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QzKhvQUY7yU?si=UfMYfrdTh_pwEJ4W
Z. Kodály, Cello Solo Sonata, Op 8 (Complete) LIVE: Santiago Cañón Valencia
코다이의 음악철학 - “음악은 모든 사람의 것이다”
야나체크가 체코의 민족음악을 현대화시켰다면 코다이는 헝가리의 민족음악을 현대화시킨 작곡가이다. 그를 현대 합창음악의 선구자라고도 부르는데, 다른 전공자들은 잘 모르더라도 성악 전공자들, 특히 합창단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코다이를 잘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교육계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코다이의 이름을 알고 있다. 그는 음악교육 개혁자였다. “음악은 모든 사람의 것이다.”, “모든 사람이 음악을 즐겨야 한다.” 누구나 쉽게 악보를 보면서 노래를 부를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이 연주하는 음악을 누구나 빠르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코다이의 음악철학이다.
헝가리 어린이들은 물론 전 세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이 방식은 ‘코다이 교수법’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한국코다이협회>가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음표를 읽는 방식, 리듬을 읽는 방식도 새롭게 고안되었는데, 예전에는 한 악보를 보고 누구는 “따따따”, 누구는 “빰빰빰” 했던 것이 이 방식에 의해 통일된 체계 안에서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음의 높이를 익히는 방법도 아주 흥미롭다. 오선을 보고 음 간격을 가르쳐주는 대신에 손으로 발목을 잡는 것이 ‘도’, 무릎을 잡으면 ‘레'와 같은 방식으로 몸을 사용하게 한다.
어린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코다이. 코다이는 어린이를 위한 합창곡을 많이 작곡했다. 합창은 악기를 살 형편이 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도 음악을 접하는 좋은 수단이었다.
헝가리 국민음악의 건설자로 벨라 버르토크와 함께 추앙을 받고 있는 졸탄 코다이는 민속음악가, 교육자, 언어학자였다. 아버지가 철도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어린 시절의 코다이는 자주 이사를 해야 했다. 그는 갈란타 지방의 한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여기서 헝가리의 민속음악을 처음 듣게 되고 이는 평생 동안 그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중학생이 되자 코다이는 악기 연주에 도전해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차례로 배워 나갔다. 여러 악기를 옮겨 다니면서 일인 다역을 소화해낸 그는 실내악을 시도하여 16세에 학교 오케스트라를 위한 서곡을 작곡했고, 지역 신문은 이 천재소년의 작품을 호평했다. 음악가가 되느냐 교사가 되느냐 갈등하던 코다이는 후자의 길을 택하고 부다페스트 대학에 입학하여 현대언어학과 철학을 전공한다. 이 언어학 공부가 훗날 코다이가 민속음악을 연구하고 음악교육의 방법을 세우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코다이와 함께 헝가리의 음악을 현대화시킨 버르토크. 1927.
아버지의 충고로 교사의 길을 택했지만 코다이는 음악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리스트 아카데미에도 입학하여 한스 쾨슬러에게 작곡을 배웠다. 바로 그때 버르토크, 도흐나니 등이 이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도흐나니와는 시골 마을을 함께 다니며 헝가리 민속음악을 수집하였지만, 버르토크와는 수업 요일이 달라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엄청난 학구열을 가진 코다이는 졸업 후에도 재수강을 신청하고 음악과 언어의 연관성에 관한 논문을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1905년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아다지오>를 발표하여 유명해진 그는 드디어 버르토크와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후원자였던 샹도르 엠마라는 미망인의 집에 자주 모여서 많은 작업을 하였는데 그들의 모토는 진정한 헝가리 음악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코다이는 자신보다 19세 연상인 샹도르 엠마 부인과 가까워졌고 28세가 되자 그녀와 결혼한다. 그는 이 시기에 헝가리 민요 3천여 곡을 악보로 옮기는 작업을 하며, 이때부터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주>나 <무반주 첼로 소나타> 같은 작품으로 헝가리의 정수를 강렬하게 표현하기 시작한다. 1915년 코다이가 33세 때에 쓴 <무반주 첼로 소나타>는 바흐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헝가리 민속음악을 결합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 버금가는 무반주 첼로곡
무반주 첼로곡으로 가장 유명한 작품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다. 거의 200년 동안 이에 견줄 무반주 첼로곡이 없다가 1915년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가 등장함으로써 바흐의 작품에 버금가는 작품이 태어나게 된 것이다. 고전주의의 엄격한 균형미에 충실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는 달리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는 매우 현대적이고 30분이 넘어가는 대곡이다. 연주자에게 고난도의 기교를 요구하는 아주 어려운 곡이라서 잘 연주되지 않다가 야노스 슈타커(1924-2013)를 비롯한 몇몇 대가들이 연주하기 시작하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연주하기 전에 아래 두 줄을 반음 정도 내려놓고 연주해서 악보의 음과 실제로 연주되는 음이 다르다. ‘스코르다투라(scordatura)’라고 하는 이런 조현 방식 때문에 이 곡은 첼로의 음역이 더 확대된 웅장한 작품이 되었다.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는 1991년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프랑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 도입부 첫 곡으로 등장하는데, 영화 덕분에 이 곡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화가인 여자 주인공 미셸(줄리에트 비노슈)이 화가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실명 직전에 집을 나와 퐁뇌프(센 강의 ‘아홉 번째 다리’라는 뜻)에서 폐인 생활을 하는 알렉스(드니 라방)를 만나면서 사랑과 집착을 주고받는 아름다우면서도 끔찍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이다.
▶졸탄 코다이와 두 번째 아내 페체이 코다이.
코다이가 76세가 되었을 때 나이가 훨씬 많았던 아내 엠마가 세상을 뜬다. 그녀는 죽기 전에 재혼을 권유했는데 후보자까지 지명해주었다. 코다이는 페체이 사롤타라는 아주 어린 학생과 결혼하였다. 무려 58살 아래였다. 1967년 코다이는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거의 작곡을 하지 않은 코다이에 대해 어떤 이는 “음악계는 잃은 것이 많지만 교육계는 많은 것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음악 칼럼니스트 칼룸 맥도널드는 “다른 작품을 하나도 쓰지 않았더라도, 코다이는 <무반주 첼로 소나타> 하나로 헝가리가 낳은 가장 위대한 음악가의 반열에 든다.”고 말하였다. 코다이의 두 번째 아내 페체이 코다이는 생존해 있으며 남편의 음악을 세계에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1악장: 알레그로 마에스토소 마 아파시오나토
소나타 형식. 처음부터 기운차게 나타나는 제1주제는 3개의 발전적인 요소를 품고 있어 마치 모노드라마에서 배우의 독백을 듣는 듯하다. 정열적이고 서사시적이며 첼로 음역의 전 스펙트럼을 다 사용하는 듯 스케일이 장대하다. 피치카토 악구를 지나 제시되는 아름다운 제2주제는 발전부와 재현부를 거치면서 진전하는데 마지막에 명상에 잠기며 쓸쓸하게 종결된다.
2악장: 아다지오
자유롭고 규모가 큰 가곡 형식. 첼로의 저역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카프리치오적인 환상을 펴내면서 전개되는 동양풍의 주제 선율이 명상적이다. 오른손의 보잉에 왼손의 피치카토가 따라가야 하는 고난도 기교가 필요하다. 중간부에서는 3/8박자의 경쾌한 민속 선율이 나타난다. 환상적인 분위기를 견지하면서 주제 선율의 음형을 따라 짧은 코다로 들어간다.
3악장: 알레그로 몰토 비바체
론도 형식의 소나타. 강렬한 3악장은 헝가리 민속음악의 색채로 장식되어 있다. 더블 스톱, 아르페지오, 피치카토 등 첼로의 거의 모든 고난도 기교가 구사된다. 첼로 독주가 아니라 오케스트라 합주 같은 느낌을 주는 악장이다.
글쓴이 : 라라와복래
https://youtu.be/CKwIlT6MNAs?si=8ggprIpotp0Cgrnx
Zoltan Kodaly-Sonata for Cello Solo op. 8
첫댓글
Pierre Fournier - Zoltán Kodály Sonata for Cello Solo in B Minor, Op.8
https://youtu.be/e_voV0Bws4Q?si=oraMy1rTfTcpI9u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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