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다니던 서울 강남의 여중고는 전국단위 모의고사를 치면 매번 1,2위를 차지해서 소위 명문사립으로 선망받던 학교였다. (2010년부터 자사고로 바뀌었다.) 강남 8학군 쏠림 현상이 심각해 강남구 일부를 서초구로 나누고 인근 다른 지역과 9학군으로 재편된 때가 1988년, 나는 중3이었다. 그렇게 나눠도 소풍이나 수학여행에 가서 여러 학교 아이들과 섞여 있을 때 우리 여고 아이들은 ‘때깔’이 다르다며 일부 교사들은 자랑스러워했다. 고급 빌라 건물 한 채에 한 가족이 살 거나, 50-60평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 부모님이 사업을 하거나 교수이거나 전문직인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아예 없는 것처럼 보였다, 지영이 집에 가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당시는 한자급수 시험이 없던 시절이다. 그런데, 중학교 교장선생님은 공부 많이 시키는 학교답게 한자 수백 개 외우기를 전교생 방학숙제로 내고, 개학하자마자 시험을 쳤다. 70점을 못맞으면 계속 재시험을 쳐야 했다. 취지야 나쁘지 않았지만, Pass/Fail 명단을 공개하는 게 문제였다. 학업성취에 열성이던 담임은 이수자와 탈락자를 짝 지어서 재시험을 통과하도록 도와주라는 미션을 내렸다. 그렇게 나와 짝이 된 아이가 2차마저 떨어진 지영이었다.
일요일 빈 교실에서 지영이와 만났다. 내가 방학 때 만든 한자카드를 가져와서 공부하다 지루해진 우리는 지영이 집에 가기로 했다. 지영이네는 우리집에서 멀지 않은 표구사였다. 표구사 문을 열고 들어가서 일하시는 지영이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가게에 달려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지영이네 집이었다. 그게 방의 전부였다. 거실에서 장남감 자동차를 타고 다녀도 될 크기의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만 보다 단칸방에 사는 친구를 처음 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강남으로 전학 와서 처음 보았다.
지영이네 엄마는 서둘러 나가시더니 쿨피스 한 팩을 사와서 우리에게 따라주셨다. 그날 얼마나 한자공부를 더 하고 집에 돌아갔는지는 기억 나지 않는다. 지영이는 엄마가 따라주신 쿨피스를 보고 조금 어색하게 웃은 기억만 난다. 하지만 단칸방이 부끄러웠다면 지영이는 집으로 나를 데려가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럼없이 집에 데려간 지영이가 좋았다.
어느 방학에는 이런 숙제도 있었다. 반포를 지나가는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다녀 와서 감상문을 쓰는 과제였다. 내가 탄 버스의 종점은 상계동이었는데, 무허가로 지어졌던 집들을 모두 무너뜨려서 전쟁의 폐허를 눈 앞에서 보는 것 같았다. 그 자리에는 새 아파트 단지가 세워질 예정이었다. 같이 갔던 진원이는 수업시간에 소감을 발표하면서 “우리의 존재만으로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억압이 된다.”고 말해 아이들을 술렁이게 했다. “우리가 뭘 했다고 억압이 된다는 거냐?” 당장 옆 친구의 반박이 있었다. 갑자기 붙은 토론을 중재하지는 않았지만, 너희들의 이런 생각이 고무적이라며 도덕 선생님은 빙그레 웃었다.
#2.
2022년 새 정부는 교육부 장관이 공석인 채 출범했다. 110대 국정과제 안에 선정된 교육 분야는 총 5가지이다.
81. 100만 디지털인재 양성
82. 모두를 인재로 양성하는 학습혁명
83. 더 큰 대학자율로 역동적 혁신 허브 구축
84. 국가교육책임제 강화로 교육격차 해소
85. 이제는 지방대학 시대
추상적으로만 들리는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운영계획이 두어 달 후 발표된다. 어떤 정책이 수립될까 사실, 두렵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이미 존재하는데도 만들 것처럼 말해 구설에 오른 특목고 자사고는 수평적 다양화가 아니라 수직적 서열화만 낳았다. 부모 배경에 의한 불공정만 초래했다는 것이 증명되어 일반고 전환을 위해 2020년에 시행령이 개정되었다. 게다가 아이들은 중산층 이상이어야 지원이 가능할 법한 고비용의 학습노동으로 초등학생 때부터 밤10시까지 학원으로 내몰린다. 아동 인권을 침해하는 수준이다. 과반수 이상의 국민들도 일반고 전환을 원한다는 설문 결과가 다수이다.
적성에 따라 다양한 교육을 시킨다는 명분 아래 입시 사관학교가 된 특목 자사고를 졸업해 SKY트랙에 입성한 아이들 중 일부는 다른 지역 출신을 지균충이라 부르며 배제한다. 분리교육은 타인에 대한 무지를 낳고, 혐오를 가중시킨다. 서열화된 고교체제를 가진 나라는 교육선진국 중에서도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미국의 사립고등학교나 영국의 이튼스쿨은 우리나라처럼 광범위하게 서열화된 학교들과도 다르다. 우리나라의 모델처럼 수시로 호출되는 미국 대학은 다양한 계급과 인종의 학생들이 모여 서로 보고 배우는 것을 가장 중요한 교육철학으로 삼는다. 35년 전, 반포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세상의 전부로 여기며 자랐다면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 가끔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