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마르 9,2-10)
「지금 여기에서 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수난과 부활을 첫 번째로 예고하신 후(마태8,31-33) ‘자기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는 가르침을 주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셔서 당신의 변한 모습을 보여 주셨는데 예수님께서 입은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렇게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습니다(마르9,2-3). 사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세상의 빛(요한9,12)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렇게 영광스러운 변모를 통해 당신의 모습을 보여 주신 것은 당신을 힘겹게 따르는 이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이때 베드로가 얼떨결에 예수님께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께,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마태17,4).하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은 영광스럽고 황홀한 순간에 계속 머물고 싶다는 말입니다. 사실 좋은 것을 보면, 차지하고 싶은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때에 하늘에서는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태17,5)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 말씀은 부활의 영광은 차후의 일이니, 집착하거나 안주하지 말고 지금 당장은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그분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가라는 뜻입니다.
하늘의 소리를 듣고 예수님과 제자들은 산에서 내려와 일상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일상의 삶의 터에서 하느님의 뜻을, 얼마나 살아내느냐 하는 것입니다. 귀한 체험과 뜨거운 감동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온몸으로 전율을 느꼈던 신앙 체험은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불쏘시개 역할입니다. 불쏘시개의 역할은 불이 붙게 하는 데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 체험은 하느님께 대한 굳건하고 변치 않는 신앙을 키우고, 그 신앙의 결실인 사랑의 봉사로 이어지는 데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손희송). 황홀한 체험에 집착해서도, 안주하고 고집을 부려서도 안 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일상으로 내려왔듯이 삶의 자리에서 말씀의 의미를 살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적 체험을 함부로 자랑하지 마십시오. 삶이 그것을 말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는 곧 체험하게 될 부활의 표지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은 얼굴로 주님의 영광을 거울로 보듯 어렴풋이 바라보면서, 더욱더 영광스럽게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갑니다”(2코린 3,18). 요한 사도는 고백합니다.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1요한3,2).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실천함으로써 우리의 마음도 해와 같이 빛나야 하겠습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알되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불행하며, 이 모든 것을 모르나 하느님을 아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성 아우구스티누스). 더 큰 사랑을 담아 사랑합니다.
◈ 출처: 신을 벗어라 원문보기▶ 글쓴이 : raph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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