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과 함께 아침을 드신 다음,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 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예수님께서 다시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어,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이렇게 이르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찬미 예수님
오늘은 필립보 네리 성인의 사제 기념일 입니다.
그는 젊은이들을 위한 활동을 많이 펼치며 서른여섯 살에 사제가 되어 영성 지도자와
고해 신부로 활동하며 많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동료 사제들과 함께 오라토리오
수도회를 설립하였습니다.
예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면서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세번이나 물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왜 세번이나 강조하여 물으셨을까요?
사랑은 용서와 화해를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 수난 때 세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였으므로
그런 베드로를 용서하시는 의미에서 사랑하느냐고 세번씩이나 물어 보십니다.
용서와 화해가 안된 상태에서의 관계는 서로를 매우 힘들게 할 뿐입니다.
그만큼 인간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용서와 화해가 전제 되어야 합니다.
사랑을 잘 하기 위해서 우리가 숙지해야 할 것은 십자가 사랑처럼 수평과 수직이 잘 이루어진 사랑입니다.
수직은 하느님과의 사랑을 의미하며, 수평은 인간 관계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 두 가지의 수직과 수평 사랑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질 때 진정한 사랑이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 오셨고 우리 때문에 십자가 상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성체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수직적 사랑을 무시하고 수평적 사랑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수직적 사랑인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멀리하는 자는 감사하는 마음이 적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수직적 사랑과 수평적 사랑을 이루기 위하여 어떠한 돌봄을 해야 하는지 묵상해 봅시다.
1) 육적인 돌봄을 해야 합니다.(feed your sheep)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경제 활동과 자기가 해야 할 의무를 충실히 해야 합니다.
2) 영적인 돌봄을 해야 합니다.(tend your sheep)
자녀들에게 먹고사는 것을 해결해 주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며 영적 공허함이 없도록 영적인 돌봄이 필요합니다.
3) 성체로 돌보아야 합니다.
구원으로 갈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영적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이 성체 돌봄은 하느님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성체는 우리를 구원의 길인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며, 하느님께 다다를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병자 성사를 통해서 영적으로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성체로의 돌봄은 주님에 대한 사랑 실천입니다.
영적인 삶으로 사랑을 완성 시키며 베드로에게 당신을 사랑하느냐고 예수님께서 물으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질문하실 때 망설임 없이 주님을 사랑한다고 대답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됩시다.
첫댓글 주님께서 구름속에서 말씀하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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