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따로 데리시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셔서 당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그 때 그 자리에 엘리야와 모세가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하느님께서는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잘 들어라”하는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당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셨을까? 마르코 복음서를 보면 오늘 복음 말씀 직전에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하는 예수님의 질문에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베드로 사도의 신앙고백 이야기가 나옵니다(8,29). 예수님을 사람이 아닌 하느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베드로 사도의 말씀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당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해 제자들에게 알려주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베드로 사도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펄쩍 뛰면서 반대하였고 그런 베드로를 보고 예수님께서는 사탄이라고 야단치십니다(마르 8,31-34). 베드로와 다른 열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무기력하게 돌아가셔야만 한다는 말을 듣고 무척 실망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닌 것이 물거품이 되는 좌절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적인 실의에 빠져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십자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죽음 후에 도래할 영광스런 부활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제자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시기 위해 산 위에서 당신의 본래의 모습 즉 천국에서의 모습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부활의 영광이, 천상의 영광이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서 오는 것임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어떤 자매가 세례를 받았는데 막상 신자가 되고 보니 고달픈 것 이 많았습니다. 우선 낙태를 못하니까 원하지 않는 아이를 셋이나 더 낳아 자녀를 다섯이나 키우게 되었으며 또한 장사도 양심적으로 하려니까 수입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이래저래 그녀는 성당에 발을 들여놓음으로 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매는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자랑스럽고, 풍성히 베푸시는 크신 사랑에 늘 감사했습니다.
믿음의 길은 쉬운 길이 아닙니다. 인간적으로는 대단히 어렵고 힘든 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약속의 땅이 있고 또한 올라가게 될 영광의 자리가 있습니다. 세상은 보상해 줄 수 없는 축복이 있습니다. 따라서 현실이 힘들다 해도 하느님을 신뢰하며 아브라함처럼 또 예수님처럼 꿋꿋하게 걸어갑시다.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이 있음을 알려 주십니다. 그것이 거룩한 변모의 이유였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