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1. 27. 금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해가 떴다.
서울의 최고온도 영하 5도, 최저온도 영하9도
어제보다 더 추울 예정인가 보다. 그래도 햇볕이 났으니 마음으로는 덜 추울 게다.
어제 쓴 일기를 여기에 올린다.
'깨끗하다 더럽다''의 분류는 자기 기준에 달렸다는 것을 말하고 싶기에.
'어떤 현상이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고,또한 반드시 틀린 것도 아니다. 상황에 따라서 늘 변환다'고 말하고 싶다.
어제에는 옳았던 것이 오늘은 틀렸고, 또 내일에는 어떻게 보일런지를 정확히 모른다고 말하고 싶다.
누구의 시각에 따라서 해석은 전혀 다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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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3. 1. 26. 목요일.
최근의 날씨가 올 겨울철 가운데 가장 춥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오늘은 눈이 내린다.
오후 한 시가 넘은 시각인 지금도 눈이 살짝 내린다.
추워서 바깥에도 나가지 못한 채 아파트 방안에 갇혀서 오늘도 인터넷으로 들락거리면서 뉴스를 읽고, 개인카페에서 회원들의 글을 읽고, 나도 댓글을 단다.
<아름다운5060카페> '자연이다2' 회원의 예산 수덕사의 화장실(해우소解憂所)에 관한 글이 올랐다.
<시원한 해우소>
' .... 옛날 수덕사에 간적이 있어요.
화장실에 큰 기와집에 있고,
‘해우소’ 라고 써 있어요.
문득 들어가 보니,
구멍이 있고 아래는 엄청 높아요.
똥이 한번 누면 아래로 가면
꽝 하고 떨어져요.
거기에 물이 필요지 안아요.
똥은 내리면 썩고
거름이 되요.
“와~~신기하다”
도시에 살면서
대변 보고 물 내리면 끝났습니다.
“해우소” 라는 곳에 가면
세상에 욕심도 없고 불만도 없고
자연스럽게 썩 가셔요....'
내가 댓글 단 뒤에 퍼서 여기에 도 올려서 내 글감으로 삼는다.
똥수깐을 해우소(解憂所)로 말하는군요.
중들은 하도 유식하고 점잖아서 어려운 중국 한자말을 쓰는군요.
시골에서 자랐던 나는 똥수깐, 뒤간이라고 하지요.
중국 한자말로는 변소, 변소깐, 화장실이라고 말하고, 영어로는 WC라고 하겠지유.
혹시 똥물이 튀어 올라와서 엉덩이와 옷에 묻는 것은 아닐까유?
* 수덕사 : 충남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에 소재
저도 위 수덕사에 들러서 이곳으로 가서 볼일 본 적이 있지유.
시골 태생인 나한테도 많은 기억이 나는 똥수간이군요.
서해안 제 시골집에는 아직도 세 곳이나 남아 있지요.
안마당 창고 끝에 있는 똥수깐.
작은쌍둥이가 바깥에서 놀다가 울안으로 들어와 똥수깐에 가다가 뱀 물려서 다음날 죽었기에 즉시 폐쇄...
안사랑방 뒤켠으로 새로 지은 똥수깐이 지금도 남아 있고, 일꾼사랑방 뒤켠에 있는 똥수깐을 아직도 남아 있고,
바깥창고에 있던 똥수깐을 흙으로 채워서 묻어버리고...
지금은 안채에 신식으로 낸 화장실에서 볼일 보지요.
똥과 오줌.
저는 그다지 더럽다는 생각은 안 합니다.
자연으로 되돌아가서 땅을 기름지게 하고, 동물과 식물의 밥이 되기에....
덕분에 글감 하나 떠올립니다.
엄지 척!
나도 날마다 하루 세 끼니를 먹고는 날마다 수시로 오줌을 눗고, 똥을 싼다.
오줌과 똥이 무척이나 냄새나고, 더럽다고 여겼는데 나이가 들수록 더럽다는 생각이 가신다.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살아 있기에 먹어야 하고, 먹으면 뱃속에서 소화하고, 양분은 피와 살이 되고, 소화가 채 안 된 음식물은 찌꺼기가 되어 오줌과 똥을 눠서 쏟아내게 마련이다.
예전 시골에서 살 때에는 오줌과 똥은 아주 소중한 거름이었다.
오줌통에 오줌을 누어 모아뒀다가 밭에서 자라나는 식물한테 조금씩 부어주었고, 똥도 모아둬서 삭힌 뒤에는 소마통으로 퍼 날라서 흙에 부어주었다.
오줌과 똥이 거름이 되어서 식물이 뿌리로 빨아먹어서 더욱 크게 자랐고, 튼튼해졌다.
오줌과 똥을 먹는 생물은 오로지 식물뿐일까?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미생물(균)이며, 작은 개미와 같은 벌레이며, 쥐 고양이 개 등 큰 동물도 똥을 햝아먹는다.
똥이 햇볕과 바람에 마르면 잘게 부서져서 이리저리 흩어지고, 최종에는 소중한 거름이 된다.
내 시골집 바깥마당은 잔디밭이다.
이웃집 개들이 와서는 이따금 똥을 싸고, 그 똥은 햇볕에 마르고, 비바람에 녹아서 흩어진다. 자연스럽게 자연으로 되돌아간다.
이따금 잔디밭 위에 떨어진 개똥을 본다. 그다지 더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에 삽으로 푹 떠서 윗밭 나무뿌리 곁에 던지면 그뿐이다.
내 어린시절(1950년대) 재래식 똥수깐에서 똥을 누었다.
똥물이 반쯤 찼기에 똥덩어리가 풍덩 떨어질 때에 이따금씩 똥물이 위로 튕겨올라서 엉덩이에 묻었다.
벼 지푸라기를 한 가닥 접어서 짧은 길이로 여러 번 접은 뒤에 그것으로 밑(똥구녁)을 닦아냈다.
나중에는 비료푸대 종이가 나와서 이를 잘라서 밑을 씻었고, 더 나중에는 신문지를 잘라서 활용했고, 지금은 두루말이 화장지로 밑을 씻었다.
2023년 1월인 지금.
서울 송파구 잠실 아파트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뒤에 변기 곁에 있는 스위치를 누르면 물이 꽐꽐 소리를 내며 쏟아져서 방금 전에 눈 오줌과 똥을 깔끔히 씻어내린다.
똥물이 튕겨서 엉덩이와 옷에 묻을 일도 없고... 묻었다고 해도 바로 곁에 있는 수도물을 떠서 밑을 씻으면 그뿐인 세상이다.
하지만 서해안 산골 아래에 있는 내 시골집에는 아직껏 푸세식(개량형)이 세 군데나 남아 있다.
* 그 이전에는 이런 시설물조차도 없는 그냥 사각형태로 된 큰 통이었음
수십년 전에 지은 개량형 변기를 없애려면 집 여러 군데를 뜯어낸 뒤에 새로 건축해야 할 터. 이게 다 큰돈이 들어간다.
그럴 필요가 없기에 그냥 놔든 채 폐쇄했다.
대신에 수십 년 전 부엌 입 구쪽의 작은 창고를 뜯어서 새로운 형태의 신식 화장실을 지어서 지금껏 활용한다.
서울 내 아파트 안에 있는 구조와 똑같은 형태이다.
뒷간....나무 널빤지라도 걸쳤으니 다행이다.
개량형 푸세식 변기
* 수십년 전에는 아무것도 설치되지 않았다.
그냥 시멘트로 벽과 바닥을 만든 사각형으로 만든 엄청나게 큰 공간-통이었다.
소마통
위 사진들은 인터넷에서 검색했다.
용서해 주실 게다.
독자한테 옛날의 시대상을 설명하는 사진이기에...
사진에 마우스를 대고 누르면 사진이 크게 보임
인터넷에서 아래 요지의 글을 보았다..
전통농경사회에서 이 뒷간이야말로 보물창고였다.
농사에 없어서는 안 되는 거름의 생산지가 바로 이 뒷간.
뒷간은 거름공장이어서 어른들은 놀러 나가는 아이들에게 이르곤 했다.
“똥은 꼭 집에 와서 싸거라”
똥은 밥이다. 똥이 거름이 되고 그 거름이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고 그 열매를 먹고 살아가니 소중하다.
오죽했으면 오밤중에 남의 집 뒷간을 뒤지는 ‘똥 도둑놈’도 있었다.
새벽녘, 미처 날이 밝기도 전에 똥장군을 지고 밭으로 나가는 농부의 입가에는 흐뭇한 웃음이 걸리곤 했다.
내가 기억하는 1950 ~ 1960년대.
아궁이에 불 땐 뒤에 나온 재를 고무레와 당그레로 긁어 삼태미에 담아서 잿간에 부었다. 재를 제법 높게 쌓아올렸다.
이 재에 똥물을 끼얹어서 재를 삵혔고, 삼태미에 담아서 밭으로 가져갔고, 맨손으로 한 줌씩 쥐어서 밭 고랑에 흩뿌렸다.
보리밭, 밀밭 등에....
이런 탓으로 밭에서는 구린내, 똥내, 지린내가 늘 서렸다.
시골 냄새였다. 고향 내음새였다.
2023 . 1. 26. 목요일. 최윤환
첫댓글 어제 내린 눈이 수북하니 쌓여 있네요
손녀랑 뽀드득 소리내며 웃는 시간을 갖어 봅니다
왜 지난 것들은 그리도 그리운지요
댓글 고맙습니다.
홍실이님은 위 시골 정경을 잘 아시겠군요.
어제 내린 눈 위를 걸어서 뽀드득 소리를 낼 줄 아시니까요.
맞습니다. 홍실님의 마음처럼 지나간 것들은 이제는 모두 그리움이 되지요.
당시에는 슬펐고, 아쉬웠던 것조차도 이제는 그게 다 그리움이 되지요.
저 역시 그렇습니다.
어린시절 산골아이, 촌아이었다가 도시로 전학갔고.... 서울에서 수십년 째 살고 있어도 제 마음은 늘 시골에 내려가 있지요.
제가 글 올리는 대부분의 소재는 옛날 고향이야기이지요.
그 속에는 지금은 만날 수도 없는 어머니 아버지 동생/저와는 쌍둥이.. 친인척, 동무들이 들어있지요.
고맙습니다.
추운 겨울을 잘 이겨내시고,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잘 되기를 빕니다.
대구 시내에 살았어도 어린시절 변소 라고 위에는양번기 아래 구멍으로는 똥이 현이 보이는 어린 제조카가 어떻게 빠졌는지 몰라도
문을열고 건져내어서 씻겼는데 귀에서는 작은 구더기 한마리 가 나와서 기절 초풍한 일도 있었네요
댓글 고맙습니다.
양변기 속으로 빠진 어린조카는 얼마나 겁이 났을까요?
아이의 굿가에서 구더기가 나와서... 기절초풍했다는 내용에 빙그레 웃습니다.
상상이 가니까요. 왜그리 쇠파리 똥파리의 알이 부화해서 구데기가 많았던지...
그거 빗자루로 쓸어서 닭장에 부어주면 닭들이 엄청나게 달겨들어서 금세 다 먹어치웠지요.
나오미님도 이런 저런 옛기억을 떠올려서 글 올려보셔유.
어떤 내용일까 하고 벌써부터 궁금합니다.
똥과 삶은 일치합니다 먹어야 싼다? 싸야 산다 먹고 싸고 싸고 먹고 그러다 생의 끝이 옵니다
먹는 형태엔 고상하고 우아한 또 위엄과 점잔이 부여 되지만 싸는데는 그 딴 거 없습니다 고상하게 먹은 것도 점잔게 잡순 것도 쌀때는 거지같이 쌉니다.
댓글 작가님.
운선작가님은 이런 상황을 이해해 주시는군요.
맞는 말이군요. 먹을 때에는 점잖은 체를 하지만 똥 쌀 때에는 보통사람과 똑같겠지요.
대도시의 분뇨... 어떻게 처리할까요?
그 엄청나게 많은 분뇨을 어떻게 모아서, 수거해서, 어떻게 처리할까요?
최종 찌꺼기는 어디에다가 버릴까요?
지구의 인구는 80억 명... 이들이 날마다 싸지르는 똥이..
그래서일까요? 지구가 갸우뚱갸우뚱하는 것 같지요?
정말로 더러운 것은 인간의 배신입니다!
요즘 우리 카페에서
똥수깐(절에서는 해우소, 요즘 일반적으로는 화장실) 이야기가 이슈가 되네요. 최 선생님!
댓글 고맙습니다.
가장 진솔한 것이니까요.
저는 어린시절부터 숱하게 보아왔지요.
오줌통 똥통을 지게 양끝에 매달아서 조심스럽게 운반해서 텃밭에 내려가려면.. 결국에는 옷에 신발에 묻게 마련이지요.
1960년 대전으로 전학 갔는데... 푸세식변소... 커다란 달구지(구루마)에 큰 똥을 올려놓고는 소마통으로 퍼서 붓고는....
대전 대덕구 대화동... 야산 아래는 대전시내에서 퍼 온 분뇨를 쏟아버리는 곳....
지금은 대화산업단지으로 변했고....
모두 그랬지요. 그 당시에는.
2020년대인 지금은 천지가 변한 것처럼 많이도 변했지요.
제가 사는 서울 잠실 아파트... 변기통에 있는 스위치를 누르면 그게 어디론가 빠져나가지요.
그거 어떻게 처리할까요?
이런저린 이야기가 오르기에 <아름다운5060카페>가 훌륭한 것이지요.
진실하고 솔직한 이야기들이니까요.
박선생님도 한번 이야기를 꺼내보셔요.
그럼 제가 ㅋㅋㅋ 웃으면서 댓글 달아야 하니까요.
이른봄이면 보리밭 밀밭을 지날때
여자 아이들은 코를 막고 뛰었지요 ^^
밀, 보리밭에 뿌려진 인분 냄새는 참 오래도록 가시지 않았습니다
인분을 퍼 나르는 통을 우리고장 에서는 <똥장군> 이라 불렀습니다 가득담고 볏집으로 마개를 막아
지게에 얹어 날랐는데 덜채우면 목뒤로 내용물이 목뒤로 넘어 오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
우리고장엔 두개짜리는 본적없고 하나씩 지게에 날랐습니다 ~~
댓글 고맙습니다.
고들빼기님은 그 내음새를 기억하고 있꾼요.
2020년대인 지금은 그런 냄새를 어디에서 맡을 수 있을까요?
제 시골집에는 나무판자로 된 소마통은 오래 전에 삵아서 없어지고, 고무로 만든 소마통은 있지요.
저도 똥장군 통을 짊어지고서 밭으로 날랐지요.
이제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네요.
수십 년 전... 신식화장실로 개조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