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칠백스물두 번째
일본의회를 해산시킨 여운형 선생
한일관계가 여전히 복잡하고 우리 마음도 심란하게 하는 가운데 몽양夢陽 여운형 선생에 관한 한 일화가 생각났습니다.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일제는 학살·방화·투옥 등으로 한반도를 강압으로 제압하고자 했으나, 이러한 만행이 국제사회에 전해지면서 일제는 위장된 ‘문화정치’로 돌아섰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로 임시정부의 외교 역할을 담당하고 있던 몽양 선생을 도쿄로 초청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일본의 유화정책을 과시하고, 대내적으로는 그를 회유하여 식민지정책에 이용함으로써 독립운동 진영을 분열시키려는 정치적 술수였습니다. 선생을 맞이한 코가 척식부대신이 ‘일한합병이 조선과 일본 양측에게 이익’이라며 회유하려 들자 선생은 일제의 조선 병탄이 동양 평화를 어지럽게 한다고 논박했습니다. 도쿄 중심가에 있는 테이코쿠호텔에서 가진 강연회에서는 “한일합병은 순전히 일본의 이익만을 위해 강제된 치욕적 유물이다. 일본은 자신을 수호하고 상호안전을 위해서 부득이 합병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지만, 러시아가 물러간 오늘날에도 그러한 궤변을 고집할 수 있을 것인가.”라며 일본의 조선 병탄을 질타했습니다. 이후 도쿄제국대학 교수 요시다 사쿠조오(吉野作造)가 초청한 신인회新人會에서는 “조선독립운동은 조선인의 일시적인 감정 폭발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이는 오직 조선인의 영구적 자유와 발전을 위해서이며 나아가서는 세계의 영원한 평화를 위해서이다.”라고 외쳐 그곳에 참석한 사람들이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게 했습니다. 일정을 끝내고 선생이 상하이로 돌아온 후 일본에서는 선생을 불러들인 정계 수뇌부를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었고, 마침내 제4회 일본제국의회 해산으로 하라 타카시(原敬) 수상이 이끈 정우회政友會 내각이 붕괴했습니다. 외교란 이런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