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576돌을 맞는 한글날을 기념해서 퀴즈 세 문제를 냅니다.
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오른 다음의 풀이가 뜻하는 단어는?
“십자화과의 두해살이풀. 길이가 30~50㎝이며, 잎이 여러 겹으로 포개져 자라는데
가장자리가 물결 모양으로 속은 누런 흰색이고 겉은 녹색이다.
봄에 십자 모양의 노란 꽃이 총상(總狀) 화서로 핀다. 잎·줄기·뿌리를 모두 식용하며,
비타민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한국, 중국,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백채, 숭채.”
2. 다음 중 맞춤법이 틀린 것은?
①전셋집 ②전셋방 ③막냇동생 ④훗일
3. 다음 중 표준어가 아닌 것은?
①코린내 ②시뉘 ③여지껏 ④널판때기
1번 문제의 답은 ‘배추’입니다. 2번은 ②전셋방, 3번은 ③여지껏이 정답인데요.
세 문제를 모두 맞혔다면 국어학자 또는 국어 교사, 과잉교정인간(표준어와 맞춤법 등에 지나치게 민감한 사람)이거나,
배추 농사를 짓는 사람일 확률이 높습니다.
세 문제 모두 틀렸다면? 지극히 ‘표준적’인 대한민국 언중일 것입니다.
성적 향상의 지름길은 오답 노트라고 합니다.
그런데 1번은 대한민국 정부가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이 배추를 저렇게 풀이하기 때문에
‘내가 왜 틀렸는지’ 원인을 찾기가 힘듭니다.
비슷한 말로 오른 ‘숭채’에서 힌트를 얻었다면,
약 20년 전 드라마 <대장금> 9회에 등장한 ‘숭채만두’를 봤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사극을 열심히 시청하는 게 국어 실력을 닦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비약이 차라리 ‘말이 되는’ 조언입니다.
2번과 3번은 근거가 확실합니다.
우선 2번은 문화체육관광부고시 제2017-12호인 ‘한글 맞춤법’ 30항 사이시옷 규정이 기준이거든요.
이 고시는 1988년 제정된 ‘문교부고시 제88-1호’가 원형인데,
지금까지 두 차례 개정됐지만 바뀐 건 문장부호 일부 용례와 조항의 띄어쓰기 오류 정도에 불과합니다.
①전셋집은 ‘앞말이 모음으로 끝나는 순우리말(집)과 한자어(전세)의 합성어 가운데
뒷말의 첫소리(ㅈ)가 된소리(ㅉ)로 나는 것’이므로 사이시옷을 씁니다(30항 2의1).
②전셋방은 한자어 합성어(전세+방)인데,
30항 3은 두 음절로 된 한자어 ‘곳간, 셋방, 숫자, 찻간, 툇간, 횟수’만 사이시옷을 인정하므로 ‘전세방’으로 써야 맞습니다.
③막냇동생은 ‘앞말이 모음으로 끝나는 순우리말 합성어(막내+동생)인데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30항 1의1)여서 사이시옷을 써야 합니다.
발음이 ‘망내동생’ 아니냐고요?
표준발음은 ‘망내똥생’ 또는 ‘망낻똥생’입니다.
④훗일은 ‘앞말이 모음으로 끝나는 한자어(후)와 순우리말(일)의 합성어인데
뒷말의 첫소리 모음 앞에서 ㄴㄴ 소리가 덧나’(30항 2의3) 사이시옷을 쓰는 게 맞습니다.
3번 문제에서 정답과 오답을 가르는 기준은 문화체육관광부고시 제2017-13호, 즉 ‘표준어 규정’입니다.
한글 맞춤법 고시와 마찬가지로 1988년 제정됐고(문교부고시 제88-2호)
일부 조항의 띄어쓰기 오류 정도만 수정된 채 지금까지 국어 생활의 규범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①코린내는 19항이 ‘어감의 차이를 나타내거나 발음이 비슷한 단어들이 다 같이 널리 쓰이는 경우 그 모두를 표준어로 삼는다’
이므로 고린내와 함께 표준어입니다.
②시뉘가 표준어인 이유는
‘준말과 본말이 다 같이 널리 쓰이면서 준말의 효용이 뚜렷이 인정되면 두 가지를 다 표준어로 삼는다’는 16항 때문이고요.
이에 근거해 시누이, 시누도 표준어입니다.
26항은 ‘한 가지 의미를 나타내는 형태 몇 가지가 널리 쓰이고 표준어 규정에 맞으면 모두 표준어’로 보기 때문에
여태껏, 이제껏, 입때껏은 표준어지만, ③여지껏은 표준어가 아닙니다.
④널판때기는 17항이 ‘의미에 차이가 없으나 비슷한 발음 몇 형태가 사용되는 경우엔
더 널리 쓰이는 하나만 표준어’로 규정하지만, 앞의 26항에도 해당되기 때문에 널판자, 널빤지와 함께 표준어입니다.
하지만 널판지, 널판대기는 비표준어입니다.
이 오답 노트, 쓸 만한가요?
복잡하고 장황할뿐더러, 정답과 오답의 형식적인 근거가 ‘확실’한데도
그 내용을 이해하거나 설명에 공감하기 어렵지 않은가요?
이 때문에, 우리의 말글살이를 연구하고 다채롭게 만드는 국어학자나 출판편집자들 일부가
‘<표준국어대사전>을 없애자’거나 ‘맞춤법·표준어를 없애자’는 등의 목소리를 내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한글날, 어쨌든지 우니 말과 글을 보듬어야 할 마음가짐을 다잡는 날이어야 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말123^*^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