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군 여행] 의양리 권진사댁..........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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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봉화군 여행] 의양리 권진사댁........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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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세가 수려하고 선비의 정신이 깃든 예절의 고장으로 유명한 ‘봉화군’ 그리고 전체 면적의 83%가 오염되지 않
은 자연 그대로의 산림으로 이루어져 있어 자연경관이 빼어난 ‘춘양면’ 유랑자가 이번에 찾은곳은 기름진 땅,
춘양의 춘양목으로 지은 66칸 ‘ㅁ’자 한옥 권진사댁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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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권진사댁이 있는 춘양면 지역은 ‘정감록’에 십승지(十勝地)의 하나로 기록돼 있을 뿐 아니라 이중환의 ‘택
리지’에도 가거지(可居地)로 기록돼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안전하고도 머물러 살만한 좋은 곳이라는 것.
경북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에 있는 성암 권철연(惺菴 權喆淵) 선생 고택은 ‘권진사댁’으로 유명한 조선시대 가
옥으로 현재 1987년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90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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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은 권철연 선생(權喆淵, 1874~1951)이 살던 집이다. 선생은 안동 권 씨 충재공 계열 권벌의 자손으로 권중
하의 장자다. 자는 성길(聖吉)이고, 호는 성암(省庵)이다. 1888년 소과에 응시해 생원이 되었다. 이 권진사댁을
지은 것은 고종 17년 1880년이고 현재 140년 정도가 흐른 고택이다. 그리고 지금은 35대 권탄웅 노부부가 살
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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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유랑자는 고택에 도착하자 도로 공사를 하느라 여기저기 파여져 있고 고택으로 들어가는 길목이 어수선
하다, 역시 이 고택 또한 솟을 대문이 자릴 잡았다. 140년 전통의 권진사댁. 이 권진사댁은 다른 고택과는 달리
사람을 압도하는 웅장한 멋은 덜하지만, 실용적인 미는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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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사댁의 솟을대문. 솟을대문은 정3품인 당상관 이상의 관직에 올라야만 세울 수 있는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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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채의 위엄 있는 솟을대문은 권진사댁이 중·상류 계층이었음을 말하는 것으로 당시 사회적 계급 또는 지위를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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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 역시 한옥스테이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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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솟을대문을 넘어가면 너른 여백이 시원한 사랑마당이 가장 먼저 보인다. 그리고 정면에 7칸 측면 8칸의
‘ㅁ’ 자 형 사랑채와 안채가 웅장하게 들어서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권진사댁의 대문채는 정면 9칸, 측면
1칸 규모이다. 연장 창고가 2칸이요 곡식을 쌓아두는 두지(斗庋)가 3칸. 그리고 일꾼들이 거처하는 방이 3칸, 대
문채는 성곽처럼 웅장하고 중앙의 1칸이 솟을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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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을 비롯한 좌우의 행랑채 역시 보통 다른 한옥보다 높게 지어져 웅장함을 더한다. 행랑채의 양 끝은 바깥
담장으로 이어져 집을 감싼다. 대문 정면에는 늠름한 사랑채가 자릴 잡았다. 본시 사랑채는 이곳은 집주인 즉
가부장의 일상 거처로서 장자를 위한 작은 사랑방과 가부장을 위한 큰 사랑방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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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적 건축물은 ‘사랑채’와 ‘안채’다. 권진사댁의 사랑채는 정면 7칸 규모로 오른편과 왼편 끝으로 각각 1칸 규모의 방이 있다.
정면에서 보면 1채 같지만 전체적으로 사랑채는 사랑방, 침방, 누마루. 그리고 뒤쪽엔 안채로 구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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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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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는 수유기가 끝날 때까지는 안채에서 모친과 함께 지내지만 이 기간이 끝나면 바로 사랑채로 거처를 옮겨
생활하면서 가부장이 전수하는 수업을 받게 된다. 이렇듯 사랑은 가문 계승을 위한 가부장과 장자 중심의 생활
공간이면서 동시에 배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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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을 하고 있다보니 안주인 마님이 다가와 말을 건넨다.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로 어디에서 오셨능교. 서울에
서 왔다고 하니까 멀리서 오셨다며 커피라도 한잔 하라 권하신다. 괜스레 노마님을 귀찮게 하는 것 같아서 극
구 사양하자 그럼 구경하라며 스스로 해설사를 자청하신다. 그렇게 함께 마당을 거닐다가 사랑채로 이동하며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안동 권 씨 문중 이야기로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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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실 :이 건물은 공부를 위해 사용되던 서실(현재는 새사랑으로 불리고 있음)이 아담하면서도 정갈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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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은 만성봉을 뒤로 하고 동향하고 있으며, 一자형 행랑채 중앙에 있는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이 있다. 왼쪽에는
3칸 서당마당이 있고 행랑채 맞은편에 ㅁ자형 정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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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로 들어가는 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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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권철연 선생의 성품과 철학이 한옥에도 깃들어 있는 것인데, 이런 그의 성품을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바로 권 씨 문중에서는 유명한 가양주 이야기이다. 하루는 밀양에서 시집온 권철연 선생의 부인이 가양주를 빚
어 올렸다. 가양주는 집에서 빚은 술을 말하며 지역별로 맛과 향이 다르다. 다량의 곡물과 정성으로 빚어낸 가
양주는 그 맛이 훌륭했고, 권철연 선생은 그 가양주를 맛있게 마시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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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그 가양주를 더는 만들지 말라고. 했다. 이 가양주에는 소중한 식량인 찹쌀, 밀가루 등 곡식이 많이 들
어갔고, 근검절약을 삶의 신조로 실천해 온 선생과는 맞지 않는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선생의 이런 검소한 생활
습관은 그의 아들, 손자 같은 가족은 물론 바깥사람에게도 본보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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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와 안채는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과 내외법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 채와 채를 나눠 남녀를 구분한 대표적인
유교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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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마님 권한의 징표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열쇠꾸러미였다. 곳간 열쇠와 뒤주 열쇠를 묶은 이 열쇠꾸러미는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물려준다. 그 시점은 며느리가 살림에 능숙하고, 대를 이을 자녀를 낳고 기르는 등 가풍을 잘 익혔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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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기억할만한 문중 이야기, 권철연 선생의 아들 이야기다. 모범적이자 실천적인 아버지 권철연 선생의 가
르침을 받아 반듯하게 장성한 아들이 있었는데, 장자인 권상경(權相經), 1890~1955이다. 권상경은 독립자금을
지원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그 공을 인정받아 2005년에 독
립유공자로 추서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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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 마당 한켠에는 조국의 자주 독립에 헌신한 공로를 치아한 고 노무현 대통령의 표창장이 자릴 함께한다.
이렇게 권진사댁은 청렴한 선비 아버지와 독립유공자 아들을 배출한 고택이라는 점에서 권씨 가문 사람이 아
니더라도 뜨거운 자부심을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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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권씨 ‘충재(?齎) 권벌(權?)’의 32대손으로 1880년경 건넛마을 운곡에서 현재 터로 이사해 권진사댁을 세웠다. 현재는
35대손 권탄웅 선생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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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오랜 역사’와 ‘가문의 자긍심’ 외에 권진사댁은 조선시대 ‘유교문화’를 담은 건축으로도 가치가 큰 공간
이다. 권진사댁이 지어질 당시인 조선 후기는 유교의 이념이 정치뿐 아니라 사회생활 전반에 강하게 스며들었
던 때이다. 그래서 권진사댁 역시 유교 사상의 이해를 바탕으로 살펴본다면 가옥의 구조를 더 쉽게 공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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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안채다. 사랑채에서 중문을 통과하면 안채가 나온다. 소박하고 단아한 안채 마당. 뒤뜰에 소나무 숲이
있어 마당으로 솔 향이 퍼지는 듯 상쾌한 공기가 감돈다. 사랑채와 달리 안채는 여주인의 일상 거처이자 침실
이었다. 이 안채에서 최고의 권한을 가진 사람은 안방을 차지한 시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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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사댁은, 이 집을 지은 조선시대의 학자 성암(省菴) 권철연(權喆淵:1874~1951)의 호를 따 ‘성암고택’이라 불리기도 한다.
원래는 건너마을에 살고 있었으나 1880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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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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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는 안방과 건너방, 안대청과 부엌, 곳간으로 구성돼 있다. 안방은 안방마님의 일상 거처고 종부, 큰 며느리,
작은 며느리를 위한 공간이다. 딸도 살림살이와 예절 수양을 위해 안채에서 함께 지냈다. 암튼 고택은 전반 적
으로 튼튼하게 보였지만 우람하지는 않은 그런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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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아함 속에 숨어 있는 또 하나의 기분 좋은 느낌, 위풍당당함. 그 위풍당당함은 아마도 지식인이지만 민초
와 섞여 함께 어울리고자 했던 권 진사의 삶의 태도와 유교적 철학이 고택 곳곳에 배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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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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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권진사댁에서의 ‘진사’는 보통 조선시대 진사시(소과)에 합격한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대과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이지만, 반드시 진사가 벼슬을 해야 했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진사’라고 하면 관직에 나
가지는 않았으나 학문을 연구하고 덕을 닦는 선비라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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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진사계층은 높은 벼슬을 하지는 않았으나, 어려운 춘궁기에 동네 사람과 같은 음식을 먹었다는 권철연 선
생의 일화에서 보듯 중·상류 계층의 위엄과 재력을 갖추고 향촌사회 지도자로서 모범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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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독립운동가에게 내리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표창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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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이어보기
https://cafe.daum.net/b2345/9toB/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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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춘양면 낙천당길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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