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1. 28.
토요일이 시작되었다.
추운 날씨가 며칠 째 지속된다.
'미국보리님'이 사정이 있어서 대리출석해 달라고 '운선작가님'한테 부탁하는 글을 보았다.
제3자인 내가 대리출석하고 싶어서 이 글을 올린다.
자리를 양보하고
최윤환
눈 감고 선잠을 자는데 문득 아이의 말소리가 들렸다.
기차는 경기도 평택역을 막 지나고 있었다.
복잡한 기차 안에서 젊은 어미와 딸 둘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통로에 서 있는 모녀의 모습이 조금은 안타까웠다.
예닐곱살 먹은 계집애한테 같이 앉자고 권해서 내 자리에 앉혔다.
두 사람이 앉을 좌석에 셋이나 앉자니 내 자세가 여간 불편했다.
창가 좌석에 앉아 있는 이십대 청년은 귀에 커다란 음향기기만 걸친 채 전혀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밉살스러운 청년에게 자리를 조금만 양보하여 좁게 앉아 달라는 말조차 꺼내기가 싫었다.
나는 화장실에 다녀오는 척하면서 계집아이를 내 자리 한 가운데에 앉혔다.
그리고 선반 위에 올렸던 외투리를 내리고 손가방도 챙겼다.
''어디까지 가시오?"
애어멈한테 물었다.
"영등포역이어요."
"그러면 여기 계속 앉아서 가시구려. 나는 다음 수원역에서 내릴 터이니.....'
"수원역에서도 승객이 많이 타요."
"아니오. 내 좌석은 영등포까지여요. 걱정 마시구려."
"계속 서 있으면 불편하실 텐데요?"
"아니오. 원래는 영등포역까지 갈 예정이지만 수원역에서 내리겠소. 아이를 계속 앉히시구려."
수원역에서 내린 뒤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면서 아차! 싶었다.
비가 억수로이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받쳐들고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것도 만만하지 않을 만큼 무릎이 시큰거렸다.
우산을 수그린 틈새에서 서울 잠실행 버스를 찾는 것이 여간 어려웠으나
작은 계집아이한테 자리를 양보했던 게 더 흐믓해서 바지가랑이가 빗물에 적시는 것도 참을 만했다.
2007. 3. 4. 봄비 내리는 일요일. 바람의 아들
오래 전에 쓴 일기다.
정년퇴직이 가까워지는 시기였다.
시골에서 혼자 사시는 어머니를 만나뵙고는 서울로 되돌아오면서 열차 자리를 양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는 아무것이나 그냥 다다닥하면서 일기/생활글을 쓴다.
지금도...
먼 뒷날에 읽으면 마치 과거를 회상하는 영화처럼 옛기억이 떠오른다.
일기(글)와 사진, 녹음기 등을 꼭 남겨서 보존해야 하는 이유이다.
세상이 삭막해 간다 하지만 아직은 우리에겐
이런 아름다운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후반 출석하고 갑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저... 사실은 산골 아래 촌구석에서 태어나서 자랐지요.
예전.. 그 어려웠던 시절인데도 동네사람 마을사람들은 서로를 보듭대요.
예컨대 이른봄 살얼음으로 붕 뜬 보리밭/밀밭에는 열댓명의 동네 아주머니들이 와서 보리싹 밀싹을 밟아주고요.
그렇게 해주면 보리뿌리 밀뿌리가 흙에 달라붙어서 더욱 싱싱하고.. 동네아주머니들한테는 아침밥, 아침때것, 점심밥, 저녁때것, 저녁밥을 고봉으로 먹지요.
있으니까 베풀고 없으니까 남의 집에 일을 가도 신나게 열심히 일하대요.
요즘의 각박한 세상과는 달리 60년 전 저너머의 세상은 서로를 보듬었지요.
이런 정서가 깃든 저인가 봅니다.
@최윤환 겨울에 얼어서 부풀어 올랐던 보리밭 밀밭
그 뜰뜬 보릿골을 밟아 말라 죽는것을 막았던 보리밟기......
시골에선 국민학교 아이들 까지 동원한 연중행사 이기도 했지요~~
앞사람 어깨에 양손 얹고 보리밭 밟던 어린시절이 생각 납니다~~
저도 마흔여덟 우리아들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진 농삿꾼 이었습니다 ^^
@고들빼기
예.
님의 정서 밑바탕에는 예전 시골에서 살던 생활이 들어있군요.
보리밭 밀밭 보릿골....
1950년대, 60년대에는.... 농기계가 없던 시절이어서 농민들은 무척이나 배 고팠지요.
그래서 조금 더 사는 사람네에 가서 일해 주려고 했지요.
미리 선돈을 받아가서... 서로를 도왔지요.
밥은 고봉으로 퍼 담고... 들판에서 일할 때에는 밥을 넉넉히 더 가져가서 다른 곳에서 일하는 사람도 불러서 함께 먹었지요.
막걸리 술 무척이나 많이 마셨지요. 큰 통으로 배달받아서.... 구루마, 트럭, 경운기, 자전거 등으로 먼 읍내에서 가져와서....
님도 옛기억을 뽑아서 글 올려보셔유.
@고들빼기 님...
좋은 기억을 가지셨군요.
보리밭 밀밭을 밟아주어야 했지요.
학교에서도 연중행사로....
제가 기억하는 1950년대, 60년대의 농촌 산촌 어촌... 모두 가난했지요.
기계가 아직 없었던 시절이라서 농사는 옛날 옛방식대로 지었지요.
농토가 부족하고, 식구들은 많은 집에서는 남의 집으로 일하러 가려고 했지요.
미리 선돈을 가져가야 했고....
제 집에서도 들밥을 많이 준비해서 일꾼들이 지게로 날랐지요. 들에서는 지나가는 동네사람을 보면 불러서 함께 밥을 나눠먹고...
막걸리통 무척이나 많이 날랐지요. 구루마, 지게... 나중에는 소형트럭, 경운기로 나르고...
예...
고맙습니다.
우리네 서민은 마음이 따듯한 사람들이지요,
잔잔한 글을 읽는 마음이 좋습니다
자리 양보하고 난 후
비 내리는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이 불편 했지만
아이가 더 편하게 가는 상황이 더 좋으셨던 그 기분을 알것 같아서 ~~
오늘도 행복하세요^^
댓글 고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양으로 그렇게 할 겁니다.
요즘 서울 곳곳에도 <무료급식> 센터를 열어서 춥고 배고픈 이웃을 돌보는 사회단체가 많더군요.
방법의 차이일뿐 모두 착하고 선한 인심을 가졌습니다.
도움을 받는 사람들도 마음의 부담을 크게 갖지 않아도 되겠고요.
위 글처럼... 비 내리는 날에 비 맞으면서 걷는 것도 행운입니다.
아직은 다리가 튼튼해서 걸을 수 있으니까요.
마음의 눈으로 길 걸으면서 많은 것을 더 보고 느낄 수 있기에...
최윤환님 같은 분이 계셔서 시멘트처럼 삭막하다는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아직 살만한 곳이라 생각합니다.
최윤환님 선행을 큰 박수로 응원하겠습니다.
지난 동짓날 빙판길 낙상 후유증, 명절 증후군, 왼종일 컴 앞에서 근무 등으로 인한 통증으로 울집 근처 서울대 교수님이 운영하는 재활의학과에 가 목 어깨 팔등 도수 치료를 받고 왔더니 힘이 듭니다.
역시 건강이 최고 임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해주는 하루를 보내는 중 입니다. ^^~
순수 수피아님 댓글 고맙습니다.
수피아님을 검색하니 2021. 7. 11.에 가입 인사말이 있더군요.
그런데 본인이 활동한 글은 없고?!
앞으로는 이렇게 댓글을 많이 다시고, 더불어 본인의 이야기도 꺼내 글 올려서 회원들이 읽게끔 하셔유.
동짓날 빙판길에 미끄러지셨나유? 저런저런...
나이가 들면 두 손을 빼서 양쪽으로 벌리는 듯한 자세로 걸어야 해유. 자칫하면 골절상을 입어서 큰일나유.
통증이 생겨서 재활병원에 다니면서 안마 등의 치료를 받기에 조만간 건강이 회복되겠군요.
돈 많으셔유? 다쳐서... 의사한테 돈을 주시다니.. 의사는 부자들인데?!
저는 오늘은 은근히 지쳐서 아침에 눈 감고 잤고, 오후 점심밥을 먹고는 한 시간쯤 눈 붙여서 잠을 잤네유.
공여히 지치고.. 힘이 들고...
그래도 일주일 뒤에는 24절기가 시작되는 입춘이기에 기운이 벌떡 일어났으면 합니다.
순수 수피아님... 글 한 번 올려보셔유.
기다릴게유.
네 늦게 출석합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야간 당직 출석부 도장 찍습니다.
ㅎㅎ.
그래도 결석 안한게 다행이라 생각해요.
ㅋ
댓글 고맙습니다.
야간 당직출석부라....
저 퇴직한 지가 만15년이 거의 가까이 되지요.
야간... 밤새도록 당직서려면 왜그리 피곤한지... 책상 위에 팔 걸치고는 고개를 잠깐 숙이면서 긴긴 밤을 지새웠지요.
누구나 다 그럴 겁니다.
낮에 일하는 사람이 있고, 밤에도 일하는 사람이 있기에 국가와 사회가 발전하고,
가정에는 화목한 가족들이 새근새근 잠을 자겠지요.
어둠 속에서... 힘든 작업장에서 일하는 분들께 꾸벅 합니다.
밤 늦은 시각에도 댓글 주신 페이지님 고맙습니다.
꾸벅 꾸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