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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예배 | 김상원 전도사] 안이함과 게으름 창세기 19장 23-26절 | 2024. 4. 1
https://www.youtube.com/live/sMTIK_S-mu4?si=n9kvxUZ5pMYYxfiy
열왕기상 1:1 – 1:10 인생의 순리를 인정하고 다음 시대를 준비할 때
노년의 다윗 1:1~4
1 다윗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2 그의 시종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그로 왕을 받들어 모시게 하고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시게 하리이다 하고
3 이스라엘 사방 영토 내에 아리따운 처녀를 구하던 중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왕께 데려왔으니
4 이 처녀는 심히 아름다워 그가 왕을 받들어 시중들었으나 왕이 잠자리는 같이하지 아니하였더라
아도니야의 야망 1:5~10
5 그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하니
6 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7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그들이 따르고 도우나
8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의 용사들은 아도니야와 같이하지 아니하였더라
9 아도니야가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바위 곁에서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왕자 곧 자기의 모든 동생과 왕의 신하 된 유다 모든 사람을 다 청하였으나
10 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용사들과 자기 동생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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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다윗이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않자, 신하들이 아비삭을 데려와 왕 곁에서 시중들게 합니다.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 되려고 호위병을 준비하니 요압과 아비아달이 그를 돕습니다. 아도니야가 양과 소를 잡고 왕자들과 신하들을 청하는데, 나단과 브나야와 솔로몬은 청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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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다윗 1:1~4
노년의 시기는 다음 세대가 주역이 되도록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열왕기상은 “다윗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1절)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는 다윗 시대가 저물어 가기에 새로운 왕을 세워야 함을 의미합니다. 전쟁터를 누비며 용감히 싸우던 다윗이 이불을 덮어도 따뜻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생기와 활력을 잃은 노인이 되었습니다. 다윗의 생기를 회복해 보려고 신하들이 아비삭이라는 어리고 아름다운 소녀를 다윗의 품에 두지만, 다윗의 기력은 회복되지 않습니다. 다윗의 시대를 연장하려고 헛된 수고를 더하기보다 인생의 늙음과 죽음을 하나님의 순리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왕을 선택해 다음 시대를 준비할 시기가 된 것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용맹하던 젊은 시절과 달리 늙은 다윗의 모습은 어떠한가요?
사람이 나이 들고 병들고 죽는 것을 성도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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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니야의 야망 1:5~10
노쇠한 다윗이 후계자 선택을 미루는 사이에 다윗의 넷째 아들 아도니야가 왕이 되려고 일어납니다. 아도니야 위의 형들(암논, 다니엘<길르압>, 압살롬)은 이미 죽었기에 현재 그가 장자입니다. 잘생긴 외모에 아버지로부터 꾸중 한 번 듣지 않은 아들이어서 그에 대한 아버지 다윗의 신망도 깊었을 것입니다. 다윗이 노쇠해지자, 아도니야는 자신에게 왕이 될 조건과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해 야망을 드러냅니다. 아도니야를 지지하는 사람은 다윗 시대에 권력의 중심부에 있던 아비아달(대제사장)과 요압(군사령관)입니다. 그들은 아도니야를 지지하며 자신의 세력을 다음 시대까지 이어 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이스라엘의 왕을 선택할 권한이 하나님께 있음을 무시한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왕이 되고자 하는 아도니야를 지지한 사람들은 누구였나요?
교회 혹은 공동체 안에서 지도자를 선택할 때 우선시해야 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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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입혀 주시는 옷
하나님은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우리의 옷을 갈아입히십니다. 그 옷들은 우리가 원해서 입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시간에 새로운 옷을 갈아입히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역사를 써 내려가시는 데 그분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그가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충실히 해낼 때 기뻐하시며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높이시기까지 수없이 낮추셨습니다. 왕관을 감당할 수 있는 그릇으로 그를 빚어 가시기 위한 과정이었지요. 10년 넘게 광야에서 사울을 피해 쫓겨 다니면서도 다윗은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계속해서 고백했습니다.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춘다는 것은 인생의 고비에서 주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낮은 곳에서든 높은 곳에서든 주님만 신뢰하고 그분께 순종하며, 그분이 입혀 주시는 다양한 옷을 잘 견디십시오.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혀 주십니다. 그것은 누구도 벗길 수 없고 빼앗을 수 없는 영광스러운 옷으로, 세상의 어떤 고귀한 의복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영원한 옷을 입고 천국에 입성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비한 섭리를 신뢰하라 / 최성은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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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열왕기상 1장 4절
경건은 개인의 자발성을 요구합니다. '아니하였더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로'는 강한 부정입니다. 다윗은 의지적으로 아비삭과 잠자리를 갖지 않았습니다. 이는 과거에 그가 밧세바를 범하는 죄를 지은 후 깊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용서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삼하 12:13). 가장 후회하는 사건을 통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영적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진짜 실패는 실패의 경험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어떤 깨달음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책임에 대한 이해가 리더에게 없다면 그의 권위는 헛되고 그의 존재는 무가치한 군림이 되고 만다. - 더글러스 윌슨
오늘의 기도
하나님! 인생의 유한함을 알면서도 더 많이 갖고,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헛된 노력을 일삼았던 것을 회개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 붙들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리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서게 하소서.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오늘의 찬송(새 71 예부터 도움 되시고)
하나님은 묵묵히 우리를 지켜 보시며,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내 생각과 뜻을 이루어 나가기 위함이 아니라, 주님의 뜻와 주님의 방법을 이루어 나가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도록 하자
나의 명예와 나의 성공을 위해 달려 나가는 삶이 아니라, 주님께서 맡겨 주신 이들에게 주님의 십자가와 그 사랑을 전하기 위해 달려 나가는 삶이 되도록 노력하자
모든 일을 시작하기 앞서, 항상 주님의 뜻을 구하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아가기 위해 부던히 그분의 세밀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자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4절 사람의 젊음과 힘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던’(삼상 16:12) 소년 다윗이 몸이 시려 견디기 어려운 노인이 되었습니다. 골리앗을 쓰러뜨린 장수가 자기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게 되었고, 주변국을 정복하고 온 나라를 다스리던 통치자가 신하들의 걱정거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곤고한 날,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을 피할 수 없기에 그날이 이르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전 12:1).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키다’(전 12:13) 맞이하는 인생의 황혼기라면, 절망과 허무의 암흑기가 아니라 소망과 의미로 가득한 전환기가 될 것입니다.
5-7절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교만하고 탐욕스러우면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아도니야는 생존한 왕자 중 가장 연장자였고, 압살롬처럼 용모가 수려했으며, 요압과 아비아달을 포섭할 정도로 정치적인 수완도 좋았습니다. 겉으로 볼 때 왕이 될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다윗이 선위(禪位)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부왕의 기력이 쇠약해진 때를 기회 삼아 스스로 왕이 될 것을 공언하고, 기병과 호위병을 거느려 왕 행세를 할 정도로 권력욕이 강하고 교만했습니다. 외모가 아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삼상 16:7)은 아도니야를 왕으로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재능이나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겸손과 충성과 거룩함입니다.
7-10절 정세를 읽고 시류에 영합하기보다 무엇이 옳은지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요압과 아비아달은 아도니야를 지지했습니다. 자격과 자질 면에서 아도니야가 왕위를 이을 적임자이고, 다윗의 기력이 쇠약해진 때가 새 왕이 즉위할 적기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정세를 정확히 읽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마음은 읽지 못한 결정이었고, 왕자인 아도니야에게 충성하면서 도리어 왕인 다윗을 무시한 처사였습니다. 현실과 상황만 봐서는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인간의 도리를 지켜야 합니다.
기도
공동체-사는 모든 날 동안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경외하며 순종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4절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기억해야 할 창조주이십니다(전 12장 1절).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답던’ 소년 다윗이 늙고 힘없는 노인이 됩니다. 물맷돌 하나로 골리앗을 쓰러뜨린 용사가 제 한 몸 가누지 못하고 이불을 덮어도 냉기를 떨쳐 내지 못합니다. 나라를 돌보던 왕이 돌볼 대상이 되고, 주인의 아내들과 부하의 아내마저 품에 두던(삼하 12장 8절) 그가 아리따운 처녀와도 동침하지 못합니다. 인생의 한계는 우리를 창조주께 인도합니다. 어떤 이불도 인생의 겨울을 막지 못하고, 어떤 젊음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합니다. 맘껏 사랑하고 힘껏 주를 섬길 수 있는 날이 언제까지나 남아 있지 않음을 잊지 맙시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2~4절 왕의 육체적 쇠약은 곧 왕권과 국력의 쇠약을 의미했습니다. 다윗이 왕으로서 더 ‘기능’해 주기를 바라던 신하들은 아비삭이라는 ‘처방’을 내립니다. 그 소녀는 왕을 위한 몸종이자 나라를 위한 정치적 도구였습니다. 유용성으로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 사회에서 다윗과 아비삭은 인격이 아니라 몸뚱이일 뿐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사용의 대상이 아닙니다. 효용성으로 간 보거나 견주지 말고, 존재만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5,6절 다윗이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자 아도니야가 왕좌를 차지하려고 나섭니다. 힘없는 아버지를 무시하고 자신을 과시합니다. 아버지의 쇠약을 자신의 도약을 위한 기회로 삼습니다. 준수한 용모뿐만 아니라 반역의 계략까지 아도니야는 분명 ‘압살롬 다음’(6절)이었습니다. “내가 왕이 되리라”는 장담 속에 압살롬의 비참한 최후마저 엿보입니다. ‘아담 다음’에 태어난 모든 이에게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자기를 높이려는 허망한 삶에서 속히 떠나십시오.
7~10절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신하들은 정치적 기로에 놓입니다. 요압과 아비아달은 하나님의 뜻보다 아도니야의 반역에 편승합니다. 이득을 따지는 똑똑한 선택보다 말씀을 따르는 신실한 선택을 우선하고 있는지, 죄를 더하는 관계보다 의를 도모하는 관계를 맺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기도
공동체-하나님이 이 땅의 참된 왕이시니 주만 높이고 주의 뜻만 따르며 살게 하소서.
(왕상 1:1~10절)
❝영원한 왕이신 하나님께만 충성하는 삶❞
❚ 자기자신을 높이며 자신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 어떠한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까?
➲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충성해야 합니다(1~4절).
젊었을 때 최고로 용맹스러운 장수였던 다윗이었으나 이제 그에게는 죽음이 눈앞에 있으며, 지도력을 포기해야만 하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않을 정도로 쇠약(1절)해졌습니다. 세월의 무상함과 젊음의 덧없음을 보여줍니다(전 12:1). 신하들은 기력이 쇠한 늙은 왕을 위하여 나라 안에서 젊고 아름다운 처녀를 수소문하여 수넴 처녀 아비삭을 데려왔습니다(2~3절). 그러나 다윗은 함께 잠자리를 하지 않았습니다(4절). 아직 다윗 왕을 이어 왕이 될 자가 지목되지 못한 상태에서 다윗의 노쇠함이 드러납니다.
위대한 용사이자 불굴의 신앙인이며 이스라엘의 왕인 다윗이 연약해졌습니다. 노년에 들어선 다윗의 쇠약해진 모습을 통해 내 자신 역시도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야 할 존재임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매순간 겸손히 살아가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인간으로서 죽을 수밖에 없는 내 자신에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며 영생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은혜를 날마다 기억하며 예수 그리스도께 최고의 존경을 드리며,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섬기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미천한 내 자신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왕이신 주님 앞에 서서 예배하며 섬길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요. 그 부르심에 순종하고, 오직 우리 주님께만 충성을 다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하나님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합니다(5~6절).
그 때에 용모가 심히 준수하고,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아도니야는 스스로 자신을 높이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높이는 교만에 빠졌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랐고, 우선적으로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장자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맏아들인 암몬이 일찍 죽임을 당했고, 셋째인 압살롬도 반역을 꾀하다가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외형적으로 볼 때는 아도니야가 왕위 계승자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과 아버지 다윗 왕의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왕이 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5절)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아도니야를 꾸짖지도 않고, 이유를 묻지도 않았습니다(6절). 아버지 다윗이 한 번도 아도니야를 책망한 적이 없었다는 것은 아도니야를 모범적인 아들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방자한 행동을 해도 책망하지 않은 아버지 다윗의 훈육 실패를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않을 때, 아도니야처럼 철저히 세속적인 생각에 빠지고,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는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와 뜻에 무지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무지는 곧 교만을 낳습니다. 그래서 아도니야처럼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의 욕망을 이루는 죄악을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귀하게 쓰임받는 삶을 위해서는 모든 기준과 근거를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 습관처럼 실천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한 채 어리석음과 조급함으로 내 자신의 야망을 성취하려는 지극히 이기적인 삶을 버리고 하나님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하나님의 기준에서 영적으로 분별해야 합니다(7~10절).
아도니야는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을 포섭하여 자신을 지지하도록 하니 그들은 다윗과 하나님을 무시하고 교만한 마음으로 반역을 꾀한 아도니야를 따르며 지지했습니다(7절). 그러나 제사장 사독과 군사령관인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 시므이, 레이 그리고 다윗을 추종하는 장군들은 아도니야에게 동조하지 않았습니다(8절).
아도니야는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는 의도로 잔치를 벌였습니다. 아도니야의 대관식과 같은 이 잔치에 요압과 아비아달은 초대를 받았지만(9절), 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용사들과 자기 동생 솔로몬은 청하지 않았습니다(10절). 아도니야는 반쪽의 지지만을 받은 불완전한 반역을 추진함으로써 실패를 예견케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악한 사람의 음모는 분명 미워하시고, 정직한 사람의 행동은 기뻐하십니다. 입으로는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세속적인 기준으로 판단하며 이기적인 뜻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을 내는 어리석은 행동은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십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왕의 자리에 앉고자 하는 교만을 버리고 영원한 왕이신 하나님만을 온전히 따르고 섬기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에서 영적으로 분별하여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죄악에 빠지지 않기를 노력하는 믿음의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미천한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왕이신 주님 앞에서 예배하며 섬기며 존귀한 자로 살아갈 뿐만 아니라 마음속으로 갖는 세속적인 기준과 판단으로 이기적인 뜻을 버리고 왕이신 하나님만을 따르고 섬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왕상 1:1~10절)...
다윗 왕은 많은 아내와 아들, 딸을 두었지만,
첫째 암몬은 압살롬에게, 셋째 압살롬은 반역으로 죽었고 둘째 아들 길르압(다니엘, 아비가엘의 소생)은 역사적인 기록이 없습니다.
넷째 아들이었던 아도니야는 스스로 아버지를 이어 왕이 되고자 군사력과 종교의 지도자였던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을 포함한 강력한 세력을 규합하여 통치의 당위성을 얻기 위해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아도니야가 다윗 왕과 떼어낼 수 없었던 솔로몬, 예언자 나단과 브나야 등의 용사들을 일부러 배제한 것은 사무엘하 7:1~17에서 나단을 통해 다윗이 집에 예언된 통일왕국의 왕과, 성전 건축, 그리고 메시아의 탄생에 대한 예언을 이룰 세력들을 스스로 인지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신적 통치보다는 자기중심적인 왕위 계승을 하려 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또 그 기름 부으심의 능력에 무지할 때, 그 통치자의 눈과 귀는 교만과 탐욕에 의해 닫히고, 진정으로 행할 것들에 대해 아이러니한 무지함에 빠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다스림의 근본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가 이 어둠의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는 그 원리로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오직 여호와께로부터 오는 진정한 권세를 받고 겸손과 순종으로 섬기고 행하는 주님의 제자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진정한 왕이 되시고 구원자가 되셔서
날마다 우리의 삶의 구석구석 깨끗게 하시고
선하게 인도해 주시니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부활의 능력에 의지하여
맡겨주신 이 땅에서의 청지기의 사명을 감당하며,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상 가운데 그 놀라운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로 살아가도록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풍성히 채워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에게 위로와 치유의 손길을 베푸시고
저 북한 땅의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을 전심으로
예배하고 말씀과 기도의 기쁨이 회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아버지의 뜻을 높이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