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뎃글로 아타튀르크의 군사적 재능에 대해 약간 의문을 갖고 있다는 늬앙스가 담긴 글을 남긴 적이 있었는데.....(cjsw님의 터키에 관한 글에 대한 뎃글입니다. 읽어보신 분들은 무슨 말인지 아실 것임.) 거기에 대해 제가 느낀 걸 몇 자 추가로 끄적거리자 합니다.
기본적으로 제가 1차대전의 유명한 지휘관들에게 느낀 것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가장 유명했던 두 지휘관 헤이그, 페텡 이 두사람 다 자기편의 인명 손실에 대해 상당히 무감각했다는 것이죠. 어떤 군사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투입해야할 인명, 물자 등등에 대해 '승리하면 된다.'식으로 임했다는 얘기인데요. -- 1차대전의 특성 상 그 군사적 성취가 기껏 적 참호선 몇 개 뚫은 것에 불과했다는 게 이 전쟁의 최대 비극이요, 우울한 얘기인데.......
전 개인적으로 위의 지휘관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이 거야 각자 취향차이가 있을테니.)
헤이그 -- 지옥같은 3차이프르 전투 -- 파스샹달 전투 혹은 패션데일 전투 -- 라고도 하는 참상을 연출하고도 후방에서 자국군인들의 희생에 대해서는 그냥 냉담합니다.
페텡 -- 베르됭의 영웅 -- 이 사람이 베르됭전투 지휘 기간에 한 말이 있는데 "후퇴는 없다. 모두 나가 싸워라!!!!!" -- 이런 프랑스의 독기어린 사수덕분에 독일군 공세가 좌절되긴 했는데 어느 군사사가는 이렇게 평하더군요.
"너무나 인명손실을 무시한 페텡의 지휘스타일 덕분에......(후략.)"
추가)조프르 --1914년 이 양반이 후퇴명령을 내린 건 적절한 판단이었습니다만 이 양반도 원래 공격하고 싶어 안달난 사람이었습니다.
-- 파리 사수 역시 독일군 1군이 알아서 비껴간 거지 이 사람의 공이라고 보긴 어렵고. 뭐, 원래 슐리펜 계획에서 파리는 점령목표가 아니었으니까요. --
이제 케말에 대해 몇 자 적자면,
제가 갈리폴리 전투 자료를 찾다가 영문 싸이트에서 봤던 그 내용.
아타튀르크의 냉엄한 지령 -- "난 니들에게 싸우라고 말한 게 아니다. 거기서 죽으라고 요구하는 거다." 그 걸 보고 상당히 복잡한 감정이 솟구치더군요. 상황상 반드시 사수해야할 지점이고(갈리폴리 전투 지도 보시면 아시겠지만 거기 뚫리면 콘스탄티노플까지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다이렉트로 갈 수 있었습니다. ) -- 그런 상황에서 당시 사단장에 불과했던 아타튀르크의 판단은 타당한 거를 넘어서 영웅적인 건 분명하죠. (처음 케말의 부대 이외에는 상륙 지점 그 근방에 배치된 투르크군도 없었습니다.)
근데 뭐랄까요. 처음에 방어선에 투입된 연대는 문자 그대로 전멸했습니다. 거기에 케말은 짧게 코멘트하죠. "그 부대는 아주 훌륭한 부대였다."
쩝. ㅎㄷㄷㄷ;;;; 아주 냉엄하기 짝이 없다는 게 저의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글을 읽었기 때문에 제가 케말에 대해 페텡이나 헤이그같은 스타일의 지휘관이었을 거라고 뎃글달은 겁니다.
p.s : 그래도 케말은 헤이그보다는 확실히 유능했을 겁니다. 성공적인 방어전 완수에 훨씬 약했던 화력지원에 비하면 (영국군과 프랑스군은 해변에서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이 함포 지원사격을 계속 해줄 수 있었다는..... ㅎㄷㄷ) 갈리폴리 전투의 연합군과 투르크군의 교환비는 1:1로 양호하니까요.
저의 두서없는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1차대전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께는 난해한 얘기가 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첫댓글 1차 세계대전의 성공한 장군들은, 다시 말해서 철저히 패했거나 점차 비관론에 빠지지 않았던 자들은 무정한 인갇릉이었다. 책상 위에 쌓여가는 사상자 수치에 무감각해야 했다. 그렇지만 일부는 강인한 정신에 약간의 인상적인 인성을 더하는 데 성공했다. 예를 들면 이런 강인함에 조프르는 침착함을, 힌덴부르크는 진지함을, 포슈는 불같은 정열을, 케말은 확신을 결합했다.
-. 1차 세계대전사 p412. 존 키건
좋은 뎃글 감사합니다.
다만 그들의 그 '무정함'을 전 좋아하지 않습니다. 장군이 너무 병사의 고통에 예민하면 안 되겠지만요.
특히 포슈는 글쎄요...... 프랑스군이 1914년 초기전투의 피해를 생각해보면 긍정적으로 평가하기가.....
저도 1차 세계대전은 안 좋아합니다. 당시 전장상황이 그랬다고는 하지만 병사들은 진창이 된 참호에서 쥐하고 싸울 때 총사령관은 후방의 고성에서 승마하고, 제때 식사하면서 살았으니까요.
그래도 케말정도면 우익이 무너지고 중앙은 후퇴중이니 형세가 좋다. 나는 돌격한다고 한 포슈에 비하면 정상인이라고 생각합니다. ㅠㅠ
갈리폴리는 상륙작전이라 공격입장에서 엄청 까다로왔을듯
상륙작전이 후방의 상당한 화력 지원이 없으면 대실패로 끝나기 딱 좋죠.
그때 터키가 막장이라서 유럽열강한테 먹힐거라는 패배주의가 만연했는데 케말이 잘싸워서 독립을 지켜내서 그렇지 보통 상륙작전인데 저 정도 교환비면 일반적으로 썩 휼룡한건 아니지 않아요?
공돌이 입장에서 참 아쉬운 게, 현대적인 원소 주기율표를 만든 모즐리가 이 전투에 병사로 참전했다가 전사했지요.
개인적으로는 1차 세계대전에서 발생한 가장 큰 손해라고 생각합니다.
to 명일// 그 때 상륙작전 시도하는 영국군과 프랑스군의 (포병)화력과 투르크군의 (포병)화력 전력을 비교해보면 게임이 안 되죠. 물론 1차대전의 최고 학살자는 기관총이었지만 상륙작전이나 돌격시에 뒤에서 포병이 포를 쾅쾅 쏴주는 것과(미리 계획된 시간 계획순으로) 그냥 보병이 몸 다 내놓고 돌격하는 건 천지차이 입니다.
영문 싸이트에서 투르크군의 피해가 저렇게 막심한 건 연합군 후방의 전함에서 쏴주는 함포사격에 의한 피해가 컸다는 군요. (당시 슈퍼드레드노트급 전함의 사거리와 정확도에 알게 되시면 보병 입장에서는 오줌 지립니다.) 그에 반해 투르크군이 동원할 수 있는 포병전력은 글쎄요.?!?!
실제 갈리폴리 전투 당시 총 6개 정도의 상륙 지점이 있었는데 대략 연합군의 반?! 정도는 별 피해없이 상륙했습니다. -> 미드 '퍼시픽'에서 미 해병대가 바짝 쫄아서 상륙준비했는데 이미 상륙했던 애들이 웃던 장면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하실 거에요.
투르크 군이 애초 연합군의 상륙지점을 예측 못해서 엉뚱한 곳에 주력이 가 있었거든요. 케말이 훌륭한 지휘관이었던 건 그 상황에서 상륙을 허용당한 이후 '감제 고지'(주변 도로, 지형이 훤히 다 보이는 높은 곳.)가 될만한 곳을 안 빼았겼다는 겁니다. 진짜 재빨리 틀어막았거든요.
그 이후 갈리폴리 전선이 고착화되었었는데 이 때 연합군 보병들은 항상 바다에서 든든히 받쳐주는 함포 사격이 어느 정도 있었죠. (물론 그래도 참호 속의 보병들은 살아남습니다. 그에 반해 투르크군 포병전력이 얼마나 많았는지 의문이라는 게 저의 앞 뎃글입니다.
그러한 정황들을 고려할 때 케말이 저 정도 교환비 내면서 막아낸 건 잘 막았다고 봐야죠. (물론 저의 사적인 생각입니다. 그 외에 보급상황, 당시 투르크의 철도 연결 상황도 얘기하려면 너무 말이 길어질 것 같군요.)
갈리폴리 상륙전에서 슈퍼드레드노트는 상당히 제한적으로 투입되었지요, 해봤자 Queen Elizabeth 정도? 일단 함대 절대 다수가 프리드레드노트급인데다가 프랑스 해군은 일단 슈퍼드레드 노트는 고사하고 겨우 드레드노트 꾸르베급이 1913년 말인가? 건조되었습니다.. 그래서 절대 다수의 화력 지원은 프리드레드노트급 전함들이 차지 했습니다.
to gondolin님// 음. 쓰다보니 슈퍼드레드노트급이 주력이 되었다 그런 늬앙스로 쓴 게 아닌데 의미가 와전됐군요. 말씀하신 사실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말하고 싶었던 건, 연합군의 그런 전력에 비해 당시 투르크군의 포병 전력이 상대가 되었던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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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ㅎ; 근데 그 양반 인종주의에 쩔어있었던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1차 대전 당시의 장군중에 영국군 지휘관인 앨런비 장군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중동에서 나름 크게 성공하지 않았나요...
to 기러기님//헤헤헤. 앨런비는 팔레스타인 완전 뚫어버렸죠. ^^;;;
저 시대에 방어전을 치루는 사령관의 입장에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나가 죽어라 이외에 딱히 선택의 여지가 있을까 싶군요. 아타튀크르의 경우 안그래도 여러모로 열세인 전력에서 터키 본토를 사수해야 하는 입장이고.
근데 저때 칼리폴리를 사수했던 사령관이 아타튀르크였나요...독일의 군사고문으로 왔던 산더스(이름이 잘 생각 안 나네요) 장군이 아니었나요...
리만 폰 잔더스(혹은 산더스)는 제 기억에 투르크군을 잘못 배치했던 장군일 겁니다. 일단 갈리폴리 전역이 시작되고나서는 케말이 전체를 책임지게 되었던 걸로 기억해요.
Che_GueVaRa //산더스가 갈리폴리를 방어할때 그 휘하의 병력이 많지 않아서 전체 해안선에 대규모 방어병력을 투입할수 없어서 적은 병력으로 중요지점에 적 병력의 상륙을 감시하게 하고 나머지 방어병력을 자기 휘하에 두고 어디로 상륙하던지 즉각 병력을 투입시키는 기동방어 작전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닌가요...
그리고 결국 연합국의 실수가 더해지기는 했지만 산더스의 대응이 나름 훌륭해서 갈리폴리 방어에 성공한 것에 그의 공로도 인정하는 분위기였던것 같던데 생각이 안 나네요......뭐 나중에 산더스는 팔레스타인 전역을 지휘하다가 앨런비에게 패하기는 했지만요...
인명손실에 무감각 안해지고서야 어찌 참호전이라는 수렁에서 군을 이끌수 있을란지...
조프르와 포슈... 그들이 고대, 하다못해 나폴레옹시대에 만났다면 정말 좋은 조합이 되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