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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구려 토론방 Re:고구려는 정말 삼국통일을 할 의지가 없었을까?
돌부처 추천 0 조회 424 10.11.05 16:15 댓글 3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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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11.05 18:55

    첫댓글 이미 님의 글에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장수왕은 신라병합(고구려화든)에 대해선 불가능하다고 생각을 했거나, 그런 세세한 계획도 넘 허술했다(겨우 100명 주둔)고 했습니다. 님의 말이 진리면 세계의 그 수 많은 나라들의 정복전쟁(작거나 커든)의 역사나 아니 신라가 삼국통일(?)기에 했던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죠. 장수왕대에 이르면 장수왕이 수도천도 남진정책을 펼치면서 북방의 국가들과 전쟁이 한 번도 안 나게끔 절묘하게 외교를 잘 펼쳤죠. 심지어 백제가 북위에 고구려침공을 도와달라는 내용까지 고구려에 알려줍니다. 이런 일도 일어나지 말아야죠.

  • 작성자 10.11.05 19:14

    광개토태왕과 장수왕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거나 허술했다는 내용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군요. 그 이하는 이해하기 힘드니 자세한 설명이 가능하다면 부탁드립니다. 다만 한 가지만 말하자면, 전 5세기 당시의 정황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라가 최후의 승자가 된 것은 그 정황을 가지고 논의해야지 동일선상에서 논의할 수 없습니다. 만약 다른 예를 든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지 더...댓글이 혹시 3개가 넘어가게 된다면 새로운 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10.11.05 18:59

    신라는 가야를 흡수하고 그 출신을 최고사령관으로 삼기까지 합니다. 저는 우리나라역사에 대해 상식적 수준밖에 안되어 잘 모르겠지만 말갈족을 일원으로 만들었던 고구려는 구체적으로 어느 수준까지 말갈족을 포용했는지 모르겠더군요. 고대 그리스도시국가처럼 2등이나 3등의 차등적인 위치인지 아니면 완전히 로마같이 일원으로 녹아 들어갔는지 말입니다.

  • 10.11.05 19:19

    당주가 100명이면 이들이 부릴 수 있는 군사는 총 1만 명으로 이 숫자는 무시할 수 없는 규모입니다. 흑수말갈 외에는 거의 고구려화 되었다고 무방합니다. 김유신 계열은 결국 토사구팽 식으로 몰락의 길을 걷습니다. 김유신 때조차도 심한 견제를 받았지요.

  • 작성자 10.11.05 19:16

    말갈에 대해선 논문도 많고 아직 완전히 확립되지 않았습니다. 저마다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저도 나름대로 생각하는 것은 있으나 생략하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흑수에 거주하던 말갈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말갈들은 완전히 융화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 10.11.05 19:03

    신라가 단지 산간지역의 특성으로 배타성을 이야기하시는데.. 울나라에 산지가 없는데가 있나요? 다른 세계의 나라는 산지가 없다는 말인가요? 이거뭐 프랑스의 레지스탕스가 무서우니 1차,2차대전에서 독일이 프랑스를 치지 말아야했다는 말을 하시는 겁니까?

  • 작성자 10.11.05 19:17

    앞서 언급했듯이 그 당시의 정황을 가지고 논의하는 것입니다. 전 신라병합이 불가능하다고 한 적이 없고 태왕이나 장수왕의 신라병합에 대한 전략이 당시로서는 합리적이었다고 했을 뿐입니다.

  • 10.11.05 19:18

    장수왕은 북방의 나라들관 굴욕외교라는 명칭이 붙을 만큼 강한 나라에 대해선 최대한 전쟁을 회피하고 그보다 작은나라, 아니면 일단 후방의 배후를 제압한다는 의도는 고구려의 백년, 천년 대계에 너무나 적절한 전략이었단 걸 말하는 겁니다. 그런의미에서 광개토대왕은 신라파병기에 신라흡수를 한다는 계획이 없었다는 치명적인 실수를 합니다. 신라에 들어온 왜구는 400년 싸움에서 이미 치명타까진 아니래도 기세가 꺾였습니다. 백제는 당시 고구려와의 관계로 볼때 군대파병은 현실성이 부족합니다. 신라의 봉기를 자꾸 말씀하시는데 신라가 다른 적이 없다면 대규모로 나올 수도 있겠죠.

  • 10.11.05 19:32

    장수태왕 대의 외교를 굴욕외교라고 하는 것은 처음 듣습니다만... 아무튼 당시 고구려가 무슨 여력으로 신라를 무력 합병한다는 것인지요? 그리고 '당시'의 광개토태왕에게 있어 신라 정복이 과연 수백 년에 걸친 요동정복사업 보다 더 가치가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 작성자 10.11.05 19:26

    오히려 북위가 북연 문제에 있어서 싸움을 피했다고 봐야죠. 그리고 백제신라를 우선 제압한다는 의도는 평양천도를 염두에 둔 주장 같은데, 이미 여러번 남진이 주목적은 아니었다는 설명과 예시를 들었습니다. 또한 백제는 빠른 시간에 회복하여 고구려에 대항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 10.11.06 02:56

    장수태왕은 북연왕 풍홍의 신변처리 문제를 두고 송, 북위 등과 날카롭게 대립했습니다. 이는 고구려의 국익에 달린 문제로, 고구려는 자국의 국익을 저해한다면 전쟁을 불사할 정도로 강경하게 밀고 나갔습니다. 이런 장수태왕이 굴욕외교를 펼쳤다라 말씀하셨는데... 대체 무엇을 보고 굴욕외교라 하는지 모르겠네요.

  • 작성자 10.11.05 19:27

    제가 말씀드리고싶은 것은, 물론 결과가 어찌되든 무력으로 완전 병합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는 있습니다만, 당시 고려는 다른 우회적이고 합리적인 전략을 구상하여 실행했기 때문에, 전략이 없었다고 비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 10.11.05 19:32

    굴욕이란 현재에서 말하는 것이고요. 장수왕대의 잦은 북위에 사신파견을 말하는 것이고요. 무력병합이라고 하면 처음 말씀드린 광개토대왕의 5만대군 파병입니다. 두 번짼 장수왕대의 수도천도 후 북방은 외교로 안정시키고 남진정책을 말하는 것이고요... 힘드네요 혼자서 하자니.. 저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은 없나보네요..

  • 10.11.05 22:18

    그러니까 고작 5만 명으로 신라 병합이 가능하냐 이것입니다.^^; 그것도 수 백년에 걸친 요동정벌 포기하는 것은 물론 고국원왕 떄와 같은 엄청난 역습을 각오하면서까지 말입니다. 광개토태왕이 신라 파병 이전에 후연을 염려하여 후연에게 사신을 보냈음에도 남소, 신성을 역습한 것이 후연입니다. 이러한 후연에게 외교적 안정이 이뤄지는 것을 기대할 수 없지요.

  • 10.11.05 19:41

    장수왕대까지 시간은 걸렸겠지요. 허나 광개토대왕과 장수왕대의 정책이 이어지지않죠. 장수왕의 생각이 광개토대왕대부터 있었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하는것이고요.. 장수왕도 수양제나 당태종처럼 총동원령 같은 개념으로 모든 자원을 밀어부치는 방법을 썼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 작성자 10.11.05 19:45

    당시의 사건을 현대 시각으로 굴욕이라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구요, 장수왕이 보낸 사신만 기록되어 있지 거꾸로 북위에서 고려로 보내온 사신은 어떠했는지 알 수 없을 뿐이구요, 수도천도가 북방은 외교로 안정시키고 남진정책을 추구하려는 목적은 아닙니다. 오히려 북방에서의 사건이 많았습니다.

  • 10.11.05 22:15

    광개토태왕이 신라에 총동원했으면 후연에게 신성,남소성 뺏기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국원왕 때처럼 수도와 인근이 초토화되었을 가능성이 크지요. 당시 후연의 군주 모용성은 강력했던 북위와의 국지전에서도 우위에 설 정도로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으니까요.

  • 10.11.05 19:38

    제가 전략,전술이 없었다고 강조하는 게 아니라, 좋은 기회가 있었는데(저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네요, 신채호 선생의 문구를 따와서 "고구려 1천년 역사에서 일생일대의 실수") 살리지 못했다... 세계의 역사에서 좀 큰 나라들은 괜히 커졌던 게 아니더군요.. 그렇다고 단순히 힘만으로 밀어 붙였던 건 더더욱 아닙니다. 그런 아쉬움에서 올리는 글이죠. 사실 저는 고구려 보단 김춘추나 신라를 더 좋아하죠 통일기의...

  • 작성자 10.11.05 19:48

    예를 들죠...만약 태왕의 5만이 신라를 병합할 움직임을 보이고, 신라가 거꾸로 백제와 가야, 왜와 연합을 하여 안팎에서 고려본토로의 퇴로를 끊고 협공했으면 어찌됩니까. 그야말로 정규군 전부를 절지에 몰아넣은 꼴이 아닙니까. 만약 그것이 가능했다면 태왕이라고 왜 추진하지 않았겠습니까. 수많은 정황이(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정황까지도)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님도 그렇고 신채호 선생님도 너무 우리 시각에서 그 당시 상황을 이해하려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10.11.11 14:33

    신라를 병합할 기회는 고구려가 (예상치 못한 누설로 실패로 돌아갔던)당주들을 파견했을 때가 최상의 적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김춘추가 과대포장이 많이 됐고 상대적으로 그의 아들인 문무왕이 굉장히 저평가되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 10.11.05 19:56

    돌부처님 그렇게 이해를 하실 수도 있는데 저는 그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이 남진정책을 썼기에 이런 부질없는 IF를 하는거지요.
    명치호태왕님 100명이 아니라 1만이 정확한가요? 잘 배웠습니다.

  • 10.11.05 20:09

    당주 1명 당 100명의 군사를 휘하에 둘 수 있습니다. 신라토내당주는 당시 100명으로 총 1만 명의 군사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 신라토내당주들은 자신들의 명령체계 안에 있는 신라군사들을 움직여서 신라 해안가를 순찰하던 왜의 순찰선을 격파한 것이고요. 정말 신라토내당주들이 마음만 먹었다면 유사시에 신라에서 정변을 주도할 수도 있는 병력을 갖고 있던 격입니다.

  • 작성자 10.11.05 20:00

    너무 공격적이라고 오해하지 마세요. ^^;; 물론 누구나 그 시기의 환상과 아쉬움은 갖고 있을겁니다. 다만 아쉬움을 채우려고 토론하는건 아니니까요. 한편 여러번 말씀드렸다시피 남진정책이란 표현은 매우 부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주된 정책이 남진이었고 그것을 위해 천도했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정책방향과 병력동원현황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 10.11.05 20:07

    네. 그래서 더 아쉽다는... 후연과의 마지막 전쟁후 200년간 고구려 북방에선 전쟁이 없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장수왕은 80세까지 장수를 누렸고... 그래서 더 아쉽네요. 엉뚱한 얘긴지 몰라도 실패한 수양제나 당태종이 요즘 넘 크게 보입니다.

  • 작성자 10.11.05 20:12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선 북연흡수때 2만의 병력을 움직였지만 북위가 회피했을 뿐이고, 지우두 분할, 문자명왕대에 요서습격, 후주와의 전쟁, 물길토벌 등 군사활동이 제법 많습니다. 특히 북위혼란기 지속적으로 요서를 습격하여 이득을 취하였습니다.

  • 작성자 10.11.05 20:14

    고구려 전성기는 시각에 따라 달리 볼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광개토태왕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태왕이 대국의 틀을 만들어 놓고 장수왕 이후 큰 발전을 한 것이죠. 오히려 수나라 대군을 막아낸 영양왕에 관심을 갖는건 어떨지...수양제 따위와 비교할 바 아니라고 봅니다.^^;;

  • 10.11.05 20:32

    네. 사실 저는 광개토대왕을 높게 안 봅니다.. 수양제나 당태종.. 작은 나라엔 제일 치명적인 전략을 쓴 사람이죠.. 이이제이나 각종의 술략들이 난무했던 대륙의 역사에서 먼저 백제나 신라에 고구려를 치자고 제안한 왕이 없었던 게 좀 의아... 아무리 신라가 허약했다곤 하지만 배후에 약골이라도 세워두면 그 적은 등골이 오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쟁에 있어서나 실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때라도 포위되는 형국을 허용하는 일은 있을 수 없죠.. 이제 그만 할렵니다. 좋은 밤 되시길..

  • 10.11.05 21:57

    1차 고당전쟁 떄 당태종이 백제와 신라에게 후방에서 고구려 치라고 했던 적이 있긴 있습니다. 그래서 신라가 대군 동원해서 고구려 쳤는데, 백제는 고구려와 동맹을 맺고 있던터라 당연히 당태종 말 안 듣고 되려 신라가 고구려 치는 틈을 타서 신라를 공격하여 성들을 뺏는 바람에 신라는 고구려 전선에서 철수할 수 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신라와 당의 양동작전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 10.11.05 23:08

    그렇군요. 자세한 내용을 모르지만 그랬다면 고구려, 백제가 기민하게 대응한 거군요. 사실 군사전략적인 측면에서 보면 작은 나라를 먼저 제압하는 게 기본입니다. 김춘추가 찾아 백제, 고구려를 치자고 제안했을 때 아마 당태종은 더 없이 기뻐했을 것 같군요. 1차의 실패의 교훈을 얻었을 거로 보입니다.

  • 작성자 10.11.07 17:36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겠군요. 전 광개토태왕을 낮게 본 것은 아닙니다. 태왕은 위대한 왕이죠. 고구려란 나라를 한층 업그레이드 시킨...문명대국의 틀을 만든 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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