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섬에도 대략열마리정도가 100년전에 서식했다고 하네요 아무도 안 믿었는데 1900년대 초엽 진도에서 사냥한 기록이 나오네요
우리나라 살만한곳이 못되었데요 호랑이 떄문에 난리가 난데요 서울 시내에도 호랑이 활보하고 쳐내려오고 궁궐에도 몇번이나 내려왔다고 하네요
지금 기록보면 우리나라가 임진왜란 이후농경지 개간하면서 호랑이랑 정면충돌했다고하네요 호랑이는 산에서 쳐벅혀 사는 놈들이 아니라 사실은 습지대 분지 나즈막한 야산 요런데 사는 놈들인데 억지로 산으로 쫒겨가서 막판에서 섬까지 헤엄쳐간다고하네요
조선전기까지만 상주 이런데가 발전했는 이유가 습지개발을 못했는데 중선중기이후에 미친듯이 개간해서 호랑들이 내몰린거래요 그래서 호환을 일으켰다고하네요
영정조시대떄는 호랑이가 사람을 하도 물어가서 마을이 해체될 지경에 이른곳도 있었다고 그 이후로 엄청나게 잡아서 고종때에 이를러서 거의 보기 드물어졌고 일제시대떄 역으로 총포사용금지했더니 호랑이 늑대 창궐해서 순사잡아먹고해서 부략부략 포수고용해서 집단사냥해고요 그리고 독립군들 상당수가 호랑이 포수꾼들 출신이래요 일본놈들이 총포사용금지에 여기에 분개해서 의병전쟁참가한분들도 꽤있다고 하네요 대표적으로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부대가 죄다 호랑이사냥꾼 포수꾼이라고하네요 ㄷㄷㄷㄷㄷㄷㄷㄷ
여튼 우리나라는 호랑이에 대한 트리우마가 상당해요 고종시때조차 진도섬에도 호랑이가 서식한다는 사실이 ㄷㄷㄷ 최대 열마리가 진도 섬에만해도 이정도니 경상도는 호환천지래요 호환무덤이 호식총도 아직까지 산 곳곳에 남아있다는게 ㄷㄷㄷㄷ
첫댓글 외국인들이 호랑이갖고 오바한다는게 오바가 아니였군요.
나즈막한 야산에 살던 놈들은 호랑이가 아니라 표범이었을겁니다.
일제때 사냥한 숫자만 봐도 표범이 호랑이보다 단위수가 다를 정도로 많이 잡혔고, 제 고향마을 뒷산에도 한쌍이 살았었다고 하니깐 표범이 상대적으로 민가 가까운 야산에 호랑이보다 더 많이 살던 것들이니 농지개간을 하면서 많이 사람들과 많이 부딪혔겠죠...
호환이 무서운거죠
조선포수가 대단했습니다.
고작 화승총으로 때려잡았거든요
조선말기에 갑호군사인가 이름은정확하지않은데
호랑이전담포수가있었죠
왕실어용엽사 말씀이신가요? 그 중 이윤회 포수의 무용담은 많이 들어봤습니다. 아주 무시무시한 호랑이 포수던데. 강원도 산골의 어느 사또가 이포수가 잡은 호랑이 가죽을 뺏으려다 삭탈관직 당한 일화가 맹수와 사냥꾼이라는 소설에 나왔더군요.
조선의 호랑이 포수들은 만주의 비적이나 러시아인들도 못 건드릴 정도였다더군요. 비적들도 포수들은 안건드리고 못 본체 했다는...
저희 이모할머니가 90넘으셨는데 강원도 홍천 출신이십니다. 처녀시절 때 작은어머니랑 봄나물을 뜯고 있는데 작은 어머니가 갑자기 가자~하고 설렁설렁 돌아가더랩니다. 그래서 뒤돌아 보니 멀리서 호랑이가 지켜보고 있었다고 하네요. 호랭이가 있을 때는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돌아가야 한다고.. 어느날은 두릅 따고 있는데 뒤에서 쿵쿵 소리가 나서 보니 호랭이가 꼬리로 땅을 치고 있더랩니다. 고양이가 심기 불편할 때하는 거랑 똑같죠.. 그때 대처 방법도 같습니다. 말기에는 호랑이들도 총을 무서워해 함부로 덤비지는 않았는지..
총을 무서워했다기 보다는 상대가 위협적인 행동을 하거나 배가 아주 고프지 않는한 매우 신중하게 공격하기 때문일겁니다.
아무리 약한 초식동물이라도 섣불리 공격하다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큰일나기 때문에 상대가 헛점을 보일때 공격하는데, 이때 평상시대로 행동해서 틈을 안보이면 호랑이도 쉽사리 덤비지 못하는거죠.
사실, 저의 할아버지가 해방직전에 징용을 피해 함경도 산골로 도망가 사실적에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큰개가 따라오는줄 알고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는데, 동네사람이 호랑이가 쫒아가는걸보고 기겁했었다고 하더군요. 어쨌든, 공격당하지않고 무사하셨죠.
공식기록은 남한에선 1927년 경주가 마지막이긴 한데, 목격담들은 상당히 많은거 같습니다. 우리 할머니도 6.25때 피난가는데 대전-옥천 사이에서 달밤에 시퍼런 안광을 뿜는 호랑이를 본적이 있다고 하셨었는데... 뭐, 옛날분들은 호랑이와 표범을 잘 구분하지 못했던거 같긴 하지만,
호랑이든 표범이든 현재는 공식적으로 멸종이니 발견됐으면 좋겠네요. 어쨌든 사실 호랑이가 많았다기보단, 개간의 확장+인본주의적 자연관때문에 호랑이와 인간의 충돌이 잦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 외할머니만 해도 사시던 동네에 호랑이가 많이 돌아다녀서 밤에 못돌아다녔다고...
호랑이가 하도 많아 피해도 많았기 때문에 호랑이를 잡으면 포상도 후했죠 실록에서는 노비가 호랑이를 잡자 노비신분을 양인으로 만들어주기도 했다더군요 한마디로 목숨을 건 로또죠
그때는 숲도 울창하고 지금보다 자연도 아름다웠을듯
명일 / 그때는 산에 나무를 많이 베어서 민둥산이 더 많지 않았을까요? 지금이야 나무를 안베가니 산에 나무가 많지만, 그때는 땔감으로 쓰기 위해 마구잡이로 베어가다 보니 호랑이가 민가로 내려온거죠.
96세까지 사셨던 친할머니도 가끔 호랑이 목격담을 해주시곤 하셔서 ㅋㅋ
조선이 아무리 개간되었다해도 산천에 짐승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던것 같습니다 동학농민항쟁때도 수천에 다르는 포수들로 군대를 만들고 심지어 의병전쟁때 항일전쟁때도 거의 포수들이 중심이 되는걸 보니까요 도대체 호랑이가 표범 늑대 이런애들이 얼마나 조선에 많았다는건지
지금은 인간만 너무 많네요
표범은 지금도 백두대간따라 내려오지 않음요
많기야 했겠지만 그렇게 까지야....
피라미드 구조라고 봤을때 호랑이가 그렇게 많으면 먹이가 되는 .... 양질의(?) 고기를 사람들이 생각외로 쉽게 구할수도 있었다는건데....덫만 몇개 설치하면 하루가 멀다하고 고라니부터 멧돼지까지 -_-
호랑이가 독립운동에 일정 정도 공(?)이 있었네요. 의병들의 일부가 호랑이포수이라니까요..^^..
고려사람들은 1년의 반을 호랑이를 피해 도망다니고 나머지 반년은 호랑이에게 죽은 사람 제사 지내러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서울에 봉천고갸(살피재) 아시나요??? 설이 2가지 있는데 도적들 아니면 범때문에 살펴넘는 재라서 살피재라는 지명이 붙었더라고요. 아무래도 후자인듯...
호랑이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할머니 친정언니가 사시는 곳이 강원도 인데 잘기억은 안나고 도시에 속한 면소재지에 사셨는데 그 동네 가는 고개에 호랑이가 자주 다녔다고 합니다. 그래서 40년전에도 시내버스가 가다가 멈췄다가 가기도 하고 사람들 죽어나가기도 했다고 하더라구요.
무악재도 유명하지 않았나요?
사람을 해하는건 지구끝까지 추격해서 없애야됨
참. 지금에 와서 민족 감정 내세워서 일제가 호랑이 박멸했다고 욕하고 백두산 호랑이 기상이니 뭐니 헛소리 하는 사람들은 그 시절에 살아보면 절대 그런 말이 안나오겠죠. 당장에 옆집에 사나운 맹견이 목줄만 풀려도 거품물고 항의할 사람들이...
이 좁은 땅덩이에 그렇게 많은 상위 포식자가 우글거리면서 인간과 공존을 했으니... 1913년인가 총독부 통계보면 늑대에게 물려간 사람만 113명이었던가. 그것도 공식적인 기록이니 비공식으로 따지면...
근데 의외로 여우도 아기들을 물고 갔다는.....밭을 메려고 잠깐 아이를 두었는데 여우가 아이를 물고 10리나 도망갔지만 추격해서 아이를 찾아온적이 있답니다....그 아이가 우리 막내 외삼촌.....
여우가 아이를 물고가기엔 너무 작지 않나요? 늑대와 혼동한건 아닌지. 여우는 크기가 딱 너구리 정도 밖에 안되거든요. 대신 늑대(순수 한국산 아종)는 다른 늑대와는 달리 매우 작은 편인데, 갓난아이를 물어간 사례가 아주 허다하죠.
저도 의외여서 재차 물어봤죠 여우 맞았냐고, 근데 하시는 말씀이 자기 몸집하고 비슷한 크기도 거뜬히 물고다닌다네요......
오. 놀랍군요. -_-;;;; 전래동화에 여우가 무서운 동물들 중 하나로 나오는 이유가 있었군요. 검색해보니 붉은 여우는 몸길이가 70cm나 되네요. 물론 체중은 6~9킬로로 가볍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