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창한 숲.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나무들이 빼곡이 늘어서 있네요. 나무 사이사이로 붉은 하늘이 힐끗힐끗 보이는군요. 하지만 이미 숲 안은 어둠에 휩싸여 있습니다. 말라붙은 낙엽들이 발소리에 맞추어 부서집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길도 없는 숲 속에는 어렴풋이 빨강 머리의 소년이 보이네요. 물론..... 아크겠죠?
"제.... 젠장..!! 대체 길이 어디냐구..!!"
아크는 짜증나는 목소리로 소리쳐보지만 돌아오는 것 스산한 바람 소리 뿐입니다. 가끔씩 불규칙하게 튀어 나와있는 나무 뿌리와 부지런한 거미와 싸움을 하는 아크... 시간이 흐르자 더 이상 대답하지 않는 녀석들에게 짜증을 낼 힘조차 없어졌는지, 그저 가쁜 숨만 내쉽니다. 얼굴은 약간의 불안과 약간의 공포가 섞여 걱정스런 모습이네요. 아크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듭니다. 무언가 신비한 문장이 새겨진 금빛 반지..
"이것만 아니었어도.... 길을 잃는 게 아니었는데.... 씨바..."
하지만 다시 반지를 꾸욱 쥐고는 굳은 결의를 다지는 아크입니다. 그리고 또다시 짜증조차 받아주지 않는 무덤덤한 자연과의 사투를 시작합니다.
gogo 비상!
"...... 안 내려왔단 말야? 아직?"
이건... 론의 목소리입니다. 여기가 어디냐 하면..... 기숙사인 모양이군요. 기숙사 복도에 론과 세릭, 그리고 반이 서 있군요. 별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세릭에 론의 표정이 불안해집니다. 무슨 일이 있나보죠?
"이런..... 안 보이길래 먼저 내려왔는데..."
"볼일이라도 보러 갔다가 길을 잃어버린 거 아냐?"
반이 꽤나 그럴듯한 추측을 해봅니다. 하지만 론은 반의 말에 살짝 웃어줄 상황이 아닌 듯 하군요. 아마도 지금으로부터 약 한 달 전의 일을 떠올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 때도 갑자기 아크가 사라진 적이 있었죠. 그것 때문에 가슴 졸인 일을 생각하면..... 무덤덤하게 서 있던 세릭도 문득 그 일이 떠오른 모양입니다. 표정이 살짝 일그러집니다.
"그 자식..... 또 어디서 그 미친 버섯 쪼가리 쳐 먹고 있는 거 아냐?"
"서.... 설마....."
만약 그랬다면 이번엔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듯 주먹을 부스러트리는 세릭입니다. 론은 아닐꺼라고 말을 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군요.
"다시 올라가 봐야 할까?"
"됐어, 길을 잃었다면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고. 괜히 찾는다고 나갔다가 길이 엇갈릴 수도 있고, 우리가 길을 잃을 수도 있잖아?"
"유괴라도 당한 게 아닐까."
반의 말에 세릭이 멋쩍게 살짝 웃어 보이는군요. 하지만 론은 계속 안절부절못합니다.
"가끔 산꼭대기에서 늑대들이 아래까지 내려온다고 하더군,"
"자꾸 재수 없는 소리할래!"
반이 장난 삼아 한 말에 론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신경질적으로 소리칩니다. 아무래도 괜히 산속에 같이 가자고 한 것이 마음에 걸리는 거겠지요. 뭐, 특별한 일이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저 바람이나 좀 쏘인답시고 아크를 끌고 조금 산길을 걸어 올라갔었거든요.
"아아, 냅두면 알아서 내려오겠지. 걱정마, 걱정마. 아무리 병신이래도 산 아래로 내려오는 것 하나 못하겟냐?"
... 라고 말했지만, 아크가 돌아온 것은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나였죠. 초췌한 모습을 한 건 아크뿐만이 아니라 론도 마찬가지군요. 마악 선생님께 아크의 실종 사실을 말하려고 하던 아이들은 아크의 모습을 보자 긴장이 풀리는지 긴 숨과 함께 스르륵 무너져 내립니다.
"아크! 어떻게 된거야?"
"길을 잃어서..... 겨우 산을 내려갔더니.... 반대쪽이데.... 으윽... 그걸 돌아오느라..."
많이 힘들었긴 힘들었나 봅니다. 얼굴만 초췌한 게 아니라 목소리까지 빌빌거리네요. 하지만 론은 그제야 조금은 허무한 웃음을 지어 보입니다. 별로 걱정하고 있던 것 같지 않았는데 왜인지 무척이나 피곤한 표정을 하고 있는 세릭은 아크를 도끼눈으로 노려보는군요. 주먹을 불끈 쥐고 아크를 향해 소리칩니다.
"야, 이 새꺄! 너 땜에 론이 잠을 깨우는 바람에 얼마나 밤잠을 설쳤는 줄 알어! 9시간 밖에 못 잤단 말이다, 9시간 밖에!"
다른 아이들은 모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세릭을 바라보지만, 세릭은 아랑곳 않고 아크의 뒤통수를 후려갈깁니다. 힘이 빠질 대로 빠진 아크는 세릭의 공격에 대한 내성이 매우 약해졌는 지 힘없이 앞으로 쓰러져 버립니다.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무언가가 굴러 떨어지는군요. 아크와 세릭이 동시에 그것을 포착합니다. 아크가 손을 뻗어 굴러가는 그것을 잡으러 했지만 아크의 손가락이 달랑말랑 하던 그 순간 세릭의 발이 그 앞을 무참히 가로막습니다.
"뭐야?"
"아..... 안 돼, 그것만은....!!"
아크가 남은 힘을 다해 절규해보지만 세릭은 역시 아랑곳 않고 자신이 밟고 있던 그것을 집어보네요. 링 부분에는 음각으로 마법문자가 정밀하게 새겨져 있으며 작은 루비가 박혀 있는 아름다운 반지... 세릭은 한동안 할말을 잃고 그것을 바라봅니다. 물론 뒤에 서 있던 아이들도 세릭에게 한껏 다가서서 그 반지를 신기한 듯 쳐다보는군요. 그리고는 의심 가득한 눈길을 아크에게 보냅니다. 아크는 아직도 바닥에 쓰러진 채로 반지를 향해 손을 뻗으며 절규하고 있군요. 세릭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아크를 쏘아봅니다.
"이거 어디서 났어? 너.... 도둑질도 하냐?"
"아.... 아니라구!! 그건....."
"이건?"
아크는 세릭의 집요한 질문에 난감한 표정을 짓습니다. 물론 세릭의 대답을 어느 정도, 아니 어쩌면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이었겠지요. 하지만 주먹을 앞세운 세릭의 물음에 차마 거짓을 고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답니다.
"사... 산에서 주웠어."
"...... 지금 나랑 장난까냐?"
역시 세릭의 기준으로는 가볍게, 그러나 아크에게는 버겁게 세릭의 손바닥이 아크의 뒤통수를 훑고 지나갑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인 데 어쩌란 말입니까. 아크는 방어자세를 취하며 똑같은 말을 되풀이합니다. 세릭이 반지를 한 번 쳐다보더니 조금은 뻔뻔한 표정으로 아크를 바라봅니다.
"흠.... 그렇다면 원래 주인이 없었다는 얘기군. 그렇다면... 내가 가져도 되겠지?"
"그건 안 되........(는......데.......)....... 아.... 아니..... 그게 아니고....... 그러니까....."
하지만 아크의 잠깐 저항도 세릭의 눈 부라림 한 번으로 흐지부지 돼버리고 맙니다. 세릭은 다시 한 번 반지를 들여다보며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짓는군요. 정말 보면 볼수록 정교하게 만들어진 반지입니다.
"오홋, 이렇게 이쁜 건 너 같이 병신 같이 생긴 놈한텐 아깝다구. 나 같이 연약하고 아리따우며...."
공기가 험악해집니다. 론과 반은 뒤돌아서 헛기침을 하고 있고 데미안은 굳은 표정으로 무어라 말을 하려고 합니다. 뭐, 당연스레 '불의'니 '죄악'이라느니 하는 말을 할 생각이었겠죠. 하지만 세릭이 조금 빠릅니다.
"왜 분이기가 이 따윈데...!! 당장 밝게 웃지 못해!!"
쓰러져 있는 아크 주위로 아이들이 쌓여갑니다. 그리고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탁탁 털고는 세릭은 그 반지를 최대한 우아하게 그 반지를 넷째 손가락에 끼우는군요. 그 모습에 잠시 먹은 것을 게워내던 몇몇 아이들은 조금 밟힘을 당했죠. 세릭은 반지가 끼워진 아리따운(!)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매우 흡족한 미소를 짓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흘러갔지요.
gogo 비상!
"흠..... 좀 거추장스러운데?"
3일 정도가 지난 후에 세릭이 느낀 거랍니다. 확실히 그 반지는 이쁘게 생기긴 했어도, 계속 끼고 다니기엔 좀 거북스러울 정도로 고급스러운 반지였거든요. 그리고 세릭의 손에 반지가 있다한들, 그것은 종종 지나칠 정도로 강력한 흉기로 돌변했기 때문에 마음 편히 끼고 있을 수도 없었지요. 아무리 세릭이라 한들 살인은 하면 안 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세릭은 반지를 빼고 있기로 마음을 먹었죠. 반지를 살살 돌려봅니다. 하지만 워낙에 반지가 꽉 끼어 있어서 쉽게 빠지려고 하질 않는군요.
"어쭈, 까부냐?"
세릭은 인상을 쓰면서 힘을 줍니다. 이런.... 반지가 찌그러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요. 하지만 반지는 마치 세릭의 살에 붙어버리기라도 한 듯, 빠질 생각을 않습니다. 이제 세릭은 완전히 눈에선 불이 나고 있었고, 이는 있는 대로 갈고 있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자신의 손가락에서부터 전해지는 고통뿐이네요.
"으으으으윽........!!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세릭의 열내는 목소리는 이미 기숙사 전체를 뒤덮고도 남아서 모든 기숙사로 뻗어나갑니다. 그 소리에 빛의 요일을 맞아 늦잠을 자고 있던 론과 아크도 벌떡 일어나 버리네요. 둘이 복도로 나가보자, 다른 사람들이 아직 잠을 덜 깬 듯 얼떨떨한 표정으로 짜증을 내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크와 론은 세릭이 사람을 하나 잡나보다하며 불안스레 세릭의 방으로 향하네요. 하지만 선뜻 세릭의 방문을 열지 못하는군요. 세릭의 룸메이트인 제나스도 잠시 밖에 나갔다가 세릭의 발악에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서 있습니다. 곧, 다른 건물에 있던 반과 데미안도 세릭의 방 앞에 모입니다. 다들 서로만 쳐다볼 뿐 문을 열려고 나서는 사람은 없습니다. 잠시 조용해졌다 싶어서 문을 열려고 하면 다시 세릭의 괴성이 흘러나오네요.
"아무래도 안 되겠군. 내가 한 번 들어가보지."
역시 믿음직한 건 데미안뿐입니까? 데미안은 작은 목소리로 '정의는 불의에 굴하지 않는다.'라고 중얼거리며 세릭의 방문을 엽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군요. 다만 세릭의 괴성이 조금 더 생생하고 크게 들릴 뿐입니다. 가슴 졸이며 안전한 곳으로 피신해 있던 아이들은 조금씩 세릭의 방문을 향해 다가옵니다. 하지만 데미안이 문을 완전히 열었음에도 세릭은 여전히 전혀 신경쓰는 모습이 아닙니다. 뒷모습만 보이는 아이들로써는 그저 혼자 미쳐 소리치고 있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질 않네요.
"드디어....."
"미쳤군....."
"아으으으으윽! 잘라버릴꺼야!"
갑자기 세릭이 서랍장을 뒤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세릭이 꺼낸 것은 날이 시퍼런 단도군요. 그 모습에 아이들이 기겁해서 세릭에게 달려듭니다.
"세릭! 아직 죽기엔 남은 삶이 너무 많아!"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 보고....."
세릭은 칼을 하늘로 치켜들었다가 멈춥니다. 그러자 아이들도 멈춥니다. 무슨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보는 것 같군요. 날이 시퍼렇게 선 칼을 치켜들고 뒤를 돌아보는 세릭의 모습이 굉장히 괴기스럽습니다. 따사롭게 들어오는 아침 햇살마저 밤안개 휩싸인 푸른 불빛으로 바뀌어버리는 것 같군요.
"뭐야, 언제 들어왔냐?"
"세... 세릭, 자살은 신중하게 생각해 본 다음에도...."
"자살?"
세릭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며 자신의 손에 들린 칼을 올려다봅니다. 아이들의 목구멍에선 마른침이 소리내며 넘어가는군요. 세릭은 입가에 의미심장한 웃음을 띄우며, 가만히 단도를 내려놓습니다. 긴장하는 아이들.
"훗... 그래.... 애꿎은 내 손가락을 자를 필요는 없겠지. 그 대신....."
세릭의 눈동자가 스르르륵 아크 쪽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눈이 마주치자 거부할 수 없는 공포가 밀려오는군요. 다른 아이들은 이미 조금씩 뒤로 물러난 채, 아크만이 세릭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굳어 있습니다.
"나에게 이 따위 반지를 준 네 놈부터 처형해야겠다. 죽었!"
심의상 완전 삭제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웬만한 건 다 공개를 했는데, 이번엔 조금 강도가 심하군요. 다만 아이들의 표정만 새파랗게 질려버렸다고 말만 해두죠. 다시 검게 변했던 화면이 돌아왔을 때, 아크는 세릭의 손에 붙들린 채 낮은 신음만 흘리고 있는군요.
"세... 세릭, 그나저나...... 무슨 일이야?"
"으윽..!! 말도 마, 저 새끼가 '준' 반지 때문에 완전 지랄이라구. 이 새끼가 개기면서 안 빠지잖아!"
"반지가 안 빠진다구? 설마, 잘 하면 빠지겠지..?"
"그러면 내가 이러고 있겠냐?"
세릭은 다시 한 번 반지를 빼보려고 하지만 정말이지 반지는 세릭의 손가락에 달라붙기라도 한 듯 움직일 생각을 않습니다. 아이들은 세릭의 무식한 힘에도 아랑곳 않는 그 반지를 경이롭게 쳐다보네요.
"지 손가락이 굵어서 안 빠지는 걸 반지 탓을 하다니...... 으으......"
이미 반쯤 맛이 간 아크가 중얼거립니다. 덕분에 아이들의 안타까운 시선 속에 주먹세례를 받는군요. 거의 시체가 되어 방 한 구석에 버려져 버린 아크랍니다. 개김이 많이 늘어서 좋아보이긴 하지만 개김도 상황을 봐 가면서 해야죠. 지금 세릭의 신경은 상당히 날카롭거든요. 이럴 땐 누구라도 조심해야 하건만...
그 후로 아이들은 세릭을 데리고 유나 선생님한테 찾아가 봤답니다. 아무래도 반지에 특별한 마력이 걸려 있을 거라는 것이 데미안과 론의 일치된 생각이었죠. 유나 선생님은 세릭의 반지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두 손가락을 가만히 반지에 대고 정신을 집중합니다. 그리고 한참 후에 눈을 뜨는군요. 유나 선생님은 사뭇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합니다.
"네, 맞아요. 이 반지에는 저주의 주문이 걸려있군요."
아이들은 그저 이쁘디이쁜 반지에 저주가 걸려있다는 말에 놀라는군요. 세릭은 인상을 쓰며 아크를 노려보지만 아크는 이미 데미안과 론의 뒤로 몸을 피한 후랍니다.
"그러길래 누가 맘대루 가져가래.."
라고까지 자신 있게 중얼거리는군요. 아마도 선생님 앞이라 힘을 얻은 모양인가보죠?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아크의 짧은 생각이지요. 어차피 나가면 맞을 텐데요. 세릭은 잠시 아크는 무시하고 유나 선생님에게 묻습니다.
"어떤 저주가 걸려있다는 거죠? 이 반지를 뺄 수 있는 방법은요?"
"저주는 워낙 종류가 많기 때문에 저로서도 알아낼 방법이 없어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 반지에 저주를 건 사람을 찾아내는 거지요. 하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을 테니... 한 번 마법 상점이나 보석상에 찾아가 보는 게 어때요? 반지에 대해 알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세릭은 마지막으로 희망을 가지고 당장 학교를 빠져나갑니다. 물론 아이들은 덤으로 따라가야만 했고... 아크는 만에 하나 반지를 못 뺄 경우 분풀이용으로 필요했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따라가야했죠. 여하튼, 아이들은 이멘제르 시내에 도착했답니다.
gogo 비상!
"저주가 걸린 반지? 글쎄..... 이런 반지는 처음 보는걸?"
"반지에도 저주가 걸리나?"
"자넨 참 재수가 없군. 저주는 그리 쉽게 풀리는 게 아니네."
"...... 손가락을 잘라야 할게야."
희망에 찬 발걸음으로 뛰어다니던 아이들도 이젠 점점 지쳐 걸을 힘조차 없어 보입니다. 거의 이멘제르 시내를 쥐잡듯이 돌아다녔기 때문이죠. 이제 남은 보석상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지금까지 들어온 대답은 모두 절망적이었거든요. 손가락을 자르라니... 비록 잠시 이성을 잃어 스스로 손가락을 자르려고 하긴 했지만, 막상 남의 입에서 그런 소릴 들으니까 기운이 쭉 빠지는 모양입니다. 힘없이 터벅터벅 걷다보니 어느덧 보석상이 또 하나 보입니다. 이젠 기대하는 것도 지친 듯, 그저 기운 빠진 모습으로 보석상의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어서옵쇼~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가게 안에는 손님이 별로 없는 듯, 주인 아저씨는 뽀얗게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있는 중이었답니다. 구석진 의자에 흰 턱수염을 가지고 있는 나이 든 사람 한 명이 앉아 있군요. 여행자인 듯 낡은 옷에 간단한 짐을 풀어 바닥에 내려놓고 있군요. 세릭은 주위를 힐끗 둘러본 후 주인 아저씨 앞으로 손을 불쑥 내밉니다.
"이런 반지 보신 적 있나요?"
주인 아저씨는 세릭의 손에 끼인 반지를 제법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예쁜 반지구나. 새겨진 문양을 보니 무슨 마법이 걸린 반지 같은데..."
마법이 걸린 반지라는 말에 세릭은 완전히 사그라들었던 기대가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소리에 반응을 한 건 비단 세릭 뿐만이 아니었죠. 구석에 앉아있던 할아버지도 흰 눈썹을 꿈틀하며 주인 아저씨와 세릭 쪽으로 고개를 듭니다.
"예, 맞아요. 무슨 저주가 걸려있다고 했는데... 어떤 저주가 걸려있는 지 알 수 있을까요?"
"글쎄다.. 어디 한 번 자세히 보자꾸나."
주인 아저씨는 유심하게 반지를 살펴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가고 주인 아저씨의 표정이 난감하게 변해가자 잠시 피어올랐던 세릭의 기대도 도로 사그라드는군요. 결국 주인 아저씨는 고개를 두어번 까닥이고 마네요.
"글세, 모르겠구나. 끼면 빠지지 않는 저주가 걸린 반지는 많이 보아왔다만... 그렇게 생긴 반지는 처음 보는 것 같아."
세릭은 다시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한숨을 내쉽니다. 세릭은 그렇다 치더라도 뒤에서 꼽싸리로 따라 다니는 아이들은 이제 그만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서 안달이군요. 어느 새 가게 한쪽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축 늘어져 있습니다.
"으윽, 빨랑 못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간다!"
"아아... 세릭, 오늘은 이 정도로 하면 안 될까? 반지를 하루 정도 더 끼고 있는 다고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잖아."
아이들이 체력이 한계에 다다르자 슬슬 세릭에게 개기기 시작합니다. 마악 세릭의 주먹이 올라가고 아이들의 목소리가 올라가려는 순간, 흰 턱수염을 기른 할아버지가 이 쪽을 향해 낮은 기침을 두어차례 합니다. 덕분에 잠시 사타는 수그러들고, 아이들은 그 할아버지를 바라보네요.
"이보게, 그 반지 한 번 보여줄 수 있겠나?"
"반지....요?"
세릭은 왠지 삶이 얍삽했을 것만 같이 주름이 잡힌 할아버지에게 다가가는 것을 주저했지만, 결국은 다가갑니다. 반지에 대해 알아내는 것이 좀 더 급했기 때문이었겠지요. 할아버지는 세릭의 손에 끼어진 반지를 바라보며 사뭇 놀라운 표정을 짓습니다.
"알고.... 계시나요?"
"그래..... 그래..... 알고 있지..... 잘 알고 있고 말고. 이것은 바로...... "
알고 있다는 말에 어느덧 모여든 아이들. 아이들은 침을 삼켜가며 할아버지의 입을 주시합니다. 오늘처럼 긴장된 모습의 세릭을 보는 것도 처음인 것 같군요.
"이것은 바로.... '사랑의 저주'가 걸린 반지라네."
======엘른데스 마법학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런..... 너무 오랜만이죠? 한 일주일 간을 펜을 놓고 지낸 것만 같군요.
홈피 만드느라 숙제하느라 도저히 글을 쓸 시간을 못 냈거든요. 죄송합니다아..(꾸벅..)
그리고 원래 이번 화도 그냥 하나로 해도 충분했을 텐데.. 그럼 또 다음 화까지
공백기간이 너무 길 것 같아.. 그냥 잘라서 올립니다.
다음 화가 분량이 어느 정도가 될 지 걱정이군요.
솔직히 그보다 요즘 도저히 마땅한 소재가 떠오르지 않아 글쓰기가 너무 힘듭니다.
여러분들께서 '비상'에 어울릴 만한 소재를 보내주신다면 감사할텐데요.. 헤헷..
메일 주실때는 cynon@hanmail.net으로 보내 주시구요,
카페는 http://cafe.daum.net/fanschool 에 놀러 오시구요,
이번에 새로 개장(테스트 오픈입니다)한 홈피는 http://user.chollian.net/~cynon입니다.
많이많이 놀러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