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연합뉴스 편집부국장인 황두형씨가 그의 저서
전 연합뉴스 편집부국장인 황두형씨가 그의 저서 "전환시대의 무논리"에서
밝힌 내용
YS, '3000억 비자금' 감추려 "김대중과 손잡고 전두환 매장시켰다"
黃인터뷰 "YS, 자신의 3000억 비자금 은폐 위해 '초헌법' 5.18특별법 제정"
"자신과 김대중 수사 철저히 막고 노태우, 전두환 때리기 몰두"
"김영삼, 후세들로부터 냉혹한 '역사적 심판' 받아야 할 것"
[엔지오프레스 = 황두형 前연합뉴스편집부국장]
1993년 김영삼 집권 후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명분으로 5.18 특별법이 제정되고 전두환, 노태우는 12.12 군사 반란과 수뢰 혐의로 무기징역과 17년 형을 각각 선고받고 복역 중 1997년 말 김영삼 퇴임 직전 사면 결정으로 2년여 수감 생활을 끝내고 석방된다.
12.12 관련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공소기각이 김영삼 정권 출범 직후 검찰 수사 결과였으나 1995년 노태우 4,000억 비자금 수사가 시작되며 상황이 급반전되어
12.12는 보안사의 정당한 법 집행을 위한 수사 과정에서 반란으로 5.18은 광주 폭동서 민주화운동으로 성격 규정이 바뀐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불법 정치자금 수뢰 혐의로 각각 2,200억 원과 2,600억 원 추징 판결을 받고 사면 후에도 사망 시까지 계속 추징당한다.
노태우는 회고록에서 1992년 대통령선거에서 자당 민자당 후보인 김영삼에게 선거자금 3,000억 원을 전달했다고 말한다. 주간동아 1998년 4월 16일 자 기사는 당시 민자당 후보 김영삼이 사용한 불법 대선자금이 3,034억 원이라고 밝힌다.
노태우 비자금 사건이 터지자 김대중은 1992년 대선 때 노태우에게서 정치자금 20억 원을 받았다고 시인하나 곧바로 야당 대선 후보인 자신이 20억 원을 받았는데 여당 후보인 김영삼 후보는 얼마를 받았는지 밝혀야 한다고 역공을 펼친다.
민자당은 20억+알파 설을 제기하며 김대중의 정치자금 전모를 밝힐 것을 촉구하며 이전투구의 양상을 보인다. 김영삼 정권 초기인 1993년 노태우와 김영삼의 정치자금 수뢰 사건인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이 터진다. 이 사건은 김영삼 정권의 압력으로 실무자 몇 명을 사법 처리하는 선에서 용두사미로 끝난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민자당 후신인 신한국당은 김대중 야당 후보가 378억 원의 비자금을 관리 중이라며 김대중을 뇌물 수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하나 김영삼은 일요일에 검찰총장을 청와대 관저로 은밀히 불러 김대중 비자금 수사를 대통령선거 이후로 미루라고 지시한다.
김영삼이 회고록에서 밝힌 이유는 다음과 같다. 대선을 2개월 앞둔 시점에 김대중의 부정 축재 수사를 하면 김대중은 구속되고 전라도와 서울에서 폭동이 일어날 것이며 대통령선거를 치를 수 없는 정국의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김영삼의 배신으로 1992년 대선에서 김대중에게 패배한 당시 신한국당 대선 후보 이회창은 회고록에서 김영삼의 결정은 김대중 비자금 수사가 1992년 김영삼 자신의 대선자금 수사로 번질 우려 때문이었다고 쓴다.
종합하면 김영삼의 역사 바로 세우기는 김영삼 임기 내내 계속 불거진 자신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덮기 위한 술책이다. 해방 이후 수십 년 동안의 관행인 불법 정치자금으로부터 정치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김영삼의 선택적 수사 지시로 인한 권력 남용의 결과 전두환과 노태우는 뇌물 수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막대한 추징금 추징을 당했으며 김영삼과 김대중의 비자금 수사는 묻히게 된다.
김영삼은 대한민국에 창궐하는 주사파의 숙주이며 대한민국 좌경화의 일등 공신이다. IMF 경제 위기를 초래한 김영삼의 무능은 대한민국 좌경화의 일등 공신이란 업적에 비하면 소박한 수준이다. 민족이 이념에 우선한다는 김영삼의 논리는 민족이 합치기만 하면 적화통일도 무관하다는 얘기와 같다.
무능 부패한 김영삼은 5.18 특별법이 대한민국의 앞날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민족, 민주, 자주 타령은 북한 공산주의자들과 대한민국의 남로당 잔당 주사파와 그들의 추종 세력이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위한 선전 선동에 사용하는 레퍼토리다.
헌법재판소는 소급 입법인 5.18 특별법에 대한 위헌소송심판에서 위헌 의견 5, 합헌 의견 4로 위헌 결정에 필요한 정족수 6인을 채우지 못해 합헌으로 판결한다. 5.18 특별법으로 4,400명의 민주화 유공자들이 국민 세금으로 보상과 특혜를 받고 있으나 보훈처는 명단과 상세한 공적의 공개를 거부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나 보상에 합당한 공적이 없이 눈먼 돈 나눠먹기식 보상이기에 공개할 수가 없다.
5.18의 하이라이트인 5월 21일 20사단 매복 공격, 광주와 전라남도 전역에 산재한 44개의 무기고 탈취와 광주 교도소 습격 등 전광석화와 같은 군사 작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사람은 유공자 명단에 없다. 2020년 문재인 정권에서 5.18 비방을 막기 위해 5.18 역사왜곡처벌법을 통과시켰으며 헌법재판소는 2022년 5.18 특별법 제8조 제1항 역사왜곡처벌법 위헌 소송에 대한 심판 청구를 각하한다.
저자 황두형, 신간 '전환시대의 무논리'/ 출판사 바른북스
【황두형 국장과의 9일자 숏터뷰】
-김영삼이 자신의 비자금 수사를 막고자 5.18특별법을 만들었고, 민주당이 본격적 좌파가 되는 데 '양김'의 영향이 컸다는 건가.
“민주당이 좌파가 되는 과정은 김대중 때부터고, 디딤돌은 김영삼이다. 노태우 회고록에도 나온다. 김영삼의 ‘5·18 특별법’은 ‘양김(김영삼·김대중)’이 당시 터진 ‘노태우 비자금(:박계동 의원 폭로)’의 수렁에서 탈출하고자 공모 기획한 일대 사건이었다.
비자금 수사가 시작돼 진실이 밝혀지면 정치생명이 끝날 것을 우려한 김대중은 중국 현지 방문 중 갑자기 ‘양심 고백’이라며 선방을 친다. 특유의 좌파 본성으로, ‘김영삼 대통령과 관련한 점에 대해서도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면서 당시 대통령이던 김영삼을 뒷통수치고 압박했다.
김영삼은 자신의 3000억 비자금을 숨기려고 헌법을 어기면서까지 당시 웬수지간이던 김대중과 손을 잡는다. 그러고선 초헌법이자 위헌인 ‘518특별법’을 만들었다. 5.18은 당시 김대중이 사형 선고받은 사건인데 이를 빌미로 김대중을 ‘꼼수’ 사면하게 된다.
곧이어 전두환 단죄 작전에 돌입한다. 자기와 김대중에 대한 수사는 철저히 막았고 노태우, 전두환 때리기에만 몰두했다. 특히 전두환을 5,18 학살자로 내몰았는데 만약 관계성이 있었다면 당시 1212사건, 뇌물죄 구속 당시 혐의를 덧씌었어야 했다.
그게 상식적인 그림이고 자신들에게 더 유리했다. 근데 왜 그러지 않았는가. 아무리 털어도 나온 게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이러니 김영삼이 김대중보다 100배는 더 나쁘다는 거다. 후세들에게 냉혹한 역사적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전두환 손자 폭로 사태는 어떻게 보시나.
“ 한 마디로 무식해서 그런 거 같다. 책 한 권을 제대로 안 읽어서 그런 거다. 5.18 사실관계를 명확히 알면 절대 세뇌 당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책을 쓴 거다. 이승만 대통령이 투옥생활 도중 감옥에서 쓴 ‘독립정신’에는 나라가 망하게 된 원인을 일제강점기 당시 노예근성과 시민정신 결여에서 찾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나라를 잃은 원인이 누구의 탓도 아닌 백성의 어리석음에서 나온다고 지적했다. 백성이 깨이지 못하면 결코 나라가 보전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러니 누굴 탓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 올바르게 사유하는 힘부터 길러야 한다. 스스로가 무식한데 엉터리 자의식적 비판부터 해서 되겠나.
지금의 잘못된 교육시스템도 큰 원인이라고 본다. 좌파의 선전·선동에 부화뇌동하는 심각한 좌경 세뇌화 교육을 주입,강요하고 있지 않은가.”
황두형 前연합뉴스편집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