를 감행했죠.
확실히 스타캐스팅은 돈 안 들이고도 알아서 실시간 뉴스를 뜨게 만드는 위력입니다. 어제가 공연 개막날이었는데 관객에게 선보이기 전에 기자 대상으로 시연과 간담회를 했죠. 대학로에 일찍 도착해서 시간 떼우느라고 PC방에 갔는데 황정민 덕택에 시연회와 기자간담회 결과 보고가 부지런히 올라와 홍보지 말고는 공연에 대한 객관성을 전혀 알 수 없는 작품에 대한 불안함을 희석시킬 수 있었습니다. 개막 공연답게 객석은 꽉 찼더군요.
한 2번 웃었나?
연극열전이 호감가질 만한 원작입니다. 연극열전2는 초연과 창작극 위주로 집중했습니다. [웃음의 대학]은 아직 몇 군데 돌지도 않았고 2인극에 소박한 실내극이니 전체 구성과 일맥하는 요소가 많죠. 연극열전으로선 다시 한번 생경한 작품을 발굴했다는 안목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좋은 연극을 소개해서 성공시켰다는 포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며 영화 출연하기도 바쁜 황정민같은 스타를 오로지 작품만으로 끌어들였다는 품위를 지킬 수 있겠지요.
유독 코믹 요소가 부각된 우리 나라 포스터와 부클릿은 유치하고 조악하지만 그래도 한 번에 인식될 만큼 노골적이라 효과적이긴 합니다. 스타도 보고 재미있는 공연에 만족하고자 하는 관객들에 기대는 개막 공연을 보니 웬만큼 충족시킨 듯 보입니다. 많은 장면에서 웃음을 주었고 커튼 콜에서 열띤 박수를 받았으며 전반적으로 작품에 대한 호응이 좋았어요. 공연 끝나고 나오면서 사람들 하는 얘기도 공연에 대한 높은 만족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화 먼저 본 관객들은 영화와 비교하며 재미를 따지기도 했고요. 저에겐 글쎄요. 별로 재밌지 않았어요. 한 2번 웃었나? 캐릭터 입체성도 떨어지며 그저 그런 구성에 별로 흥미롭지 않은 말 장난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전개를 맥빠지게 따라간 과정이었습니다.
배우들은 신통치 않습니다. 송영창은 소주 3병은 먹은 사람처럼 불명확한 발음과 답답한 발성으로 씹히는 대사가 한 두개가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대사 소화가 감칠맛 낫던 것도 아닙니다. 거기다 캐릭터를 너무 단순하게 표현하는 바람에 이 배역이 담고있는 페이소스와 아이러니가 반감됩니다. 제대로 소화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작위적이기까지 해요. 발성과 발음에 자신없다면 그렇게 대사를 빨리 구사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혀꼬부란 소리가 내내 거슬렸습니다. 반면 황정민은 송영창에 비해 2배에 가까운 대사가 주어졌음에도 발음이 새거나 씹히는 경우는 없었고 발성도 좋았습니다. 단 이런 배역이 황정민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지요. 황정민의 강한 남성성과 원색적인 이미지가 섬세하고 유약하며 미묘한 미망이 어려있는 작가 역을 맡기엔 그는 너무 세파에 물든 사람 같단 말이에요. 이런 배역을 맡을 때 황정민은 자연스럽지 못하고 연기하고 있다는 게 보입니다. 좀 더 어리거나 순수한 이미지의 배우가 했으면(가령 김영민 같은 배우가 했다면) 캐릭터 대비도 됐을 것이고 시대의 모순도 절감할 수 있었을 겁니다. 두 배우는 프리뷰를 티를 내며 심심찮게 대사를 버벅됐습니다.
일본 작품답게 작은 이야기 속에서 큰 주제를 발견하고자 하는 작품입니다. 국내에는 [웰 컴 투 미스터 맥도날드]로 잘 알려진 미타니 코우키는 이런 식으로 주제를 함축시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풍자극을 주로 쓰는 것 같은데 [웃음의 대학]도 마찬가지입니다. 권력 앞에 비굴하고 독단과 독선으로 가득찬 인간 내면을 때론 따뜻하게, 때론 냉소적으로 관조하고 있죠. [웃음의 대학]은 의도적으로 웃음을 없애려는 게 더 큰 웃음을 만들어 버리는 결과가 멜 브룩스의 [프로듀서스]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B사감과 러브레터]가 연상되는 장면도 있는데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건 존재하지 않는 아리스토 텔레스의 '희극론'일 겁니다. 움베르도 에코의 [장미의 이름]후반부의 변형판을 보는 느낌이었는데 비교하는 흥미는 있었지만 그래서 더욱 웃을수가 없었습니다.
[웃음의 대학]은 따뜻하게 열린 결말로 끝나는 작품이지만 도데체 검열관에 대한 심판이 없습니다. [장미의 이름]에서 '호르세 수도사'가 저 혼자 알려고 이 사람 저 사람 죽여버리다 끝내 들켜버리자 '희극론'을 찟어 먹어버리고 장서관이 불나게 만드는 것과 비슷하게 검열관은 계속해서 작가에게 수정을 요구하며 때론 본인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혼자서만 웃음을 간직하려 합니다. 작가가 군대 간다고 수정 작업을 그만하려 하자 꼭 살아서 돌아오라며 피곤해 죽겠는 작가를 붙들고 웃음 아이디어를 내죠. 여기서 작품은 다시 한 번 웃음을 주며 막을 내립니다. 검열관에 대한 유보가 그로 인한 독재권력의 비극을 확고할 수 있기야 하겠지만 작품의 의미를 분명히 다지기 위해선 마지막 웃음 하나를 포기했어야 했습니다.
물론 작가는 결국 군대를 가버리고 '웃음의 대학'극단은 문을 닫을 것이며 전장에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검열관은 혼자만 유지하고 싶은 웃음을 더이상 얻지 못할 것이며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있고 자연스럽게 웃지 못하는 암울한 세계를 공허하게 버텨내야겠지요. 둘은 마지막에 좌약 아이디어를 놓고 박장대소하며 끝나는데 이 둘의 앞날을 떠올리면 분명 거기에서 오는 대비효과를 얻을 수는 있습니다. 검열관 캐릭터를 통해 시대적 아이러니를 느낄 수도 있고요. 이런저런 요소를 따져보면 그럴듯한 명목을 주는 결말이긴 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전 여전히 못마땅합니다. 검열관에 대해 분명하게 냉정했어야 했어요.
- 기자간담회 때 조재현이 있길래 연극 시작 전이나 끝난 후에 무대 인사를 해줄 줄 알았는데 안 나오더군요. 첫 날이라 다른 공연들처럼 배우들 인사도 할 줄 알았는데 없었고요. 주말엔 하겠죠. 프로그램 보니 무대 세트는 우리나라가 제일 괜찮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