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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증거, 빈 무덤 24:1~7
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2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3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4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부활을 전한 여인들 24:8~12
8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10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11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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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안식 후 첫날 새벽, 여인들이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 보니 예수님의 시체가 안 보입니다.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상기시키며 그분이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여인들이 전한 말을 제자들은 믿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달려가서 빈 무덤을 확인하고 그 일을 놀랍게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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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증거, 빈 무덤 24:1~7
예수님의 부활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입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 여인들이 예수님 무덤을 찾아갑니다.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함입니다. 그들이 도착하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굴려져 있고 무덤은 비어 있습니다.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여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합니다. 예수님은 죽음으로 인류 대속의 사명을 성취하신 후, 말씀하신 대로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6~7절).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살아나신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부활은 장차 우리 모두에게도 임할 은혜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구원자로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살아 계신 예수님을 통해 ‘죽음의 멸망’이 아닌 ‘생명의 은혜’를 누립니다.
●더 깊은 묵상
무덤을 찾은 여인들이 무덤에서 목격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내가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 없이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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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전한 여인들 24:8~12
부활의 첫 번째 목격자는 믿음의 여인들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과거에 일곱 귀신이 들렸다가 예수님께 고침을 받은 여인입니다(눅 8:2). 요안나는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로, 예수님과 제자들을 섬긴 여인입니다(눅 8:3).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와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다른 여인들도 빈 무덤의 목격자입니다. 그들은 공생애 기간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고, 예수님 말씀을 듣고 소중히 간직한 여인들입니다(8절). 그들은 자신들이 본 무덤 현장과 천사에게서 들은 부활 소식을 사도들에게 그대로 전합니다. 증인은 보고 들은 대로 전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며 그분 말씀을 따르는 우리도 구원의 기쁜 소식, 부활의 기쁜 소식을 열방에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부활의 증인입니다.
●더 깊은 묵상
사도들에게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한 이들은 누구였나요?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영원히 살아 계신 예수님을 나는 누구에게 전할까요?
오늘의 기도
주님! 부활 소식을 듣고도 믿지 않은 사도들과 달리, 말씀을 기억하고 주님의 부활을 전한 여인들의 믿음을 봅니다. 이들처럼, 제 경험이나 이성적 판단보다 주님 말씀을 우위에 두게 하소서. 믿음 생활의 중심에 부활 신앙이 있게 하시고, 일상에서 빈 무덤의 증인으로 살게 하소서.
* 본문의 정리: 여인들은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게 되었고, 그분이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는 말을 듣게 되었고, 사도들에게 달려가 이 소식을 전하였지만, 사도들은 여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베드로는 일어나서 여인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 무덤으로 달려갔다.
* 본문의 명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께서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서 처형이 되시고,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심을 굳게 믿고, 그 속에 담긴 사랑과 은혜를 가슴 깊이 새기고, 부활을 전하는 자로 살아가길 바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그 모든 일들 속에 담긴 의미들을 더 깊이 알아가고, 그것을 굳게 믿고, 믿음의 증인이 되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그 모든 일들과 우리에게 주신 그 말씀들을 가슴 깊이 새기고, 그 말씀을 삶으로 실천해 나가고,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
부활을 믿지 않는 세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세상 속에서 부활을 전하는 자가 되고, 더 많은 이들에게 부활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자가 되게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자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3절 죽음에 머물러 계시지 않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단 모든 악을 향해 날리신 예수님의 카운터펀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제국을 이긴다는 것, 십자가가 칼을 이긴다는 것, 십자가야말로 하나님의 능력(고전 1:18)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부활로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9:23; 14:27; 막 8:34)는 예수님의 요청은 무기력하게 당하라는 게 아니라 진정한 승리로 가자는 부름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십자가의 길 끝에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4-10절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본 여인들은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줄로만 알았지, 예수님이 부활하셨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부활을 예고하신 예수님의 말씀(9:22; 18:33)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한 후에야 상황을 제대로 파악했고,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말씀을 알아야 현실을 정확히 해석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억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특히 고난의 길이 정도(正道)라는 말씀(13:24), 십자가의 길 끝에 영광과 부활이 있다는 말씀(롬 8:18; 히 11:35)을 기억합시다. 그래야 지금 내 삶을 제대로 해석하고 정돈할 수 있습니다.
9,10절 최초로 부활을 증언한 사람은 여인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시 증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여인들을 부활의 증인으로 세워, 여인들을 차별하던 풍습에 일침을 가하셨습니다. 가정과 공동체와 사회 속에,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차별은 없는지 돌아봅시다.
11,12절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 예고를 이미 들었고, 여인들이 전해준 이야기도 들었는데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부활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말씀보다 경험과 현실을 더 중시했기 때문입니다. 말씀보다 경험과 상식을 우위에 두면 부활도 믿지 못하고, 부활을 믿지 못하면 부활로 난 십자가의 험한 길로도 가지 못합니다. 경험과 현실을 근거로 말씀을 믿고 따르는 일을 방해하는 소리를 경계합시다. 말씀을 믿고 따를 때, 말씀이 경험이 되고 현실이 될 것입니다.
기도
주님의 부활과 승리를 믿고, 십자가의 길로 우직하게 걸어가게 하소서.
안식일이 지난 다음 날, 준비했던 향품을 가지고 이른 새벽 예수님의 무덤으로 갔습니다. 이미 그 무덤은 종교지도자들의 건의에 따라 빌라도의 가장 정예 경비병들을 보내 큰 돌을 봉인하고 단단히 지키고 있었으므로 여인들의 장례준비는 어찌하면 무용지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하자 큰지진이 있었고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돌을 굴려 내고 그 돌 위에 앉았고 경비병들은 죽은 사람처럼 되었고 그들이 무덤 안으로 들어가자 시신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부활하셔서 그곳에 계시지 않았고 그 무덤 안에 그분이 계시지 않다는 것을 첫 증인들에게 확인시켜 주고자 천사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이땅에 오시는 것을 처음으로 목격한 빈들에 목자에게 나타나신 천사들 처럼 당시에는 증인으로도 채택될 수 없었던 연약한 여인들에게 그 중요한 임무를 맡기시는 것은 믿음의 아이러니입니다. 좀 더 확실한 권력자, 역사의 기록자들에게 부활의 증인을 맡기는 것이 세상의 지혜 일텐데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자들을 들어 그 온전하심과 완전하심을 드러내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세상 가운데 겸손한 주님의 증인으로 그 놀라운 구원을 증언하며 살아가는 복된 하루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마가와 요한은 막달라마리아가 첫 증인인 것과 예수님을 만난 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다시 만난 것이 그의 제자들이 주님의 옷만을 확인한 후 돌아가고 그 무덤 곁에서 울고 있을 때라고 되어 있어 그녀가 두번째 제자들을 따라 다시 무덤을 찾은 시기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가복음 16:9 에서 ‘안식 후 이른 아침에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라고 증언하고 있으므로 그녀들이 새벽 미명에 한번 그리고 이른 아침에 두번째 제자들과 함께 온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는 주님의 물음에 동산지기인줄 알았고 ‘마리아야’라고 부르시는 그 음성을 듣고서야 주님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주님을 알아볼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불러주시고 사랑한다고 하는 그 음성을 끊임 없이 들을 때, 말씀을 통해 깨달아 살아갈 때 우리는 그분과 함께 있음을 알게 됩니다. 늘 말씀과 성령에 깨어 있고 매순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신실한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 예수의 시신을 찾고 있는 여인들에게 천사가 한 말입니다. 실은 책망의 말씀입니다. 근심했기 때문입니다. 시신이 없다는 점과 갈릴리에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했다면 근심이 아니라 환희를 외쳐야 마땅합니다. 동시에 이 말은 격려의 말이기도 합니다. 비록 예수님은 보지 못했더라도, 빈 무덤을 보여주므로 부활을 믿을 수 있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말씀은 부활 신앙의 핵심과도 같습니다. 이후 여인들은 부활한 주님을 목격하지 않았어도 빈 무덤과 천사의 증언만으로 부활을 굳게 믿고 전파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말씀대로 부활하셨습니다.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미리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그렇게 하신 목적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고 만나야 믿는 것이 아니고, 그분의 말씀을 믿는 것이 주님을 만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곧 부활에 대한 말씀을 믿는 것이 부활한 주님을 만나는 유일한 길임을 명백하게 밝히신 것입니다. 그 본보기가 바로 여인들입니다. 여기서 또 하나의 뜻 깊은 메시지가 우리에게 전달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장차 이 세상의 모든 일도 그분의 말씀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르친 모든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는바,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말씀은 장차 이루어지지 않을 것은 없을 것이라는 선포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함으로, 그분께서는 모든 자가 살아있는 산자의 하나님이시라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부활될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성도는 무덤에 가서 슬퍼할 이유가 없습니다. 1C 여인들이 주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듯이, 거기서 고인을 찾아봐야 아무 의미가 없어 그렇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모두 다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부모님의 산소나 사랑하는 이의 추모공원을 찾는 것은 우리도 부모님처럼, 사랑하는 이들처럼 다시 살아날 것을 확인하고 도전받기 위함입니다.
부활에 대한 메시지는 확실합니다. 그것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죄를 이기시고 죽음을 정복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보혈에 우리는 감사와 감동의 눈물만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부활보다 먼저 된 것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입니다. 죽음입니다. 죽어야 부활되기 때문입니다. 죽지 않고 부활될 수 없는 방법은 도무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선입니다. 예수님이 그래서 본이 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그림은 주님과 우리가 함께 못 박혀 있는 장면입니다. 주님의 손에 우리의 약점이 있는 손이 못 박혀 있고, 주님의 발에 우리의 죄짓는데 빠른 발이 못 박혀 오버랩이 되어있는 그림입니다. 그 그림이 우리 마음 판에 영원해 새겨져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평생 우리가 그려야 할 그림이고 늘 우리 망막에 있어야 할 영상입니다. 한 알의 씨가 죽어야 열매가 나옵니다. 사도 바울의 말대로 썩을 것으로 심으면 썩지 않을 것으로 나고, 비천한 것이 영광스러운 것으로,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육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살아 나오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죽습니다. 만약 죽음 없이 부활할 수 있다면 결코 그 고통의 십자가를 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죽고 예수님으로 살아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의 생명이 나오지 않습니다. 부활 이전에 자아의 죽음을 선포하는 우리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제자들이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갔는데, 이미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져 있었고, 예수님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천사가 말했습니다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눅24:5~7)
그때서야 예수님의 말씀이 기억났고, 믿게 되었고, 알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눅24:8~9)
그러나 여전히 다른 제자들은 말씀을 기억하지 못했기에 믿지 못했습니다 사도라도 선지자라도 누구라도,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면 믿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눅24:11)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니, 무덤 가에서 배회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니, 어둠 속에서 주저앉아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니, 길 없는 곳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기억하여 믿기 원합니다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요2:22)
우리 앞에는 생명 길과 사망 길이 있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라"(렘21:8)
그러나 우리는 말씀을 기억해서 새로운 살 길로 행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10:19~20)
오직 이전 것은 잊어버리고 새 길, 생명 길로 행하기 원합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사43:18~20)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심으로 우리를 그 부활의 능력으로 초대하셨음을 알려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다시는 정죄함이 없는 그 영원한 구속에 의지하며 그 선하신 뜻에 부끄럼이 없는 주님의 제자로 매순간을 드리는 인생으로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허락하신 은혜에 합당한 삶으로 아버지께 영광을 올려드리며 길잃은 인생들에게 주님의 기쁜 소식을 생명 다해 전하도록 성령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육신의 질병과 코로나로 신음하는 이들에게 치유와 회복을 허락하여 주시고 전쟁과 핍박 가운데 있는 백성들에게 평강과 자유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선교사님들의 모든 발걸음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며 눈동자처럼 지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신 사명을 넉넉히 감당하도록 거룩하게 구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