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 이어 이들 세 자매가 어떻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는지 살펴본다.
맏딸 송애령은 돈을 사랑했다는 세평 외에도 세 딸 중 가장 무정하고 교활하며 사악하고 영리한 여자라는 평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인맥을 이용하여 공자의 직계 후손으로서 자기 남편인 쿵샹시(공상희)를 재정부장과 총리에 앉게 만든다.
쿵샹시와 송애령은 이런 직위를 이용하여 많은 부를 축적하였다.
일본 패망 후 국공 내전 때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많은 자금과 무기를 장개석에게 대 주는데 원조 자금 중 절반 이상이 송애령과 쿵샹시, 장개석과 송미령, 송미령의 친오빠인 송자문에게 들어 갔다는 말이 있다.
이런 이유로 송애령 부부는 중국인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고 미국 트루먼 대통령도 송애령 부부의 재산이 10억~20억 달러라고 비난할 정도였다.
그 후 송애령은 1947년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1973년 86세의 나이로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다.
둘째 딸 송경령은 1925년 남편인 손문이 사망한 후 국민당 좌파 정부에서 일하며 언니인 송애령, 동생인 송미령과는 다른 길을 갔다. 그는 제부에 해당하는 장개석과 그 주변 인물들의 부패에 대하여 비난을 하며 이들과 대립각을 세웠다.
장개석이 모택동의 공산당 군대에 패해 대만으로 쫒겨 갈 때 같이 가지 않고 대륙에 남았고,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중공)의 부주석으로 취임한 이래 문화혁명 때는 주석 권한 대행을 맡아 대만의 송미령과 자매간 대결이란 말이 나오기도 했다.
1981년 90세에 백혈병으로 북경에서 세상을 떠났다.
셋째 딸 송미령은 장개석의 세 번째 부인인데 둘 사이에 자녀가 없었다.
장개석은 둘째 부인인 천제루와의 사이에서도 자녀가 없는데 이런 이유에서 성불능자라는 의심을 받았고,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첫째 부인인 마오푸메이와의 사이에 얻은 유일한 아들인 장경국(장개석 사후 대만 총통이 된다)도 장개석의 아들이 아니라 마오푸메이가 장개석과 결혼 전에 동네 농사꾼과 정교하여 낳은 아들이라는 말이 있었다.
송미령은 장개석과 결혼 후 장개석을 도와 항일 전쟁을 치루었으며 거주지에 일본군의 폭탄이 떨어져 죽을 지경이 되었는데 외국인 고문이 구해준 일도 있었다.
대륙에서 대만으로 옮긴 후 대만에서 거주하다가 1975년 장개석이 죽고 전처 아들인 위에서 말한 마오푸메이가
뒤를 잇자 미국과 타이뻬이를 번갈아 오가며 살다가 2003년 미국에서 107세의 나이로 사망해서 뉴욕근교에 묻혔다.
이렇게 세 자매는 각기 다른 인생의 길을 걸었으며 사람들은 드라마같은 삶을 살았다고 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