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이제까지 알려지기를 초창기에 박석김씨간에 귀족들의 추대와 선거를 통한 왕위계승이라서 세습군주제는 아니었다라고 알려져있는데 고구려역시 그랬슬 가능성이 있슬지가 의문시됩니다.
주몽이 고씨인데 유리왕부터 모본왕까지 해씨라고 하는 것도 그러할 개연성의 소지가 있기는 합니다.
다만 기록상으로 유리왕부터 모본왕까지 부자 형제관계의 계승으로 나타나지만 실제 왕계가 이와는 다를수 있고 몇명의 왕이 누락될가능성이 있다면 아마도 고구려역시 신라와 유사하게 고씨와 해씨간에 추대 및 선거를 통한(경우에 따라서는 무력찬탈) 왕위계승형태가 존재했슬것이라고 봅니다.
첫댓글 현재와 같이 넓게 보지 않고 당시시대 맞게 좁게 보고 생각한다면 모든 왕들은 선거를 통해서 계승되죠. 기득층이 인정해야만 그왕은 왕위에 오를 수 있고, 탄탄하게 나아갈 수 있죠. 로마 황제 역시도 어느정도의 비공개 선거를 통해서 황제가 될 수 있었죠.(그 선거가 거수를 통한건 아니지만 원로원이 형식상이지만 투표를 통해서 통과되어야 황제가 될 수 있었죠.) 물런 선거권은 기득권층(왕족, 귀족, 행정관리등등)에게 있었지만요
제가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생각나는데로 적어보겠습니다. 추모태왕의 후계자인 유리왕은 아들이 여럿있었는데...제일 큰 아들은 병으로 죽고, 둘째 아들(해명)은 생모가 아닌 태왕비를 흠모했다는 이유로 땅에 세운 창에 몸을 던져 결백함을 입증하고 죽습니다. 당시 셋째였던 무휼(아명)이신 대무신왕이 3대 대고구려 태왕이 되십니다. 그후 모본왕까지 여러 태왕님이 계셨지만, 고씨와 해씨(외척)간의 태왕자리의 다툼이 있었다 짐작할 수 있는 추론의 근거는 한명의 태왕이 너무 오래 장수하셨다는 것입니다.(연도를 거꾸로 계산해보면, 100세 넘게 사신 태왕님도 계십니다.)
신라가 박석김 세 성이 교대로 왕위를 이었다는 전제가 사실이냐부터 확인해야 님의 논리가 성립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과연 신라가 교대로 왕위를, 그것도 '선거'를 통해서 이어나갔을까요.
힘 센 사람이 왕이 됐을 겁니다..화백회의도 말이 좋아서 회의지 힘이 센 사람이 왕이 되는 거죠..그리고 추모왕은 고씨일 수가 없습니다..할아버지 해부루왕도 아버지 해모수 혹은 금와왕도 아들 유리왕도 손자 대무신왕과 민중왕도 증손자인 모본왕도 모두 해씨인데 가운데 추모왕만 고씨일까요? 모본왕 죽이고 왕이 된 태조왕이 의심스럽고 그가 고씨의 시작이므로 추모왕을 고씨로 만들었을 겁니다..태조왕이 시조가 아닌데 태조왕,국조왕으로 불린 건 이유가 있는 거죠..
그렇다면 실질적인 태조는 부여황후라고 할만하죠 나라를 세운것이나 다름없으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