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행복하십니까?
요즘은 이런 안부 인사말을 건네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니 올해는 유독 힘든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코로나가 만든 세상에서 살다 보니 여러 가지로 몸과 마음이 불편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많은 것을 잃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커다란 것은 아무래도 오랜 시간 습관처럼 살아온 ‘우리의 소중한 일상’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늘 우리에게 주어졌던 평범한 일상 하나 잃었을 뿐인데 우리의 삶은 행복이라는 감정에서 많이 멀어져 버린 느낌입니다. 그러고 보면 아무 일 없이 무탈한 것이 우리 삶의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세상은 다시 새로운 행복을 찾아 변하고 있음도 발견합니다. 새로운 일상이 될지도 모를 비대면 시대에 걸맞은 대체재(代替財)로서의 행복의 조건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또 새로운 경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삶은 행복해지기 위한 끊임없는 전쟁이라는 생각입니다. 마치 평화를 위하여 전쟁을 치르는 아이러니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니 행복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그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노래하고 이야기하고 정의를 내려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말들은 다 진리요 반박할 수 없는 설득력도 있습니다. 행복을 정의하는 기준은 대개 비슷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위한 절대적인 조건을 알고 있는데 진정한 행복감을 쉽게 느끼지 못하는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인지 궁금해집니다. 이것에 대한 답도 이미 수많은 석학들이나 현자들이 내린 바 있습니다.
그러면 왜 뻔한 답을 알고 있음에도 오늘 다시 이 이야기를 꺼내는지 그 이유를 자문해 봅니다.
그것은 아마도 제가 바라보는 세상이 행복해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좀 더 솔직히 표현하자면 나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이 불편해졌을 수도 있습니다.
‘행복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이미 누군가 명쾌하게 결론을 내린 거의 진리와 같은 명문입니다. 이 말을 그대로 인정한다면 우리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 밭이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마음 밭이 병이 걸린 것입니다.
먼 데서 찾을 것도 없이 자신에게 이 질문을 던져봅니다.
‘지금 행복합니까?’
늘 긍정적이고 밝은 세상을 추구하며 살아간다고 자처하며 살아온 저도 이 질문에 쉽게 행복하다고 선뜻 답을 못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런 이유로 지난주 내내 진정한 행복의 조건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뻔한 답을 도출했지만 다시 한번 마음 밭을 추스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최근 사회적 거리 두기로 집콕 생활이 상대적으로 많아지면서 오랜만에 한동안 손을 놓고 있던 서예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집 거실 안쪽에는 30년 전에 썼던 정극인(丁克仁)의 <상춘곡(賞春曲)> 전문이 서예작품으로 표구되어 걸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때가 타고 흠집이 많고 낡아져 새롭게 이 작품을 개비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상춘곡> 전문을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상춘곡>을 다시 쓰면서 글 내용 속에서 삶의 진정한 행복을 발견하게 됩니다. 잠시 스쳐가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뒤로하고 자연 속에 묻혀 살아가는 풍월 주인의 마음 넉넉한 삶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를 새롭게 찾게 됩니다.
지난주 교회 지인이 SNS로 전달한 글에서도 행복한 삶의 조건을 기쁘게 만났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음이 부자인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대통령’의 감동 이야기였습니다.
2009년 11월 대선에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76세의 나이로 우루과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재임 기간 가장 존경받는 농군 대통령으로 살다가 2015년 다시 본업인 행복한 무소유의 농부로 돌아간 충격적인(?) 감동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알려진 무히카 대통령은 지난 10월 코로나19로 더 이상 대외 활동이 어려워지자 정계를 완전히 은퇴하며 존경받을만한 많은 행적들이 다시 세상의 조명을 받았습니다. 5년간의 대통령 재임 기간 중 받은 월급 중 90%인 약 6억 원을 기부했고 이 중 4억 3천만 원은 서민들을 위한 주택 건설 사업에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신고된 재산은 약 3억 5천만 원인데 이 중 1억 5천만 원은 농장이고 나머지는 약간의 현금과 트랙터 2대, 농기구, 1987년형 오래된 자동차 한 대 등입니다. 그나마 이 중에서 농장은 부인의 소유입니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호화로운 대통령 관저를 노숙자들에게 내어주고 별장은 시리아 난민 고아들에게 내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평범한 시민들의 생활을 느끼기 위해 여전히 농장에서 지내며 출근했다는 미담이 전해져 듣는 이로 하여금 어리둥절하게 만들기까지 합니다.
지난 10월 20일 정계에서 완전 은퇴를 선언하고 본업인 무소유 농부의 삶으로 돌아가면서 그가 남긴 감동스러운 연설은 무척이나 감명 깊고 인상적입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삶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다.”
“수십 년간 내 정원에 증오는 심지 않았다. 증오는 어리석은 짓이다… “
“나는 가난하지만 마음은 절대 가난하지가 않다. 삶에는 가격이 없다.”
독일 출신의 인문 과학 저널리스트인 ‘울리히 슈나벨’의 저서 ‘행복의 중심 휴식’을 보게 되면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대화가 나옵니다. 이 대화 속에서도 우리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 조그만 항구도시에 사는 가난한 어부가 자신의 보트에서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었다.
그때 그곳을 지나던 사업가가 어부를 깨워 말을 걸었다.
사업가: 하루에 몇 번이나 출어(出漁) 하시오?
어부: 단 한 번! 나머지는 이렇게 쉬지요.
사업가: 왜 두 번 이상 하지 않소? 그럼 세 배로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을 게 아니오?
어부: 그러면요?
사업가: 그러면 머지않아 사업을 크게 성장시켜 큰 부자가 될 수 있을 텐데 말이오.
어부: 그런 다음에는?
사업가: 그런 다음에는 여기 항구에 앉아 밝은 햇살 아래 달콤한 낮잠을 즐기는 것이지요. 저 멋진 바다를 감상하면서.
어부: 내가 지금 그러고 있잖소! “
얼마 전,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서예로 쓰면서 그 성경 구절 속에서 가르치고 있는 행복의 조건에 대하여 잠시 묵상해보았습니다.
성경 구절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절부터 18절에는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어떤 상황 가운데에서도 항상 기뻐할 수 있음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마음 밭을 만드는가에 따라 늘 기뻐할 수 있을 것이고 이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한다는 것은 내 안에 늘 소망이 있고 긍휼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소망과 긍휼함으로 기도하는 삶! 행복의 또 다른 조건입니다.
마지막으로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합니다. 작은 일에도 감사할 수 있음과 시련도 감사의 조건임을 알고 내 마음을 감사로 다스릴 때 그 마음속에 세상이 알 수 없는 평안이 찾아옵니다.
그러면 세상은 놀랍게 달라질 것입니다.
<늘푸른언덕님은 장로교 교회 장로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