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화상사적비를 보았는데 아도화상의 아버지인 아굴마의 출신이 좀 이상하군요.
비에는 아도화상의 아버지인 아굴마가 조위출신이라고 하였는데 곧바로 진목제 영화12년(356년)에 고구려에 사신으로 왓다고
합니다. 도대체 몇살이라는 말인지...위나라 멸망직전에 태어났어도 거의 100세에 가까운 나이에 사신으로 왔다는 말인데...
이 비석의 내용이 어느정도 신뢰성이 있는건지 모르겠습니다.
건립연대도 보아하니 17세기라고 하는데...그렇다면 삼국유사나 해동고승전을 참조해서 만들었겠죠.
한편 어머니 고도녕에 관하여...마치 후궁으로서 사신의 여독을 푸라는 의미로 들여보낸 것과 같은 뉘앙스가 풍기지만,..
좀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을것 같습니다. 물론 궁녀라고 해서 성이 없다고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고씨라는 것은 귀족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고구려 왕이 고도녕과 더불어 빈관에서 영접했다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발고추가'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16세에 사신 행차를 따라 들어갔다고 하니, 이와 같은 집안이라면 사신행차를 따라 갔던 것도 업무상 가능했을것 같습니다.
한편, '발고추가'의 유래에 관하여 왕족이 주로 사신을 영접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본 적이 있는데, 이렇게 본다면 어느정도
아귀가 맞아 떨어진단 느낌입니다.
별로 중요한 내용은 아니지만 아도화상사적비는 처음보는지라 문득 생각이 나서 글을 써봤습니다.
첫댓글 아굴마의 나이에 조위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손)오가 멸망한 이후에도 오나라에서 왔다는 기록을 볼 수 있으므로 출신지가 어디이다 정도로 판단하면 될 듯 합니다.
아굴마의 나이는 고구려에 사신으로 온 진목제 영화12년(356년)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좋은 자료이며 관련 원문자료가 있다면 금상첨화겠네요.
남당유고에는 미추이사금이 사망한 시점이 362년 10월이며,
아도가 고구려에 들어온 시기가 소수림왕 4년(A.D.374)의 일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신빙성이 있는 기록이지만, 고도녕이 어머니가 맞다면 아도의 나이에 약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 문제가 마저 풀린다면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을듯...
학계의 공인을 받지 못한 동천왕 비석이니 문자명왕 비석이니 발해 동전(...)이니 이런건 고고학적 가치가 없다고 봐야 합니다. 한국 고대사의 비밀을 풀어줄(!) 대박 사료 발견됐다고 좋아하면서 그런 자료 연구하다가 어느순간 동북공정이 짜놓은 플롯을 내면화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수 있을 겁니다.
악의 없이 썼겠지만 전 기분이 나쁘군요. 저도 동청왕 비석 등이 논란이 많고 어느정도 선에서 봐야 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혹시 아도화상비석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온건가요. 아도화상에 관해서는 삼국유사나 해동고승전에서도 다루고 있고 비석은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등록되어 있는걸로 알고 있는데요.
죄송합니다. 댓글을 작성할 당시 개인적인 사정으로 기분이 좀 안좋아서 댓글마저도 거칠게 써버렸군요. 돌부처님 기분나쁘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다만 남당유고,동천왕 비석 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정체불명의 자료들을 신봉하며 마치 그 자료들이 사실을 담고 있는 것 마냥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는 태도를 취하는 분들이 순간적으로 떠올라 흥분되어서 이런 댓글을 적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여하간 저는 동천왕 비석,문자명왕 비석 등은 그 내용으로 짐작컨대 동북공정의 저의가 담긴 위작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학계의 공인을 받지 못한 자료들 전부가 위작이라고 까지는 생각하지 않으며, 소수나마 옥석을 가릴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대사 사료가 부족한 마당에 새로운 사료를 밝혀내려는 작업에 흥미가 가고 동참하고싶은 마음마저도 생깁니다. 거친 댓글에 대해 정중히 사과드리며, 의미있는 작업에 응원을 보냅니다.:-)
충분히 공감하겠습니다. 그런데 아도화상비는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등록되어 있고 그 내용도 삼국유사와 해동고승전과 크게 다를바 없습니다. 이것이 동천왕 비석 정도와 같이 봐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아도화상비를 동천왕 비석 부류의 것과 혼동하여 착각을 일으켜 다른 것으로 판단해 버렸던 것 같습니다.-_-;; 별 이상한 실수를 했네요.
아도가 (동)진에서 왔기 때문에, 그 아버지인 아굴마도 역시 (동)진에서 왔을 가능성이 있으며, 삼국유사에는 오나라 사람을 따라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굴마가 그 이전에 사신으로써 고구려 온 시기를 살펴보려고 사신이 오고간 기록을 살펴보니 고국원왕6년(A.D.336)에 고구려가 진나라에 사신을 보냈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A.D.356년에 해당하는 기사에는 고구려와 사신이 오고 간 기록이 보이지는 않지만 크게 주목할 만한 사건이 없는 의례적인 사신교환이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