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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에 저는 안식년을 신청했습니다. 주교님께서는 저의 청을 들어주셨고, 9월부터 제주도 엠마오 연수원에서 3개월간 연수를 하면서 안식년을 시작하였습니다. 광주교구, 전주교구, 대구교구, 안동교구, 마산교구, 원주교구, 청주교구, 인천교구, 의정부교구, 수원교구, 서울교구의 사제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18명의 사제들이 연수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두 신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밤이면 이야기로 꽃을 피웠습니다. 사목의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쉬는 날이면 제주도 올레 길을 걸었습니다. 마라도, 추자도에도 같이 다녀왔습니다. 이시돌 피정의 집에서 십자가의 길을 바쳤습니다. 오름에 올라 밤하늘의 별을 보았습니다. 모두들 저마다의 주특기가 있었고 함께 나누었습니다. 노래를 잘 하는 사제, 낚시를 잘 하는 사제, 요리를 잘 하는 사제, 운전을 잘 하는 사제, 이야기를 잘 하는 사제가 있었습니다.
신학생 때 즐겨 부르던 성가 84번이 생각났습니다. “얼마나 좋고도 즐거운고 형제들이 함께 형제들이 함께 모여 사는 것 얼마나 좋은고 뭇 나라 백성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온 세상 사람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주님 사랑 우리위에 꿋꿋하셔라 주님의 진실하심 영원하리라.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매일 아침 이시돌 피정의 집에 있는 호수를 걸었습니다. 호수 둘레에는 묵주기로를 할 수 있도록 해 놓았습니다. 엠마오 연수는 충전의 시간이었고, 사제들과 우정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배움의 기회도 되지만 나눔의 시간도 되었습니다. 연수를 마치고 달라스에 있는 동창신부에게 가기로 했습니다. 동창 신부가 휴가를 가면서 1달 동안 미사를 부탁하였습니다. 안식년 중이기에 기분 좋게 가겠다고 했습니다. 여행도 가고, 미사도 할 수 있으니 마당 쓸고 동전 줍는 일이었습니다.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일이었습니다.
연수를 마치고 달라스로 가기 전입니다. 주교님께서 부르셨고, 미국에서의 사목을 제안하셨습니다. 뉴욕에 있는 가톨릭평화신문을 맡아서 일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사제는 서품을 받을 때 ‘신앙고백, 독신서약, 순명’을 약속합니다. 주교님의 말씀에 기쁜 마음으로 순명하였습니다. 작년 8월에 미국으로 왔고, 벌써 1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홍보를 다니려고 하는데 코로나19가 불쑥 찾아왔습니다. 공동체의 미사가 중단되었고, 식당이 문을 닫았습니다. 갈 곳도 없고, 갈 수도 없었습니다. 언론사는 예외적으로 문을 열었고, 직원들과 함께 신문을 제작하였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에 제게 힘이 되어 준 것은 역시 사제들이었습니다. 각자의 일로 모두 바쁘게 지냈는데 코로나19로 뜻하지 않게 여유가 생겼습니다. 영상으로 하는 미사에 함께 했습니다. 매주 만나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의기투합해서 캠핑장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뉴욕에서도 형제들이 함께 모여 사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행복은 굳이 장소를 따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행복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진 것을 나누면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행복은 하느님을 찬미하며 기도하면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을 찬미하는 사람은 불가마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난야와 아자르야와 미사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그분께서 우리를 저승에서 구해 주시고 죽음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셨으며 불길이 타오르는 가마에서 건져 내시고 불 속에서 건져 내셨다.(다니엘 3, 88)” 사랑하는 부부는 칼날 위에 서도 행복하게 잠들 수 있지만 사랑이 없는 부부는 넓은 침대에서도 잠들지 못한다고 합니다. 커다란 집과 넓은 식탁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화목한 가정이 될 수 없습니다. 작고 누추한 집일지라도 사랑이 있으면 행복한 가정입니다.
요셉 성인은 법대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만 살아도 충분히 존경받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을 충분히 아름답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요셉은 이제 새로운 삶을 선택합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잉태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 들였습니다. 이것은 바로 마리아가 선택한 삶이기도 합니다. 마리아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이것은 또한 예수님의 삶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하지만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따를 수만 있다면 우리는 언제나 어디에서나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제 곧 성탄이 다가옵니다. ‘나눔과 봉사, 희생과 친절’의 선물을 준비해서 주님께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조재형신부)
2020년 나해 대림 제3주간 금요일
<관계를 포기하지 않으면 성령께서 오신다>
복음: 마태오 1,18-24
가끔 본인의 영성이 뛰어나다고 믿는 이들을 만납니다. 그런 분들은 삶이 매우 절제되어 있고 많은 나눔을 해서 가난하고 기도를 오래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어떤 사람의 영성을 분별할 때 특별히 보는 것 중의 하나는 그 사람의 관계에 대한 태도입니다. 관계의 주체가 마치 자신인 것처럼 끊고 맺는다는 느낌을 받으면 그 사람을 높은 영성의 소유자로 보아주기 어렵습니다.
영성은 성령을 어느 만큼 지니고 있느냐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런데 성령은 관계를 돈독하게 해 주시기 위해 오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복음은 요셉 성인이 천사의 도움으로 성모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내용입니다. 언뜻 보기에 마리아와 몰래 파혼하려는 요셉의 모습은 본인 스스로 관계의 주체라고 여기는 사람처럼 비칩니다. 그러나 남의 아기를 임신한 여자와 어떻게 혼인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요셉이 그런 사람이었다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마리아를 고발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야 파혼을 하더라도 자신이 정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남모르게 파혼하면 마리아가 임신한 것은 자신의 책임이 됩니다. 약혼해서 임신시켜놓고 버리는 파렴치한이 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마리아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모든 책임을 자신이 떠안고 마리아는 아기 아버지와 잘 살 수 있도록 보내주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늘은 이런 마음을 보시고 요셉에게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십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요셉에게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된 것임을 알려줍니다.
만약 요셉이 관계를 딱 단절하려는 마음을 가졌다면 하느님께서 천사를 요셉에게 보내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천사는 관계를 끝까지 유지하게 하려고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순교 복자 수녀회 이영숙 베드로 수녀님이 하신 강의를 유튜브를 통해 보았습니다. 그분은 병원에서 꽤 오래 일하셨던 것 같습니다.
한 번은 한 여성이 고민 상담을 하였습니다. 그 여성은 허리가 아파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엑스레이를 찍고 방사선도 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기가 있었던 것입니다. 의사는 아기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낙태를 권했습니다.
그녀에게는 이미 자녀가 딸 둘 아들 하나, 세 명이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천주교 신자로서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수녀님에게 물어본 것입니다. 수녀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낙태하면 안 됩니다. 만약 장애인으로 태어나면 저를 주시고 정상으로 태어나면 잘 키우세요.”
그리고 수녀님은 매일 그 자매에게 가서 배에다 손을 얹고 아기를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8개월밖에 안 되었지만, 제왕절개로 아기를 낳아야 했습니다. 아기는 정상으로 태어났습니다.
돌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수녀님들을 다 초대했습니다. 다른 수녀님들이 아기를 불러도 가지 않았는데, 베드로 수녀님이 부르니 반응하였습니다. 아마도 태중에서 기도해 주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만약 그 어머니가 이 아기를 낳지 않았다면 평생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좋은 수녀님도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베드로 수녀님은 마치 천사와 같이 어머니와 아기의 관계를 유지 시켜 주었습니다. 관계를 유지할 마음이 있어야 천사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또 죄짓게 만드는 사람과의 관계는 끊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가리옷 유다와도 친밀한 관계를 맺으셨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좋습니다. 왜냐하면, 관계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맺어주셨으니까 지금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 수녀님이 사시던 수녀원 밑에는 무당들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무당들은 하루에 5번 종을 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때마다 무당에게 지지 않기 위해 수녀님들도 무당들의 종소리에 맞추어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무당들이 수녀님들을 기도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무당들이 무언가를 태워 연기가 수녀원으로 올라올 때는 매우 괴로웠다고 합니다.
한 번은 연기가 올라올 때 그쪽을 향해 성수를 뿌렸습니다. 바람이 하나도 불지 않았었는데 성수를 뿌리니 연기가 수녀원 반대쪽으로 날아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은 무당들을 통해서도 기도를 시키고 하느님께서 함께해 주심을 보여주십니다. 그저 불평만 하고 있었다면 그런 체험은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수녀님이 피정 지도를 할 때 어떤 수녀님은 엄마가 아들이기를 바랐는데 딸이었기 때문에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수녀님도 수녀원에 들어와서 8년 동안 한 번도 어머니를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베드로 수녀님은 어머니를 용서하지 않으면 인간관계의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어서 어머니와 화해하고 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관계를 맺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관계를 위해 지는 십자가가 우리를 성숙시킵니다.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관계 안에서 성장하게 하십니다. 그러니 좋은 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도우십니다.
하느님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요셉이 마리아와의 관계, 또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유지하게 만드셨습니다. 하느님은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은총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youtu.be/79WPBB_8tUE
유튜브 묵상 동영상 (전삼용신부)
2020년 12월 18일 금요일
[자] 12월 18일
입당송
어린양이 오시리라 요한이 선포하였네. 우리 임금님 그리스도 오시리라.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죄의 멍에를 메고 구원을 기다려 온 저희가
다시 맞는 성자의 탄생으로 옛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임금이 태어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성령의 힘으로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게 하셨고, 요셉도 이에 순명하여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복음).
제1독서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23,5-8
5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그 싹은 임금이 되어 다스리고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며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리라.
6 그의 시대에 유다가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이 안전하게 살리라.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고 부르리라.
7 그러므로 이제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는 사람들이 더 이상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 하지 않고,
8 그 대신 “이스라엘 집안의 후손들을 북쪽 땅에서,
그리고 당신께서 쫓아 보내셨던 모든 나라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할 것이다.
그때에 그들은 자기 고향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72(71),1-2.12-13.18-19ㄱㄴ(◎ 7ㄴㄷ 참조)
◎ 주님, 이 시대에 정의와 평화가 꽃피게 하소서.
○ 하느님, 당신의 공정을 임금에게, 당신의 정의를 임금의 아들에게 베푸소서. 그가 당신 백성을 정의로, 가련한 이들을 공정으로 다스리게 하소서. ◎
○ 그는 하소연하는 불쌍한 이를, 도와줄 사람 없는 가련한 이를 구원하나이다. 약한 이, 불쌍한 이에게 동정을 베풀고, 불쌍한 이들의 목숨을 살려 주나이다. ◎
○ 주 하느님,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찬미받으시리라. 그분 홀로 기적들을 일으키신다. 영광스러운 그 이름 영원히 찬미받으시리라. 그 영광 온 누리에 가득하리라.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이스라엘 집안의 영도자, 시나이 산에서 모세에게 법을 주셨으니 당신 팔을 펼치시어 저희를 구원하러 오소서.
◎ 알렐루야.
복음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시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8-24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 기도
주님,
성자의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게 하셨으니
이 제사로 저희를 어여삐 여기시어
성자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감사송
<대림 감사송 2 :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두 가지 의미>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모든 예언자는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미리 알려 주었고
동정 성모님께서는 극진한 사랑으로 그분을 품어 주셨으며
요한은 오실 분을 미리 알려 주고
이미 와 계신 그분을 가리켜 주었나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저희가 깨어 기도하고 기쁘게 찬미의 노래를 부르면서
성탄 축제를 준비하고 기다리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마태 1,23 참조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니,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이 성전에서 주님의 자비를 입었으니
다가오는 구원의 대축제를 정성껏 준비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마태오 복음사가가 이방인 지역에 흩어져 살던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복음서를 쓴 목적은 예수님과 이스라엘의 역사를 연결하는 데 있었습니다. 약속된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그분께서 어떻게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시는지를 보여 주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마태오는 복음서의 시작인 족보(1,1-17 참조)에서부터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1,1)이라 부릅니다. 메시아께서 다윗 가문에서 나실 것이라 굳게 믿으며 기다려 온 유다인에게 이것은 매우 중요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마태오는 구약의 예언이 예수님을 통하여 완성되었음을 강조하고자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마태오로서는 “다윗의 자손”과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라는 구절만으로 예수님과 이스라엘 역사를 연결 짓기에는 부족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오는 더욱 명확하게 핵심을 드러내고자 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천사가 요셉에게 전한 메시아 탄생 예고가 그것입니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예언이 성취되었음과 함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분께서 이 세상에 어떻게 오셨는가를 밝힌 마태오입니다. 여기에 인간의 응답이 필요하였고, 하느님 뜻에 순종할 본보기로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 제시됩니다. 그가 ‘다윗의 자손이요 의로운 사람’이여서나 아내 마리아의 일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배려심도 있었겠지만, 처녀가 혼인 전에 아이를 가진 현실의 엄청난 두려움 속에서도 믿음으로 꿈의 계시에 귀 기울이고 하느님의 섭리에 내맡기는 요셉의 순종이야말로 마태오가 간절히 전하고 싶었던 바입니다.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