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군 여행] 태백 5현들의 모임장소 와선정(臥仙亭).........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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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군 춘양면 학산리 244번지에 있으며, 2007년 12월31일 경북문화재자료 52호로 지정된 정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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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봉화군 여행] 태백 5현들의 모임장소 와선정(臥仙亭).........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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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이제 문수산(1.207.4m) 중조천 계곡을 따라 병자호란(1636) 이후 낙담한 나머지 춘양면 골띠마을 계
곡 깊은 곳에 숨어 대명절의(大明節義)를 지킨 세칭 태백오현太白五賢)이 시름을 달래던 와선정(臥仙亭)으로 향
한다, 당시 명나라가 망한 후 나타난 조선 선비의 대명 의식은 의리 와 절의를 핵심으로 하는 정신세계를 형성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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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유랑자가 방문한 와선정은 나라의 치욕을 참지 못해 태백산에 숨어 세상을 등진 다섯 사람, 이른바 태백
오현(太白五賢)들이 만났던 역사적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인조가 1637년 1월 30일 청나라에게 무릎을 꿇고 항
복하는 치욕을 당하자, 조선의 뜻있는 선비들은 도연명과 백이숙제의 정신으로 절의를 지키고자 명리를 버리고
은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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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선정은 1636년(인조 4) 병자호란이 항복의 치욕으로 끝나자 벼슬을 버리고 두메산골인 이곳 태백산 아래에 묻혔던 태백5현이
소요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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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태백산 줄기 깊은 산골짜기 봉화 문수산을 중심으로 모여 들어 자연을 벗 삼아 소요하며 나라를 걱정했
던 다섯 명을 태백오현太白五賢)이라 칭하는데 ,이들은 청양군 심의겸의 손자인 각금당 심장세(覺今堂 沈世,1
594~1660, 선조27~1660년.숙종1), 만전당 홍가신의 손자 두곡 홍우정(杜谷 洪宇定,1595~1656, 선조29년~효
종5년), 송강 정철의 손자인 포옹 정양(泡翁鄭瀁,1600~1668,선조35년~현종9년), 참판 강집의 현손 잠은 강흡
(潛隱 姜恰,1603~1681, 선조35년~현종12년),과 영의정 홍섬의 증손 손우당 홍석(遜遇堂 洪錫,1604~1680, 선조
37년~숙종5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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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도에 오현교(五賢橋)를 축조하면서 입구에 세워둔 비로, "병자호란(1636)에 벼슬도 버리고 태백산하(太白山下) 춘양에
은거하면서 대명절의(大明節義)를 지켜 온, 태백오현의 덕을 기리고 교유회동의 정을 추모하기 위하여 아름다운 다리를 놓고
오현교라 이름 짓다" 라고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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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교를 건너 와선정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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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선정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마루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정자 조성연대는 홍우정이 40세되던 1635년 건립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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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각각 봉화 땅에 자릴 잡았는데 잠은은 법전의 버쟁이에 은거했으며 각금당은 법전 모래골에, 포옹은 춘
양 도심촌에, 손우당은 춘양 소로리에, 두곡은 봉성 띠띠물에 은거 하였는데 서로 10리에서 30리 안팎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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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서로 지근거리에 살면서 울분을 달래며 우의를 다졌는데. 그 주된 만남의 장소가 바로 산수가 수려한
'와선대' 였다. 이곳에서 시론을 논하고 풍류를 즐기면서 신선처럼 탈 속적 삶을 추구하며 나라 걱정의 시름을
달랬던 정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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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는 정면 2칸, 측면 2칸으로, 정면에는 판문이 각 칸에 1개소씩 설치되어 있으며, 시냇물과 면한 후면에는 세살분합문이
들어 열개식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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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두곡 홍우정은 병자호란 이후 봉화 뒤뜨물마을로 은둔하여 다시는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머리에
는 벙거지를 쓰고 해진 베잠방이를 입고 망태기를 둘러메고 하류 배들과 섞여 살았다. 때로는 북쪽 하늘을 우
러러 눈물을 흘렸으나 사람들은 그 뜻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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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삶은 뜻이 너무 크고 행동이 자유로워 일반 사람들로서는 짐작하기 어려웠던 외로운 삶이었다. 마을에는
그를 기리는 ‘숭정처사유허비’가 세워져 있는데 ‘대명 천지에 집 없는 나그네 되어, 태백산 속에 승려처럼 살아
가네. 라는 그의 시구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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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우정(洪宇定)은 인조 초에 효종이 세자로 있을 때에 사부(師傅)에 임명하였으나 남한산성에서 나와 항복하였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다시 북쪽으로 돌아갈 뜻을 접었다. 명나라의 운수가 떠나고 부터 의관을 갖추지 않고 항상 삿갓을 쓰고 황색 단의
(短衣)에 새끼 띠를 두르고 짚신을 신고 촌로들과 어울려 지냈고, 앉을때에는 북쪽을 향하지 않았다. 그의 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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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明天下無家客(대명천하무가객)대명 천하에 집 없는 나그네요
太白山中有髮僧(태백산중유발승)태백 산중에 머리 기른 중이로다
潺湲溪下水(잔원계하수) 또한 층계아래 흐르는 냇물 바다로 흘러가니
朝海爾能知(조해이능지) 너만이 알고 그 뜻을 드러내는 구나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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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선정은 암왈사덕(巖曰사德)이요. 폭왈은폭(瀑曰銀瀑)이라, 대왈와선(臺曰臥仙)이라, 하고 태백오현의 후손들
은 계를 결성하여 정자를 건립 와선정(臥仙亭)이라 하였다. 후손들은 태백오현(太白五賢)의 유덕을 추모하고 혈
육보다 진한 정을 나누며 384여년의 전통을 이어오며 오늘날까지 조상의 올곧은 선비 정신을 이어가고 있으며
매년 삼월삼짇날이나 단오에 모이던 계는 요즘은 매년 중복에 맞춰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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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유랑자가 방문한 와선정(臥仙亭)은 안동시 길안면 묵계에 들어앉은 만휴정과 함께 영남정자의 진면목을
보여 주고 있을 정도로 아름답다. 문수산 동록에서 발원한 초계수(草溪水)가 쉼 없이 굽이 흘러내리는 초계동의
골짜기는 예부터 그 수려함과 절경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이 아늑하고 수려한 골짜기의 한곳을 차지하고 들어
선 와선정은 그야말로 신선이 누워 노닐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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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남긴 한시 몇수 남겨본다.
두곡은 임종전날 금당이 서울로 떠난다는 말을 듣고 송별시 3수를 지어 송별했으며 이어 다음과 같은 영결시(永訣詩)를 읊었는데
氣聚爲生散則歸,(취위생산측귀)자연의 기운이 모여 이 생명되었으니 그 기운이 흩어지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것
歸何長短盡同歸(하장단진동귀)’길고 짧음의 차이야 있겠지만 결국은 모두가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리,라고쓴 뒤 혼미하여 끝마치지
못하고 벗인 각금당에게 끝맺으라 하고 다음날 새벽에 죽음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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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9월 5일 밤 각금당의 꿈에 두곡이 나타나 영결시의 재촉을 받고 각금당은 꿈속에서 이를 채웠다고 한다.
朋知骨肉同歸盡(붕지골욕동귀진)친구들과 동료들은 다 돌아 갔는데 초라한 이 늙은이만
草草吾生獨末歸(초초오생독말귀)아직돌아가지 못하고 외로이 홀로남아 있구려, 라고하면서 이 시를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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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는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자로 내려가는 작은 계단이 나오고 내려가면 정자 왼편의 바위엔 와선정(臥仙
亭)과 사덕암(俟德巖)이란 글씨가 음각되어 있고 어디에선가 힘찬 물소리가 들린다. 깊은 계곡 속에 자리잡아
가늠할수 없는 폭포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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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아래를 들여다보면 바위 건너편에 은폭(銀瀑)이라 불리는 5m 남짓한 폭포가 은빛의 물을 뿜어내며 사
시사철 힘차게 흐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와선정(臥仙亭)은 “신선이 누운 것 같은 정자”라는 뜻이고 사덕암
(俟德巖)은 ”덕있는 사람을 기다리는 바위“란 뜻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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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금당 심장세(覺今堂 沈長世) 남긴 시문 중....
世上多榮辱(세상다영욕) 세상사 영욕이 많은데
山中少是非(산중소시비) 산중에는 시비도 적다네.
携筐放浪處(휴광방랑처) 광주리 끌며 떠도는 곳
薇蕨又何肥(미궐우하비) 고사리 저리도 자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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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수(太守) 심장세(沈長世)와 이별하면서 지어 주다. 무인년
六載催瓜熟(육재최고숙) 육 년 임기가 훌쩍 지나
䨥鳧向玉京(䨥부양옥경) 이제 서울로 향하는구려
陰陽相濟政(음양상제정) 훌륭한 다스림을 이룩하여
氷蘗永留聲(빙벽영유성) 청렴한 명성을 길이 남겼네
身病偏傷別(신병편상별) 몸이 병드니 유달리 이별이 슬프고
時危更愴情(시위경창정) 시운은 위태로워 더욱 심정을 서글프게 하네
聊將五雲淚(요장오운누) 하릴없이 임금을 그리는 눈물로
洒寄使君行(주객사군행) 그대가 가는 길에 뿌려 부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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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와선정은 갖출 것은 다 갖춘 정자이다. 은폭(銀瀑)이라는 5m남짓한 폭포가 사시장철 정자를 지키고 있
고 사덕암(俟德巖) 바위위엔 늙은 노송의 그림자리가 언제나 내려앉아 있다. 와선대 위에 걸터앉은 와선정은 사
덕암 바위를 타고 흐르는 은빛폭포(사덕암 폭포)와 눈빛을 마주보고 있으며 높이 또한 정자와 수평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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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선정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마루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정자의 조성연대는 알수 없다. 와선정에 서서 사
덕암 폭포로 난 문을 열고 가만히 앉아 있노라면 금새라도 은빛 폭포에서 일어나는 푸른 물빛이 가슴을 파고
들것만 같을 정도로 참으로 아름답고도 멋 스러운 정자다. 가히 신선이 놀고 갈만한 장소로 심산궁곡 (深山窮
谷)이요, 전설속의 월궁(月宮)이라 할만큼 신선들이 살만한 말 그대로 신선거(神仙居)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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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선정(臥仙亭)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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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선정 아래에는 중조천의 맑은계류가 암벽 아래로 흘러 신선거(神仙居)세계를 이룬다. 계곡은 낭떠러지라 내려갈수 없어 위에
서 내려다보면 한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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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사람의 뜻을 비우게 하고, 꽃은 사람들을 운치있게 하고, 돌은 사람의 뜻을 강하게 하고, 눈은 삶의 뜻을
넓게 하고, 달은 사람의 뜻을 외롭게 한다지만 와선정에서 은빛폭포인 사덕암 폭포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모
든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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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폭포수에 눈은 멀고, 소탐스런 물소리에 귀는 멀어, 발길조차 옮길 수 없으니 이곳 와선정은 분명 신선이
사는 곳인 모양이다. 와선정 정자안에 들어가 눈이라도 감고 있노라면 금새 옛 선인들의 말리 떠오른다. 산의
경치는 아무리 취해와도 금하는 이없고, 아무리 가져다 써도 바닥나지 않는 것이 경치, 강, 산, 달, 바람은 본래
일정한 주인이 없고 오직 한가로운 사람이 바로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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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은 강흡(潛隱姜恰)의 亂離歌(난리가) / 병자호란에 법전에 정착하시면서...
當此亂離時 이 같은 난리 시절
性命粗苟全 구차한 목숨 보존하니
男兒懷壯志 남아 큰 뜻 품었으나
何時報君前 나라님 큰 은혜 언제 가서 갚을 손가
遂決留此地 여기 살길 결심하고
早起躬執雷 아침일찍 일어나 산전을 갈아보니
下山耕薄土 산밑이라 박토일세
土性復何如 산밑이라 박토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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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흡(姜恰)의 현손인 강한(姜瀚)이 읊었다.
巖曰사德(암왈사덕)바위는 사덕바위요
瀑曰銀瀑(폭왈은폭)폭포는 은빛폭포이고
臺曰臥仙(대왈와선)집은 와선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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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신비스런 땅이나 깊숙한 골짜기, 선경은 고상한 풍류를 지닌 사람만이 만날 수 있다. 이는 조물주가 몰
래 보관해두고 보통 사람에게 경솔히 보이려 하지 않는다. 산신령이 꽁꽁 숨겨둔채 그 경치를 영광스럽게 해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그곳이 바로 ‘와선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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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와선정 방문을 열어본다. 다행이도 방문은 열리고 텅 빈 내부엔 태백오현들의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
다. “나의 방을 드나드는 것은 오직 맑은 바람뿐이고 나에게 술을 권하는 것은 밝은 달이 있을 뿐이다.” 와선정
은 그렇게 자연 속에 가만히 앉아 누군가 자신을 가지라고 손짓하고 있는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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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이어보기
https://cafe.daum.net/b2345/9toB/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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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북 봉화군 춘양면 학산리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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