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1. 29. 일요일.
밤중에 고교 여자친구의 카페에 들어가서 내 글을 확인하니 아래 글이 눈에 띄인다.
2005년 5월에 썼던 일기이다.
이게 남아 있는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래서 글을 쓰고, 사진 찍어서 오래 보관해야 할 터.
훗날 글을 읽고, 사진을 보면 옛기억과 추억이 다시 되살아난다.
하루 1편만 올려야 하는데도... 눈 딱 감고는 올린다.
원 제목은 '빨래줄이야?'이다.
제목을 고친다. '개심사의 빨래줄'
개심사의 빨래줄
최윤환
어제는 충남 태안군 안면도를 거쳐서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에 있는 개심사(開心寺)에 갔다.
개심사의 내력과 절의 특징을 설명하는 안내자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보내면서 절 안에 있는 원형의 긴 타래 줄을 보았다.
"저거 빨래줄이야?"
어떤 아이가 물었다.
"그래."
내가 건성으로 말했다.
절 마당 한가운데 원형의 긴 줄에는 연등 하나조차도 걸려 있지 않았다. 연등이 없는 긴 줄을 무어라고 설명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그냥 건성으로 빨래줄이라고 긍정해버렸다. 내가 보기에도 빨래줄이나 하면 제격일 것 같았다.
세상에나. 절의 기대와 달리 불자들의 불심(佛心)이 적은 탓이었을까? 아니면, 최근 들어와 나라경제가 어렵고 일반 서민대중들의 살림살이가 궁색해져서 연등 하나 살 돈마저 아끼는 세태인 것 같기도 했다. 그만큼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힘들다는 것을 간접으로 시사하는 것 같았다.
나는 다르게 생각하고 싶었다. 서산 개심사에서는 시끄럽다며 안내자의 핸드마이크마저 제한하고 있었다. 여행 안내자가 연등 접수를 받는 스님들한테 5분만 핸드마이크를 사용해서 절에 한꺼번에 몰린 일행에게 설명하겠다고 양해를 얻었다. 핸드마이크를 사용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이내 쓰러져가는 듯한 집 대문을 열고 나온 중이 화를 질끈 내면서 마이크를 사용하지 말라고 말했다. 머쓱해진 안내자.
안내자는 절 안으로 들어오기 이전부터 이 절에서는 핸드마이크를 사용할 수 없다며 일주문((一柱門) 밖에서 길게 절의 내력을 자세히 설명한 뒤였다. 그러고도 안내를 더 하려는 듯 절 안에 들어와서 다른 스님한테 양해를 얻었다. 단 5분만 핸드마이크를 사용하겠다고. 결국 중단하고 말았다.
'참, 한심한 중이네. 연꽃이 왜 더러운 진흙탕에서 피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중이로군. 내일이 부처 온 날이라는 것을 세상사람들이 다 알아. 그래서 절간을 찾아왔다면 절을 소개한다거나 기웃거리다 보면 시끄러울 것은 당연하지. 자기의 수양에 방해가 된다고 하여 일절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엄격히 규제해서야 어디 사람관리를 제대로 하겠어? 일반 불자가 돈을 갖다 주려면 많은 사람들이 다가와야 하는 거 아냐? 순 땡땡이 중이구나. 자기 혼자만 고고한 척 깨끗한 척해 봐야 허깨비야. 대중(大衆) 속에서 부대끼면서 일반대중과 같이 어울리면서 자기의 도를 깨우쳐야 하는 거 아냐?'
종교와 하등 이해관계가 없는 나조차 어떤 땡중의 고고한 척하는 행태에 반발이 났다. 그러니 마당 한 가운데 연등을 걸려고 준비한 줄에 연등이 하나조차도 없지. 그러니 아이의 눈에는 단지 빨래줄로만 보였겠지. 거목수(巨木樹)가 많은 것을 보아 사찰이 오래된 것 같으나 절 살림이 꾀죄죄한 것을 보니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짐작할 것 같다.
어리석은 중들아. 너희 그 자체를 내다버려라. 시끄러운 중생들과 함께 부대끼면서 살거라. 이 철없는 땡중아.
조금 피곤하여 평소보다 일찍 잤더니 오늘 새벽 다섯시 반도 안 되어 일어났다.
할 일이 마뜩찮아서 옷입고 서울 송파구 잠실 새마을시장에서 조금 떨어진 석촌호수로 산보 나갔다.
석촌호수에는 이른 새벽(아침?)인데도 체조, 가볍게 걷는 사람, 조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할머니들이 벤치에 앉아서 서로의 손뼉을 마주치고 있었다. 할머니 가운데 한 할아버지도 끼어 한 할머니와 함께 손뼉을 부딪치고 있었다. 같은 그룹의 일행 같다.
나무 그늘 한켠에는 여자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하나 둘 세 넷... 팔을 흔드세요. 다리를 흔드세요."
체조를 직접 시범해 보이면서 몸뚱이를 흔드는 여자는 여장부였다. 날렵한 몸매인 것 같다. 그러나 목소리는 쉬고 갈라져서 왠만한 남정네는 아예 상대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다부진 목소리였다. 걸리면 뼈도 못 추릴 것 같은 여걸 같았다.
나는 늙은 아주머니(할머니), 아저씨들 틈에 감히 낄 생각도 못하고 나 혼자 걸으면서 팔다리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몸뚱이를 쓰다듬으면서 도심 빌딩 위로 솟아오르는 아침해를 슬쩍 비켜 쳐다보았다.
조깅코스로 다듬어 놓은 길을 따라 길섶에 심은 나무와 풀을 눈여겨보았다.
지난해 가을에 해 놓은 듯한 낡은 팻말을 들여다보면서 풀과 꽃이름을 확인하였다. 팻말에는 대부분 꽃 사진이었다. 그러니 아직 꽃 필 철이 아닌 감국 등 들국화의 꽃이름으로는 자라나는 풀잎새로는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석촌호수 한 바퀴는 2,532m.
'이곳은 수심이 깊어 위험하니 물 가까이 들어가지 마세요.'
경고판을 읽었다. 수심이 깊다는 뜻이 어색했다. 수심이란 단어 그 자체가 이미 물이 깊다는 뜻인데도 또 깊다는 말을 덧붙였다. 즉 한문과 우리말을 중복해서 썼다고 보았다.
'물이 깊어 위험하니....'로 고치고 싶다. 우리말로도 얼마든지 쉽게 표현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국 글자인 한자병에 걸린 것 같다. 유식한 체하며 한자어를 너무나 많이 쓰고 있다.
석촌호수 두 바퀴를 천천히 걸었더니 두 시간이나 걸렸다.
매직아일랜드 입구에는 연등(燃燈)이 이천여 개가 더 걸려 있었다. 가로 세로를 헤아려서 줄 단위를 세었다. 연등 하나하나에는 색종이로 만든 꼬리가 세 개나 달려 있고 꼬리에는 이름도 써놓고 무슨 소원도 써 있었다. 연등 하나에 오천 원.
'ooo 10cm' 로 쓴 것을 보니 아이의 키가 더 자라기를 기원하는 것 같다.
석촌호수 길섶의 연등이라. 절도 없는데도 해마다 석가탄생일 때면 연등이 많이 내걸려 있었다. 석촌호수 동편 주택가에는 '불광사'라는 절이 있다. 혹시 불광사에서 내다건 연등인지 모르겠다.
어제는 충남 서산 개심사의 외로운 연등-줄을 보았고, 오늘은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안까지 줄 쳐진 연등행렬을 보았다.
두 개의 절을 비교하면서 본질적인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를 비교했다.
석촌호수 산책로 조깅코스에 내걸린 이천여 개의 연등이 한결 돋보였다. 도심 한가운데 있는 불광사(佛光寺)가 대중과 같이 호흡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석촌호수를 돈 뒤에 집에 와 아침밥을 먹었더니 피곤했다. 이내 잠들었다가 깨어나 보니 한낮이다.
"밥 먹고 이내 자면 어떻게 해요?"
아내의 말을 또 건성으로 듣고 있었다.
석가모니가 온 날이라는 데도 낮잠으로 시간을 다 보낼 거냐?
2005. 5. 15. 바람의 아들
첫댓글 네~~일상이군요
댓글 고맙습니다.
그냥 아무것이나 다 글감 소재가 되지요.
위 글 다듬어서 어떤 월간문학지에 올리고 싶다는 생각조차도 듭니다.
위 글 쓴 지가 무려 만17년도 더 되었는데도... 그날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오르는군요.
이래서 일기, 메모 등은 잘 보관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군요.
천년고찰 개심사는 늦은봄 청벚꽃으로 유명해
해마다 사진찍으러 가는곳 입니다~~
이무렵 사람이 너무 많아 몇키로 남겨놓고 몇시간씩 걸리기도 하지요~~~
개심사에 대한 그런기억이 있으시군요~~~
댓글 고맙습니다.
이 글 쓴 지도 만17년이 더 지났군요. 어떤 문구로 검색하다가 우연히 이 글을 발견했지요.
제 글이었기에 다시 읽으니 그때 그시절의 기억이 희미하게나마 다시 떠오르대요.
사람이 득실벅실거리는 그런 삶이었으면 합니다. 범죄자인 양 혼자서 숨어서 잘난 척해 봐야 헛깨비이지요.
개심사의 주변에는 벚나무가 많습니다.
올해 시간이 나면 다시 한번 에둘러야겠습니다.
많은 시간이 흘러갔기에... 많이도 변했겠지요.
@최윤환 봄이 빠른해는 4월말 아니면 5월초에 왕벚꽃과 청벚꽃이 만개 합니다
이때를 맞춰 왕벚꽃 축제를 열구요~~
몇해전엔 아예 몇키로 밖에서 부터 왕벚꽃 가로수길을 만들어 장관 이랍니다~~
새벽시간 대에 도착하지 않으면 몇시간 차안에서 고생할수 있습니다~~
@고들빼기 예.
저는 꽃 가운데 벚꽃을 더 좋아하지요.
우람하게 큰 나무... 또 일찍 피고.... 화려하게 많이도 꽃 피우고,
질 때에는 일시에 지고.
마치 성질 급한 우리 민족의 성품을 그대로 닮았고...
벚나무 목재로도 활용하면 나무 결도 순하고, 내음새도 좋고....
왕벚꽃 필 무렵... 나들이를 해야겠습니ㅣ다.
석촌호수는 벚꽃 필때 정말 아름답지요
올해도 또 갈거에요
석촌호수 물이 깊어서 조심해야겠네요^^
댓글 고맙습니다.
님은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를 잘 아시는군요.
1970년 초... 잠실지구를 개발하면서 한강에 흐르던 두 개의 강줄 가운데 북쪽에 있었던 강줄기를 막아서 지금의 잠실벌을 남겼고.
강이 흘렀다는 증거를 조금 남겨둔 곳이 지금의 석촌호수이지요.
대신 잠실5단지 아파트 뒷편의 한강 줄기는 더욱 넓게 파서 현재의 모습으로 변모시켰지요.
잠실대교 아래로 도도히 흘러내리는 한강물.
석촌호수 수면은 4m 정도이기에 자칫하면 큰일나지요. 초기에... 석촌호수에 들어가 헤엄치던 젊은이 몇명. 한 사람이 결국은 헤엄치다가 죽었지요.
뒤늦게서야 온 소방차 여러대.... 사체는 뒷날에 건져올렸고...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본 저는... 고개를 흔듭니다.
잘 모르는데도 잘 아는 것처럼 행동하다가는 탈이 된다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은 잠실벌, 석촌호수, 한강이지요.
야단법석이란 용어가 절간에서 쓰는 거 아닌가요 🤔
댓글 고맙습니다.
야단법석이란 한자말. 그게 절에서 쓰는 말인가요?
덕분에 한번 어원을 확인해야겠습니다.
절.... 시장.... 모든 장소는 사람이 득실벅실거려서 살아 있어야 하지요.
위 개심사의 어떤 땡중.. 혼자만 수양하는 척해봐야 저한테는 껍대기. 삶이 없는 깡통이지요.
빈 깡통일수록 두드리면 소리만 시끄럽게 요란하니까요.
몇해 동안 코로나... 핑계로 지방나들이를 하지 못한 채 사람을 피해서 아파트 안에서만 머물렀으나... 올해에는 용기를 내어서 이런저런 곳에 다녀야겠습니다.
세상에는 온통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보고, 먹어보면서 새롭게 알며 공부할 것이 엄청나게 많지요.
산바람 갯바람을 쐬어야겠습니다.
운선님이 언급한 '야단법석' 뜻을 검색합니다.
야단(野壇)이란 야외에 세운 단이란 뜻이고,법석(法席)은 불법을 펴는 자리이다.
즉, 야외에 자리를 마련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라는 뜻이다.
법당이 좁아 많은 사람들을 다 수용할 수 없으므로 야외에 단을 펴고 설법을 듣고자 하는 것이다.
개심사 왕벛꽃이 은제나 피려나요
댓글 고맙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일년내내 피어 있을 터.
한겨울이 거의 끝나가는 지금...
한번 내려가보셔유.
아하... 아직은 추워도 찾아가기는 뭐하고...
봄철에 가 보셔유.
왕벚나무는 우리나라 자생종.
벚나무꽃은 일본왕실의 꽃이지만 본래는 우리나라에서 건너갔을 터.
봄이 스멀스멀 올 때쯤... 벚나무 꽃바람 날릴 때 훌쩍 여행다녀와야겠습니다.
봄 기온이 많이 올라가면 4월 마지막주......
아니면 5월 첫째주가 적기 입니다 ^^
해마다 조금씩 달라져서 저는 인터넷 검색해 보고 갑니다
@고들빼기
댓글 고맙습니다.
벚꽃이 활짝 필 무렵이 4월 마지막에서 5월 첫째주...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지역마다 다소 차이는 있겠지요.
남녘지방은 다소 빠르고, 북녘지방은 조금 더 늦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