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는 휵대전화가 첫선을 보였다.
음향기기와 통신기기의 진화는 끝이 없다.
1970년대에 등장한 카세트 라디오는 혁신적이었다.
부피가 큰 릴 테이프가 아닌 카세트테이프를 라디오에 넣어서 어디서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휴대성이 큰 장점이었다.
삼성, 금성, 일본 소니 제품도 있었지만 당시 대세는 국산 성우전자의 독수리표 쉐이코(sweico)
카세트 라디오로 젊은이들이 가장 갖고 싶어 하건 물건이었다.
스테레오 듀얼 스피카가 내는 풍부한 음량이 큰 매력이었다.
그러나 가격이 그때로서는 상당히 비싼 11만5000원이었다.
현재 가치로는 백만원이 넘을 것이다.
카세트 라디오는 도독들이 노리는 귀중품이었다.(동아일보 1979년 1월 31일자)
1980년대에 최고의 히트를 친 전자제품은 문고판 책만 한 카세트인 '워크맨'이었다.
고성능 헤드폰을 겸비한 워크맨은 젊은이들의 로망이었다.
1979년 소니사가 개발한 워크맨 가격은 15만원 정도로 한달치 월급과 맞먹었다.
워크맨을 몸에 소지하고 핸드폰을 귀에 쓴 젊은이들의 모습은 기삿감이었다.
기사는 워크맨이 외부 소리를 못 듣게 해 교통사고를 유발해 문제가 되었다고 소개했다.
파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혁신 중의 혁신, 초소형 MP3플레이어는 '제2의 워크맨' 붐을 일으켰다.
1998년에 나온 MP3플레이어는 이미 녹음기, 커메라, 라디오 기능을 같이 갖고 있었다.
MP3플레이어의 등장은 LP에 이은 CD의 퇴장, 음반(레코드) 회사와 음반 가게의 몰락을 예고했다.
MP3플레이어를 한국 기업이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1997년의 일로 개발 회사는 국내 벤처기업인 디지털캐스트였다.
그러나 '그렇게 잘될 거면 미국이나 일본에서 벌써 시작하지 않았겠느냐'는 국내 대기업의 외면에
이 기업은 미국 다이아몬드 말티미디어에 겨우 300만 달러에 팔렸다(한겨레 1999년 4월 5일자)
뒤늦게 삼성 등 국내 기업이 뛰어들었지만 때를 놓쳤다.
1990년대 제1의 히트작은 40대 이하 세대에서는 생소한 무선호출기, 일명 '삐삐'였다.
1982년 처음 개발된 삐삐는 당사로서는 최고의 통신수단이었다.
또한 삐삐로 개인택시를 부를 수 있었고 꽃 배달 주문을 할 수 있었으며 축구 중계를 문자로 받을 수 있었다.
1997년 삐삐는 보급 대수가 1500만대를 넘어서 보급률이 세계 1위였다.
삐삐가 가장 많이 울리는 날은? 25일이었다고 한다.
월급날이다.
1999년부터 휴대전화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면 서 삐삐 가입자는 격감했다. 손성진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